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지랄 맞은 사랑"...

이 대사는 주진모가 나왔던 <사랑>이라는 영화에서 들었던 대사이다. 영화는 허방한 영화였지만, 주진모가 그래도 연기를 좀 했던 게 기억에 남고, 왜 이렇게 만나고 또 만나지,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다. 주진모는 <무사> 때 너무 황망해서, 잘 안 보게 된다만. <사랑>은 간만에 봐서 그런지, 볼만 했다.

영화 <화피>는 요괴 얘기이다. 음... 요괴에 관한 책도 한 권 냈을 정도로, 요괴 얘기는 또 내가 빼놓지 않고 보는 영화 중의 하나이다. 아내는 요괴 등 귀신 나오는 영화는 절대 안 본다. 연애할 때, <디 아이 2>를 보러 같이 극장에 갔다가, 와... 맞아 죽는 줄 알았다 (당시에는 아직 아내가 태권도 3단이었고, 사범증도 없던 시절이었다만...)

요런 중국판 요괴 영화 중에서는 <디 아이>가 아직도 기억에 남고, <천녀유혼 3>을 파리에서 봤던 기억이다. 샹젤리제 고몽에서 봤던 것 같은데, 수 년째 한국에 못 가봐서 홈식이라고 불리는 노스탈지아가 생겨나는데 한 몫 단단히 했던 기억이다.

조미는 <소림 축구>에서 처음 봤을 때 기억이 난다. <삼국지> 등 조미 나오는 영화도 꽤 본 것 같은데, 역시 삭발하고 골키퍼로 나와서 상대방 골대에 머리 박을 때가 가장 충격적이었던.


견자단은 <엽문>에서 상당히 차가우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오래된 중국식 귀족의 느낌이 잘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영화 <화피>는 진짜 사랑이야기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장미희가 주연을 맡았던 <구미호>를 21세기로 가지고 와 화려하게 채색한 느낌이다. 비장비로는 묘하게 세익스피어의 <햄릿> 느낌도 나고.

중국 요괴 영화에서 세익스피어의 느낌이 들었다면 황당하기는 하다. 대학 시절 <로보캅>을 보고, 저건 햄릿이다, 그랬던 기억이 난다. 마침 영문과 동기들하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걸 이제 알았냐고 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실제 <로보캅>의 주인공 등 주요 배우들이 햄릿 주연하던 배우들 출신이고, 전체적으로 햄릿풍으로 미장센을 했다는 얘기를 그 때 들었었다...

아, 꽤 비싼 돈을 주고 대학시절 햄릿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햄릿이 유인촌이었다. 우리나라 햄릿은 왜 이렇게 망가지나.

서양에서 괴물 특히 좀비 얘기는 언제나 사회적인 얘기이다. 로메로 이후로 그 시대라는 콘텍스트를 담으려고 하는 것들이 <28일 후>에서 <레지던트 이블>까지 이어져오던 좀비 영화의 전통이다만.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요괴 얘기에서, 특히 영화에서는 사회는 빠지고 그 대신 사랑이 맨 앞으로 나온다.

요괴 얘기 중에서 시대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한참 시절의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들 정도라고나 할까? <토이 스토리 3>에 토투로가 까메오로 나온다고 한다. 토투루에서 원령공주의 사슴신 아니면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너구리들까지, 사회성 잔뜩 머금은 캐릭들이다만... 영화로 넘어오면 사랑만이 모티브로 남고, 시대는 사라진다.

<화피>의 경우도 그런 끔찍한 사랑의 전통에서 한 발도 나가지 않은 영화다만... 나야 워낙 요괴 얘기 좋아하니까.

여섯 명의 물고 물리는 사랑, 그리고 희생에 의한 부활까지. 동양의 요괴 영화에 부활은 잘 나오지 않는데, 여기에는 부활의 모티브와 함께, 서로 사랑하라, 그리면 너희가 부활하리라, 요런 요괴 버전 부활이라고 할까?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다음에, 주성치를 제외하면 이제 예전의 홍콩풍 영화들에서도 시대를 빼는 게 흐름이다. 정치의 과도한 예술에 대한 개입이라고 할까?

물론 중국 공산당의 지도 하에서도 사회는 가끔 들어가는데, 좀 너무 들어가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진시황의 통일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다룬 <영웅>은 가끔 그래서 격론이 되기도 한다.

북경 올림픽을 즈음하여 나온 대형 중국 사극들은, 그래서 공산당과 영화 제작사라는 눈으로 좀 밖으로 앵글을 빼서 보면 묘한 긴장감이 있기도 하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날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무간도>는 아예 외국 개봉용 그리고 중국 개봉용으로 전혀 다른 엔딩이 있다. DVD 버전에는 세 가지나 된다. (안성기가 출연했던 <묵공>은 안성기의 중국어를 더빙한 극장 개봉용과 안성기의 중국을 그냥 그대로 둔 한국 개봉용 DVD 버전이 각기 달랐던 적이 있다.)

"이제 다 봤는데, 어쩌겠어..."

요런 요괴의 대사 한 마디가 영화가 끝나고도 잘 잊혀지지 않는다. 컴의 do와 undo, 사랑 얘기가 아니라 요게 모티브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다시 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어쩌면 undo, 그게 사랑과 같은 성격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그걸 어떻게 되돌려? 마치 운영체계의 복원 명령과 비슷한 구조인 것 같기도. 복원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

한 편은, 사랑하기 전으로 undo를 하고 싶고, 또 한 편은 헤어지기를 바라는 그 마음의 전으로 undo를 하고 싶고.

사랑은 어쩌면 수없이 많은 되돌리기의 연속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았던 시절, 아름답던 시절, 그리고 증오가 생기기 이전의 시절, 그렇게 끊임없이 undo 명령을 내리고자 하지만, 정작 상대방은 자신을 만나기 전의 시절로 undo? 이러면 스토리는 공포 특집으로 변해간다. 로버트 드니로가 광적 팬으로 나왔던 <더 팬>... 내 삶도 뒤로 되돌려줘...

사랑에 빠지는 순간, 한 편으로는 낙원과 같은 몽상의 세계가 열리면서 동시에 지옥문 한 편이 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화피>의 요괴는, 아마 여우로 설정된 것 같은데, 천 년의 세월을 '사랑'이라는 것에 걸어버린다.

그리고 여우가 강아지로 되돌아가나? 강아지의 눈빛이 그야말로 천 년의 억겁과 같은 것. 눈물이 다 찔끔 날 뻔했다.

아주 간만에, 악인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영화였다. 물론 무수한 살인이 있고, 많은 사람이 죽어가지만, 영화에서 악인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아니 한 마리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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