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처음 얘기했는지, 인간의 네 가지 감성을 희노애락으로 정리한 것은 참 기가 막히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이나 이 4가지 감정을 다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중의 어느 한 가지가 주로 부각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노회찬과 별로 그렇게 자주 만나거나 논의를 할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었다.
예전 기억으로는 가장 강렬한 게, 여의도 어느 호프집에서 벌어진 일인데, 당시 당상근을 자청한 최초의 변호사였던 김정진 변호사가 했던 얘기이다.
"그러니까 총장님이 메피스토텔레스라고 불리는 거예요!"
메피스토텔레스는 바로 파우스트의! 당시 민주노동당에는 여러가지 정파 특히 경기동부연합 세력들과 나머지 정파들 사이에 약간의 권력다툼 같은 게 있었고, 주요 의사결정 회의에서 프락시온이라고 부르는 그런 게 상당히 팽배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분열 보다는 '2중 회의' 때문에 망하는 것 같기는 하다.
주사파들이 그런 걸 좀 많이 했지만, 사실 생태파나 기타 등등 작은 정파들도 그런 걸 아주 안한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그 시절 노회찬은 메피스토텔레스라는 별명으로 통하고 있었는데, 실무자들하고는 철썩같이 약속해놓고 막상 본회의에서는 입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런 별명을 얻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의 노회찬이 가장 멋있었다. 어쨌든 그는 수많은 정파들이 가지각색의 요구들 속에서도 2004년 총선을 대체적으로 무리없이 지휘했고, 그 때 한국의 진보정당이 원내에 처음 진출했다. 그가 TV를 가득 채우고, 결국 아침 토크쇼에까지 부인을 대동하고 나오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는 메피스토텔레스라고 불렸지만, 결과적으로 그 총선에서 모두들 행복했고, 그도 가장 큰 영광을 누렸었다.
그 시절의 노회찬은 사람들에게 '불고기 불판'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아주 웃기고 즐거운 사람으로 비추어졌던 것 같다.
노회찬은 용접공 출신인데, 정말로 불을 잘 다룬다. 삼겹살도, 놀랄 정도로 잘 굽는다.
어쨌든 그 시기에 나는 노회찬의 판단력을 믿기 시작했다. 그 시절 '탈핵'이라는 용어에서 '환경성 질환' 등 내가 유행시킨 용어들도 좀 있고, '부유세'라는, 이재영이 추진하고 김정진이 정리했던 공약은 아마 진보정치 최고의 공약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에는 환경 공약 정리해준다고 시작한 것이, 농업을 거쳐서, 결국 '완전고용' 공약까지, 사실상 민주노동당 총선 공약을 최종 튜닝하는 작업을 하면서 노회찬의 판단력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이라는 책은 몇 가지 생각에서 출발한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지하운동 시절의 활동가들의 젊은 시절의 삶을 추적해보는 일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 그래봐야 대학 2~3학년 시절의 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마음을 먹거나 어떤 계기로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으로 떠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소상하게 드러나게 하고 싶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노회찬에 대한 궁금증도 좀 있다.
그 후의 노회찬은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다음에 잠시 하다가 사퇴하고 다음 순번으로 물려주고 본인은 뒤에서 판을 챙기고 후진을 양성하는 일을 더 하고 싶다고 하는 것 같았는데, 공교롭게도 노회찬 비례 바로 다음 순번이 주사파의 이주희였던 것 같다. 노회찬은 상관없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사람들이 이주희에게 그냥 국회의원 자리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만류했었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별 특색없이 그냥그냥 비례대표 4년을 보내고 나서 노회찬이나 심상정이나 시련의 시간이 오는데, 지난 대선 경선에서 심상정에게 밀려 3등으로 내려 앉으면서 그의 시련은 아주 컸던 것 같았다.
당시 유행하던 말이, 노회찬에게는 조직이 없다...
나는 이게 궁금했다. 권영길은 주사파와 손을 잡았다고 하는 것 같고, 심상정에게는 금속노련이 있다고 하는데, 왜 노회찬에게는 아무 것도 없을까? 그는 한 때 남한 최대의 지하조직이라고 하는 인민노련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도대체 인민노련이라는 것이 뭘까, 그리고 그게 뭔데 지금은 아무 힘도 없을까?
그렇게 대선이 끝나고 이번 지방선거 때까지 노회찬을 지배하던 대중적 이미지는 아마도 '분노'였던 것 같다. 삼성 엑스 파일 사건은 노회찬에게는 영광 보다는 시련과 상처만을 많이 준 사건인 것 같다.
그는 선거 직전까지도 재판에 계류되어 있었고, 나는 그가 아예 선거에 당분간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이것저것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극적으로 선거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진보신당 당원들은, 마치 사지에서 송환된 동료를 맞는 것처럼, 서울시장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었는데, 내가 내렸던 현실적인 판단은 노회찬은 노원구청장으로, 심상정은 고양시장으로, 그리고 시장에는 40대 리더쉽으로 확 낮추어서 다음 세대들을 전진 배치시키는 그런 판이었다.
그러나 노회찬 없이 선거를 치루려다가 극적으로 생환한 노회찬을 보면서 진보신당 당원들은, "한 번 해봅시다"를 외쳤다.
나는 가망 없다고 봤고, 도저히 각이 안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번 판은 쉬어갑시다"하고, 밀린 출간일정 채우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된장, 책 쓰느라고 정신없는 나한테 이계안이 "돔 도와도..", 참내.
어쨌든 이 기간 내내 노회찬의 트레이트 마크는 '노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많은 싸움에서 노한 모습으로 그리고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있는 모습으로 비추어졌고, 그게 그의 이미지가 되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노기의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진보신당은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문화적으로는 20대와 도저히 애기를 할 수 없었고, 노동운동은 민노총을 민주노동당이 틀어쥐고 있으니 배타적 지지에서 자신들이 그 배타의 바깥이 될 줄은 한 번도 상상한 적 없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어 있었다. 시민단체와도 사이가 안 좋았다. 언제 기회가 되면, 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정리할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약간 복잡한 사유가 있지만, 최소한 2004년 총선에서 원내 진출을 할 때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이 민노당에 기대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싸늘했다.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촛불 때 지못미 열풍을 타고 진보신당 당원으로 일반 시민들이 대거 입당한 적이 있었다.
마치 예비군복 입으면 멀쩡한 남자들도 완전 개로 돌변하는 것처럼, 진보신당 당원들의 '근본주의자'들은 정말 노회찬과 심상정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는가, 아니면 "진중권 멋져!"하는 사람들에게 노선 얘기 근본 얘기 등 패악질을 좀 했다.
가끔 유시민 하는 말이 싸가지라고 하는데...
유시민이 싸가지면 촛불 시민 앞에서 진보신당 게시판에 있었던 패악질은, 거의 처키 수준이다.
학생들한테 진보신당 사람들 만나게 해주면, 기겁을 하고 도망가는 경우가 많다.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서적 우월감의 문제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고립된 상황에서 지방선거를 치루면서 노회찬은 기둥 뿌리까지 다 뽑히고, 텃밭도 다 날라가고, 마름들도 떠나가고, 그야말로 "왜 사니, 이 화상아!"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딱 하루, 세상은 꼴찌 낙선자 노회찬을 중심으로 움직였는데, 한나라당 국회의원들도 전부 나가고 싶어하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초청받으신 것이더라... 그는 선거 중에 그렇게 거기 나가고 싶어했는데, 결국 죽고 나서야 그런 일이 벌어졌다.
아마 초유의 사태일 것이다. 수많은 당선자와 수많은 '아까비'를 제치고, "저건 뭥뮈" 수준의 가망없는 낙선자가 그 날의 핫 이슈가 된 일은 말이다.
급기야 유시민까지 나서서 진화를 하게 되었다.
그 이틀 동안 노회찬에게는 '애'라는 이미지가 붙었다.
곰곰 생각하면 마음 짠하기는 하다. 그가 감옥에 가 있는 동안, 그가 노심초사 하는 동안, 한 번도 그에게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사람들이 노회찬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 이것은 노무현의 것이고, 노무현의 눈물이 한 시대를 분명히 열기는 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을 움직이는 힘 중에 한 가지는 눈물이라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 시대의 눈물이 돌고 돌아, 이제는 노회찬에게 와 있는 것인가?
곰곰 생각해보면, 노무현에게도 꼬마 민주당 시절이 있었고, 정말 하꼬방 같이 작은 곳에서 정치를 시작했던 사람이다.
물론 지금의 진보신당은 당시의 꼬마 민주당 보다 더 작다.
모든 정치인이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노회찬은 희노애락에서, 희, 노, 애를 한 번씩은 시대와 함께 겪은 셈이다.
블로그에 조그만 글을 몇 번 썼는데, 서울과 경기도의 지하조직원 출신인 정말 오래된 좌파들이 나한테 별의별 사연으로 연락을 해주셨다.
지하조직 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났다는 분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심상정 이름에다 표를 찍고 있었고, 도대체 내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분까지...
인민노련과 서노련, 한 때 수도권을 반분했던 전통의 조직들인데, 공교롭게도 인천의 인민노련을 대표하는 노회찬은 서울에 출마했고, 서울의 서노련을 대표하던 김문수와 심상정은 각각 경기도에서.
락, 이제 즐거움의 시간이 노회찬에게도 올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지만, 노회찬에게 '눈물'이라는 상징이 붙는 걸 보면서 세상이라는 것은 정말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의 첫 장면은 인천에서 시작하는 게 맞을 거라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나는 이 첫 장면을 경주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앨리스는, 이재영으로 하기로 했다. 울산, 창원 등 공단 지역에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서 전국 조직화된 인민노련에서 처음으로 파견한 활동가가 이재영이고, 그가 처음 도착한 곳이 경주 버스터미날이다.
그러니까 인천의 지역 조직이 아니라 전국 조직으로서 첫 출발점은 바로 경주가 되는 게 맞을 것 같다.
경주에서의 이재영 사연에는, 지금 눈으로 보면 배꼽잡을 것들이 많다.
노동운동사는 최근에도 여러 사람이 썼다. 이광일은 '분노'를 모티브로 쓴 것 같고, 지금 진보신당의 정책위 의장인 조현연도 얼마 전에 썼는데, 음... (이 얘기 썼다가는 내가 조현연 선배한테 맞아죽을 것 같다.)
나는 무조건 명랑 코드로 쓰려고 한다.
웃기지 않는 자, 인민노련이 아니다...
물론 살아남은 사람들만 내가 만난 거라서, 공평한 잣대는 아니지만, 인민노련 출신들이, 개인적으로 보면 웃기기는 엄청 웃긴 사람들이고, 남을 5분 내에 웃기지 못하면 집에 가서 혓바늘에 바늘이 돋을 것처럼, 엄청 웃기는 인간들이다.
최근 진보신당이 어쨌든 참패한 이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어떻 해야하는지 여러 가지 진로에 대한 고민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당명을 바꾸는 일인데, 이건 원래 이번 지방선거 끝나면 하기로 작년에 의결된 상황이라고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당명을 물어보는데, 아마 실제로 당명이 될 가능성은 없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게...
happy left.
그렇다고 직역해서 행복좌파당, 이렇게 하면 완전 사이비 점집 느낌이 든다. 행복, 이 말도 참 우리 말에서 오염 심하게 탄 말이 아닌가?
노회찬의 생애사를 가만히 보면, 그는 이제 '락'을 집어야 하는 순간이다.
(얼마 전에 두리반의 락 페스티발에 노회찬이 가서 힙합풍 '푸처핸접' 하는 바람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시껍했다는... 여기는 락 페스티발인데.)
즐거워야 하고,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웃음이라는 게, 녹색당에서 나온 코드이다.
2003년인가, 호주에서 세계 녹색당 대회가 열린 적이 있었고, 여기에서 녹색당 기본강령에 대한 제안이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맨 마지막 단어가 바로,
humour.
상상 간다. 생태주의자들끼리, 얼마나 싸웠으면, "유머로 함께 가는 길"이라고 했겠나.
원래 가진 게 없으면 싸움을 말릴 길이 없다. 나눌 게 없는데, 합의가 나올 길이 없지 않은가?
독일 녹색당이 드디어 원내 진출할 시기가 되었는데, 원외정당으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원내로 진출해서 진짜 독일을 바꿀 것인가, 소위 푼디스와 레알로스 사이에 목숨을 건 전당대회가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진출을 주장하던 레알로스의 수장인 요시카 피셔가 푼디스 당원들에게 귀를 물어뜯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아저씨가 나중에 마라톤을 통해서 인생을 제기하고, 그걸로 재혼도 하고 책도 엄청 팔아서 오히려 유명해진 바로 그 아저씨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한국의 인민노련의 역사나 노회찬의 생애사나, 눈물로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에게 '즐거움'을 한 번쯤은 느끼고, 너무 즐거워서 온 몸이 떨린다는, 아니면 웃다가 눈물이 앞을 가려, 그런 순간이 잠깐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오늘 저녁 때 노회찬 선본에서 MT를 가름하는 술자리를 마련한다고 한다. 글이 너무 밀려서 갈까 말까, 좀 고민을 하다가 딴짓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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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 송영길은 나름 해피 아닌가요. 엔딩은 아니지만..
진보신당의 사실상 분당사태를 바라보면서 이재영 정책위의장이 있었다면 독자파에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노회찬의원이 단병호 선생과 함께 이계안이 '전설의 노동운동가'라고 부르는 이목희(당시 비정규직악법 법안심사소위위원장)의 환노위에서 경위들에게 끌려나갈 때의 모습을 왜 보여주지 못하고 약해지는지 아쉬움이 듭니다.
물론 워낙 우리 진보시민님들이 고매하셔서 쟤 때문에 오세훈이 당선됐다고 돌팔매를 던지셔서 그렇긴 하지만요. 요즘 보면 노무현=한명숙=곽노현=안철수던데, 노무현 치하에서 다시 한 번 살면서 군소리 없이 살 자신이 있는 분만 제발 그런 논리를 주장하시면 좋겠습니다.
또또또 남 탓 한다. 지금 진부당 사태는 지들끼리 쌈박질 하면서 진부의 무능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자폭에 가까운 사텐데, 뭔 넘의 시민이 어쩌구 저쩌구. 정당 간판 걸구 대중을 설득도 못하고, 자기 세력을 규합도 못하고, 케케 묵은 슬로건에 집착 해서 우리는 이데로 쭈욱~ 을 외쳐 놓고는 징징대기는. 대중이 무조건 그들에게 박수 쳐 주면서 지지해야 할 의무라도 있는 건가. 더구나 그 잘난 노동세력들에게 조차 지지 받지 못 하는 데 뭘 더 어쩌라구. 지금 진부당 내부를 보면 이게 정당인지, 환자들 소굴인지 당췌 분간을 못 하겠더만. 노무현 치하구 나발이구 떠나서 희망을 걸 만한 비전이나 제시하고 나댔으면 좋겠다. 글구 지금은 이재영 개인이 뭘 어떻게 할 만한 상황도 아녀. 댓글 사양이니 알아서 받든지, 말든지...
본인은 본인 탓을 그렇게 하셔서 남 탓을 하는 댓글에 수고스럽게 댓글을 다셨군요...
바로 이 정도의 수준이 대한민국에서 스스로를 진보라 부르는 사람들의 평균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