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모르지../상상력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14.08.26 정치 코미디 영화, 기획을 시작하다 5
  2. 2014.07.14 쓰고 싶은 글들 9
  3. 2014.07.09 세월호 책 원고를 끝내고 나서 12
  4. 2014.07.08 어떻게 살 것인가 1
  5. 2014.06.20 글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5
  6. 2014.06.19 바보 삼촌이 아프다 4
  7. 2014.06.06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5
  8. 2014.05.28 ‘감시와 처벌', 사회 부총리 신설에 부쳐 7
  9. 2014.04.02 살살 살아가기 6
  10. 2013.12.16 미안해서 살 수가 없다 8

정치 코미디 영화, 기획을 시작하다

 

요즘 나의 무기력감은 좀 도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이다.

 

오늘 아침, 아기 어린이집 보내놓고 잠시 누워서 눈을 부쳤는데, 최소한 지난 10년 동안, 이런 꿈은 꾼 적이 없다고 할 정도의 악몽을 꾸었다. , 내용은 별 게 아니다. 이미 나간 방송에 대한 젊은 PD들의 은근한 야지, 뭐 그런 거였다. 여기에 직장 그만둘 때의 마지막 상사, 정말 내가 몸이 아팠을 때 병원에서 맡았던 소독약 냄새, 그리고 보너스로 커피 시켰는데, 주머니에는 동전 몇 개만 있는 상황, 이런 것들이 잡다하게 결합되어, 딱히 강렬한 모티브도 없지만 내내 시달리는 그런 무서운 꿈이 되었다.

 

개꿈은 차라리 낫고, 완전 잡꿈인 셈이다. 하여간 별 것도 아닌 잡다한 것들의 무의식이 모여서,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던 상황을 구현하고 있는 것, 그게 요즘의 내 꿈이다. 흡혈귀가 나오고 10대 시절의 악몽과, 좀비가 주로 나오던 20대 시절의 악몽은 차라리 좀 낫다. 그거야 뭐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있는지, 아주 강렬한 것들이 있으니까 나름 분석을 해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같이 잡다하고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악몽은, 그냥 기억하기가 싫을 뿐이다.

 

어쨌든 이런 게 요즘 나의 난감한 상황이라는 것은, 맞기는 맞는 것 같다. 뭐가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고, 어디에서부터 엇나간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마음은 불편한. 그렇다고 딱히 뭘 하고 싶은 것이 있지도 않은. 이제 곧 나이 50살인데, 아침 나절에 나는 이런 잡스러운 꿈으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렇다. 나는 원래도 이렇게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사는 중이다. 다만 예전의 굵직한 잡스러움이 요즘은 좀 더 자잘한 잡스러움으로., 훨씬 더 잘잘하게, 그리고 훨씬 더 좀스럽게.

 

하여간 그런 마음 속에서, 요 며칠간 오가던 정치 코미디에 관한 영화의 기획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굵게 안되면, 쫀쫀하게.

 

야당이든, 여당이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요즘 살펴보면 너무 치사하다. 아니면 너무 용감하거나.

 

제목만 일단 비대위라고 가제 상태로 정해놓은 상태이고, 주인공과 안타고니스트 일단 다 여성으로. 여기에 뭘 채워넣을지는 이제 차분히 좀 고민을 해보려고 한다.

 

아직 마음을 먹지 못한 건, 원래의 생각으로는 클라이막스에 선거를 넣겠다는 거였는데, 이런 정공법이 옳을지, 아니면 좀 더 쫀뜩쫀뜩하게 치사한 사건으로 갈지

 

하여간 나의 무의식을 황폐하게 만든 지난 수 년간의 정치 사건을 코미디 형식으로 한 번 풀어보는 것을 기획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쫀쫀하고 끈적끈적한 사건, 그런 걸 한 번 푸하하, 웃을 수 있는 걸로 좀 바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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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키우면서 글쓰다 보니, 정말로 물리적으로 뭘 어쩔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다.

 

꼭 쓰고 싶었는데, 쓰지 못한 글들, 제목만 잠시...

 

- 머머, 치치포포

 

- 이오, 치코

 

- 내 인생에 최고로 행복한 날들

 

- 마, 빠 그리고 마

 

- 저농약 쿵

 

쓰고 싶은 글이 좀 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된다... 그리하여 제목이라도 기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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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책 원고를 끝내고 나서

 

‘FTA 한 스푼을 끝내고 나서 다시는 이렇게 사회적인 일에 급작스럽게 책을 쓰는 일은 안하겠다고 굳게 결심을 했었다. 이게 너무 힘든 일이다. 짧은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어렵지만, 온 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전선과 같은 곳이라서, 그 긴장감을 견뎌내는 것은 더 힘들다. 한 번 그렇게 끝내고 나면, 그야말로 파김치가 된다. 결혼 초기에는 그래도 나도 어느 정도는 건강이 있어서 버텨내고는 했는데, 이제 나도 40대 후반을 향해 가는 나이, 아기 키우면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세월호 사건 초기에, 이걸 한 번 정리해달라는 요청이 그렇게 많았었다. 그래도 못한다고, 이해해달라고 했었다.

 

그 긴장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내 일정도 있고, 10월이면 둘째 아이도 태어난다. 그냥 안 하고 싶었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그래도 결국 하게 되었다. 너무 이상한 일이 많았다. 진짜 이 사건은 이상한 사건이다.

 

하여간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바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 조금씩 자료를 모으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 때까지만 좀 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내려 놓을 생각이었다.

 

결정적으로 이걸 꼭 해야겠다고 생각을 먹고, 속도를 부쩍  높인 것은, 대통령의 사과를 보고 나서이다. 원래도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이상한지는 몰랐다. 황당

 

그 때가 내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하여간 그 사건을 계기로 나도 속도를 냈고, 본문은 이제 1교가 끝났고, 나도 남겨놓았던 에필로그와 서문을 오늘 마쳤다.

 

책 제목은 원래 부제로 달아놓았던 내릴 수 없는 배가 되었다. 처음에 생각한 제목은 사고가 난 4 16일이라는 의미에서 4.16으로 일단 달아놓고 시작했었다. 공교롭게도 책의 도입부로 사용한 까뮈의 페스트에서 쥐들의 시체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페스트가 발병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그날도 4 16일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사과에서 이 날을 기념하겠다는 얘기를 하면서, 제목에서 자동 탈락.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본 한국은, 진짜로 이상한 곳이었다. 그거야 두 말하면 잔소리겠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분석을 해보니까 정말로 이상한 곳이다.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나니, 배 사건은 100% 또 발생한다. 안 나면 그게 이상한 것이고, 확률의 법칙을 넘어서는 일이다.

 

우리 편은 좀 나은가?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황당한 건 마찬가지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93년 서해페리호 사건이 나고 4년 후에 국가부도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세월호 이후에는? 대통령 하시는 양상으로 봐서 4년보다는 줄어들 것 같다. 기가 막힐 정도로 서해페리호 사건과 세월호의 전개과정은 복사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데, 그 때보다 뭐든지 조금 더 나쁘다고 보면 딱 세월호 사건이 된다. IMF에 대해서 나도 참 많은 언급을 하고 분석도 많이 했었는데, 서해페리호 사건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여간 뭔가 덥기 위해서 YS가 이것저것 삽질하던 끝에 국가부도 사태가 있었다. 아마 이번에도 4년 혹은 그보다 약간 더 빠른 시기에 국가부도급 위기를 맞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검토하다 보니까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형 사고가 벌어져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시스템이 좋아진 경우가 별로 없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아주 심하고.

 

사건이 벌어지면 수습한다고 하면서 원래 그냥 자기들 하고 싶은 거 더 쎄게 하는 거, 그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은데, 실제로 그렇게 가는 게 일반적 패턴이다. 나도 놀랐다.

 

최경환이 세월호 거론하면서 LTV 풀겠다고 하는데…. MB도 그건 안 풀었다.

 

솔로 경제학까지, 큰 책 두 권을 연달아 작업을 하고 났더니 내 정신 세계가 완전 망신창이 되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어요, 이 말이 절로 나온다.

 

특히 지금처럼 사회적 문제에 단기적으로 대응하는 책은, 정말 다시는 안 할 생각이다. 내가 무슨 조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들어줄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맨몸으로 다 때우는데, 이제는 정말이지 체력이 안 된다.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책 작업을 시작한 게 2005년부터니까, 이래저래 올해가 10년째 이러고 있는 셈이다. 10년을 이러고 살았으니, 진짜 사회적 논쟁의 최전선에 10년 동안 서 있었던 거다. 이제는 슬슬 그만할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올 겨울에 가장 먼저 나왔던, 그래서 일종의 데뷔작이 되었던 아픈 아이들의 세대개정판이 나온다. 벌써 한 바퀴를 돌아서, 이미 절판된 책을 다시 내고 싶어하는 출판사가 생겨났다. 그렇다고 모든 절판된 모든 책을 다 개정판을 낼 건 아니고, 이번 한 번 정도 예외적으로

 

하여간 세월호 얘기가 드디어 내 손을 떠나간다. 그 동안 참 많이 울었다. 울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안 울려고 하는데, 이거야 원

 

당장 좀 쉬고 싶은데, 일정상 작년에 방송했던 인터뷰들 정리하는 작업이 하나 더 남아있다. 이것까지는 마무리 지어야 좀 쉴 수 있을 것 같다. 연이나그러고 나면 둘짜 아기 태어나서, 다시 꽝.

 

교육에 대한 것도 좀 더 써보고 싶고, 아직 해보고 싶은 연구들이 남아있기는 한데그럴 여력이 될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교육부 장관 하겠다는 어떤 할아버지는 평생 책 한 권도 안 썼다는데, 매년 2~3권씩 쓰는 나는 도대체 뭐 하느라고 이렇게 바보 같이 살고 있느냐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별로 효율적이지도 않고, 힘만 많이 빠지고, 불필요하게 긴장감을 높여야 하는 삶이다. 이게 좋은 건 아니다. 나도 안다.

 

그나마, 내고자 계획한 책을 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하여간 언제부턴가 책이 손에서 떠나가는 순간이면 왠지 모를 허무함 같은 게 생겼다. 처음에 좀 체계적으로 접근할 때에는 책을 떠나 보내고 나면 외국에 갔었다. 그러면 지나간 책을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는 좋은 장점이 있다. 그것도 좀 열심히 살 때 얘기고, 요즘은 귀찮아서 그런 것도 잘 못한다.

 

어느덧 나도 아기 키우는 부모가 되었다. 세월호 사건은,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책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어딘가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요즘은 조금씩 해보기 시작한다.

 

세월호 사건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뭔가 성취감이나 해방감이 생기는 구조가 아니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찝찝하고, 알면 아는 대로 더 슬프고. 글을 마치고 나서 잠깐의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게 기본 구조이다.

 

하여간 이제 내 손을 떠나간다. 허망에서 허무로 떠나는 여행이라고나 할까. 끝내고 보니 안 썼으면 후회할 것 같은데, 쓰고 나서도 후회하는 그런 구조 안에 들어와 있다. 이 고통스러운 뫼비우스, 이 사건이 갖는 본질적 특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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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대선 이후에 어떻게 살지, 생각해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후 1년 반 정도, 정말 막 살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고민을 계속 했다. , 그것은 언제나 고민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지금같이 미리 생각해둔 아무 지표도 없을 때 더더욱 그렇다. 나는 성격상, 빼곡하게 계획을 세우고, 수 년 후에 할 일들을 미리 정하고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물론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고칠 계획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아무런 계획이 없는 이런 백지 같은 진공상태에 놓여본 적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래도 이렇게 방향도 없었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어떻게 살지, 방향을 잘 모르니까 글도 써지지가 않는다. 내가 요즘 쓰는 글들은 기능적인 글들이지, 정말로 본질의 대한 갈등이나 고민 속에서 나오는 글은 아니다. 분석과 선택은 분명히 다르다. 분석은 여전히 할 수는 있지만 선택을 지금 할 수는 없다.

 

아기 아빠로서, 아이 키우면서 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안 했다.

 

그러다 최근에 결심을 하나 했다. 결심이라 봐야 결국은 책에 관한 결심일 뿐이지만.

 

내년에는 책 두 권을 쓰는 걸로 목표를 정했다. 정확히는 두권 + 알파, 이게 알파인 것은 쓸 수 있을지 없을지, 쓸지 말지 아직도 마음을 못 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안 팔린다고 검증이 끝난 책이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농업에 관한 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원자력에 관한 책이다.

 

원래에도 계획에 있기는 한데, 힘은 많이 들지만, 절대로, 정말 아무도 안 볼 책이라서 계속 우선 순위가 뒤로 가던 책들이다.

 

농업경제학은 쌀 얘기와 부재지주 얘기를 중심으로 풀어나갈 생각이다. 여기에 최근 탑재한 고베 이야기까지아직 고베를 못 가봐서 가을 정도에 갔다 올 생각이다.

 

2004년 생각이 많이 난다. 대학원 때 농업 공부를 좀 한 이후로 오랫동안 농업 공부를 안 했다. 결국 생태경제 얘기를 더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늦게라도 농업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열이면 열, 내 주변의 동료들은 다 반대했다. 원래 있던 농경제학과도 예를 들면 응용경제학 같은 걸로 이름을 바꾸고, 생태나 환경과 결합시키려고 하는 게 흐름인데왜 너는 생태경제라는 유망분야를 잡고 있으면서도 사양산업이 농업 쪽으로 오려고 하느냐전망없다, 하지마라

 

그래서 나는 이걸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루고 미루던 그 일을 내년에는 하려고 한다.

 

원래는 12권으로 계획된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10권에 해당하는 책인데, 시리즈는 이제 그만 종료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과는 독립된 별권으로 농업경제학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11권은 과학경제학이었고, 12권은 언론경제학이었다.

 

과학 경제학은 박근혜의 창조경제 이후, 내가 그 얘기를 더 하기가 싫어졌다.

 

언론경제학은, 그 사이에 종편이 생겨났다는 변화가 생겼다. 종편 별로 안 보고 싶은데, 분석을 하려면 안 볼 도리가 없다. 시리즈를 완결하기 위해서 종편을 보느니, 차라리 계획된 책을 없애는 편이 더 편하다.

 

그리하여 2004년에 농업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딱 10년만에 그 동안 내가 한 공부를 총정리하는 책을 한 권 내려고 한다.

 

절대적으로 안 팔릴 거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하여간 내 양심과 같은 책이다. 내년 상반기로 생각하고 있다. 88만원 세대를 1권으로, 노무현 후반기부터 시작한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요렇게 해서 마감이다.

 

하반기에 한 권 생각하는 것은, 할지 말지, 계속 고민만 하다가 얼마 전에야 마음을 먹은 책이다.

 

원자력 관련된 책을 한 번 쓰려고 한다.

 

요것도 절대적으로 안 팔릴 책인데, 대부분의 사람이 말리는 책이다.

 

2004년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할 때, 그 때 정책을 지휘하던 친구가 이재영이다. 친구 잘못 둔 덕분에, 그 선거에 환경 분야만 조금 도와준다고 끼어들었다가 완전 제대로 코가 걸린 적이 있었다.

 

그 때 탈핵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 전에는 반핵이라고 불렀다. 반핵은 공당이 쓸 용어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탈핵이라는 용어를 썼다.

 

젊었을 때 나의 친구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책이다. 공직 시절, 내가 하던 일이 이 일 아니었나. 퇴직하고 나서 아직까지 에너지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없고, 전기에 대한 얘기도 각을 세워서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해야 할 것 같다.

 

역시 내 양심에 관한 얘기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얘기 하나는, 이제영 평전에 해당하는 인민노련 얘기이다. 인민노련에 강조점을 둘지, 이재영에 강조점을 둘지 아직 결정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걸 내년에 할지, 아니면 더 있다가 할지, 그것도 마음이 잘 정해지지가 않는다.

 

암으로 일찍 죽은 이재영이 너무 그립다. 그가 없어지고 나니,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짜로 뭘 하고 싶어하는 건지, 그걸 통으로 이해하고 있는 친구가 한 명도 없게 되었다. 내 친구들이나 내 동료들은 나의 일부분만 안다. 내 전체를 아는 사람은 이재영 밖에 없었다.

 

그게 대한 얘기를 꼭 한 번은 하고, 내 친구가 얼마나 똑똑했는지, 내 친구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그런 얘기를 한 번 하고 싶다.

 

지난 겨울이 이재영 1주기였다.

 

뒤늦게 모여 앉은 사람들 중에 노회찬과 조승수 그리고 김종철이 있었다. 난 좀 더 늦게 있고 싶었지만 아기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종철이는 계속해서 동작을에서 지역 활동 중이다. 거기에 노회찬까지 밀고 들어가서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대략 난감이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이재영 얘기나 더 할란다

 

하여간 내년에 뭘 할지는 잡혔다.

 

이건, 아무 일도 안 한다는 결심과 같다. 이런저런 자리에 대한 제안들이 있었는데, 내가 뭘 할 것인지 잘 생각해둔 게 없어서, 거절의 말을 단호하게 하지 못했다. 이제는 아무 것도 안 한다는 말을, 좀 더 정확하게 할 생각이다.

 

내년에는 이 사회에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정확하게 하는 한 해로 하려고 한다.

 

지금 정기적으로 매체에 쓰는 글들이 있다. 하반기를 맞아, 이것도 정리하려고 한다. 내년에는 책 두 권 외에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기 둘 키우는 아빠가 할 수 있는 최대치가 그 정도일 것 같다.

 

방송은

 

이건 좀 생각이 복잡하다. 지금 하고 있는 걸 동료들과 가는 데까지 가보는 정도, 그 이상 늘리거나 더 하거나 그러지는 않으려고 한다.

 

후년은, 아직 모르겠다. 일단 결정된 것은 내년까지이다.

 

어쨌든 그게 정당이 되었든, 정부가 되었든,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일은 아무 것도 안 할 생각이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자문하는 일도 안 하려고 한다. 총선, 대선 때도 아무 것도 안 할 생각이다. 사실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고, 한다고 해봐야 결과가 좋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얘기는, 내년에 쓰기로 한 책 두 권에 다 넣을 생각이다.

 

후년에 계속해서 서울에서 살지, 아니면 한국에 계속 있을지, 이건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 같으면, 번잡해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어떤 식으로든 지금 여기, 이걸 좀 떠날 생각이 있다. 하여간 그 때 가서 결정하면 될 일이지만, 후년이 되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내년에는 내 주변 정리를 말끔히 하는 게 일단은 계획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그게 내가 되고 싶은 궁극의 상태이다.

 

문창극을 보면서 그야말로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그렇게 쥐고도 또 쥐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망대로 살면 큰 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창극과 반대의 길을 가고 싶고, 그와 정반대의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지 않고 어영부영, 대충 지내다가 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사람 사는 게,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대충 시간 보내면서 어영부영 하다가는 문창극처럼 되기 딱 좋다. 그렇게 하기는 싫다.

 

몇 달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 진짜 고민고민 했었는데, 이제 고민의 시간은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막상 마음을 먹고 나니, 또 다른 홀가분함이 있다.

 

삶이라는 게, 큰 집착이든 작은 집착이든, 집착의 연속이다. 내려놓지를 못하니까 고민이 많지,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으면 고민도 사라진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길이 보인다. 이제 조금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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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1.

박근혜 2, 그 어느 때보다도 글 쓰기가 편치가 않다. 실제로 글 한 줄 쓰기도 어렵다. 글 쓰는 것만 어려운 게 아니라,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더 강해졌다.

 

글 쓰는 것만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 내가 하던 대부분의 일이 별로 하고 싶지 않아졌고, 그냥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요즘 내가 먼저 뭐를 하자고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거나, 제안하는 일은 거의 없다. 몇 년 전부터 하기로 했던 것 혹은 하던 연구가 거의 대부분이다. 최근에 유일하게, 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건 좀 해야겠다고 한 게 세월호 책 정도이다. 아마 내가 아빠가 되었고, 그리고 10월에 또 다른 아빠가 되는 그런 극적인 심경의 변화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런 책을 쓴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뭐라고 썼는지 지켜보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분명히 있기는 한 것 같다. 이건 초고이고, 습작으로 쓴 것이라는 걸 얘기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겨나는 글의 부담감이라고나 할까, 분명히 그런 것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무게감을 짋어지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더 밝게, 더 발랄하게, 그리하여 가벼움 그 자체로 쓰는 글을 원래도 좋아했고, 더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 누군가 뭐라고 엄청 복잡하게 나에게 얘기하면

 

그냥,

 

조까

 

이렇게 속으로 생각할 마음의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글 쓰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냥 나이 때문은 아닌 것 같다.

 

2.

가장 근본에 있는 마음 속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 명박과 5년 그리고 근혜와 또 다른 5년을 보내게 되면서,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자신감 자체가 나에게 없어진 것 같다.

 

2004,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그 때는 다소간의 무게감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나 내 주변의 친구들이나, 전부 다 세상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이 뭔가 직접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친구들은 민주당 근처에 가서,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찾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별로 스스로 뭔가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당시 분당하기 전의 민주노동당 근처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을 많이 꺼내놓으면서, 그래도 누군가 잘되기를 바라는 일을 했던 것 같다. 그 시절, 그렇게 처음으로 진보정당이라고 우리가 불렀던 곳에서 원내 진출을 했다. 그 때 들어간 사람들을 다 좋아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그렇게 들어가는 게, 세상 좋아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에 나와 같이 일하던 파트너가, 어쩌면 내가 눈을 감을 때 내 인생의 최고의 친구라고 할지도 모르는, 바로 그 이재영이다. 하여간 그와 그 시절의 동료들은, 시간이 지나면 세상이 좋아질 거이라는 데에 추호도 의심이 없었다.

 

88만원 세대를 비롯해서, 내가 수 년 동안 밤 새면서 미친듯이 써내려갔던 책이나 글들은, 어쨌든 세상은 좋아질 것이고, 그 방향을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돌려보고 싶다는 긴박감에서 나왔던 것 같다.

 

3.

근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세상이 과연 좋아질 것인가? 아주 마음 속 깊숙이, 진지하게 나에게 물어볼 때, 잘 모르겠다.

 

형식적으로 혹은 상태적으로 잠시 좋아질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로 좋아지는 것인지 혹은 그런 상태가 잠시라고 해도 좋을 만한 시간만큼 유지되기라도 할 것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

 

이거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그런 글을 지금도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면 좋을텐데, 그런 글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기능적이다. 써야만 하니까 혹은 쓰기로 했으니까 쓰고 있는 글, 그런 것들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운 것은, 어차피 잘 안될 거니까, 그런 생각이 너무 강해서 그렇다.

 

기능적인 삶, 그런 게 제일 살고 싶지 않았던 삶이다.

 

그런데 까딱하면 내 삶은 물론이고, 내 글도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 더더욱 글을 안 쓰고 싶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4.

세월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점점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야말로, 된장이다.

 

별로 쓰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쓰는 것, 그런 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때 그 때는 힘들어도,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이, 도대체 한 번의 숨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을까 싶다.

 

별로 좋아질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기능적으로 뭔가 쓰는 것, 이거는 정말 못할 일이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뭔가 써야 한다고 억지로 버티는 것은, 세상이 좋아지지는 않더라도 그 밑바닥까지 가는 걸 보고 싶지는 않다는, 좀 허접하면서도 불쌍한 이유 때문일 것 같다.

 

이게 진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어차피 질 건데, 그래도 뭐라도 하지 않으면 더 처참하게 되는 것. 패전 처리 투수, 차라리 그 정도면 좀 낫다. 그 뒤에 의미 없이 지는 게임에 서 있어야 하는 외야수들.

 

마침 요런 심난한 마음에 필연적 기분을 더해준 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올해는 역시 꼴지에서 그냥 헤맨다. 아마 열심히 하면, 꼴지에서 한 칸 정도 벗어난 정도에서 시즌을 끝내지 않을까 싶다. 안 그래도 심난한데, 응원하는 팀도 심난하고, 이래저래 아무 것도 하기 싫다, 그런 상황이다.

 

질 때 지더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 그것은 아주 길게 보는 낙관적인 생각이 있을 때 힘이 난다. 져도 괜찮다, 그럴 때는. 그러나 내가 보는 상황이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정말로 하기 싫지만, 그래도 기능적인 일이라도, 예컨데 질 때 지더라도 너무 황당하게 지지는 않으면 좋겠다.는 심정.

 

그러다 보니, 글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정말로 아무 것도 안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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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삼촌이 아프다

 

 

두 달 전부터, 내가 바보 삼촌이라고 부르는 고양이가 기침을 시작했다. 가끔 고양이들이 기침을 하는 건 안 본 건 아니다. 몇 번 동물병원에 가서 물어보면 바이러스성 질환이라고 얘기도 하고, 연고 같이 생긴 약을 가져다 먹이기도 하였다.

 

어쨌든 바보 삼촌의 기침은 점점 더 심해지고, 요즘은 10분 넘게, 그야말로 폐병 환자처럼 쿨럭쿨럭거리는 소리를 듣는 일이 잦아졌다. 요즘은 덤불 안에 숨어서 길게 기침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같이 산다고는 하지만, 어지간한 포획작전을 하지 않으면 잡기도 어렵고, 워낙 고양이 여러 마리들이 교대로 다니기 때문에 그렇게 잡기도 어렵다. 솔직히, 아기 보는 것도 어렵다. 게다가 10월이면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 아내는 슬슬 만삭의 분위기로 가기 시작한다.

 

고양이는 전형적인 야생동물인데, 야생동물이라는 말은 꾀병이 없다는 말이다. 아프다 싶으면 여지 없고, 아파 보이지 않아도 잠시 안 보여서 찾아가면 무지개 다리 건너가 있는 게 야생 고양이들이 삶이다. 내 손으로 참 많은 고양이들을 안아서 떠나 보내고는 하였다.

 

너무 이른 생각인지는 몰라도, 언젠가 바보 삼촌의 우리 집을 떠나가는 날에 대해서 슬슬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녀석과 벌써 4년을 같이 살았다. 장마가 한참 극성이던 때, 마루 옆의 베란다에서 빗소리와 함께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연신 울어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처음 만났다. 그 중에 결국 혼자 살아남아 그 해 겨울을 같이 났다. 그 겨울을 같이 났던 아빠 고양이가 그 다음 해 봄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우리 집 마당에서 참 예쁜 고양이들이 많이 태어났는데, 그 중에 결국 한 마리가 살아남아서 무사히 우리 집까지 이사를 했다. 녀석과 같이 한 배에서 태어난, 내가 생협이라고 불렀던 고양이는 이사오기 직전, 처음으로 영하로 내려가던 날 죽었다. 마루 베란다 한 구석에서 녀석을 찾아내서 안아들고, 정말로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수많은 새끼 고양이들이 내 품을 거쳐갔다. 살아남은 고양이보다, 내 품에 그렇게 안겨서 영원히 떠나간 고양이들이 더 많다. 한 마리 한 마리, 돌아보면 눈에 밟히지 않는 녀석이 없다.

 

내 입장에서는, 바보 삼촌이 잘 버텨서, 지난 세 번의 겨울을 나와 같이 났던 것처럼, 또 몇 번의 겨울을 더 나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밥을 제 때 주고, 물 깨끗하게 갈아주고, 그런 기본적인 것 외에 뭘 더 해주기가 어렵다.

 

야옹구가 많이 아픈 적이 있었다. 전날 저녁에 아프다 싶었는데, 그 날 오후에 영 이상해서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그야말로 구름 다리 넘어가는 걸 겨우겨우 잡아 온 셈이 되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지….

 

녀석들은 꾀병이 없어서, 아프면 정말 아픈 거다.

 

삶이라는 것, 늘 좋을 때에 밝은 낯으로 서로를 볼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어려울 때도 겪고, 심통 날 때도 겪고, 그리고 음, 아주 많이 심통 날 때도 겼고. 그런 게 식구와 같은 사이라고 할 만할 것 같다.

 

나도 식구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명은 벌써 떠났다. 가끔 술 마시고 취하면, 이렇게 얘기하고는 한다.

 

씨발 넘이 벌써 뒤지고 지랄이야

 

그래도 그가 죽고 몇 해가 지나니, 이제는 울지 않고 그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은 사람은 또 남은 사람이라, 그의 아내와 자식들과 매달 만나면서 또 몇 년이 지나니, 이제는 그도 좀 덤덤해진다.

 

내년에는 출간 일정을 이리저리 치워서, 먼저 죽은 나의 친구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쓸 시간을 좀 만들었다. 그가 살아있을 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쓰려고 했던 책인데, 그가 떠나고 난 뒤, 그와의 삶을 생각하면서 쓰는 책이 되어버렸다.

 

시간이라는 것은 나름 편리한 것이다. 많은 것을 무덤덤하게 만들고, 견딜만하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바보 삼촌이 지금의 기침 증상을 잘 이겨내고, 앞으로 열 번쯤 나와 같이 겨울을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더라도, 그것도 받아들이려고 한다. 어쩌겠는가. 다 자기 명이 있는 걸. 녀석도 이미 그 또래의 고양이들에 비하면 이미 충분히 오래, 충분히 재밌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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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1.

장 폴 뒤부아라는 프랑스 소설가의 <프랑스적 삶>이라는 소설이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봤을지 모르지만, 나는 참 재밌게 보았다. 드골에서 지스카르 데스탱을 거쳐 미테랑, 시락까지 이어지는 대통령의 집권기를 각 장의 주요 소제로 쓴 소설이다. 많은 소설은 연대기적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처럼 각 정부의 집권기를 노골적으로 챕터 구분의 방식으로 쓴 것은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소설 중에서, 예를 들면 박정희 때, 전두환 때, 노태우 때, 김영삼 때, 김대중 때, 노무현 때 그리고 이명박과 박근혜 때, 이렇게 딱 시기를 걸고 주인공의 삶을 그 안에서 드라마틱하게 보인 적이 있을까? 사건 그대로를 보이려고 하면, 예를 들면 박경리의 <토지>처럼 엄청나게 길어진다. 장 폴 뒤부아의 소설은, 그렇지만 그걸 관찰한 한 사람의 시각으로 압축적으로 묘사하면서 한 권의 책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얘기는, 아내에게 배신당한 한 엘리트 남성의 몰락기와 비슷하다. 그나마 그 아내는 정부와 헬리콥터를 타고 가다가 죽는다. 한 때는 잘 나가는 회사의 사장 남편이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주인공이 노년에 재취업을 위한 상담 창구에서 상담 직원에게 개무시를 당하는 장면에서, 나는 약간은 자학적인 의미로, 그래 그런 게 삶이야, 이런 느낌을 받기도 했다.

 

<88만원 세대>에서 동거하겠다는, 그것도 일본인 애인과 동거하겠다는 아들에 대해서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장면의 모티브는 이 소설에서 가지고 왔다. 그들이 결혼과 동거를 어떻게 하는가, 가장 평범한 묘사를 이 소설에서 보았었다.

 

나는 이 소설이 그렇게 좋았던 것이, 그가 잘 났든 그렇지 않든, 그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들이 대통령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뼈저리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시대적 인식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평온하고,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자기는 그걸 알지도 못하고

 

이 소설을 읽는 순간만큼은 한국에 사는 우리의 삶도 그렇게 누가 대통령인가에 대해서, 개개인의 삶의 변곡점을 맞는 그 모습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와서 다시 돌아보면, 그건 좀 오류일 수도 있다.

 

누가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평안한 대기업의 일부 인사들이 있을 수 있고, 누가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인생은 개떡과 같은 어려운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서 인생을 생각한다는 것, 그것도 이 쪽과 저 쪽의 극단을 예외적으로 배제한 나머지 사람들의 얘기일지도 모른다.

 

2.

내 삶도 그러했겠지만 한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삶도 누가 대통령인가에 따라서 상당한 부침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형적으로, 그러니까 흔히 얘기하는 프로필 혹은 요즘 식의 스펙에 보이는 외형적 모습 말고 정말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보면, 실제로 부침이 많았을 것이다. 이건 자신이 어느 편이냐, 그런 굳건한 생각을 갖았느냐 혹은 그런 생각에 따라서 충실한 행위를 했느냐,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질문이다. 편은 바꾸기도 하고, 실천은 하기도 하고 말기도 하고, 그러기도 한다.

 

어쨌든 누가 대통령인가에 따라서, 어쩌면 한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그에 따라서 자신의 정말 개인적이면서도 사적인 비망록을 정리하는 게 가장 간편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결혼을 했거나, 아이를 낳거나, 이혼을 했거나 혹은 집을 샀거나 그런 개인개인의 개별적 요소들이 얹힐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런 구조에서 살고 있다.

 

3.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어떻게 남은 살을 살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늙은 아비의 고민 같은 거라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50이 내일 모래가 된 나이에, 아무래도 우량아 등급에 들어갈 만한 아기를 내내 안고 들어주다 보니, 이제 손목도 시리고, 발목도 시리고, 허리도 뻐적지근하기 시작한다. 저질 체력에 늙은 아빠, 하여간 아기 보다 골병들기 딱 좋은 조건이다.

 

게다가 10월이면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 아내는 회사를 다니니까. 어떻게든 내가 더 많은 시간들을 아기들을 데리고 있어야 하는 상황인데, 슬슬 겁나기 시작한다.

 

4.

솔직히 정치는 물론이고,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은 다 놓고 그냥 조용히 앉아서 아기나 돌보고 싶다. 아기만 돌봐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침에 눈만 뜨면 혹시 밥통 비었나, 살펴봐야 하는 고양이들도 이제는 여섯 마리도 넘는다. 내가 아기 돌보고, 고양이들 겨우 밥 주는 동안에, 마당은 완전히 잡초 밭이 되었다. 영화 <대부>에서 말론 브란도가 죽을 때 보았던 그 정갈한 포도밭, 그것과 완전히 정반대인 전혀 손대지 못하는 잡초밭을 보고 있다.

 

물론, 비겁한 변명은 있다. 마당 고양이들이 몇 년새 만들어놓은 그 똥밭에 정상적인 것들은 자라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이게 변명인 것은, 그 똥들도 제 때 치워주면 된다. 아기 똥 기저귀 갈아주다, 잠시 시간 나면 고양이들 밥 주고, 그러면 언제 고양이 똥을 치우고, 또 내가 원하는 그 식용 박하를 키우고 채리 묘목을 돌볼 것인가.

 

어쨌든 이건 나의 일상의 삶이다.

 

그 와중에 잠시 짬을 내서 방송도 하고 촬영을 한다. 강연은 거의 하기가 어렵지만 내가 어려울 때 신세진 사람들이 부탁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서 가끔은 한다. 취재를 조금 더 하고, 사진도 조금 더 찍고 그렇게 현장에 가고 싶지만, 이건 거의 어렵다. 요즘은 아기가 밤에는 손이 좀 덜 가게 되어서, 밤에는 좀 글을 쓴다. 그래 봐야, 뭘 쓸지 방향을 잡을 정도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잠시 가졌던 시간이 끝날 정도이다.

 

짧게 정리하면, 아내가 일하러 간 동안에 나는 아기를 보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틈틈이 약간의 사회적 삶을 한다. 시민단체의 정치참여르 담당하는 내가 꿈꾸는 나라의 대표로서 필요한 활동을 올해는 도저히 못한다고 했는데, 공동대표 체제로 되어있는 상황상, 하여간 대충 하는 시늉이라서 한 해 더 해주면 좋겠다원래 내가 하면 죽어라고 하고 말면 마는데, 이거 영 꼴이 꼴이 아니다

 

5.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골목 모퉁이에 붙은 표지판에서 장석준이라는 이름을 단 선거벽보를 보았다. 석준이시의원 후보로 나왔다. 택도 없는데, 왜 니 얼굴이 여기 있는 거니

 

마음이 더 괴로울려니, 그와 상대편에 서 있는 사람과 통화를 하게 될 일이 생겼다. 그를 내게 소개해준 사람은, 너네 동네에 노동당이 택도 없이 나와 았는데, 신경 쓰지 말고, 여기 좀 도와주라

 

사실, 그 중간에서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그 때만 해도 그 상대편이 장석준인 줄 몰랐으니까.

 

, 애 키우고 있는 애기 아빠한테 이렇게들 복잡해.

 

고민을 잠시 했는데, 내가 많이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 표도 안 찍어. 그건 내가 그들과 보낸 수 십년이 넘는 젊은 시절의 기억 그리고 우리가 같이 넘으려고 했던 그 선, 그것에 대한 기억이다.

 

6.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삶은, 그냥 조용히 아기 키우면서 지내고, 내가 사는 동네에 노동당 장석준이나, 예를 들면 녹색당 아무거시, 이런 이름이 뜨면 두 사람의 정책이나 경력 그런 걸 비교해서 투표하면 되는 삶이다. 내가 본 많은 유럽의 뭘 좀 안다고 하는 동네 사람들, 대체적으로 그렇게 살아간다. 나도 딱 그러면 좋겠는데

 

그게 과연 우리 시대에 허용된 꿈일까, 그런 깊은 회의에 잠기게 된다.

 

거대 악과 차악, 그 중에 골라달라, 그게 벌써 몇 십 년이냐. 내가 살다 살다 죽어도, 내 아이는 물론, 손자가 살아도 그렇지 않은 날이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7.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생각을 이번 지방선거 끝나고, 원래도 그 얼마 전부터 했는데, 선거 이후로 깊게 해보았다.

 

모른다. 그리고, 모르겠다. 원래 이런 종류의 질문은, 모르겠다, 그렇게 답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인민노련이라는 조직이 있었다. 나는 인민노련 조직원은 아니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그들과 식구처럼 삶을 살게 되었다. 된장, 그 인민노련도 갈갈이 찢겼다.

 

조직부장이었던 노회찬, 울산으로 최초로 내려간 현장 활동가, 조승수, 그들은 정의당에 가있다. 조직부장 노회찬 밑에 있었다고 들었던 인천의 송영길은 이번에 선거에서 졌다.

 

그리고 그들이 정당을 만든다고 했을 때, 그 당의 최초 상근자이자 우리의 영원한 정책위원장인 이재영은, 대선 직전에 암으로 사망했다.

 

남은 몇 명이 여전히 노동당 한 축을 형성한다.

 

어차피 현실에서 별 거 안 할 거라면 인민노련의 친구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녹색당의 파운더 중의 한 명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런 고민을 이번 지방선거 이후에 심각하게 했다.

 

매 번 선거 때마다 이렇게 나름 최선을 다하고, 끝나고 나면 내가 뭐했나 하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또 그렇게 평생을 살 거라면

 

차라리 나의 양심에 따라서, 정말로 내가 지지하고 나와 식구처럼 살아왔던 사람들을 위해서 떡이라도 한 번 돌리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8.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여전히 고민 중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보면서, 영원할 나의 친구이나 동료들인 인민노련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과, 아무 영광은 없어도 차라리 같이 함께 할 가치를 지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원래 나는 우유부단한 인간이라서, 잘 결정을 못한다.

 

어쨌든 이번 선거를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 고민을 깊게 하기 시작했고, 누구를 진정으로 지지할 것인가, 그 생각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이 고민은 퍽이나 오래 갈 것 같다. 그러나 백년의 고독처럼, 무엇을 할 것인가, 영원할 고민만 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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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사회 부총리 신설에 부쳐

 

우석훈

 

세월호 사건이 벌어지고 몇 주 지났을 때였다. 이 사건을 가지고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건, 내가 바다와 배 혹은 안전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 엄청난 전문가라서 그런 건 아니다. 거의 직관적인 생각으로, 세월호를 핑계대고 원래 자기들이 하고 싶던 일을 그냥 하는 형태로 가지 않을까, 그런 염려가 들었다.

 

그 후 다시 몇 주가 지났는데, 대체적으로 나의 생각이 아주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적당히 할 줄 알았다. 사람들이 아주 다 바보도 아닌데, 적당히 하다 말 줄 알았다. 그래도 최소한의 인격이 있다면, 좀 하다 말 줄 알았다.

 

예전에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가 있었는데, 결국에는 다 없어졌다. 경제기획원이라고 하는, 평가에 따라서 극과극을 오갈 수 있는 그런 부처도 결국 없어졌다. 정부 직제에 따라서 미래가 바뀌는 일이 전혀 안 벌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내가 뭔가 결정할 수 있는 순간이 되면, 아마 나는 예전에 없어져버린 동력자원부를 다시 만들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사람들이, 결국 예전 동력자원부에 있다가 부처가 없어지면서 황망해진 그 사람들이었던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우리가 써야 할 에너지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나는 국가가 무엇인지 배운 것 같다.

 

부총리라는 자리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내가 감동한 적은 딱 한 번이다. 프랑스의 우파 대통령인 사르코지가 집권을 하면서, 우리 식으로 치면 국토부와 환경부를 합치고, 그 두 부처의 통합 수장을 환경 부총리로 만든 걸 보면서 놀란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합쳐진 환경부를 생태부로 이름을 바꾸고, 30대 중반의 엔지니어 출신인, 비록 보수 성향이지만 그런 여성 전문가를 장관으로 앉히는 걸 보면서 정말 생각 많이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비슷한 30대 여성이 하면서 엄청 이슈거리가 되었다. 환경부 얘기는 그 덕에, 상대적으로 좀 가리워졌었다.

 

필요해서 부총리급의 자리를 만들고, 거기에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는 의미만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적절한 조치라면, “이렇게 좀 하자라고 찬성하고 박수칠 생각이 있다 그리고 나는 대체적으로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오늘 박근혜 정부에서, 비경제 부분의 총괄 기능이 없다고 사회 총괄, 그들의 용어라면 사회 컨트롤타워를 담당할 부총리직을 새로 만든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래저래, 교육부 장관이 그 자리를 맡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걸 된장이라고 한다.

 

경제에 총괄기능이 있어야 한다, 이것도 쉽지 않은 판단이다. 경제 총괄부처는 어디에나 있고, 금융이 아니라 실물경제를 담당하는 부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걸 전체적으로 견제하면서 발관 기능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이 있다. 그걸 총괄하는 경제 부총리? 사실 그것도 일상적인 일은 아니다.

 

일본에 사실상 그런 일을 총괄하던 대장정, 일본의 큰 곳간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었다. 일본의 경제 민주화의 상징으로, 그렇게 중요했던 대장정을 결국 폐지했고, 그들의 기능을 총리실 등 각 부처로 뿔뿔이 날려버렸다.

 

경제에 부총리가 있어야 하느냐, 그것도 잘 모르겠다. 안 그래도 집중되기 딱 좋은 경제 행정, 나름 나누어서 견제도 하게 하는 게 길게 보면 낫지 않느냐, 그런 게 나의 생각이다.

 

하여간 별 논의도 없이, 경제부총리를 현 정부에서 신설했다. 그래놓고는 현오석이라는, 능력은 고사하고 인격도 좋게 평가하기 어려운, 좀 찌질한 아저씨를 그 자리에 앉혔다. 임명권자 마음이라그래, 니들 맘대로 하세요, 어차피 선거에는 니들이 이겼으니까.

 

그리고 오늘, 이제는 비경제 부문의 콘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사회 부총리 혹은 교육 부총리 자리를 신설한다고 한다.

 

이게 세월호와 무슨 상관이 있냐, 그런다고 지금 연안항로를 오가는 여객선들이 안전해지겠느냐, 아니면 구조 시스템이 나아지겠느냐?

 

누가 봐도, 이 두 사건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

 

핑계를 대더라도 이런저런 상황 봐가면서 핑계를 댈 법도 한데, 이건 정말로, 아무런 설명도 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으니까, 이게 세월호 대책이야명분이 떨어져도 뭔가 명분이라도 만드는 흉내라도 내는 게 보통의 독재 상황인데, 이건 그런 시늉도 안 한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적당히 세월호 대책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알아서들 해석해줄 거야이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사회 콘트롤타워,  문명 국가에서,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던 것인 것, 과문해서 나는 잘 모르겠다. 사회를 콘트롤하지 말자는 게, 하여간 불편해도 참아내자는 민주주의 정신이라고 알고 있다. 꼭 의미가 아니라도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사회에는 콘트롤이라는 말을 잘 안 쓴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냥 멀리도 아니고 살짝 한 두발만 떨어져서 이 사건을 보면, 미셀 푸코의 책 제목 중의 하나인,

 

감시와 처벌’,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가?

 

수틀리면 다 감시하고, 기분 나쁘면 다 처벌하겠다

 

파업 중인 KBS와 파업 안 하는 MBC의 차이가 이 단어에 있지 않은가?

 

KBS는 감시 중이고, MBC는 처벌 중이었고. 파업하면 다 짤라 버리고, 새로 다 뽑아서 편안한 방송으로 가겠다

 

원래도 이 정부가 하고 싶었던 게 감시와 처벌이라고 생각한다. 그것까지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선거의 여왕, 어차피 선거해도 이길 거, 굳이 복잡하게 매번 토론하고 그럴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행동을 실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이 편에 있다. 그래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저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과감한 발상과 행동, 그것을 경험은 커녕 상상도 잘 못해보는 사람들이다.

 

그런 세월호 대책으로 감시와 처벌’, 그리고 그걸 행정적으로 구현할 비경제 부총리 혹은 사회 부총리, 이걸 만든다고 지금 발표하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인 일이고 너무 가혹한 일이다. 슬픔에 젖어 있는 이 사회에, 너넨 지금부터 조심해, 이렇게 말하는 것도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을 지금부터 하겠다는 걸, 세월호의 부모들 핑계 대는 건, 진짜로 잔인한 일이다.

 

인간이 모여서 사는 사회에, 이 정도로까지 참혹하고 잔인한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역사 이래로, 지배층들이 아주 특수한 나치즘이나 파시즘 같은 상황을 제외하면, 이 정도로까지 몰염치하게 하지는 않았다.

 

적당히들 했다, 지금까지는.

 

박근혜 정부, 적당히 하지를 않는다. 너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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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 살아가기

 

20대 때에는 뭘 하는 줄도 모르고 그냥 방황하느라고 시간이 지나갔던 것 같다. 늘 불만이 많았는데, 그 불만을 해결하는 방법을 몰랐다. 30대에는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뭘 해도 불안했고, 만족하는 걸 잘 몰랐다.

 

이제 40대 중반, 늙은 아빠로 아기를 낳아 키우면서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기를 보면서 노트북으로 글을 써야지, 그런 야무진 생각을 했었다. 택도 없는 일이다. 아기는 TV는 물론이고, 핸펀, 노트북, 이런 거 너무 좋아한다. 사실 핸펀이라는 게 어른이 봐도 너무 재미있는 물건 아니냐? 아기가 기어다닐 수 있게 되자마자, 이런 모든 문명의 이기와는 당분간 안녕!

 

그럼 책은 읽을 수 있나? 그것도 힘들다. 자기랑 놓아주지 않고 책을 붙잡고 읽을 수 있게 해주지 않는다.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동화책이다. 그것도 한 두번이지, 같은 책을 수십번씩 읽어주고 있으면 나중에 지겨워서 진물이 난다. 덕분에 국내 동화책과 번역된 동화책의 미묘한 차이와 동화 시장의 생산 구조와 유통 구조 같은 것은 좀 이해하게 되었다.

 

한전 사보를 아기에게 재밌게 읽어주었다. 중간중간에 사진과 그림이 많아서 얘기를 만들어주면서 읽어주면 아기가 좋아한다. 내가 태어나서 한전 사보를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여러 번에 걸쳐서 본 적은 없다. 예전에 박수근이 표지를 그린 한전 사보들을 미술관에서 아주 감명깊게 본 이후로, 정말이지 한전 사보를 이렇게 공들여서 본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뭔가 정해놓은 일정이 자꾸 깨어지면서 짜증이 전혀 안 난 것은 아니다. 아예 작업실을 구해서 집밖으로 나가서 작업하는 것도 생각해봤다. 소설가 김탁환의 목동 작업실이 천에 100만원이라는 얘기가 귀에 쏙쏙 들어온 것은, 이런 식으로는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가면 아기는 누가 봐 줘? 게다가 10월이면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 안 그래도 대충 살던 인생에, 그래도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일 아닌가 싶다.

 

아기가 만 두 살에 가까워지면서 내 삶도 많이 바뀌었다. 살살 살아가기, 좋든 싫든 이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아직도 완벽하게 익숙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대충 던져놓고, 에라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점점 익숙해져 간다.

 

아내는 출근하고 나는 아기보고나쁘지는 않은 삶이다. 그러나 가끔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길 때, 풀 수 없는 외통수에 처박힌 것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점점 더 익숙해져가기는 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서운 자연의 법칙이다. 그렇게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게 된다.

 

이것저것 뭔가 하자고 내 주변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애기 아빠 택두 없슈, 그렇게 어렵다고 말하는 것에 익숙해질 뿐이다. 어딘가 근무하면서 일하는 제안이 몇 번 있었고, 정치와 관련된 얘기들도 일부 있기는 하지만, 아기 아빠가 애 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 대신 빵을 만들기 위해서 조금씩 뒤져보면서 빵 만드는 준비를 하게 된다. 2~3일에 한 번씩 빵을 사오는데, 이젠 그 돈도 아깝고, 무엇보다도 믿을만한 빵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

 

살살 살기, 아직까지도 완전히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해보고 싶은 게 더 많이 생각나기는 한다. 새로운 영화도 더 기획해보고 싶고, 방송 포맷도 실험해보고 싶기도 하고그러나 너무 많은 일을 할 수는 없다.

 

이 와중에 영화 기획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몇 년째 손발을 맞추고 같이 일하던 파트너 같은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한 것은 아니고 처음에 제안만 해놓고 손을 놓은 작업이 있었다. 다행히 몇 주 전에 투자도 결정되고, 주연 배우도 어느 정도 캐스팅이 끝나는 모양이다. 덕분에 사무실 돌아갈 형편은 된 것 같다.

 

준비하다가 만 영화 몇 편에 대한 기획은 계속 진행 중이다. 그래도 정말로 몸이 움직여야 하는 순간도 있다. 몇 주 후에 사람들 모아서 23일 정도로 합숙 기획회의를 하려고 한다. 얘기의 기본 틀이라도 그렇게 정리가 되면 혼자 앉아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야무진 생각도.

 

아기를 낳으면 더 많은 욕심을 내면서 더 열심히 살게 된다고 하던데, 내 경우에는 정말 살살 살아가게 된다.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육아와 함께 이런 삶을 선택했을 것 같다.

 

혼자서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을 수가 없기 때문에 동료들의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해졌다. 내가 움직이기 위해서 같이 손을 맞추는 동료들이 몇 명이나 있나 몇 달 전에 세어본 적이 있다. 간단한 셈법으로도 열 명은 넘어가는 것 같다. 우라질! 나도 벌려놓은 일이 많기도 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나도 모르겠다. 아마 이렇게 점점 하는 일들을 줄여나가다가 은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퇴물 소리 듣는 것 보다는 적당한 때에 내려놓는 편을 선택할 것 같다.

 

하는 일이 줄면 집착도 줄어들고 고통도 줄어든다.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을 줄이지 못하고 잔뜩 껴안고만 있던 나에게, 아들이 준 것은 강제로 많은 것을 내려놓게 한 진공상태이다. 그게 상당한 평온을 준다. 내려놓는 것, 어지간한 사람은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덕목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알아서 내려놓고, 뭐 그런 정도로 심성이 고운 사람은 아니었다.

 

살살 살아가기, 삶을 대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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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서 살 수가 없다

 

고려대에서 시작된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처음 보는 순간 숨이 막히고 먹먹해졌다. 그렇다. 나도 안녕하지 못하다. 그리고 나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2013년이 시작되었고, 그냥 되는대로 살면서 이 한 해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뭘 하든, 아무 것도 하지 않든, 아무 일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든 저렇게 얘기하든, 국가 기구를 사유물처럼 생각하는 박근혜 정권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게 한 해가 갔다.

 

내가 올해 나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내 개인의 행복과 영광을 위해서 살지는 않았다는 말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허탈하게 지나가는 시간의 연속 속에서 어느 날 대학생의 대자보 한 장이 날아들었다.

 

무기력감에 한 해를 보냈는데, 이 한 해는 내가 어른이 된 후에 경험한 그 어떤 시간보다 가혹한 것이었다. 2013년이 가혹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한 해에 한국 정부가 결정한 수많은 결정들, 그것이 향후에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너무 뻔해 보였다.

 

일자리는 점점 더 열악해질 것이다.

 

55세 이후로는 비정규직법안과 해당사항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100% 파견제라는, 전분야 파견직으로 내몰리게 된다. 한국이 일본보다 사회적으로 그나마 나은 게 아직 그들만큼 파견직이 전면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일본에 유아사 마코토라는 시민단체의 영웅이 있다. 동경법대 대학원에 다니던 그가 시민운동으로 나섰을 때 일본의 보수들이 바짝 긴장했다. 유아사 마코토를 지금의 영웅으로 만든 사건이, 바로 파견 마을라는 2008년의 파견직 대량실업 때였다.

 

한국에서는 신빈곤을 얘기하면 20대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일본에서는 30대를 지칭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량 파업된 실직자들이 바로 파견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 최대를 자랑하던 토요타의 30대 노동자들이 대거 길거리에 내밀렸고, 그들이 길거리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시작한 게 바로 파견마을 사건이다.

 

지금 우리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55세 이후로 일단 뚫리고 나면, 대부분의 공장 노동자들의 빈 자리를 그렇게 파견직이  채우게 된다. 청년들은 그나마 비정규직 일거리에서도 내몰리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뚫리면 일본처럼 파견직이 전면화되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내가 그 시절 일본에서 본 것은 지옥도라고 표현하고 싶다.

 

파견마을 사건 이후 유아사 마코토를 동경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가 나에게 한 딱 한 가지의 얘기는

 

한국은 아직 파견까지 전부 뚫린 건 아니지 않느냐.

 

그랬다. 일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파견을 주관하는 업체는 대기업이 되었다.

 

누구를 위해서 성장하는가,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가?

 

그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파견의 일반화이다.

 

유아사 마코토가, 그래도 한국은 낫다, 그렇게 말한 단 하나의 근거가 지금 부숴지는 중이다.

 

토건, 수없이 한 얘기이다. 박근혜 정부는 토건으로 맹속, 달려가는 중이다.

 

집값을 올리면 당연히 전세값도 오르고, 월세값도 같이 오른다. 전세 대책이라고 집값을 올리는 말도 안되는 얘기를 맹렬히 시행했다. 부양하면 집값은 단기적으로 오른다.

 

그런데 왜 거기에 우리의 세금을 써?

 

민영화, 역시 수도 없이 한 얘기이다. 수서를 핑계로 정부기관이 아닌 회사에게 운영권을 주면, 한미 FTA 때 유보받은 성과였던 2005 6월 이전에 만들어진 노선에 대한 정부 감독권을 포기하게 된다. 있는 조항을 정부 스스로 없는 걸로 만드는 전례를 남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있었다. 뭘 해도 바뀌기 어렵다는 생각이 많았고, 또 그런 얘기를 목숨걸고 하고 싶다는 동기도 없었다. 그리고 비겁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미안해서 살 수가 없다그 말 밖에는 지금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안녕하지 못하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 외에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더 싫다. 그 말 말고 다른 말을 하고 싶은데, 그리고 미안하다고 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러나 미안하다고 말하는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지금의 내 처지가 너무 싫었다.

 

시간제 일자리, 파견 노동, 이렇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막아야 하는 일은 너무 많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대학생들의 대자보를 읽으면서, 며칠간 먹먹하던 생각이 요 며칠 조금 정리되었다.

 

이제 미안해하는 일은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미안하지 않게, 뭘 좀 더 하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세상이 좋아지기 위해서 뭘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안녕하지도 못하고, 미안해하기만 하고, 혼자 고민만 하다가 맥 빠지는 일, 그런 일은 좀 덜 할 생각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미안해서 못 살겠다’, 이렇게 말하지는 않아도 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대학생들에게 지지를 표명하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그런 미안한 일도 그만하고 싶다.

 

지식인이, 학자가, 전문가들이 제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국가가 이렇게 사유화되는 황당한 꼴은 막았을 것이다.

 

침묵했거나 동조했거나, 그런 방식으로 사회적 공론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이 크다. 그리고 그 책임에, 나도 면제받을 길이 없다.

 

2013, 미안해서 살 수가 없다, 그렇게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도 나의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내년에도 이렇게 미안하다, 그렇게 속으로 움추리면서 그렇게 또 한 해를 보내면 안되지 않는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더라고, 2013년의 한국처럼 너무 황당한 사회가 펼쳐지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미안해서 살 수가 없다, 그건 이번으로 끝내고 싶다.

 

- 우석훈

 

2013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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