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비루함의 연속

 

삶이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계속되는 비루함의 연속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비루한 것들을 참고 지내고, 잠시 그것을 잊는 순간이 있다. 무엇이라도 좋다, 잠시 마음을 얹을 수 있는 것, 그 때 잠시 비루함을 잊는다. 그리고 다시 더 큰 비루함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비루함을 느끼지 않고, 늘 신나고 기분 좋게만 사는 존재, 그건 미친 놈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내가 본 최대의 미친 넘은 바로 명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자신은 전혀 비루해지지 않지만, 우리 모두를 비루하게 만들어버렸다. 명박의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악몽이다. 그는 짧은 5년 동안, 지워지지 않을 상채기들을 너무 깊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대통령이 바뀌면 끝날 것 같지만, 어떤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통증이 줄어들 뿐이다. 명박이 한국의 생태와 한국의 경제에 남기고 가는 것은 그런 깊은 상처일 것 같다. 그 시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악몽과 같다. 깨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가 있는 듯한 깊은 상처,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몇 달간 소설 작업을 하면서 그야말로 일탈과 같이, 먼 여행을 하고 온 것 같다. 몇 달간 거의 매일을 밤을 새다시피 했는데, 이제 떠나 보내고 나니, 그걸 쓰고 있던 순간이 비루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위에서 내리려고 하는 게 비루한 것인지, 하여간 일상의 비루함들이 다시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내 삶에 단절은 한 번 있었다. 정말 10년 전, 공직을 그만두면서 한동안 뭘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 한 번 있었다. 그 때는 정말 본능으로 살았다.

 

내 삶을 대체적으로 몇 년 동안의 이정표를 빠듯하게 세워놓고 사는 그런 삶이었다. 경제 대장정 시리즈를 시작하고 나서는 더더욱 그랬다. 아직 몇 권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건 좀 더 천천히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시작한 거니까 끝을 내기는 하겠지만, 처음에 생각한 그런 방식으로 마무리 짓지는 않을 생각이다. 뭔가 결정적인 테마가 떠오를 때까지, 좀 더 차분하게 기다려보려고 한다.

 

지난 수 년 동안 대선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말로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 생각은 별로 안 했는데, 막상 내년에는 뭘 하고 지내지? 그런 생각이 오늘 문득 들었다. 대선 이후에는 작은 약속도 하나 잡아놓은 게 없다. 뭐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기 때문에 잡아놓을 수가 없었고, 또 그냥 그렇게 비워놓고 싶기도 했고.

 

일정이 꽉 잡혀 있는 삶이 더 좋은 건지, 지금처럼 뭘 할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 더 좋은 건지는 잘 몰겠다. 그러나 그 어느 편이라도, 삶은 비루하다. 뭔가 준비된 대로 움직인다고 해서 덜 비루한 것이 아니고, 또 할 것이 결정되어 있다고 해서 더 비루한 것은 아니다. 삶이라는 것은, 그냥 사는 거다. 준비되어 있다고 해서 더 의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되는대로 지낸다고 해서 덜 의미 있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만든다고 더 높은 성취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길이라는 것은 그냥 걸어가는 동안에만 의미가 있는 것처럼.

 

살면서 내가 배운 게 있다면, 집착이라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 사람들이 성과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게 진짜 마음을 편하게 해주거나, 자신에게 언제나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집착을 만들어서, 그걸로 무언가 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정말로 사람을 비루하게 만든다. 그런 것도 다 내려놓고 편안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 삶에서 진짜로 성취해야 하는 것은 그런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렇게 생각하는 그 자신도 지워낼 수 있는 것,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년에 뭘 할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보다가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아무 것도 하기로 결정된 것이 없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삶이라는 것은 언제나 비루하기만 하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