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에 유학 시절에 케이블 TV를 잠깐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나는 TV는 공중파만 보는 편이다. 유학 시절부터 머리 맡에 CD를 켜거나 TV를 틀어놓는 게 습관이 되어서, 남들처럼 조용한 방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차 마시는 중에 책도 보고, 글도 쓰고.

 

나는 조용해지면 잡념이 늘어서, 대체적으로 뭐라도 틀어놓는 편이다. 이게 참 성격 이상하다. 시끄러운 데에서는 아무 일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조용한 방에서는 또 아무 것도 못한다.

 

대체로 그렇게 살았는데...

 

이사하고 나서는 청와대랑 등을 대고 북악산 한 가운데의 계곡 입구에 살고 있는데, 여기가 지독할 정도의 난시청 지역이다. 튜너를 위해서 꽤 비싼 FM용 안테나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도 전혀 통하지가 않는다.

 

여덟달만에 포기하고 결국 케이블을 들이기로 했다. 매주 PD 저널에 칼럼을 쓰는데, TV는 하나도 보지 않고 PD들에게 뭔가 말을 한다는 것도 영 양심상 꺼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비 내리는 호남선'을 참으면서 선덕여왕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결국 쿡 티비를 달았다.

 

아... 이게 스타 리그가 안 나온다. 아무 생각없이 시간 때우기에는 스타 크래프트 만한 게 없는데.

 

그 대신에 VOD 기능이 있다. 좀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지만, 하여간... DVD 보는 마음으로 너무 뻔해 보이는 영화를 골라서 볼 수 있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그리하여 개시 기념으로 영화 한 편을 때렸는데, 이게 <타짜>다. <타짜>는 옛날에 만화로 좀 보기는 했는데, 뜨문뜨문 본 이유 때문에 그렇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섹스, 반전, 돈, 전형적인 B급 코드였다.

 

이 영화는 아마 한국 영화사를 정리한다면, 결국은 김윤석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영화 정도로 남지 않을까... 싶다.

 

호러 특히 괴기 영화나 무서운 영화에 대해서는 나도 한 B급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내가 혀를 내두룰 정도로 무섭다고 느낀 영화가 바로 <추격자>였다. 솔직히, 이 영화는 이제는 좀 끝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공포가 끝까지 같고, 정말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김윤석은... 간만에 보는 좋은 배우 같다. 그는 <즐거운 인생>에서도 아주 느낌이 좋았었다.

 

사람마다 스타일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송강호를 비롯한 몇 명의 맨 앞에 서 있는 배우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론 싫은 이유를 찾으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냥 내 스타일 아니라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어지간하면 싫은 소리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김윤석이 가진 매력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여간 잠깐 그렇게 하고...

 

역시 나는 아저씨는 아저씨고, 옛날 사람이다.

 

DVD로 3편 세트를 전부 가지고 있는 <영웅본색>을 틀고야 말았다.

 

(아버지가 빌려가서 몇 년째 돌려주시지를 않는다.)

 

<영웅본색>을 볼 때, 비로소 나는 가장 편안한 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나는 왜 나에게 윤발이 오빠 느낌이 나지 않을까, 아주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어쩔거냐. 하늘이 나를 이 형편 없고 느낌 없는 모습으로 태어나게 했는데 말이다.)

 

(참 쿡 티비의 VOD 리스트 중에는 김현진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린 바로 그 <언니가 간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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