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기어의 귀향(1982년)>이라는 실화를 다룬 프랑스 영화가 있다.

아쉽게도 난 못 봤다. 프랑스의 국민 배우라고 할만한 제랄드 데파뜌 버전이다.

이 영화를 리차드 기어 버전으로 다시 만든 영화가 <서머스비>이다.

다른 사람 취향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진짜 재밌었다.

남편 바꿔치기라는 포맷인데, 돌아온 가짜 남편이 원래 남편보다 훨씬 좋거나 다정한 사람이라는 그런 모티브이다.

리들리 스콧의 <로빈 후드>는 전혀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봤는데, 이번에는 러셀 크로우 버전의 '서버스비'인 셈이다.

로빈과 마리안의, 아주 익숙한 풋풋한 틴 에이지형 로맨스가 '마틴 기어의 귀향'의 포맷을 만나면서, 40대 중년의 가슴 설레는 불륜 버전으로 바뀌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이코 드라마이기도 하고, 가정생활 백서의 느낌을 주기도 하고, 철 들지 않는 아저씨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철 든 사람은 할아버지 두 명.

프레임은, 남편이 바뀌다는 썸머스비 포맷인데, 영화를 끌고 나가는 모티브는 마그나 카르텔이다.

실제로 마그나 카르텔이 재정되는 순간이 바로 존 왕 때이니까, 어떻게 해서 영국에서 입헌군주제의 제도적 틀이 생기게 되었나, 그 순간을 다룬 셈이다.

그리고 그 마그나 카르텔의 첫 초고를 만든 사람이 바로 로빈 후드의 아버지였더라, 요런 전설 같은 얘기이다.

리들리 스콧은 가끔 좌파 감독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영화만을 놓고 볼 때는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에일리언>에서 마지막으로 에일리언이 가득 찬 행성을 파괴하는 핵 미사일 그리고 언제나 상존할 수 있는 '우리 안의 외부자' 즉 전염성 강한 공산주의라는 사상, 이 두 가지의 모티브를 가지고 지독할 정도로 냉전 시대에 소련을 연상시키는 상업적 감독일 뿐이라는 신랄한 평들이 좀 있다.

<블랙 호크 다운>은, 클린턴 시절의 첫 군사적 외교, 그리고 실패, 이 과정을 그린 건데.

미국의 평과는 달리, 나는 좀 배운 게 많았던 영화였다.

<로빈 후드>는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냥 홈 로멘스 시트콤을 영화로 바꾼 것, 그런 말랑말랑하고 근쩍근쩍한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결혼 7일만에 십자군으로 떠난 남편 그리고 그의 칼을 들고 다시 돌아온 어느 병사.

이를 대하는 아내의 심경이 재밌었다.

1215년 마그나 카르타를 통해서 영국이 민주주의의 역사를 걸었다, 요건 좀 지나치게 과장된 해석이라는 생각이 있지만.

어쨌든 로빈 후드가 활약하던 시기가 바로 그 시기이니, "자, 왕이여, 자유를 달라"는 로빈 후드의 대사가 아주 개뻥은 아닐 수도 있다.

분위기는 장중하지만, 만약에 나한테 이 영화 장르를 잡아보라면, 로맨스 코메디 정도로.

영화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에서 연결되는, 프랑스 국왕이 석굴 먹는 장면에서, 배꼽을 뱄다.

미스터 빈이 샹젤리제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석굴을 먹던 장면과 연결되서, 굴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로 영국 사람과 프랑스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는.

영화에서는 사이코 패스처럼 그려지는 고프리에게, 프랑스 국왕이 생굴을 까주면서 자기 피까지 살짝 묻혀서, 먹어...

존 왕과 같은 유모에게 자라난 고프리가 어떤 사연으로 프랑스 국왕에게 협조하게 되는지는, 영화 내에서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애가 원래 좀 맛탱이가 살짝 간, 그 정도로 그린 것 같다.

자기 피까지 발라서, 배신자인지, 이중 첩자인지 알 수 없는 복합적인 상황에서 굴을 먹여보는 프랑스 국왕도, 살짝 맛탱이 간 인간으로 그려진다.

싫은 거 알지만, 먹어, 그럼 믿을께.

고프리가 고뇌에 찬 표정으로, 프랑스에 협조할 자신의 심경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피 묻은 석굴 신이 사용되는데, 난 자꾸 미스터 빈이 굴 먹던 장면이 생각나서, ㅋㅋㅋ.

생굴먹는 영국인의 괴로움은 미스터 빈이 더 훨씬 실감나게 그렸다.

좀 괴로웠을 것이다.

그나저나 엄청 길다. 140분. 큰 맘 먹고 봐야 하는.

이거 보고 나서 아쉬워서 보너스 트랙의 deleted scene까지 다 봤는데, deleted scene이 더 재밌다고 느꼈던 드문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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