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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에 해당되는 글 16

  1. 2017.12.16 한국 경제사 전공자를 찾아서...(1)
  2. 2017.12.08 강연들을 마치고...(1)
  3. 2017.11.28 경쟁에 관하여
  4. 2017.11.23 증오를 내려놓기
  5. 2017.11.23 탈당과 입당...(1)
  6. 2017.11.23 10년 후 한국
  7. 2017.11.23 마음은 청춘?(1)
  8. 2017.11.23 문체, 습기, 생기...
  9. 2017.11.22 써야 할 글이 너무 많다
  10. 2017.11.14 50대 에세이, 작업을 시작하며
2017.12.16 10:53 50대 에세이

간만에 한국 경제사에서 뭘 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전공자를 물어봤더니, 이젠 경제학과에는 그런 거 안 하나보다. 사학과에서도 경제 내용이라 최근에 따로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같다. 그리고 낙성대 연구소 얘기들을 몇 사람이. 안병직 선생이 뉴라이트 관련된 얘기로 욕 엄청 먹기는 하는데,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경제사 하는 마지막 그룹인 것 같다. 젊은 학자들은 다른 대안이 전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낙성대 연구소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걸 몇 년 전에 본 적이 있다.

학부시절에는 경제사를 전공하고 싶은 적이 있었다. 실제 사학과에서 김용섭 선생 수업도 있는대로 다 들었다. 그 시절에는 경제사 공부도 많이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우리가 배운 내용들이 실제로 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80년대의 경제사, 어느 쪽이든 너무 이념적으로 공부를 했다는 생각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그것도 30년쯤 지나니,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중고등학생에게 진로교육 시킨다고 하면서 꿈을 가지라고, 아주 생지랄들을 떤 적이 있었다. 나한테도 몇 번 문의가 왔었는데, 그딴 짓 좀 하지 말라고 했다. 꿈? 사회가 꿈을 청소년에게 권하면, 그 사회가 망한다. 지금은 청소년 꿈 1위가 교사고, 2위가 건물주다. 이건 자본주의 교육도 아니고, 그냥 양아치 교육이다.

하여간 집단적으로 돈 되는 거, 잘 나가는 거, 이런 것만 죽어라고 밝히다 보니 경제사처럼 한직에 있는 거, 전공자가 거의 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싶은데, 아무도 안 하는 게 너무 많다.

조선초기의 경제상황에 대해서 좀 알고 싶은데, 예전에 한국경제사 전공했던 후배들이 듣자마자, 난감해한다. 자기도 모르고, 아는 사람이 아마 경제학과에는 없을 거같고, 사학과에 좀 물어본다고...

학문이든 연구든 심지어는 예술도, 많은 경우 너무 깡패처럼 한 동네에 몰려다닌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달려 있는 메일은 요즘 보지도 않고 바로 스팸함으로 보낸다. 이게 깡패들이여, 뭐여? 근본을 따져보면 안철수 현상이다. 안철수에게 밀리기 싫은 현 정부에서 이런 걸 강조하다 보니 공무원들이 알아서 기어서, 거의 모든 정부 관련 활동에 전부 4차 산업혁명이라고 단다. 그런데 경제사는? 이런 질문이 생기면, 답 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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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리 2018.01.17 10:44 신고  Addr Edit/Del Reply

    명지대 김두얼 교수가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9759707706&hc_ref=ARTeEsc11ZcS4FFU4sttb6wzLXosuPNIrgjm31TeO7Fd_TC0vQCnLZTSzKWBlGujWiE&fref=nf&pnref=story

2017.12.08 15:36 50대 에세이
이제 다음 주에 공주랑 대전에서 강연만 마치면 예전에 약속해둔 것까지, 다 끝난다. 지난 여름부터, 강연을 좀 많이 했다. 간만에 사람들도 좀 보고 싶고, 신세진 사람들 부탁도 들어줄겸. 그야말로 겸사겸사, 많이 돌아다녔다. 애들 보는 와중에 잠시 나갔다 오는 거라서, 제주도 갔을 때 딱 한 번 자고왔고, 전부 당일치기였다. 밤 늦게 들어와서 다음 날 애들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그런 생활이...

주로 목포대 같은 지방대학과 도서관들 그리고 사회적 경제 관련한 시민단체 같은 데 많이 간 것 같다. 고등학교도 좀 갔고. 이제 이 강연들이 끝나가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대략 만 명 좀 넘게 만난 것 같다. 시간이 좀 가면서 느껴지는 바가 조금은 있다. 일반 시민들을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이 만난 것은 나도 오랜만이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세상도 변했다. 사람들도 변한 것 같다. 그런 변화가 조금은 느껴지는 것 같다. 느껴지는 바가 생각보다 많다.

내가 누구랑 같이 얘기할 것이고, 누구랑 같이 세상을 고민할 것인가? 가끔 그런 걸 잊어버릴 때가 있다. 1년 가까이, 진짜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걸 좀 정리하면서 가만이 지내려고 한다.

그 사이에 방송도 정리했고, 기고하던 글들도 정리했다. 올 12월에 맞춰서,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아무 것도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태, 나는 그런 상태를 좋아한다.

예전 회사에 다닐 때, 현대중공업 출신 부장과 아주 친하게 지낸 적이 있었다. 아버지 뻘도 더 되는 관계인데, 술도 많이 마셨고, 얘기도 많이 했다. 회사 그만두고 공단으로 옮겼을 때, 몇 달 후 새로 옮긴 사무실로 찾아왔던 유일한 동료가 또 그 양반이었다. 아, 종기실 부장이 진짜로 일 때문에 찾아온 적은 있었다.

그 부장 양반은 회사에 붙어 있는 사람이다. 별 이유도 없는데 7시 전에는 무조건 출근한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현대중공업 내부의 깊숙한 얘기들은 그 양반한테 들었다. 나는 그렇게 뭔가에 붙어있는 게 싫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에 묶이고 싶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이들 보면서 겨울이 갈 것이다. 그리고는 봄이 올 것이다. 내년 봄에는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하게 될지, 아직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비어있는 진공과 같은 시간을 즐긴다. 그 순간이 가장 편안하다.

오랫동안 나와 친구처럼 지내던 사람들이 대개 77~78학번, 요런 사람들이다. 이들은 내가 가만히 있을 때마다, 도대체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티는지 궁금해했다. 버티는 게 아니라, 제일 좋고 즐거운 때라고 얘기해도 잘 이해를 못했다.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순간들을 대부분 나는 무시한다.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행사는, 망년회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와의 신년식, 요 두 개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쉬는 김에 아무 것도 안 하려고 했는데, 망년회 3개를 하기로 했다. 동료들과 한 번, 옛날 동료들과 한 번, 나꼽살 팀과 한 번. 간만에 김용민과 통화했다. 상암 근처에서 날짜 한 번 잡기로.

올 겨울은 진짜로 몇 년만에 갖는, 공식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런 겨울이 될 것 같다. 내년 봄까지는 정말로 아무 것도 안 할 것이다.

지난 겨울은 촛불집회와 함께, 나도 생각이 정지한 순간들을 보냈다. 생각하는 것 같기는 한데, 사실은 시간과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일 뿐이었다.

이제는 또 다른 흐름이 올 것 같다. 그리고 그 흐름은, 같이 만들어나가는 흐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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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2.15 02:52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017.11.28 11:34 50대 에세이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늘 경쟁이 싫었다. 누굴 이긴다는 게, 싫었다. 바둑, 당구, 포카 심지어는 화투까지, 내 또래들이 좋아하는 건 아무 것도 안한다. 승부가 걸린 게, 그냥 싫었다. 그러다보니 남들이 안 하는 것만 했다. 거기에는 승부는 커녕, 경쟁도 없으니까. 승부를 피하면서도 밥 먹고 살려니까, 더더군다나 남들이 안하는 걸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밥 걱정은 안하고 산다. 경쟁, 이기는 것, 이게 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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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3 22:45 50대 에세이

증오를 내려놓기


50대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정리할 건 정리하고, 마음 먹을 것은 마음 먹고. 에세이와 사회과학 책이 다른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살아가는 삶 사이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생각과 삶은, 조금 다르다. 글을 쓰려고 생각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덜고 또 덜어내는 수밖에 없다. 생각이 단촐해지면, 뱃살도 단촐해질까? 그럴 리가. 먹는 것이 단촐해져야.


증오하는 것을 내려놓는 50대가 되었으면 하는, 그런 작은 소망이 있다. 홍종학 장관 하는 거 보고, 나도 크게 느낀 바가 있다. 진짜 친한 양반이고, 엄청나게 친할 관계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일을 같이 했다. 그렇지만 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과 증오는 동전의 앞뒷면인지도 모르겠다. 증오하면 욕심이 생긴다. 그 증오도 이제는 내려놓고 싶다. 증오를 내려놓는 것, 그게 제일 힘들다. 속에서부터 열불이 나는데, 그게 내려놓아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지금 행복해진다. 증오하면서 행복하다, 불가능하다.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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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3 21:24 50대 에세이

몇 년 동안 민주당 당원이었다. 내가 당에 갔을 때, 당 지지율 12%였다. 근혜 시대, 다른 선택을 하기가 어려웠다. 총선도 이기고, 대선도 이겼다. 당원도 차고 넘치고, 정부 돕겠다고 줄 선 사람이 서울산성을 한 바퀴 돌 정도다. 유성룡의 징비록에는 서울 산성의 성첩이 3만개였는데, 임진왜란 때 급하게 모은 사람이 7천명이었다고 나온다. 지금 줄 선 사람이 3만명이 아니라 6만명도 넘을 것 같다.

이제는 모든 게 조용해졌고, 내가 뭐 하는지 관심 갖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원래부터 녹색당 당원이었고, 오랫동안 거기에서 활동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지금이 녹색당으로 돌아가기 제일 좋은 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선 끝나고 당적 정리할까 했는데, 그 때는 몇 명이 말렸다. 그래서 좀 더 기다렸다. 이제는 말릴 사람도 없을 것 같다.

30대 때, 이재영과 약속을 했었다.

당시 민주노동당이 막 원내 들어갔을 때였다. 사민주의 정당도 자리를 잡고, 녹색당도 자리를 잡으면, 이재영과 둘이서라도 공산당 만들기로 했다. 나이 먹고, 더 이상 욕심 부릴 일 사라지면, 공산당 만드는 게 친구와의 약속이었다.

그 이재영은 벌써 죽었다.

이제는 지킬 약속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다. 그냥 조용히 살면 된다. 그래도 내 삶의 마지막은 녹색당원으로 살아가고 싶다. 언젠가는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그게 지금인지, 조금 더 기다리는 때인지, 그 판단이 아직은 잘 안 선다.

내일 아침에 이재명 만난다. 나도 이제는 판단을 해야 할 순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민주당 당원으로 하고 싶은 일은 이제 없다. 그러나 녹색당 당원으로 하고 싶은 일은, 아직은 조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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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rk 2017.11.27 14:35 신고  Addr Edit/Del Reply

    고민이 많으신거 같네요.

2017.11.23 20:52 50대 에세이

10년 후 세상은 어떨까,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10년 후면 나도 환갑이 된다. 내가 살았던 한국은, 돈으로 너무 설명이 잘 되는 나라였다. 내가 바라는 10년 후 한국은, 돈으로 뭔가 설명이 잘 되지 않는 나라다. 내가 본 선진국이 대체로 그렇다. 미래 얘기하면, 정부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여기저기, 덕지덕지 쓰도록 강요한다. 그러면 미래가 좀 보일까? 보장한다. 4차 산업혁명을 생각하는 순간, 바보 된다. 열심히 살았던 공무원이 은퇴를 앞두고 바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래는 지금의 연장이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가 올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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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3 20:20 50대 에세이

마음은 청춘?


옛날부터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88만원 세대'를 쓰게 된 가장 직접적인 동기도, 친하게 아는 선배가 '마음은 청춘'이라는 개수작을 부려서. 그 말 듣자마자, 진짜로 청년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때 나는 30대였다.

그 때에 비하면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다. 내 동료들도 다 늙어가고. 늙어가면서 알 것 같다. '마음은 청춘'이 아니라, 마음부터 먼저 늙는다. 몸이 늙고 마음이 늙는 게 아니라, 마음이 늙고 몸은 뒤따라 늙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뭔가 깨닫고 깨우치는 게 아니라, 비겁한 변명과 못된 짓할 잔대가리만 늘어난다. 죽어도 '마음은 청춘', 이런 개수작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2모작'이라는 얘기를 듣고, 초반에 이건 아니다라는 얘기를 못한 건... 그 땐 몰랐다. '마음은 청춘'이나 '인생2모작'이나, 대 개수작에 불과한 것. 그냥 조용히 사는 것, 할 일 하는 것, 그게 그렇게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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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보고 갑니다 ^^

2017.11.23 19:50 50대 에세이

요즘 문체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는 중이다. 에세이집을 준비하면서, 문체를 크게 한 번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질색을 하는 것은, 기교로 글을 쓰는 일이다. 그건 글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그냥 쓰레기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까 글을 쓰는 거지, 그런 게 없는 데도 테크닉으로 어떻게 해볼까... 어불성설이다. 그냥 노는 게 낫다. 그렇지만 기교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용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형식과 기법이 필요하기는 하다.

최근에 내가 글을 읽는 기준은, 습기와 생기, 두 가지다. 습기는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 생각을 하게 만든다. 습기 없이 생각만 하려고 하면 골 아파서 아예 집어 던지게 된다. 그리고 생기, 행복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

의미는 알겠는데, 이걸 문체에서 구현할 방법은? 아직 모른다. 고민만 해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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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2 20:47 50대 에세이

인간적으로, 써야 할 글이 너무 많다. 뭐부터 손을 대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게다가 만만한 게 하나도 없다. 진짜 비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그 와중에 딱 두 개의 사실이 위안이다. 남의 걸 보고 평해야 하는 그런 글은 없다는 사실. 맞든 틀리든, 내가 새롭게 풀거나 얘기를 만들어야 하는 글이라는 점. 그냥 내 길을 가면 된다. 그리고 요즘 내가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는 사실. 되면 되는 거고, 말면 마는 거고. 뭔가 생각을 해보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견적서가 바로 나온다. 안 되는 건, 바로 포기한다. 애 둘 키우면서 안 되는 것까지 붙잡고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요 며칠 사이에 써야 할 글이 너무 많다.


(나중에 평론에 관한 글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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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4 15:27 50대 에세이

50대 에세이, 작업을 시작하며

 

1.

시간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내 삶은 시간이라는 측면에서는 온통 뒤죽박죽이다. 너무 빠른 것과 너무 늦은 것, 그런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몇 개의 최연소 기록을 가지고는 있는데, 별 의미는 없다. 하여간 20대 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유학 시절에는 77학번들과 공부를 같이 했다. 그 사람들이 오랫동안 동료였다. 국내에서는 82학번들이 데뷔하던 시절에 같이 데뷔했다. 집도 엄청 빨리 샀다. 결혼하고 9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친구 자식들이 대학을 갔거나 가려고 할 때, 우리 집 아이들은 4, 6, 그러다 보니 아이들 친구 때문에 만나는 부모들은 이제 한참 젊은 부모들이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거나,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이와 시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예민해진다. 원래 예민했던 게 아니라, 그렇게 된 것 같다. 나이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기다 보니 '88만원 세대' 같은 책을 쓰게 된 것도 아주 우연한 일은 아니다. 소피스트의 시대에 "흐르는 물에는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대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처음 들은 말인데, 친구들은 그 말을 다 잊어버렸지만 나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말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내가 들어간 그 물은, 다시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나도 다시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그 시간의 문턱을 넘으며, 매번 기뻐하고, 좌절하고, 놀라움을 겪는다. 그리고 금방 잊어버린다. 지나간 것은, 그런 것이다.

 

2.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아주 가끔은, 정말로 간절히 원한 적이 있기는 하다. 첫사랑 때 한 번, 성신여대 교수임용 파이널 총장면접에서 떨어질 때, 그리고 아마 한 두 번 정도 더, 간절히 원한 순간이 있기는 했다. 내가 그 시절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단 한 가지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더더욱 나는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소망하면 이루어진다, 그런 건 믿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도 믿지 않고, 정서적으로도 믿지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를 언젠가 내 스스로를 돌이켜볼 때 너무 창피하지만 않을 정도로, 진짜로 면피만 하면서 살아간다. 누가 봐도 창피하고, 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런 짓은 하지 말자, 그 정도로 대충 산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50이 되는 순간,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할 일도 없었으면 더더욱 좋았겠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두 아이를 조금씩은 돌봐야 했고, 돈도 조금씩은 벌어서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해야 했다. 들째는 게속 아팠다. 아이를 아주 열심히 봤고, 일은 아주 조금만 했다. 그래도 돼?

 

아주 더운 여름 날, 차를 치웠다. 10만 조금 넘은 차인데, 수동이라 팔 데도 없을 것 같고, 폐차할까 생각 중이었다. 마침 동료가 힘들어하길래, 그냥 줘버렸다. 차가 없으면, 생활이 조금 더 단촐해지고, 돈도 조금 덜 쓰게 된다. 그 정도 조정은 했다.

 

내 삶의 대부분은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였다. 초등학교 때 미래 희망을 쓰라고 해서, 외교관이라고 썼다. 별 거 아니다. 내 짝 아버지의 직업이었을 뿐이다. 한 번도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전문 외교협상관 일을 했다. 가끔 초등학교 때 써냈던 친구 아버지 직업이 생각나기는 했다. 그 집에 미니카가 엄청나게 많았다. 살면서 남을 부러워하는 게 별로 없었는데, 마루의 서재 하나를 가득 채운 그 미니카들은 좀 부러웠다. 촌놈이, 정말 미니카라는 걸 처음 봤을 때의 그 충격이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으면 큰 일 날 것처럼 주변 사람들은 펄펄 뛴다. 그렇지만 난 원래 그렇게 살았다. 되는 대로, 그 때 그 때 형편 맞춰가면서 살았다. 그래도 한 평생 사는데 아무 문제 없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 사회가 어떻게 가야 하고,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개돼지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문화부 공무원이 우리 아이들을 개돼지라고 불렀다. 물어보니까 이래저래 한 다리 건너면 직접 알 수 있는 관계고, 나와도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고 한다. 진짜로 만나서 그 말이 복잡한 총체성을 물어보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개돼지라는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20,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이 있었다. 우리가 권력자들이 민중을 개돼지라고 부르는 그 시대를 만든 것 아닌가? 나한테 개돼지라고 그러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자식들도 개돼지 취급받는 사회를 그들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해야 할 말이 생겼다. 민중을 개돼지라고 부른 그 공무원도, 한 때는 다 우리들의 친구 같은 존재였고, 같은 건물에서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지냈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10, 내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한 때 조선이라고 불렸던 나라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내면적 전환점 사이에 서 있다.

 

3.

내가 마흔이 되었을 때, MB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40대는 지나가버렸다. 나에게 아직도 젊음의 흔적이 남아있던 시절, 그 나이는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거의 다 봉쇄되어 있었다.

 

50대의 힘은 2012년 대선 때 많은 사람을 경악하게 하였다. 투표율 82%, 어마무시한 수치가 나왔다. 병원에 있는 사람, 등대와 같이 어쩔 수 없는 노동조건을 가진 사람들, 해외에 단기 체류 중인 사람들, 이런 사람들 빼면 다 한 것이다. 많은 기관과 연구자들이 50대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지금 국토부 장관인 김현미가 그 때 만든 연구소가 시니어 연구소다. 그도 한 때 청년 문제가 최고 중요하다고 하던 사람인데, 그 대선 이후 시니어 연구로 방향을 살짝 틀었다. 사람이 바뀐 건 아니지만, 방향이 약간 바뀌었다.

 

나도 나이를 먹었다. 이제 내가 50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 정권이 바뀌었다. 보수의 핵심 축이던 50, 이제 50대도 변한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이 변해있을 것이다. 촛불집회로 임시로 열린 대선이 끝나는 날, 나는 의무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할만큼 했다.

 

기뻤을까? 솔직히 기쁘지는 않았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갈 길은 멀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생각하면, 암담하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기로 했다. 더 이상 시대가 던져준 의무감 때문에 내 삶을 살지는 않으려고 한다. 10년을 그렇게 살았다. 할만큼 했다. 아마 대통령 문재인도 더는 나에게 뭘 도와달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럴 일도 없고. 그가 당대표 되기 이전부터, 아니 지난 대선 후보 시절부터, 몇 년간 진짜로 도울 만큼 도왔다. 이젠 나도 나의 두 아이와 아내를 돕고 싶다.

 

새 시대, 그냥 조용히 나는 내 삶을 살기로 했다. '우리', '시대', '역사', 이런 어려운 말은 더는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세 끼 밥이 입에 들어올까, 그런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 이 땅에 태어난 다른 사람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된다. 그 날이 올까? 왔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서,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정도, 그렇게 살까 한다.

 

4.

초등학교, 중학교 때 아주 친했던 친구를 얼마 전 만났다. 큰 대기업에 상무가 되어 있었다. 많이 친했던 친구다. 50대라는 나이가 그런 나이다. 살아남아서 한 두 번 더 올라갈 기회가 있거나, 이제는 자기가 일하던 곳에서 돌아서야 하는 선택이 기다리는 나이다. 큰 선거 때 투표하는 것, 그리고 약간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는 것, 그것은 개인의 삶에서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20년을 더 살지, 30년을 더 살지 모른다. 30년이 되면, 거의 확실하게 운전은 할 수 없는 나이가 된다. (그때쯤이면 자율운행차가 일반화될까?)

 

좋든 싫든, 뭔가 선택을 해야 하는 나이가 50대이기도 하다. 하다 보니까, 나는 그 선택을 35세에 했다. 공기업 부장도 어느 정도 연수가 차서, 슬슬 승진을 준비하기 시작해야 하는 그런 순간이었다. 팀장도 해먹을 만큼 해먹고, 그 윗자리로 가라는 압력이 슬슬 들어오기 시작했다. , 조금 더 작은 조직으로 옮겨서 팀장말고 본부장하라는 얘기인데, 그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사직서를 내고, 남들이 요즘 엄청나게 들어가고 싶어하는 바로 그 평생 직장을 나왔다.

 

일본에서는 '드롭 아웃'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나는 그냥 학자로서의 자유를 가지고 싶어서 그만둔 것일 뿐이다. 엄청난 이유가 있거나, 위대한 결심(!)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왠지 더 재밌는 길이 있을 것 같아서

 

그 후로도 몇 번의 큰 선택을 더 했다. 그 선택을 개인적으로 하게 된다. 그런 게 50대다.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정교수가 아니라면, 대부분 50대에 뭔가 선택을 하게 된다. 사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그래도 아쉽다고 난리다. 지금의 20대는 그런 선택을 아주 일부만이 할 수 있게 된다.

 

뭔가 같이 생각해보고, 고민해볼 얘기가 있을 것 같다. 친구들 만나면, 몇 명 빼고는 대부분이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다. 친한 70대 노친네들이 좀 있다. 남은 삶을 고민하는 건 맞는데, 같이 만나면 점심 메뉴를 뭘 할까가 제일 큰 걱정이다. 지금의 50대는, 선택 받은 70대만큼 풍요롭지는 못할 것이다. 풍요의 시대는 한국에서 이미 끝났다. 그리고 그 풍요의 뒷 끝은 더 심해질 것이다.

 

5.

50대의 얘기는 과거에 대한 얘기 아니면 미래에 대한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시절의 영광에 대한 과거 혹은 남루했던 청춘과 같은 과거의 얘기는 재미없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얘기는, 서로 시간 낭비다. 안철수의 미래에 대한 얘기가 공허한 것은, 자기도 모르고 우리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지금 여기'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우리는 전환기다. 짧게는 10년간의 황당했던 순간, 좀 넓게 보면 전두환에서 유신까지 올라가는 종 기괴한 관행과 습관, 그런 것들에서 새로운 것들이 튀어나오는 그런 순간이다. 그런 게 바로 지금 여기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뉴라이트들의 말이 맞다면, 한국은 일본에게 배워서 자본주의를 시작했다. 원래 한국 모델은 일본이다. 그리고 일본이 모델로 했던 독일이나 네덜란드 모습들이 우리 안에 숨어 있다. 박정희가 따라했던 프랑스 모델도 유신의 흔적 속에 깊게 남아있다. 그리고는 미국 모델이다. 워낙 미국 식민지처럼 수 십년을 살았고, 모국과의 관계로 1등 국민과 2등 국민이 나누어지는 것 같은 식민지 모델로 작동했으니 말이다. 이제 한국의 기업들은 식민지 모델에서는 좀 벗어났지만, 대학은 이제 완전히 식민지 모델이다. 그리고 가끔 스웨덴 같은 북구 모델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촛불집회 이후, 우리는 우리가 교과서다. 프랑스 혁명과 촛불집회는 다르다. 그래서 걸어가는 길도 상당히 다를 것이다. 이제는 모델도 없다. 우리가 걸어가는 대로 그게 그냥 교과서가, 우리가 하는 대로 그대로 모델이다. 이런 전환기는 80년에도 없었고, 98년에도 없었고, 2003년에는 더더욱 없었다.

 

별로 즐겁지도 않은 옛날 얘기를 과거적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재미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미래에 대해서 서로 시간 쪼개가며 얘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애들한테 동화책 한 권 더 읽어주는 게 훨씬 더 가치 있다.

 

하나마나한 얘기는, 이제 재미없다. 지금 내가 사는 삶, 지금 우리가 겪는 일들, 그런 게 조금이라도 더 살갑고, 약간이라도 더 재미있다.

 

그 얘기를, 경차를 가지고 시작해보려고 한다. 차 살거냐 말거냐? 산다면 무슨 차를 살 거냐? 경차 가지고도 충분히 철학과 미학을 얘기할 수 있고, 인생관과 윤리를 얘기할 수 있고, 경제 얘기를 할 수 있다. 골프나 당구 혹은 바둑 가지고 하는 얘기보다는 훨씬 살갑다. 그런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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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석훈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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