월요일 오후에는 커피를

 

대선 이후로, 뭘 해야 할지, 사실 방향을 전혀 못 잡았다. 경제학자로서는 그만 살고 싶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뭘 해야 변화가 생길지도 잘 모르겠고. 물론 이것저것, 아는 척 하면서 뻥가는 건 할 수 있겠지만, 진짜로는 잘 모르겠다, 이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다음 주 월요일 오후 3, 광화문 우체국 옆에 있는 커피빈에서 사람들하고 커피 마시는 것을 첫 행사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선 이후, 처음으로 대중들과 만나는 행사이다. 그러나 아무 기획도 없고, 아무 준비도 없다.

 

지 돈 내고, 지가 커피 마시는 거

 

그 이상의 의미도 뜻도 없다. 그러나 그런 거라도 해야 할 듯싶다. 어딘가 장소를 빌려서, 어떻게 알아서 찾아오는 사람들끼리 이것저것 얘기하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간담회라고 하는 것, 그건 좀 아닌 듯싶었다. 그런 행사는 참 많이 했다.

 

내가 움직이면, 옆에서 나를 돕는 사람들이 같이 움직인다. 나도 오랫동안 스탭들이 옆에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해주는 삶을 살았다. 그러면 깔끔하고 무리 없이, 작으면 수십 명에서 크면 천명 정도가 움직이는 행사를 처리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너무 적은 사람이 와서 썰렁하면 또 그대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곤란하게 되면 또 그대로

 

일본식 표현대로 대면관계’, 어쨌든 우리는 온라인 바깥으로 나가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막상 보면 어색하거나 혹은 별 거 없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정말로 만남을 쌓아나가야 할 듯 싶었다.

 

아직 나는 별 뚜렷한 계획은 없는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계획 없이 커피 마시는 이런 패턴의 일이 잘 되면, 지방을 비롯해서 전국을 돌 마음은 있다. 제주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역은 새벽에 출발하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총각 때, 그런 식으로 전국을 돌면서 여행을 했었다. 지금이라고 못할 것은 없다. 월요일 오후 3시면 어디에선가 커피를 마시는 것, 생각보다 낭만적이기도 하다.

 

강연회, 토론회 등등 여러 형식을 생각했는데, 일단은 커피나 한 잔 마시는 걸로 우리의 출발을. 처음 얼굴 보러 나와서 맞는 그 어색함을 이기기 못하면, 박근혜를 죽어라고 지지한 사람들의 끈적끈적함을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어쨌든 일단 커피부터

 

한국에서 버티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영혼과 육신 그대로인 인간들끼리, 커피 한 잔 마시는 거, 그거 아니겠는가?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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