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출간 이야기/명랑 신좌파'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1/07/18 정용진 사건 (4)
  2. 2011/06/15 책 쓸 때 재밌었던 경험은... (8)
  3. 2011/05/29 1인당 GRDP (5)
  4. 2011/05/22 당당 좌파, 건전 경제 (10)
  5. 2011/05/20 강남좌파, 동네좌파, 신신좌파 (7)
  6. 2011/04/27 공교육과 대안교육... (8)
  7. 2011/03/22 우울증 통계 (5)
  8. 2011/03/20 환경운동연합 (8)
  9. 2011/02/07 신좌파가 만들고 싶은 한국 (12)
posted by retired 2011/07/18 14:52

정용진 사건

 

코드명 신신좌파라고 불리는 대학생용 경제학책은 무난한 책이 될 거라는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중간에 자꾸 생각이 바뀌어서 거의 코미디 아니면 스캔들 수준으로 파격적인 내용들이 들어간다. 기왕 내용이 파격적인데, 포맷도 그런 방식으로 좀 바꾸어 볼려고, 몇 달째 끙끙거리는 중이다.

 

대기업에 관한 얘기로부터 시작을 하는데, 이게 일반적으로 경제학 책에서 기업의 문제점 정리하는 것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가는 중이다.

 

일단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계로, 조금씩이지만 세상의 흐름이 좀 바뀌었다. 2000년에 했다면 완전 이상해보였음직한 얘기들이 2010년에는 오히려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

 

국가가 대기업의 지분을 갖는다거나 아니면 돈을 집어넣는다고 하면 펄쩍 뛰었을테지만,

 

그럼 GM 그냥 내뿔까?

 

요즘은 또 그렇지도 않다. 기업 내에서도 조금씩은 흐름이 바뀌는 중인 듯싶다.

 

어쨌든 대부분의 절은, 좀 드라이한 분위기의 제목을 잡고 가는 중인데.

 

유통 자본에 관한 얘기는 그냥, ‘정용진 사건이라고 할까 싶다. 보면 볼수록 정용진, 진짜 연구대상이다.

 

라즈 파텔의 <경제학의 배신>이라는 책에, 미국 심리학회인가, 거기서 사용하는 표준 질문지로 기업을 인간이라고 치고, 심리 분석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에 따르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사회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반사회적 행동을 주로 하는소시오패스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개인에게 적용되는 심리테스트나 심리분석이 과연 조직에도 맞느냐, 그런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조직은 때때로 분열증적이며, 이중인격, 그런 양상을 종종 보인다. 당연한 것이, 조직 안에는 하나의 목소리와 하나의 흐름만이 있는 게 아니라, 결국 여러 개의 흐름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법인격이 되는 셈이니.

 

정용진은, 그러나 <경제학의 배신>에 나온 기업 분석보다는 더 복잡한 사람인 것 같다. 아니면 너무 단순하거나.

 

2010년 윤리경영학회라는 곳에서 주는 윤리경영 대상을 받았다는 걸 보고, 진짜 깜놀이다.

 

올초, 이마트 피자 논쟁이 시작된 첫 마디가,

 

님은 소비도 이념적으로 하시나요?

 

할아버지나 진짜 옛날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경위야 어떻든, 연전에 윤리경영상도 받았고, 주변 사람들의 전언으로는 평소에 윤리경영이라는 말을 아주 입에 달고 사신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좀 공포스럽다.

 

세상의 이면에 관한 영화들이 가끔. 영화 <체포왕>이 복지재단 이사장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마포 발발이에 관한 얘기이다. 영화 <>는 수산시장 횟집의 이면, 영화 <강적>은 고아들을 돌보는 고아원의 이면, 그런 것에 관한 얘기이다.

 

정용진 윤리경영과 이마트 피자, 그리고 여동생으로 이어지는 내부 거래.

 

하나하나 조각들을 이어나가다가, 진짜 무서웠다. <이마트 피자사건>,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 정도이다.

 

유통 자본에서 이런 사회적 갈등은 종종 벌어지는데, 많은 경우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면, 속으로는 뭐라고 생각하더라도 겉으로는 좀 움찔하거나, 시정하는 시늉이라도 한다.

 

이 정도로 대놓고, “님은 소비도 이념으로 하시나요?”, 요런 정도의 기업인이 21세기에도 있다는 게, 깜놀이다.

 

그러나 또 막상 버티기로 나가면, 사회적으로는 별 수가 없기도 하다.

 

생산재, 소비재, 유통, 서비스 등 기업은 서비스 분야에 따라서 조금씩 특성이 다르다. 현대 중공업과 현대 자동차, 고만고만한 현대 계열사라서 그냥 비슷할 것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깨 다르다.

 

아무래도 배 만드는 회사와 자동차 회사가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주로 국가나 대형 회사가 고객인 경우와, 한 명 한 명이 고객인 경우는 다르다.

 

그런 점에서 유통이 가지는 특수성들이 좀 있기는 한데, 정용진의 경우는 좀 특수하다.

 

어지간하면 좀 하다가 마는데, 이건 완전 니가 죽나, 내가 죽나, 함 해보자, 이런 식이다. 아무리 삼성이라도, 소비자들이 핸펀 문제 있다고 집단적으로 모여서 뭐라고 하면 일단 움찔하는데, 여긴 그런 게 없다.

 

이건 뭘까?

 

이론 고민 속에

 

유통 자본에 관한 얘기는, 그냥 정용진 사건이라고 절의 제목을 붙이기로 했다. , 연구대상인 인간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http://retired.tistory.com/trackback/1385 관련글 쓰기

  1. 이념과 종교의 유사성 삭제

    대개의 이념지향적 사람들과는 해당 이념을 벗어나는 대화를 하기가 불가능하다. 이들은 상대로부터 자신들이 믿는 이념에 비판적인 모습이 보일 때마다 대화를 단념하기 때문이다. 나는..

    2012/03/04 13:07 | Tracked from 0100110100011101
  2. 우석훈에게 답한다. 삭제

    "'이념적 소비'?…정용진 부회장에게 답한다" ([우석훈 칼럼] 이마트 피자 사건과 '거머리') 글을 쭉 읽어봤다. 뭐 대단한 글이 나온줄 알았는데 영.... 이건 정모 부회장님 대신 내가 대답..

    2012/03/14 20:11 | Tracked from 0100110100011101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ㅋㅋ 2011/07/18 16:50  Addr  Edit/Del  Reply

    하도 트윗질을 많이해서 툭 내뱉은 것 같던데요
    트윗터에서 상당히 개그를 많이 칩니다...ㅋㅋㅋ

  2. 2011/07/18 18:16  Addr  Edit/Del  Reply

    ㅎㅎ 얼마나 경악할 내용이 있길래 복지재단 마포발발이 까지 등장 시키실까. 가끔 무협지 보면 인육을 넣은 만두 얘기는 있던데요.

  3. 천연소재 2011/07/19 01:54  Addr  Edit/Del  Reply

    어딘가 대기업 식품공장에서 사람고기 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고기 맛이 중독성이 그렇게 쎄다면서요?)

    하긴 대기업일수록 여러사람 피말려 죽여대니 딱히 틀린 얘기가 아닐지도.

  4. 레니 2011/08/01 09:44  Addr  Edit/Del  Reply

    피상적으로 밖에서 보고 생각하시는 거하고 실제하고는 좀 다릅니다. 대다수 소비자의 편익과 소수 자영업자의 권익이 충돌하는 상황을 일방적으로 감정적인 잣대로 단정지을수 있나요..

posted by retired 2011/06/15 00:44

처음 조희연 선생한테 연락을 받았을 때에는, 그냥 귀찮다는 생각이 더 많았다.

 

경제 대장정 때문에  안 그래도 머리가 빡빡한데, 운동권 대학생용 교제를 별도로 만드는 데에 썩 흥미가 가지는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대학생 운동권들 진짜 지겨울 정도로 많이 만나기는 했는데, 딱히 교재가 없어서 학생운동이 어려워진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결국 사회적 분위기와 내부 문화의 문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있다.

 

어쨌든 시리즈로 한다고 하는데, 조희연 선생이 워낙 스케일 큰 기획들을 잘 하시니까.

 

하여, 이것저것 개념들을 다시 잡고, 스토리 라인을 잡는 그런 작업들을 했다. 처음 부탁 받은 게 한참 더울 때였으니까, 그럭저럭 1년이 지난 셈이다.

 

요즘 조금씩 속도를 내는 중인데, 읽는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쓰면서 재밌다. 어떤 책은 쓰면서 즐거운 책이 있고, 어떤 책은 쓸 때 아주 괴로운 책이 있다. 쓰면서 힘들기는 한데, 나한테 도움이 되었던 책도 있고.

 

가급적이면 밝은 기분일 때 책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꼭 책의 톤이 밝게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다. 내가 다루는 주제들이, 워낙 칙칙하고, 당분간은 답 없다, 그런 결론이 많다보니.

 

신신좌파라고 일단은 부르는 이 책도, 밝은 내용을 다루지는 못하지만, 일단 나는 쓰면서 재밌다. 좌파 얘기를, 가능하면 코믹 터치로 할려고 하는데, 웃기는 건 어렵다. 그러나 너무 칙칙하게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80년대라는 공간과 2010년대라는 공간에서 논의가 뭐가 바뀌고 그간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두 개의 창을 열어놓고 해보는 비교 작업이, 생각보다 재밌다. 30년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건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80년대에서 못 나온 것 같고, 21세기로 웃으면서 건너오지 못한 사람, 아직 2010년대라는 새로운 공간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 그런 동료들 생각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나도 이제 마흔 셋, 내 주변에서 가장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들을 곰곰 생각해보니, 77학번들이 떠오른다. 어제 저녁 식사를 같이 한, 정치적 입장은 정 반대인 어느 언론인도 공교롭게 77학번.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77학번이나 고 또래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학원 수업, 박사과정을 그들과 같이 지냈다. 그 때의 인연인지, 평생을 지인으로 보내는 사람들 중에 그 또래들이 많다.

 

그 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82학번들. 특히 고대 82학번 선배들이 많았는데, 이 사람들과 데뷔를 같이 한 경우가 많았다. 첫 논문 발표, 첫 번째등등을 그들과 같이 했다.

 

한국사회경제학회, 보통은 한사경이라고 부르는 곳에 일년에 몇 번은 가게 된다. 나도 거기에서 데뷔했고, 처음 책을 낸 것도 학회 통해서였다. 김수행 선생이 한겨레 출판사에서 청년을 위한 경제학 강의맨 말미에 생태경제학에 대한 내 논문을 같이 실었는데, 그게 내 데뷔이기도 했고, 생태경제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하게 된 자리이기도 했다.

 

맑스경제학 전공하던 사람들이 모였었는데, 요즘은 딱히 그렇지도 않다. 한전 민영화 문제 같은 것도 종종 논문으로 발표되고는 한다. 여기가 우리나라에서의 비주류 경제학이 서 있는 자리를, 거의 그대로 보여준다.

 

다른 학회가면 나도 이제는 어린 나이는 아닌데, 한사경에 가면 아직도 거의 막내 수준이다. 먹고 살 수가 없기도 하고, 그렇다고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니,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이제 거의 없다. 얼마 전에 갔을 때 김윤자 선생님이 니가 흰머리가 다 나냐아직도 그 양반은 이십대의 나를 기억하지만, 그 사이 나도 나이 많이 먹었다.

 

정치경제학만 이런 분위기라면 괜찮은데, 뭔가 조금만 깊이 들어가야 하거나, 아니면 먹고 사는 데 지장 있을 학문은, 철학이든 과학계든 가리지 않고 이런 형편이다. 어차피 잘 안 될거면 사람들끼리 사이라도 좋으면 괜찮은데, 그런 데도 싸움은 많다. 나눌 게 많아도 싸우고, 나눌 게 너무 없어도 싸우게 되는 것 같다. 생태계는 나눌 게 아예 없으면 열량 소비라도 줄이기 위해서 하이버네이션 모드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사람 사는 건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옛날 얘기들 정리하다 보니, 가장 기억나는 사람으로, 문득 윤소영 선생 생각이 났다. 몇 달 동안 같이 스터디를 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는 술도 참 맛있었고 재밌었다. 과천연구소라고 불렀는데, 우리끼리는 과대망상 천방지축을 줄인 말이라고당신 못 본지도 꽤 된다. 그 생각하면 세월이 참 덧없다.

 

재생산 정식 다시 한 번 찾을려고 옛날 책들 찾아보니, 대부분이 절판이다. 강남훈 선생 책이, 여러 번 이사 다니느라고 이젠 어디 있는지도 못 찾겠다. 처음 공부할 때 생각해보면, 나도 돌고 돌아서 참 먼 곳까지 와 있는 셈이다.

 

공부할 때의 기억으로는, 농업경제학 한다고 할 때가 참 생각이 많이 난다. 초록정치연대를 맡아놓고 보니 농업이 중요한 문제인데, 내가 별도로 농업을 전공했던 것도 아니고.

 

그 때 사람들이, 요즘은 농업에서 환경으로 오는 게 유행인데, 왜 생태 같은 좋은 전공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필이면 농업경제학 같은 사향 산업으로 올려고 하느냐고 엄청 말렸던 게 기억이 난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편하게 살려고만 마음을 먹으면, 삶이 너무 재미없다.

 

농업과 관련해서는 참 많은 일을 했던 것 같은데, 정작 뭔가 제대로 바꾼 건. 농협에서 야구단 창단한다고 할 때, 그거 뜯어 말린 거. 메가뱅크로 간다는 건 아직 못 막았는데, 이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농협 내부 자료를 보여준다는 사람들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독수독과,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 때문에 다친다.

 

학부 졸업한 거 기준으로 해보니까 정말 20년간을 경제학자로 살았던 것 같다. 별의별 논쟁과 별의별 일을 다 해봤다.

 

노무현 시절에 청와대 부탁으로 보고서 만들어주던 것도 가끔 생각이 난다. YS 때에는 직접 청와대 보고를 한 적은 없고 자료들을 만들어준 적은 있었다. DJ 때는 몇 번 보고한 적이 있다. 노무현 때에는 생각보다 보고서 많이 만들어준 것 같다. 명박 시절에는, 협박만 몇 번, 우스운 사람들. 토사구팽일까, 나한테 협박 메시지 전달한 사람이 결국 나중에 짤렸다. 인생도, 권력도, 생각보다 허무한 거다.

 

지나간 일들이 늘 즐겁지만은 않지만, 대학생들에게 좌파가 되면 꼭 알았으면 하는 경제 얘기를 정리해보는 게, 생각보다는 재밌는 일이 된 셈이다. 공저자로 같이 작업을 하는 화가인 선정씨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고, 재미없어서 못 하겠다는 소리 나오지 않게 하는 게, 이 작업에서는 포인트이다. 그가 이해할 수 있다면, 어지간한 대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이다.

 

한국에서 나처럼 내놓고 좌파로 산다는 건, 굉장히 많을 억울한 일을, 내가 했던 선택이니까, 그렇게 참으면서 살아간다는 것과 같다. 해보니까, 겪지 않아도 될 억울한 일도 꽤 많이 당한 것 같다.

 

그래도 별로 후회스럽지는 않다. 마음도 편했고, 또 어떻게 어떻게, 밥은 먹고 살았다. 입에 세 끼 밥 들어가면 되지, 그 이상 더 호사스럽게 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좌파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런 질문들을 가끔 던져본 적이 있다. 젊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왜 그 정당을 지지하게 되었는가, 그런 것과 비슷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이유는 모르지만, 프랑스 사회당의 경우에는 고등학생 때 이미 사회당 계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드골파나 우파들도, 이미 고등학교 시절에 동아리 활동들을 통해서 우파로 탄생하는 것 같다. 미국의 경우도 민주당과 공화당, 고등학교 때에는 어느 정도 선택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그런 점에서는 좀 늦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더 늦게.

 

시민의 탄생과 좌파의 탄생, 어쩌면 같은 메커니즘일지도 모른다. 내 경우는 어땠을까? 고등학생 때는 광주사태가 있었다는 사실과 전또깡이 아주 희한한 사람이라는 정도만 알았고, 대학교에 들어와서야 입장을 선택한 편이다.

 

왜 나는 아직까지 전향하지 않았을까? 특별히 전향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하고 싶은 것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입에 세 끼 밥만 들어가면 된다고, 강사시절에 그 정도 생각한 것 같은데, 그냥 좌파로 살아도 좀 적게 먹어서 그렇지, 아예 굶지는 않는 것 같다.

 

작년부터인가, 중고등학교 진로교육 한다고 꿈을 엄청 강조하고, 미리 분야를 선택하라고 하는 중인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대학교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난 별 꿈이 없다. 뭐가 꼭 되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고, 그냥 되는대로, 순리대로, 그렇게 살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가끔 좌파 정권 만들어서 뭐도 해보고 뭐도 해보고, 그렇게 얘기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 꿈을 가져볼 수는 있을텐데, 나는 간절한 꿈 같은 건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좌파가 된 건지, 좌파가 되다 보니까, 꿈을 꿔봐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너무 먼저 알아서 그런 건지.

 

꿈과 희망을 갖고 열정을 먹고 살아라교회 세상이 되다보니, 온 사회가 전부 목사 연설 같이 되어버렸다.

 

죽을 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 삶의 모토로는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어차피 돈이나 명예 따위, 죽을 때 싸들고 죽을 것도 아닌데, 왜들 그렇게 집착하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어차피 삶은 유한한 거고, 지내보면 허무한 거다. 꿈이 없으면 사람은 불행할까? 오랜 농경시절,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누구나 원대한 꿈을 갖고, 큰 포부를 갖는 게 아니었다. 인류라는 게 오랫동안 작게 삶을 꾸려가고, 하루하루 감사하며 그렇게 살아간 게 아닌가?

 

요즘 꿈을 가지라고 하는 말들, 어떻게 보면 일종의 통치술이다. 꿈을 버리라는 게 통치술인 때도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의 통치술은 꿈 마케팅, 이런 거 아닌가 싶다.

 

성경책은 대빠다 큰 책 한 권인데, 거기 어디에 명박처럼 자기 맘대로 친구들이나 보살피고, 아무의 얘기도 듣지 말고 4대강 공사하라고 써 있는지 모르겠다.

 

(살다보니, 명박 다니던 시절에 소망교회 같이 다녔던 때가 나에게도 있다.)

 

목사들이 기본적으로 괜찮은 사람들이고 게중에 좀 지나치게 보수적이거나 못된 사람이 있는 게 정상일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좋은 목사 찾는 게 힘들다고 하니, 이거야 원.

 

가끔 김규항의 <예수전> 생각이 난다. 기본적으로는 예수가 좌파이고, 혁명가라는 거 아니냐. 당시의 민족 해방 전사들과는 좀 스타일이 다른, 그런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려고 했다는 거 아니냐. 어떻게 된 게 한국은 교회가 우파 공장이 되어버린 셈이라서.

 

좌파가 교회 좀 다닐려고 했더니, 너무 힘들게들 해서, 됐다, 일요일날 잠자는데 방해하는 사람은 다 나쁜 사람들이다, 그렇게 끊어버렸다.

 

2000년대에는, 일종의 좌파 멸종의 시기와도 같았고, 경제 근본주의가 진짜 나라를 뒤덮었다. 또 다른 10, 하여간 흐름이 좀 다르기는 한 것 같다.

 

하여간 꿈을 갖고, 고통을 참으라는 얘기, 난 아주 딱 질색이다. 원래도 그런 생각이 강했는데, 맑스의 사위였던 폴 라파크의 ‘droit a la paresse’, 이거 처음 봤을 때, 그래 딱 이거거던, 했다.

 

꿈을 가지고 성공에 목매달게 만드는, 그야말로 집착증 환자들만 잔뜩 만들 게 되는 게 요즘의 사회 분위기이다. 그러면 사회가 잘 될 것 같지만, 반은 신경증, 반은 정신병자, 자살극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너무 오지랍 넓어서, ‘동지 아니면 적’’, 이렇게 사는 것도 피곤한 일이지만, 성공하고 말거야 나는 된 거야, 그렇게 자기를 전혀 사랑하지 않거나, 아니면 물질과 전도된 사랑을 하거나, 이것도 엄청 피곤하고 불행한 인생이다.

 

생명체라는 게, 뭐든지 적당한 게 좋다. 사상이든 물질이든, 과도하게 탐닉하면 자신과 주변을 불행하게 만든다. 너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사상도 과도하면, 정신 줄을 놓게 된다. 사상만 남고 삶은 사라진 사람, , 옆에 있으면 느무느무 피곤하다.

 

반대로 사상은 사라지고, 예술도 사라지고, 꿈만 남은 사람. 좀 불쌍하다. 그들도 시대의 희생자들이다. 경제도 마찬가지이고.

 

지나와서 곰곰 생각해보면, 가장 무서운 건 집착이다. 이론과 현실의 관계도 마찬가지이고. 하다 보면 이론이 안 맞는 순간들이 나온다. 그러면 이론을 바꾸거나 수정해야지, 현실을 이론에 맞출려고 하면. 진짜 큰 일 난다. 세상은 실험실이 아니다.

 

며칠 전인가, 앞으로의 전망을 말해줄 수가 있겠냐고, 어느 활동가가 물어봤다.

 

이번에는 대선의 방향에 따라 엄청나게 바뀔텐데, 미래를 어떻게 알겠느냐. 이명박 정권은 완전 망할거다, 이거 외에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기가 펼쳐질 것 같다는, 그건 좀 알겠다.

 

이게 2013년 체제까지 갈 거냐, 그 이름이 어떻게 될지, 전개 양상은 어떻게 될지, 워낙 총선과 대선에 많은 게 걸려 있어서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러나 2010년대가,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 전 10년과는 아주 다르게 전개될 것이라는 점. 아마 그럴 것 같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공간에서, 자신이 좌파라고 말하는 게 조금은 더 평온해질 것 같다. 좌파의 양상은, 예전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내가 처음 좌파라고 할 때, 사람들이 엄청 걱정해주었다. 그래서는 사회 생활 못한다, 한국에서는 못 살아간다, 그런 걱정들을 많이 했었다.

 

내가 포기한 건, 교수가 되는 걸 포기한 것, 고거 딱 하나이다. 사상의 자유를 얻은 대가치고는 좀 싼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겉으로 하는 얘기 다르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 다른, 정신분열증 상태를 계속 끌고 갔어야 할 것 같다.

 

서울의 모대학에서 총장 인터뷰, 진짜 막판까지 간 적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 때 생각이 나는데

 

만약 학생이 데모하면 어떻게 얘기하실 건가요?

 

프랑스는 대학이 국유화되었는데, 재단과 국가가 충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 너무 뻔한 질문들을 하셨는데, 그냥 내 생각 그대로 말하고, 바로 떨어져버렸다.

 

삼성 같은 데 취업하면 면접 심사를 본다. 너무 뻔한 정답이 있는 거짓말을 하도록 하는.

 

앞으로 오는 시대에는, 자신이 좌파라고 얘기하는 게, 지금보다는 조금은 평온해질 것 같다.

 

프랑스 사회당은, 집권 하고 난 다음부터는 오히려 부패가 문제가 되었는데, 한국에서 좌파는 아직은 기본 존재의 권리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냥 이렇게만 생각하면 갈 길이 너무 먼 듯 싶지만, 한국은 또 변화가 빠르니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http://retired.tistory.com/trackback/1342 관련글 쓰기

  1. 좌파, 맑시즘, 복지, 생태, 진보는 사기다. 삭제

    진보라는 것이 사기인 이유 나는 여러 해 동안의 관찰로 현재 한국적 현실에서 진보로 묶이는 맑시즘, 좌파, 복지, 생태등등의 여타 그 어떠한 사상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철학 과학적 근..

    2012/02/19 14:17 | Tracked from 0100110100011101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RGM-79 2011/06/15 09:14  Addr  Edit/Del  Reply

    며칠 전에 책을 정리하다보니
    청년을 위한 사회경제사가 있더군요.
    어익후 이게 얼마만이여..하고 펴보니
    낯익은 이름.
    정말 데뷔작을 본 것이었군요.

    하여간 답이 안나옵니다.
    교수되는 거 포기하면 편하긴 해요.(아니 포기할 수 밖에 없겠지..)
    그럼 자유롭다는 거.. 공감입니다.

  2. rainblue 2011/06/15 09:18  Addr  Edit/Del  Reply

    야구팬 입장에서는 농협의 야구단 창단을 막으신건 좀 섭섮하네요.
    이장석의 만행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3. 경성유지 2011/06/15 10:04  Addr  Edit/Del  Reply

    ㅎㅎ 낯익은 이름들이 많이 출동하니 반갑네요. 언제나올지 기다려집니다.

  4. ... 2011/06/15 11:44  Addr  Edit/Del  Reply

    초딩들 도덕 교과서도 그렇습니다 ㅠㅠ
    자기개발..어린이를 위한 자기개발...정말 악!!!!!! 소리가 납니다.

  5. 빗방울 2011/06/15 13:14  Addr  Edit/Del  Reply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고 산다는 건..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편안한 당당함이 좋으네요^^

  6. R3 기획단원 이주영 2011/06/15 13:35  Addr  Edit/Del  Reply

    교수님 강연섭외요청 글 보셨나요 ㅠㅠ 게스트북에 써놨답니다. cyber21k@gmail.com이나 010 3137 9415로 연락좀주세요 메일주소를 알려주시면 정식 강연요청서와 r3 기획단 소개글 보내드리겠습니다.

  7. 연두 2011/06/15 22:03  Addr  Edit/Del  Reply

    이런 게 좌우의 구분이 될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엔...
    혼자 꾸는 꿈이 우파적이고, 함께 꾸는 꿈이 좌파적이라 해도 될까요?
    울 아들이 세 살인데,
    저도 내 아이가 대학등록금 걱정 안 하고, 병원비 걱정 안 하고,
    우리 부부 노후 걱정 안 하고 살고 싶거든요...
    하지만 악착같이 벌어 모아야지 라든가 철밥통 공무원 해야지 말고...
    대학 국유화하고,의료보험 개혁하고, 사회 보장 확대 하고
    그런 사회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게 낫겠다 싶은 쪽으로 잔머리가 굴러가요.

  8. 잉어 2011/06/15 22:30  Addr  Edit/Del  Reply

    우쌤 이번 글 참 쉽고 괜찮네요 ^^

posted by retired 2011/05/29 18:16



지역별 2003  2004  2005  2006  2007 
서울특별시 19.43 19.82 20.87 21.97 23.59
부산광역시 12.03 12.70 13.40 13.91 14.94
대구광역시 10.33 10.95 11.47 12.18 13.06
인천광역시 14.14 15.12 15.67 16.68 18.29
광주광역시 11.47 12.05 13.09 14.07 14.73
대전광역시 12.57 13.23 13.64 14.09 14.92
울산광역시 33.43 38.40 38.97 40.22 44.51
경기도 14.56 15.59 15.95 16.71 17.54
강원도 14.31 15.00 15.46 16.31 17.67
충청북도 15.83 17.59 18.00 18.86 20.22
충청남도 20.97 23.10 24.76 26.64 28.48
전라북도 12.24 13.32 13.88 14.74 16.14
전라남도 18.67 21.10 23.12 23.06 26.03
경상북도 19.05 22.01 23.29 23.66 24.28
경상남도 16.66 17.83 18.74 19.81 22.13
제주특별자치도 12.99 13.95 14.71 14.90 16.04



몇 년만에 grdp 자료들을 좀 찾아봤다. 지방지표로 나온 거라서, 오늘치 수치를 봤는데도 2007년치까지 밖에는 안 나온다.

올해 충남이 울산을 추월할 거라는데. 울산은 벌써 2006년에 4만불을 넘어섰다.

2006년과 2007년 사이에 강원도가 경기도를 추월했다. 서울은 평균 정도이고.

GRDP 가지고 할 수 있는 얘기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그나마도 계산하고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http://retired.tistory.com/trackback/131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1/05/30 07:49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Favicon of http://alisol.tistory.com BlogIcon 韓아리솔 2011/05/30 09:59  Addr  Edit/Del  Reply

    책 잘 받았습니다.

  3. 이유레카 2011/05/30 14:18  Addr  Edit/Del  Reply

    사인 책 잘 받았습니다. 재밌게 읽겠습니다. 우연님께도 감사드립니다. victory ~!

  4. 미국사람 2011/06/02 01:29  Addr  Edit/Del  Reply

    GRDP가 지역내총생산이라는 것을 알겠는데 저 표는 어떻게 보는 건가요? 서울 2007년 소득이 23.59 이면 일인당 소득이 23,590달라라는 뜻인가요? // 아래분의 도움으로 알았읍니다. 단위가 100만원이네요. 그러니까 서울소득은 2359만원 ... 감사

  5. Favicon of http://blog.jinbo.net/envia BlogIcon 바람들 2011/06/01 12:44  Addr  Edit/Del  Reply

    2009년까지 GRDP 통계가 있네요.

    http://www.index.go.kr/egams/stts/jsp/potal/stts/PO_STTS_IdxMain.jsp?idx_cd=1008

    1인당 자료는 http://www.kosis.kr/region/region_0103List.jsp 를 보시거나 http://kosis.kr/ 에서 검색하시면 나옵니다.

posted by retired 2011/05/22 14:57
신좌파와 명랑을 가지고 대학생들이 볼 수 있는 경제학 책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지, 그야말로 1년이 지났다. 작년에 한참 더울 때, 조희연 선생한테 부탁받았던 내용이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보면, 두 장면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첫 번째 장면은, 박순성 선배와 커피 마셨던 한 장면.

당시 나는 돈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격론을 벌이던 두 양반의 논쟁을 듣고 있었다. 순간, 박순성 선배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이렇게 주머니에 있는 게 돈이냐", 그런 얘기를 했다. 인상적이었다.

두 양반 모두 당시에는 자본론을 가지고 논문을 준비하던 사람들이다. 이후에 한 사람은 곧 김영삼 정부의 청와대에 들어가, 세계화 추진 업무를 하게 되었다. 박순성 선배는 지금 민주당 정책연구원 원장이다.

역시 그 시절, 같이 자본론 공부하면서 노동자의 정치 세력화에 대한 토론을 같이 하던 어느 선배가 생각난다.

기독교 계열의 방송국에서 했던 토론회에서 간만에 상대편으로 같이 만났었는데, "엠비노믹스가 촛불에 바베큐가 되었다"는 말을 했다. 명박 캠프에서, 최측근 중의 한 명이라는 얘기도 건너 들었다.

자본론을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다. 그 중에 전향한 사람들도 많고, 아직 전향하지 않은 사람들도 꽤 된다.

삶이란... 이런 생각이 가끔 든다.

또 하나의 장면은, 촛불 집회 때의 한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와싸다 깃발을 보았을 때의 일이다.

내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제일 먼저 글을 쓰던 곳이 와싸다 게시판이었다. 그 사람들이 촛불 집회에 나오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다.

베이지안 확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후 확률을 처음 배울 때의 생각이 난다.

뉴욕에서, 흑인 남성과 백인 블로드 여성이 같이 강도를 할 확률은? 물론 사전 확률은 매우 맞지만, 일단 이런 일이 벌어진 다음의 사후확률을 계산해보면, 아주 높아진다.

벌어지지 않을 법한 일이 벌어졌을 때, 이런 일이 또 벌어질 확률은? 그게 사후 확률이다.

생태학에서 진화 현상을 확률적으로 다룰 때, 이런 베이지안 확률을 많이 사용한다.

와싸다가 촛불집회에 나오게 될 사전 확률은 아주 낮지만, 일단 벌어진 다음, 유사한 일이 벌어질 확률은?

베이지안 확률, 즉 사후확률이라는 개념을 도입해보면, 아주 높아질 확률이 높다.

거의 같은 개념으로, 촛불 집회에 나선 촛불 시민이 진보신당에 가입하거나, 노회찬을 지지하게 될 확률은 아주 높다.

이건 수학적인 계산이고.

그런 촛불시민이 진보신당에서 당원으로 계속해서 활동하게 되는 비율은 아주 낮다.

이번에는 교란효과를 생각하게 된다. 진보신당에는, 촛불 시민들이 당원으로서 활동을 하거나 소속감에 의한 긍지를 느끼기 어렵게 만드는 교란 효과가 아주 높기 때문이다.

촛불집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 중에 김선정씨는 그 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만나서, 결국 신신좌파에 대한 책을 공저로 쓰게 되는 상황까지 왔다.

사람들은 김선정씨를 몰라도, 김선정씨의 그림은 거진 안다. 마리 이야기의 그림, 그건 어지간히 본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촛불 집회의 성격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투명한 부분이 많고, 대부분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얘기하는 경향이 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촛불 집회를 통해서, 자신이 좌파라고 생각하게 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얘기들은, 사실 언제나 할 수 있는 얘기들이기는 하다. 맥락을 떠나면 극도로 재미없는 얘기들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이런 두 개의 장면을, 이명박이라는, 아주 특별한 대통령과 대비시키면, 진짜 콘트라스트 강한, 쫀득한 사진의 느낌 같은 게 튀어나온다.

당당 좌파라는 개념은, 촛불 집회 이후에 사람들이 변한 모습을 포착하기 위한 단어이고,

정상 경제라는 개념은, 최소한 명박이 하려고 했던 거, 이건 아니다, 그런 방향을 포착하기 위한 단어이다.

그렇게 해서, '당당 좌파, 정상 경제', 그렇게 여덟자짜리 책 제목을 하나 뽑아냈다.

부제는, '강남좌파, 동네좌파, 신신좌파', 요렇게 갈까 한다.

공장좌파를 하나 더 집어넣을꺼, 막판까지 고민했는데, 일단은 너무 잔인한 것 같고. 또 내용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얘기이기도 해서.

삼성에도 좌파가 있는가?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정말로 노조도 만들지 못하는 이 회사에 있는 사람들 속에도 좌파가 있는가?

내가 알기로는, 있다.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사람은 아직 못 봤지만, 하여간 자기 스스로가 좌파라고, 최소한 술 마시는 자리에서 공개하는 사람들이 삼성 내에도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http://retired.tistory.com/trackback/1306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붤뤠 2011/05/22 15:48  Addr  Edit/Del  Reply

    와싸다... 듣도 보도 못한 스피커 파는 곳, 그 곳 인가...

  2. .... 2011/05/23 00:40  Addr  Edit/Del  Reply

    와싸다, dvdprime은 오히려 촛불시위를 하기에 딱 좋은 곳 아닌가요? 남들은 무심한 스피커니 음질이니 유별나게 집착할 만큼 돈도 있고 또 그걸 이용해서 즐길 문화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니까 어찌 보면 중산층 리버럴의 표본인지도 모르죠.

    촛불시위를 68에 비교하시던 걸 보면 희한할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촛불 시위는 중산층들도 깔끔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시위였죠. 주제가 먹는 것에 한정되어있고, 그 외의 사회문화적 구호는 최소화되어있고.....

    와싸다나 Dp나 전문직 고소득층이 많다보니 종부세나 의료복지 같은 논쟁으로 가면 상당히 의견이 갈리던데요

    • kce 2011/05/23 01:38  Addr  Edit/Del

      저도 동감입니다. 가끔 소울드레서나 와싸다나 취미생활 있는 사람들을 무슨 사회에 전혀 관심없는 덕후취급하는데 커뮤니티 중심의 취미는 일종의 교양처럼 여겨지는 거라서 오히려 중산층 이버럴들이 더 많죠. 이걸 오해하면 촛불에서 정치와 관심없는 사람들까지 광장에 나왔다는 이상한 결과가 나옵니다.

    • .... 2011/05/23 02:18  Addr  Edit/Del

      맞아요. 와싸다나 DP는 386 세대들이 많다는 것도 한 몫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좀 재미있는게 같은 덕후 느낌이라도 실제로 구매력이 좀 보이는 DP나 와싸다 쪽이 오히려 좀 더 리버럴하고...

      이른바 금력을 자랑한다는 자랑갤을 제외하면 그다지 부유하진 않아 보이는 디씨 인사이드 친구들이 극우적인 것은 생각 좀 해볼 문제인 듯 싶음....

    • 잉여 2011/05/24 04:58  Addr  Edit/Del

      동의합니다. 미국 대학원생 사이에서도 촛불 열기가 있었는데 이 또한 중산층 이상 리버럴들에 기반하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요.

  3. 뚜벅이 2011/05/23 00:48  Addr  Edit/Del  Reply

    저 거시기 있죠. 꼭 좌파라는 말을 넣어야 하나요? 잘 팔리는 우파나 자기계발서류 쪽의 책에서도 잘 안 넣지 않나요? 기본적으로 자기의 철학이나 주의주장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건 재미(?)없어 하지 않나요? 나중에 책 낼 때는 분명 다른 제목이겠지만 노파심에. 그리고 참고로 다 아실테지만 비유적이거나 확 땡기는 제목 아시죠? "나는 왜 미장도 헤어샵도 아닌 미용실에서 빠마를 하나!" - (부제) 직접 시장봐서 밥해먹는 동네미용실 오빠, 누나와(의) 시장경제. 약간의 설명이 들어가 길어진 제목입니다. 애환이 있는 이런 제목이 낫지 않을까요?

  4. 뚜벅이 2011/05/23 00:55  Addr  Edit/Del  Reply

    "동네아줌마들의 사랑방 땡땡미용실의 시장바구니경제" 화끈거리지만 이런 제목도 예시로...

    • 學生 2011/05/24 04:27  Addr  Edit/Del

      이런 종류 제목을 찬성합니다!

  5. 당당좌파 2011/05/23 09:39  Addr  Edit/Del  Reply

    당당 좌파는 느낌이 팍 와 닿는데요. 건전 경제는 좀 느낌이 약하네요. 뭐 없을까요.

  6. 2011/05/24 18:06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posted by retired 2011/05/20 12:54
한울에서 운동권 대학생들이 읽을만한 기본 교재에 대한 시리즈를 기획 중이다.

원래는 조희연 선생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사회 운동을 하려는 대학생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게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알았음직한 경제에 관한 기본 사항들을 전달하는 게 내가 부탁받은 일이다.

예전에는 PD와 주사파, 이렇게 두 가지가 컸고, 한 주변에 트로츠키 주의자들이 있었다.

요즘에는 여기에 더해서 시민운동파와, 기독 운동파, 이런 게 더해진 것 같다. 교회쟁이들, 엄청 사회적으로 욕 먹는 것 같은데,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그냥 강성교회파라고 알았던 곳들도 은근 사회운동 쪽으로 많이 왔다.

IVF라는 곳에 고등학교 때 아주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뭐...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요즘은 워낙 사회운동이라는 게 죽다보니, IVF 사람들하고도 행사를 종종 하게 된다.

트로츠키파...

꽤 욕도 먹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트로파와는 인연이 많았다.

제일 큰 인연은, 나한테 유학 가라고 제일 처음 얘기한 사람이, 정성진 선배였다는... 공황론을 처음 배운 게 그 양반한테 배웠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진짜로 공부 한 번 해보라고 한 사람은 그 양반이 처음이었다.

PD계열에서 아직도 학생 운동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몇 년 전에 그런 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사실 무슨 얘기하고 싶은 건지, 아직도 이해를 잘 못하겠다.

주사파 계열은 여전히 대학에 많은 것 같다.

어쨌든 대학의 운동권에게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 내가 누구에게 말을 하는가, 이걸 먼저 정리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작업이다.

이제 마흔이 넘고 보니, 주사파와의 관계, 이것도 생각보다 골 아픈 관계이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10년에 걸친 굴곡과도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하는 문제이기는 한데...

같은 문제가 시민운동에서는 그렇게까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 것 같은데, 왜 꼭 정당 안으로 들어오면 이렇게까지 서로 얘기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느냐... 그런 것도 고민스럽기는 하다.

어쨌든 출판사와 얘기한 건, 신좌파를 기본 개념으로 잡겠다, 가능하면 명랑톤으로 가겠다, 그 정도이다.

그렇다고 명랑 신좌파, 이렇게 책 제목을 잡을 수는 없고. 너무 직설법이다.

신좌파라는 개념을 놓고 보니, 두 가지 문제점에 부딪혔다.

일단은, 너무 딱딱하다. 신좌파 옆에 어떤 단어를 붙여도 같이 딱딱해진다.

두 번째는, '신'의 기점을 어디에서 잡느냐는 거다.

보통은 68을 기점으로 잡는데, 스위지 같은 사람들이 New Left Review 같은 것을 만든 게 그 흐름이다.

태고적 얘기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잡는다면 90년대 동구 붕괴를 잡을 수 있다.

아, 이것도 고대적 얘기이다.

동구가 붕괴한 후, 우리는 생각을 많이 바꿨다... 너무 많이 써먹는 수법인데, 이런 톤으로 말 대가리를 잡으면...

90년대 신파조가 된다.

그리하여...

뻔한 수법이지만, 신신좌파라는 개념을 쓰면 어떨까?

신신좌파, 신신신좌파, 신신신신좌파, 요렇게 나가는 시리즈가 된다.

신, 새...

한나라당이 전신이 신한국당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대학생이 있을까?

박근혜의 한나라당이 2004년 워드로 자신들의 공약을 정리했던 것을 어떻게 입수해서 분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jpg 파일로, 'new 한나라당'이라고 아예 로고 작업을 했던 게 기억난다.

신한국당, 한나라당, new 한나라당...

쟤네도, 신, 새, 이런 거 가지고 엄청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다. 혁신을 넘어 쇄신으로...

혁신과 쇄신이 뭐가 달라?

2010년에 좌파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건, 역시 그런 고민 속에 들어가게 된다.

뉴 레프트는, 벌써벌써 70년대에 써먹은 개념이고, 이걸 한글로 바꿔 신좌파라고 하는 건, 90년대에 써먹은 적이 있고.

애초의 개념은,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 작업을 하면서 구좌파의 로망을 한 번 다루고, 그 다음에 신좌파 얘기를 한다, 그런 거였는데...

너는 구좌파야...

그렇게 말하는 게 너무 마음이 짠해서, 내 입에서는 그 말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하여, 이래저래,

신신좌파라는 말을 가운데 놓기로 했다.

맨 처음에 찾은 말은, 공장 좌파라는 말이었다. 의미는 명확한데, 개념이 너무 잔인하다.

동네 좌파라는 말이 딱 좋은데, 과연 한국의 동네에 좌파가 있나?

스위스 쮜리히에서 피자 집에서 수다 떨면서 노는 네그리파는 본 적이 있다.

동네 좌파는 일본에도 있고, 유럽에도 있는 데, 한국에 동네 좌파는 없는 것 같다.

역설적이만, 지역을 중심으로 모이는 건, 주사파들이고, 좌파들을 지역으로 묶은 이름은 강남좌파가 처음이다.

그렇다면 강남좌파의 대척점에 시골 좌파라는 개념을 놓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시골 좌파 모임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울산에서 노힘 모임 같은 데 가끔 간 적이 있는데, 그건 공장 좌파라는 말로 잡아낼 수는 있는데.

너무 소수이다.

하여간, 일단 한 번 정리해 본 개념은,

강남좌파, 동네좌파, 신신좌파...

'마리 이야기'팀에 있었던 김선정씨와 이번에는 공저로, 그림 작업까지 같이 한다.

촛불집회에서 처음 만났던 양반인데, 우리 집 장기 여행할 때, 고양이 맡아주시는 고양이 엄마다.

내 눈에는 잘 안 보이는, 병들어서 죽어가는 고양이를 데려다가 다섯 마리쯤 키우시는, 그런 고양이 엄마.

촛불집회와 함께, 좌파 동네에 처음 와본 그런 예술가라서, 그 눈에는 이런 어정쩡한 얘기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런 게 궁금해서 같이 작업 중이다.

일단, 신신좌파라는 개념은 재밌다고 하신다.

하루 이틀, 더 생각해보고, 본문 쓰기 시작할까 한다.

이번에는 주주 자본주의와 함께 재벌 문제 같은 걸, 약간은 심각하게 다루려고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http://retired.tistory.com/trackback/130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ZeroNemo 2011/05/20 19:58  Addr  Edit/Del  Reply

    김기림의 시 '백수의 탄식'에 cafe chair revolutionist 라는 말이 나오는데, '까페좌파', '다방좌파'는 어떨까요.

  2. 애플 2011/05/20 21:06  Addr  Edit/Del  Reply

    강남좌파, 강남우파 / 달동네좌파, 달동네우파
    샴페인좌파, 샴페인우파 / 막걸리좌파, 막걸리우파.....

  3. 길위에서 2011/05/20 21:55  Addr  Edit/Del  Reply

    와, [마리 이야기] 그림 진짜 좋아했었는데요~! 그 부드러운 이미지와 신신좌퐈가 워찌 결합할지.. 오방 기대됩니다...

  4. 대학운동 2011/05/21 17:54  Addr  Edit/Del  Reply

    좀 어렵게 적으셔도 될겁니다. 공부의 의지는 상당히 높으니까,

  5. 뚜벅이 2011/05/23 00:19  Addr  Edit/Del  Reply

    의식좌파, 무의식좌파가 말은 딱딱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를 가르는 핵심이 아닐까요? 뭔지 모르고 동아린가 학횐가 가입했어도 그대도 내가 누구와 다르고 그대도 우리는 공장이나 철거민이나 그 쪽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있었던 세대외 그 이후의 세대?......

  6. 뚜벅이 2011/05/23 00:19  Addr  Edit/Del  Reply

    그래도 & 그래도

posted by retired 2011/04/27 06:21
시민단체 쪽에서 교육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 중에, 대안학교를 찬성하지 않은, 아마 거의 유일한 사람 중의 한 명이 나일 것 같다.

물론 내가 대안교육을 강조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공교육을 대안교육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안학교 가면 된다,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았다.

공교육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노무현 정부처럼 사교육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방과후 학교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달에, 서울시 교육청에서 하는 공무원 교육에 간다.

'창의성, 인권 그리고 문화'라고 주제를 잡았는데.

공교육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많고, 공교육의 교사들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불신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보수적이든 아니든, 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는 상관없이, 국제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교사들의 수준 자체는 높은 편이다.

중등교육으로 교육이 일단 끝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대학은, 무상 교육으로.

한동안 얼키설키 해서 잘 정리되지 않던 내용들이, 요즘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http://retired.tistory.com/trackback/127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길위에서 2011/04/27 06:39  Addr  Edit/Del  Reply

    빙고!!! 이래서 제가 우쌤을 좋아한다지요^^.

  2. rainblue 2011/04/27 10:19  Addr  Edit/Del  Reply

    우리나라의 대안교육은 또 하나의 거대한 사교육 아닌가요?

    • sciolto 2011/04/27 11:03  Addr  Edit/Del

      그렇게 보는 시각에 동의합니다. 출발이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현재에 초점을 둔다면..

  3. 싸구려 SF 2011/04/27 11:09  Addr  Edit/Del  Reply

    저는 자식이 없어서 학부모들의 절박감을 잘 모르지만... 자식을 대안학교에 보내는 지인들과 얘기하다 보면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지더라구요. 마치 또다른 차별의식이랄까...사바세계의 불편과 고통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이 사바세계에 나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불안감도 들구요. 죽을 때까지 대안인생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닐텐데...

  4. 맘아픔 2011/04/27 12:48  Addr  Edit/Del  Reply

    대안교육.
    또, 하나의 거대한 사교육?
    맘이 아프네요.
    대안교육도 가지수가 많아요. 아주 많이...

    그리고, 대안교육도 그냥 이 사회에요. 안에서 보면 많이 힘들어요.
    아이들도 많이 힘들고, 어른들도 많이 힘들고...

  5. NGO의시대 2011/04/27 13:15  Addr  Edit/Del  Reply

    녹색당 강령에도 무상교육을 넣으면 좋을 듯 ^^

  6. atzoo 2011/04/27 18:46  Addr  Edit/Del  Reply

    또 하나의 거대한 사교육...참 터프하네요...ㅠㅠ
    여러가지 시각이 있겠지만,
    교육의 획일화에 대한 반기.그러니까 교육의 다양성.에 대한 제기.이지요.
    국가가 통제하는 하나의 교육.안에 모두들 쓸어넣으려는 전체주의가 싫어요.
    또, 대안학교로 가는것 보다는 공교육안에서 그것을 바꿔나가는 것이 더 좋을수 있겠지만, 여러 대안학교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공교육에 대한 문제제기와 전망과 미래를 제안할수 있는 것이고요.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바라보면서 더 양질의 교육을 만들어 낼수 있는 장치가 될수 있지요.

  7. 2011/04/28 00:25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posted by retired 2011/03/22 00:27

우울증에 관한 국가 통계가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부분적으로는 좀 있는 것 같다. 비정기적으로는 하는 조사가 있고, 복지패널 같은 데서 질환의 일종으로 좀 나온다.

건강보험 통계에도 있는 것 같은데, 병명 코드가 너무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

몇 개 있는 것에, 수치가 너무 차이가 크다. 2006년 조사에는 1.3%라고 하는데, 다른 데서는 '우울한 증상'을 늘 느낀다가 30% 가까이 되기도 한다.

재산에 따른 편차가 있는데, 가난한 사람이 평균보다 더 작은 경우도 있고, 더 높은 경우도 있어서, 1차 통계만으로는 영 흐름도 잡기가 어렵다.

아무래도 병원을 중심으로 통계를 잡으면, 실제 가벼운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을 찾아서 상담하는 사람들이 비율이 높지는 않을 테니까, 지나치게 낮게 나오는 것 같다.

그렇다고 자가 진단 같은 것으로 의견을 물어보면, 이번에는 너무 높게 나오고... 그런 거 아닌가 싶다.

우울증을 만드는 사회에 관한 문제가 있을 거고, 또 여기에 대처하는 정책적 장치가 있을 거고...

어쨌든 현재로서는 별 정책 없고, 통계도 취약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http://retired.tistory.com/trackback/1207 관련글 쓰기

  1. 기획자 노트 - '레알' 저널리즘의 미덕 부활하다! 삭제

    기획자 노트 - 나는 왜 이 책을 택했는가! 긍정의 배신 편집자 주 : 긍정의 배신(원제 Bright sided)의 기획자는 부키 정 모 기획부장입니다. 국내에선 상당히 낯설다고도 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에 매료되어 긍정의 배신을 비롯해 다른 저서들의 출간도 함께 추진한 분입니다. 출판인은 책으로 말하면

    2011/03/29 14:34 | Tracked from 도서출판 부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건보 2011/03/22 00:59  Addr  Edit/Del  Reply

    병원에서 환자가 원하면 보험처리 안하더라는.. 중증이라도 잘 안가고.. 간다해도 보험처리 안하면 집게가 안된다는..항우울증 판매량을 파악하시는게.. 아직은 우울증이라면 알러지 반응 보이는게 한국사회잖아여.. 주변 보면 10-20%는 되는거 같습니다..

  2. 2011/03/22 03:11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D cho 2011/03/22 11:13  Addr  Edit/Del  Reply

    자주 방문해서 눈팅만 하다가 관심이 있는 주제라서 글 남깁니다.
    전 의사이고 사회적 불평등과 건강불평등에 관심이 있어서 몇마디 적고 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조사된바 없지만 외국의 경우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계급니 낮은 사람에서 우울증을 포함해서 정신 건강이 좋지 않다는 연구가 많이 보고 되고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건강문제를 다루는 연구 분야를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합니다.)

    아마 우리나라도 외국의 사례와 비슷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큰 도움이 안되겠지만 원하신다면 외국연구 결과의 서지정보나 연구자료 원문(가능한 논문 pdf)을 보낼드릴테니 연락주십시요.
    제이멜 주소는 0361pt@hanamil.net 입니다.

  4. D cho 2011/03/22 11:18  Addr  Edit/Del  Reply

    설문조사도 표준화된 설문지라면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질병의 유병률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정신과 진단이 정신과 의사가 진단한 것을 기본으로 하긴 합니다면......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조사를 한다면 만약 표본을 잘 뽑는다면 1차 일부 지역의 설문조사 + 2차 설문지 유소견자에 대한 정신과 의사의 진단으로 하는 것도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5. Favicon of http://malte.tistory.com BlogIcon Kaleana 2011/03/22 13:46  Addr  Edit/Del  Reply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에서 이누이트들을 대상으로 우울증 조사를 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우울증이 만연해있기는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우울한 감정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우울하지는 않되 무기력증 같은 것이 주로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는, 물론 추측이기는 합니다만, 자신이 우울증인지도 모르는 우울증 환자가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posted by retired 2011/03/20 18:30
간만에 환경운동연합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예전에는 참 많이 갔었는데...

이곳에 근무하기 이전에도 아내를 알았었는데, 여기 근무하던 시절에 결혼하기로 했다.


이 건물, 생각보다 사연도 많고, 나와도 얽힌 일들이 많다.

같이 작업했던 활동가 겸 기자가 얼마 전에 암으로 죽으면서...

아, 그렇게 피어보지도 못하고 가는가,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오른 쪽 아래, 환경운동연합에서 운영하던 에코 생협이 보인다.

기본적으로 우리 집에서 먹는 건, 시민지원농업으로 이천에서 오는 것 그리고 절반 정도가 에코생협에서.

동네 어린이들과 근처 초등학교 학생들은 저기를 슈퍼라고 부르기도 한댄다.

어쨌든 현실적으로 이곳이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의 총 지휘센터인 셈이다.

새만금 상황실도 이곳 마당에 쳐진 텐트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http://retired.tistory.com/trackback/1206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M.M 2011/03/21 06:38  Addr  Edit/Del  Reply

    디버블링 오류를 지적했던 '두락'이란 사람을 웹서핑중에 찾았습니다 ㅡ.ㅡ;;

    http://cafe.naver.com/economicreview.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59&

    이까페에서 우석훈박사님을 대놓고 욕하고 다닌다는... ㅡ.ㅡ;;; 깜작놀랐네

    • ... 2011/03/21 08:29  Addr  Edit/Del

      dc 경갤 브랜치인거 같네요ㄲㄲ 분위기 한번..

    • . 2011/03/22 23:11  Addr  Edit/Del

      여기 말고도 이글루스에 선생님 검색하면 욕하는 글들 엄청 나와요ㅜ(특히 좌파아이들) 조치가 좀 필요한 듯

    • 그게 2011/03/24 18:18  Addr  Edit/Del

      이글루스가 완전 젊은 우파들의 본거지 비스무리하게 변하지 않았나요?
      전에 3대세습 논쟁 때는 민노당을 비판하는데, 비판하는 것까지는 좋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사용하는 용어나 표현들이 해방직후 서북청년단이나 가스통할배들이 사용하는 것들과 같더군요. 만일 이글루스가 그렇게 변한 게 맞다면, 석훈횽아에 대해서도 좋게 평가할 리가 없겠죠.

    • BeGray 2011/03/25 01:19  Addr  Edit/Del

      조치까지 필요할 것 같지도 않고 뭐 굳이 이렇게 찾아야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제 생각에는 이런 '탐색'의 행위가 더 우 선생님께 누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만-_-;;

  2. M.M 2011/03/21 06:39  Addr  Edit/Del  Reply

    http://cafe.naver.com/economicreview/203 위주소가 아니라 여기가...

  3. 국보법 2011/03/21 19:53  Addr  Edit/Del  Reply

    국보법으로 대학생들 잡아갔어요.. 아 열받아..

  4. 2011/03/23 22:59  Addr  Edit/Del  Reply

    하는 짓들도 졸렬하구만

posted by retired 2011/02/07 08:13

신좌파가 만들고 싶은 한국

 

지난 여름에 조희연 선생이 문득 연락을 한 적이 있다. 얘기인즉슨, 2010년대에 대학생들이 쓸 수 있는 운동권 교제 시리즈를 한 번 만들어보자는 거다. 하긴 예전에 보던 것들이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서 업데이트 될 필요가 있기는 하다. 취지야 동감을 하지만, 내가 그걸 쓰는 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 또 나는 출간일정이 빡빡해서 다른 내용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그걸 찔러놓은 공간도 별로 없어서, 무조건 못한다고 자빠졌는데

 

이게 그냥 못한다고 자빠져서 해결될 상황이 좀 아니었다. 결국에는 그럼 겨울방학 때, 이렇게 마냥 뒤로 미루어두었는데, , 시방 타임이 바로 겨울방학이라

 

하여간 무조건 하라고 해서 나처럼 억지로 떠안은 사람 중에는 진중권 선배도 있고, 조국 교수도 있던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고. 하여간 열 댓명이 분야별로 맡아서 1~2년간 요 시리즈의 책이 줄줄줄 한울에서 나오기로 되어있다는 것까지만 한다.

 

어쨌든 난 좀 쉬었으면 하는 생각 밖에 없어서 어떻게든 다음 여름방학까지로 살짝 미루는 꽁수를 피울까 했는데, 이게 내가 1번 타자란다. 하긴 내가 나이도 제일 어리고, 힘도 제일 없으니, 하라면 하는 거야, 일빠를 맞는 거가 당연하기는 한데, 별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둔 게 없어서 지난 두 달 동안 뒷골 빡빡 당기는 상황이었다.

 

하여간 지난 여름에 합의한 건, 신좌파를 키워드로 쓰겠다는 거였다. 뭐가 신좌파인지도 아직 정리된 게 없고, 유럽 기준으로 하자면 뉴레프트라고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도 70년대의 일이니까, 이게 40년 전 얘기를 한국에 대입하는, 잘못하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되기 딱 좋은 구조이기는 하다. , 내가 어쩌다 이 더러븐 상황에 빠졌나, 정말 뒷골 빡빡 때렸었다.

 

구좌파에 대한 얘기는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에서 한 번 정리를 할 생각이었는데, 그게 여러 가지 이유로 계속 늦어지고 있는 마당에 신좌파 얘기부터 먼저 꺼내는 게 논리적으로도 좀 안 맞고. 정책적인 얘기를 한 번쯤은 정리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기는 했는데, 그것도 시리즈 12권 다 끝나면 할까 말까, 그러는 중이라서 마땅히 손에 들고 있는 카드도 마땅치 않고. 이래저래 아주 더러븐 조건에서, 진짜 머리만 빡빡빡 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 뒤에 있는 2번 타자와 3번 타자들이 내 속도에 맞춰서 작업하겠다고, 하여간 압박 장난 아니었다.

 

, , 돌겠네

 

하여간, 이래저래 얘기 조각들을 맞추고 나니, 3세대 운동론이라는 테제 하나가 정리가 되었고, 시민운동 이후의 아젠다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게 될 것 같다. 박현채 선생의 한국 경제의 전개과정같은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는 작업은 이미 주요한 건 괴물의 탄생에서 한 번 했고, 아무래도 정책 아젠다 중심이 될 모양새다.

 

하여간 그 정도가 전체적인 테제와 그림이 될 거고, 일단 작업 가설로 잡아놓은 제목은

 

신좌파가 만들고 싶은 한국’, 그 정도로.

 

시작은 박현채 선생에서부터 할 생각이다. 몇 년 전에 박현채 전집이 나왔었는데, 사실 아직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이게 준비하는 과정이 있는 건 알고 있었고, 토론회에도 한 번 가서 토론도 했던 것 같은데, 시중에 판매는 안 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이번 기회를 빌어서 나도 박현채 전집을 보면서, 그가 남긴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 하는지, 생각을 한 번 정리하려고 한다.

 

80년대 요란 뻐적지근했던 사구체 논쟁도 다룰 생각이다. 듣기만 해도 머리에 쥐가 빡빡 나려고 하지만, 주사파 논쟁도 한 번 정리하고, 비주사 NL의 정말 오래된 얘기들도 내가 이해하는 대로는 담아보려고 한다. 서울에만 있는 사람은 이런 논의가 뭐 하러 필요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농업 문제 다루다보면 특히 지방에서 아주 오래된 비주사 NL 할아버지들이 사주는 소주도 한 잔 얻어마시게 되는 일이 있기도 하다.

 

주사파들하고 참 싸움도 많이 하고, 맘 상한 일도 많았고, 티격태격. 그래도 내 주변에는 여전히 주사파들도 많고, 참 그 모진 세월들 버티느라 그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지금 와서 새삼 죽이네 살리네, 그럴 것까지야 없을 것 같고. 세월이 사람을 유연하게 하는 건지, 아니면 시대가 또 변한 건지, 이제는 좀 담담하게 주사파 논쟁도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운동권 내부의 논의만 하는 것처럼 가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90년대 동구가 붕괴되면서 생겨난 변화들, IMF 경제위기 과정에서 생겨난 논의들 그리고 2008년 금융 위기에 따른 변화, 이런 세 축에 따라서 좀 살펴볼 생각이다.

 

내용의 대부분은 부문별 논의가 될 것이지만, 운동 흐름상으로 나온 얘기들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가지는 않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포착되는 얘기들만 다룰 예정이다. 어차피 분야별 주요 논의들은 이어지는 다른 사람의 책들에서 충분히 다루게 될 기회가 있을 거라서, 내가 그것까지 하는 건 좀 아닌 듯 싶고.

 

김상조 교수와 장하준 교수에 대한 평도 일부는 넣을 생각인데, 이것도 좀 머리 빡빡 아프다. 전체 논의에서 보는 시각과 운동 내부에서 보는 시각과 또 내가 생각하는 게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아서, 이래저래 복잡하다.

 

하여간 기왕에 기회가 열렸으니 좀 재밌게 해볼 생각인데, 옛날 용어들이 워낙 딱딱하고 국독자 같이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런 요상한 약어들이 많다. 이걸 마치 타임캡슐에서 꺼내는 것처럼 갑자기 2011년이라는 공간에 그대로 풀어놓는 건 별 의미는 없을 것 같고. 어떻게 용어나 말을 풀어보는 게 상식을 가진 대학교 1학년 학생이 알아먹을 수 있는 형태가 될 건가, 사실 진짜 머리 빡빡 때리는 건 그런 문제들이다. 하여간 가능하면 쉽게 정리할 수 있는 데까지는 좀 해보고. 국독자, 조절학파, 사구체, , 생각만 해도 머리가 팍팍해지는 느낌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http://retired.tistory.com/trackback/1148 관련글 쓰기

  1. 가치를 주장하는 빠가들... 삭제

    뭘 어떻게 하더라도 가치라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고 기껏해야 그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전체주의 사회가 아닌 이상 모든 사람이 어떤 가치를 공유해야할 그 어떤 ..

    2012/03/18 17:14 | Tracked from 0100110100011101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1/02/07 10:06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2011/02/07 11:28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흠. 2011/02/07 11:41  Addr  Edit/Del  Reply

    아니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별 효용이 없는거 아닙니까? 자본이 부족함에도 외자 아닌 내자로 경제개발 해야 한다 대기업보단 중소기업을, 도시와 농촌의 균형발전, 중화학공업 추진하면 대한민국 망한다..
    지금생각하면 다 별 대안없는 비판 이었죠. 오히려 한국경제는 그 이후로도 잘 나갔습니다.

  4. 흠. 2011/02/07 12:14  Addr  Edit/Del  Reply

    무엇보다 국가경제가 전세계적으로 상호의존적으로 진행된 현 상황에서 민족경제론은 그야말로 난센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5. ㅍㅎㅎ 2011/02/07 15:41  Addr  Edit/Del  Reply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제대로 읽어봤는지 참 의심스럽군요. 1970-80년대 한국 경제사에도 무지하고 말입니다. 관치금융, 재벌에 대한 특혜와 부정부패, 중화학 공업 과잉 중복 투자에 따른 1979-1980년 경제공황, 세계 4-5위 수준까지 갔던 외채 누적의 문제점, 수도권 과밀 집중화와 환경 파괴 및 도농 격차 확대에 따른 지역 공동체 해체 문제 등 여러 가지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짧은 쪽글로 드러내고서 의기 앙양하다니 참... ㅉㅉ

    • vv 2011/02/07 16:36  Addr  Edit/Del

      자본주의는 완전한 체제가 아닙니다.이 세상에 문제점 없는 자본주의 체제 봤소?님의 말한 문제점은 자본주의가 성장함에 따라 빚어지는 현상이죠. 그래도 그러한 문제점보다 장점이 훨 많았기에 한국경제가 성장한 겁니다. 관치금융이나 재벌특혜 같은 것도 정부주도형 압축성장을 함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죠.그리고 그런 문제점은 경제가 성장하고 국부가 커진 지금 이 시점에서 해소해야할 우리세대의 과제이죠.
      무엇보다도 당시 민족경제론이 소련식 망국론에 집착한 나머지, 당시 한국경제가 좀 있으면 망할 것이라는 식의 주장은 문제가 많았다는 겁니다. 외채만 해도 당시 정부에서는 해외채권자들의 신뢰가 여전하고 여러 지표를 검토해서 외채위기가 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는데도, 계속 재야랑 야권이 외채문제를 제기하가 할 수 없니 85년 외채백서를 만든거지 당시 경제수장이었던 신병헌 총리는 "정작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에게 돈 좀 더 빌려주겠다고 하는데 왜 자꾸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어처구니 없어했죠.외채는 절대액수만 갖고 판단할게 아니라 다른 여러 지표와 경제구조를 보고 판단하는 겁니다. 폴크루그먼의 국제경제론 책에서도 아르헨티나의 경우 gdp 대비 27%였음에도 외채위기가 났다는 말이 나오죠.

  6. ㅍㅎㅎ 2011/02/07 17:33  Addr  Edit/Del  Reply

    민족경제론이 소련식 망국론에 집착했느니, 한국 경제가 좀 있으면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느니 하고 주구장창 '파국론'만을 주창한 것인 양 몰아가는 것도 우습지만, 실제로 1978년 민족경제론이 출간될 무렵은 한국 경제가 공황국면에 진입하던 시점이었습니다. 민족경제론이 출간된 지 불과 1년 뒤에 최근 30여년 이래 관측된 한국 경제사상 2번의 공황 국면 중 첫번째 공황국면인 1979-1980년 공황이 나타났으니까요. 부마항쟁이 유발되어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이 붕괴되었고, 5.18 민중항쟁 때 수많은 시민들이 학살 당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대 격변이 일어날 정도의 공황이었데, 그 쯤 되면 "한국 경제가 곧 망할 것이다"라는 전망은 정말 돗자리 깔고 작두를 타도 될 수준의 예측이 아닐까요?

    또한 1980년대 전반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이 막대한 외채를 갚지 못해 국제 금융시장에서 줄줄이 부도내던 시점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1970년대 무리한 중화학 공업 과잉 중복 투자로 세계 4-5위의 규모를 다투는 외채가 누적된 데다가 1979-1980년 경제 공황의 충격이 생생했던 한국 경제에 우려가 제기될 만도 했지요.

    그럼에도 한국 경제가 중남미 식의 부도를 면하게 된 것은 일본이 금융 지원을 한 덕택이었습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방송 금지 처분한 대신 40억 달러의 차관을 일본에게서 빌려 오고, 1981년 일본계 금융 기관들이 금융지원, 1985년 일본계 은행들이 외채 롤오버 해주고.. 뭐 그런 식이었지요. 1997년 IMF 때처럼 일본계 은행들의 크레딧 라인이 폐쇄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요.

    기타 관치금융이나 재벌특혜 같은 게 정부주도형 압축성장을 함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헛소리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도 없습니다. ^^ 한 번 동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경제사만이라도 살펴 보세요. 관치금융, 재벌특혜가 과연 '자연스런 현상'이었는지. ㅋㅋ

    • vv 2011/02/08 00:52  Addr  Edit/Del

      79-80년에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바로 2차 오일쇼크가 터졌습니다. 오일쇼크라는 외부적 악조건이 있었는데 어떻게 경제가 잘 나갈 수 있습니까? 2008년에 이명박이 아닌 다른 사람이 대통령 되었다면 미국발 금융위기 안맞았을것 같습니까? 중화학공업이 과잉투자가 되버린 것도 2차 오일쇼크로 해외수요가 위축되면서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80년에 마이너스 성장한 것은 예측하지 못했던 박정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정치적 공백상태가 지속된 것도 한 몫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80년에 마이너스 성장한 이후 곧바로 다시 고성장 체제로 나갔다는 겁니다. 20세기 말 개발연대 이후 한국이 마이너스 성장한 것은 딱 두 번이었는데, 이 정도면 개발도상국 치곤 굉장히 순탄하게 고성장한 것이라고 평가받습니다. 당시 박정희식 경제체제가 나름 개도국 치곤 우수한 면이 있었기에 위기를 순식간에 극복하고 고성장 국면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일본의 40억불 차관 때문에 위기를 벗어났다는 것도 과장입니다. 일본의 40억 차관액수가 유입된 것은 84년인데, 이미 그 전해에 연10% 고성장을 했을정도로 당시 한국경제는 회복단계에 있었습니다.재밌는 것은 그당시 정부가 외채위기가 날 가능성 없다고 하면서 40억불 차관을 내세우자, 반정부진영에서 40억불 차관은 우리나라가 짊어지고 있는 외채액수의 10%도 안되는 액수라고 하면서 위기방지에 별효과가 없다고 일축했더랍니다. 그런데 막상 3저 호황터지고 외채가 급속도로 줄어들자, 이번에는 전두환이 잘해서 그런게 아니라 일본이 그때 차관 도와줘서 위기가 꺼진거라고 오히려 역이용하더라구요..

      당시 우리나라가 중남미와 달리 외채위기를 맞지 않았던 것은 1.외환관리법 등으로 외자이탈을 엄격히 통제하고 직접투자의 비율이 무척 낮아서 자본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반면 중남미는 그러지 않았죠)
      2.많은 외채의 부담이 있었지만 , 외국인 채권자의 신뢰와 여전히 빚을 갚을 상환부담능력이 충분히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지표를 함 살펴볼까요? 외채상환지표를 측정하는 지표로 원리금상환 부담률, 즉 SDR이라는 지표가 있는데 이것은 경상외환수입 중에서 원리금상환 부담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합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이 지표가 20%로 개도국 평균인 22%와도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반면에 멕시코 60% 브라질 82% 아르헨티나 150%였습니다. 중남미와 우리나라는 전혀 다른 경제구조였습니다.

      이것말고도 여러 지표가 있는데, 생략하겠습니다. 80년대 경제정책을 담당했던 김재익 수석에 대한 여러사람들이 쓴 추모집에서도 "한국은 60년대 개발연대 이후 외채를 떼먹은 적이 없었고, 이자는 꼬박 갚고 있었기에 해외채권자들의 신뢰는 여전해서 외채위기의 가능성은 없었다"고 분명히 나와있죠.

      당시 외국에서는 한국은 빛은 많이 지지만, 신기하게 빛을 질 수록 빛갚는 능력도 향상되는 괴이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개발연대 이후 한국은 지속적으로 외자를 도입하였지만 그것은 산업투자에 잘 썼고 빛을 꼬박 갚았기에 해외채권자들의 신뢰를 얻었기에, 지속적으로 외자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겁니다. 아무리 냉전의 시절이라지만 정치논리로만 경제가 운용된것은 아닙니다.. 그당시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당시 추진한 중화학공업이 현실에서는 민족경제론의 예측과는 달리 결코 망하지 않았고 계속 성장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그리고 관치금융과 기업특혜가 왜 부자연스러운겁니가? 아니 우리나라보다 관주도 성향이 약한 미국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만 나타난게 아닙니다.

  7. 123 2011/02/08 01:19  Addr  Edit/Del  Reply

    과거의 사구체를 쉽고 현대화된 문제의식으로 설명해주는 방식보단 오늘의 여러 문제를 풀기 위해 과거의 문제의식이 부분적이나마 어떤 의미와 역사성이 있는지가 훨씬 좋은 접근방식 같습니다만...

    사구체니 박현채니하는 것도 이미 90년대부터는 낯선 용어이죠.
    90년대 초반학번들이 사구체에 여전히 목매달았고
    90년대 중반까지 여전히 박현채의 청한사를 읽었다하더라도
    과연 박현채가 사구체가 90년대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쳤느냐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차라리 90년대의 강준만과 21세기의 최장집에게서 무얼 얻고 무얼 덜어야할지 말하는게 신좌파라면 신좌파 같습니다만?

  8. ㅍㅎㅎ 2011/02/08 13:35  Addr  Edit/Del  Reply

    1979년 2차 석유파동 얘기 꺼내드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나왔군요. ^^ 근데 1973년 1차 석유파동이 터진 해에는 12%의 경제 성장율을 올렸던 한국 경제가 왜 1979년 2차 석유파동 국면에서는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며 공황이 닥치게 됐을까요? 똑같이 석유 파동이 터졌는데 언제는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이다가 또 언제는 경제 공황이 닥치게 됐다면, 석유파동만이 유일한 1979-1980년 경제공황의 원인이라고 퉁칠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

    게다가 1970년대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기술력이 낙후된 시기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중화학 공업의 핵심 부품이나 공작기계는 대 일본 수입에 의존한다는 말이 나오는 판인데, 1970년대에는 더 할 나위가 없었죠. 외국돈 빌려다가 일본에서 기계 사서 공장 짓고, 게다가 중화학 공업 기반이 없었으니 노동자들의 숙련도도 높지가 않고.. 그 와중에 1970년대 고정환율제와 달러 금태환제 종언으로 상징되는 세계 경제 불황으로 시장의 불확정성이 더욱 높아졌죠. 1976년 선진국 영국도 국가 부도를 맞아 IMF 구제금융을 신청할 정도로 해외 경제불황이 계속되는 판국이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1979-1980년 현대양행 창원공장(현재 두산중공업)이 가동을 멈추고 창원공단 평균 공장가동률을 50%로 떨어뜨리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1979-1980년 경제 공황에 대해서는 석유파동이라는 외부 요인으로 퉁친다면 똑같은 관점에서 1980년대 중반 한국 경제가 살아난 것은 1980년대 미일 반도체 협정과 플라자 합의, 그리고 저환율, 저금리, 저유가라는 '3저 호황'이란 중요한 외부 요인들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플라자 합의는 정말 중요한 외부 요인이었죠. 일본 엔화의 대 달러 환율을 1달러 당 240엔에서 120엔으로 2배나 평가절상시켜서 한국 제품의 가격이 일본 제품에 비해 미국 시장에서 더욱 저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또한 1973년 딱 한해만 빼놓고 1970년대 내내 한국 물가상승률은 두자리수를 기록했습니다. 경제 공황이 터졌던 1980년의 경우 성장률은 마이너스인데 물가상승률은 무려 28.7%나 되었죠. 그만큼 국민들의 실질 소득은 감소하게 되었구요. 1961년 박정희 군사독재가 시작될 시점과 1979년 끝날 시점 사이의 부동산 가격은 180배로 폭등했구요. 1978년 부동산 가격 상승률은 무려 49%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경제성장률만 높아야 뭐합니까? 땅값 오르지 물가 오르지 사람들 다 죽을 맛인데...

    그리고 우리 나라의 외채 상환 부담이 중남미보다 낮았다고 말하면서도 그 요인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외환 유출입 통제 정도를 들고 있는데, 40억 달러의 대일차관 뿐만 아니라 1981년 일본 금융기관의 지원과 1985년의 채무 만기 연장이야 말로 국가 부도를 막을 수 있었던 요인입니다. 근데 일본 금융기관들이 위기 때 크레딧 라인을 가동한 것에 대해서는 계속 언급이 없네요.

    기타 미국에서 관치금융과 재벌 특혜 현상이 있었다며 '정부 주도형 경제 개발=관치금융+재벌특혜' 식으로 더욱 강변하는 모습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 미국은 1837년 제2차 미합중국 은행 해체 이후 1908년 FRB를 만들때까지 무려 70여년 동안이나 연방 차원의 중앙은행 자체가 없었고, 1860년대 남북전쟁 기 이전까지는 각 주에서 민간은행들이 100여종류의 은행권을 만들어 유통시키며 화폐 발행도 민영화 되었던 나라에요. ^^ 미국이 박정희 정권처럼 5.16 일으켜서 삼성그룹 소유 3개 민간 은행(조흥은행, 상업은행 등)를 포함한 모든 민간은행을 총칼로 몰수하여 국유화 시킨 후 청와대의 명령으로 재벌에 대출 몰아주거나 괘씸죄 걸리면 회수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는 줄 아십니까? 또 미국에 한국처럼 총수 1인이 경공업 중화학공업 서비스업 할 것 없이 모든 산업 분야에 진출한 계열사를 통치하는 문어발 식 재벌이 존재했던가요? 록펠러는 석유사업 하고 카네기는 철강사업 하고 포드는 자동차 사업 하는 식으로 전문 분야에서 최고가 된 대기업이야 나왔지만 문어발식 재벌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2세, 3세로 내려갈수록 경영 세습이 아니라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 위탁하는 소유-경영 분리 현상이 나타났구요. 억지도 좀 알고나 써야지 이건 뭐 대놓고 '나 억지 쓰겠소' 이러다니 참.. ㅋㅋㅋ

    • vv 2011/02/10 01:17  Addr  Edit/Del

      나원참 이것보시오. 제가 언제 80년 위기가 순전히 오일쇼크 때문이라고 퉁쳤오? 당신이 내부적 정책실패탓만 하니깐 불가항력적인 외부적 여건인 오일쇼크를 고려하라고 했지? 게다가 80년 경제위기 원인 중 하나로 박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었다는 것도 말했죠. 기본적으로 저는 어떠한 경제실적이나 위기에 대해선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을 다각도로 분석해서 봐야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니 80년 위기는 불가항력적인 오일쇼크라는 외부적 악조건과 석유소비형 중화학공업의 추진과 내부의 정치적 혼란과 맞물려서 봐야지, 당신처럼 시야를 좁게 보며는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비슷한 예로 2008년 당시 엠비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통령 되었으면 미국발 금융위기 영향 안 맞고 한국경제가 탄탄대로를 걸었을것 같소?


      그리고 73년에 연 12%성장했다고 위기가 없었다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죠. 73년에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뭐하러 걸프,칼텍스,유니온사와 교섭하여 석유비축분을 확보하고, 최규하를 특사로 중동까지파견시켜 자원외교를 펼치고,중동특수를 추진합니까? 이게 바로 통계의 환각이라는건데, 통계만 보고 살피니깐 해석을 못하시는 거요. 70년대 중화학공업을 담당했던 오원철씨가 자기 저서에서 '흔히 경제학자들은 73년 우리나라가 연12% 고성장을 했기에 위기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는데, 단순히 통계만 보고 판단을 내린 것일 뿐 당시의 진행상황을 살펴본다면 결코 그런 말이 나올 수 없다. 민관의 신속한 위기대응책으로 경제위기를 국내적으로 전염시키지 않고 이겨내어 고도성장으로 극복한 것이지, 위기가 없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이죠.

      '경제 못살리면 감방 간대이'라는 책을 펴낸 주태산씨(강준만이가 한국현대사 산책에서 자주 인용하는 책이기도 하죠)도 73년 1차 오일쇼크로 한국경제가 위험에 처했지만 박대통령이 신속하게 위기를 조기에 판단하고 대응책을 핀 것이 위기 극복의 한 요인이었다고 분명히 나와있습니다. 그에 비해 1980년에는 이미 그 전해에 박정희가 죽은 이후 최고 통치자의 리더십 부재와 여러가지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위기에 대응하는 안정적인 경제정책을 펼치지 못했죠. (그러다가 81년 3월에 전두환이 대통령 되고 나서 어느정도 정치적 안정이 잡히자 다시 고성장했습니다.)

      또한 73년은 박정희가 중화학공업을 선포한 원년입니다. 아직은 경제구조가 다량의 석유소비를 필요로 하는 중화학공업으로 79년만큼 적극 재편된 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 설비투자와 관련된 외자도입이 대략적으로 마무리 된 해가 바로 78년입니다. 73년은 79년과 비교해서 산업구조상 석유유발적인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낮았기에, 상대적으로 79년보다 덜 타격을 받은 것도 이유지요.

      70년대 인플레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사실 민족경제론은 이러한 부작용도 지적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외자중심 경제체제를 한국경제의 주요 문제점으로 본 것입니다.
      말나온김에 덧붙이자면, 70년대가 고물가 체제였다는거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저는 그당시 경제가 문제점이 전혀 없는 완벽한 경제구조였다고 주장한 적 없습니다. 그런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장점이 더 컸기에 경제가 계속 성장했고 세계가 극찬하는 한강의 기적을 창출했다는거지. 70년대 인플레에는 적절치 못한 통화관리, 부동산 투기, 빠른 노임 상승, 중동특수로 인한 유동성 조절 실패 등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이 뭔지 압니까? 바로 원유를 비롯한 수입물사의 대폭적인 상승과 중화학공업 추진입니다. 70년대를 괜히 자원인플레이션 시대라고 불렀겠습니까? 70년대에는 심지어 선진국인 미국도 10%가까운 물가상승율를 기록할정도로 전세계 물가상승률이 높았습니다. (비단 70년대만 그런게 아니라 93년~97년까지 연평균 세계물가상승률이 18%에 이를 정도였죠. 세계물가가 5%이내로 진정되기 시작한 것은 98년 이후 부터입니다 .)70년대만 하더라도 경제체제자체가 수요에 비해 공급구조가 제한되어 있었고, 오늘날처럼 세계경제가 개방화 되어있지 않았기에 물가상승폭이 컸던 시점이죠..

      또한 지금 우리를 먹여살리는 중화학공업 추진을 대거 투자하던 시절이 70년대였으니 인플레가 안일어나면 그게 이상하죠. 정부지출을 늘리면서 엄청난 설비투자가 필요하는 중화학공업 추진은 필연적으로 인플레를 불러올 수 밖에 없습니다. 호황의 시대였던 80년대가 지나고 나서 나온 소리중 하나가 "박대통령이 당시 인플레 우려에만 급급해서 중화학공업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과연 있겠는가"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시 인플레가 무조건 바람직한 현상이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플레에만 너무 신경쓰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개발연대 이후 실질소득이 감소한 것은 80년 한번 뿐이지 그 이전 이후에는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전체적으로 오히려 소득증가율은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죠. 물가도 높았지만 소득은 그보다 더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니 70년대에 들어서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지.


      그리고 당시 한국이 외채위기에서 안전했다는 요인으로 단지 자본유출통제장치만 댄 것도 아닌데 글을 자세하게 읽고 답하시는 겁니까? SDR이라는 상환지표 하나(이것말고도 여러가지 다른 지표를 댈 수 있습니다)도 댔고 당시의 한국에 대한 높은 대외신뢰도 근거를 댔죠...

      그리고 자본유출통제장치가 무슨 가소로운 것인줄 아시는데, 그것도 웃기는 소리죠. 동아시아와 중국의 경제성장 요인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국의 시장을 외자의 유출입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 시켰다는 것이고, IMF를 모범적으로 극복했다고 칭송받는 말레이시아도 그당시 외자의 농간을 국가가 신속하게 개입하여 자본유출을 방지시켰기에 가능했다는 소릴 듣습니다. 자본유출입의 변동을 통제하는 것은 한나라의 국가경제의 흥망을 결정짓는 엄청난 요인입니다. 사실 97년 우리나라의 IMF 1순위로 꼽히는 것이 바로 문민정부의 성급한 외환시장 개방 자율화 조치입니다. 93년에 YS가 OECD 조기가입을 위해 선진국 기준을 무리하게 맞추기 위해 외환관리법을 폐지하고 단기금융시장을 개방시켜놓으면서 파국이 난겁니다. 이래도 안중요하다고요? 헛소리좀 그만하세요.


      그리고 40억불 차관에 대해서 추가해서 말씀드린다면, 한일경협차관은 엄밀히 말하면 외채방어용으로 들어온게 아니라, 전두환의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파생된 겁니다. 전두환이가 훗날 스스로 밝혔듯이 82년 해외순방을 위해 비행기서 일본 영공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 일본은 우리나라가 북쪽 공산세력을 대신 지켜주는 바람에 방위비 부담도 덜고 그 돈을 경제개발에 투자해서 잘 살지 않느냐면서 분노가 치미더랩니다. 그래서 당시 노신영에게 한국은 일본의 방위비를 덜어주고 있다는 논리 하에 100억달러의 차관을 달라고 요구한 겁니다. 이게 2년간 질질 끌다가 2년 지나거 84년에 40억으로 축소되어 유입된 것인데.. 이것이 외채위기를 막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과대포장된 것은, 반일감정이 극에 달하던 그 시절에 전두환이가 자신의 대단한 처직으로 크게 떠벌렸고, 야당과 재야에서 외채망국론을 자꾸 제기하자 할 수 없이 최후의 대응카드로 썼기 때문이죠.

      그리고 80년대 일본금융기관의 크레딧라인 언급 없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반박은 이미 앞에서 신병현 총리의 말과 60년대 개발연대 이후 이자 한 번 떼어먹지 않아 신뢰가 높아서 추가적인 외자도입이 가능했다고 말씀드렸죠? 님이 언급한 85 년그 해에 신병헌 씨는 경제부총리였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정작 해외 채권자들은 괜찮다면서 돈을 더 빌려주려고 난리인데 왜 외채위기를 우려하냐고 어이가 없을 정도였죠. 85년에 위기가 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면 뭐하려 채권자들이 괜찮다면서 돈을 꿔주려고 안달합니까?그나라 채권자들은 완전 바본줄 아십니까?

      크레딧은 말 그대로 신뢰입니다. 그당시 일본계 은행들이 돈을 회수하지 않은 것도 다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그런 것입니다. 당시 한국은 80년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 다시 연평균 7%의 고성장을 계속하면서 거시경제가 다시 안정감을 찾고 있었고 3저 호황 이전에도 경상수지 적자폭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60년대 개발연대 이후 외채 한 번 떼어먹지 않았다는 역사적 신뢰감도 작용했었구요. 오죽하면 80년대 경제위기를 구했다는 김재익 수석의 미망인 이순자(영부인 이순자와 동명이인)씨도 김재익 추모집에서 60년대 이후 한국은 여러지표로 보아 절대로 외채위기가 날 가능성은 없었다고 언급했겠습니까?

      경제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제아무리 잘나가는 나라들도 순식간에 경제파탄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채권국들이 자금을 급거이 회수하는데 이를 이겨냔 채무국이 역사상 존재한 적 있었습니까? 그런 개도국이 있긴 했습니까? 97년에 중진국이었던 우리나라가 IMF를 맞은 것도 한보사태 기아사태 금융개혁법 표류 등으로 대외신뢰도를 잃자 자금을 급거이 회수하면서 벌어진 겁니다. 그러나 80년대의 경우 한국이 일시적으로 위기를 맞긴 했지만 빠르게 회복되었기에 경제에 대한 대외신뢰도는 점점 좋아지면서 오히려 채권자들이 돈을 꿔주려고 안달이 났던 겁니다.


      문어발식 재벌이 미국에 없었다는 님의 궤변에 웃음이 나옵니다.그러면서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을 언급하셨군요 참.. 재벌기업을 문어발로 맨처음 표현한게 바로 미국입니다. 당시 1890년대에 미국에서 안티 트러스트 반독점 운동이 벌어졌을때 어느 한 신문사에서 록펠러식 경영을 문어발로 풍자한 만평이 빅히트치면서 유래된 겁니다.

      그리고 90년대 후반 롱텀캐피털이 파산 위기에 나자 빌 클린턴과 그린스펀이 국가경제를 우려해 뉴욕연방은행장을 소집시켜서 거의 반협박조로 저 금융회사를 살리라고 협박한 것 같고, 미국식 관치금융의 부활이 아니냐는 냉소와 비아냥이 많았습니다.

      물론 세부적으로보면 미국식 관치와 한국식 관치는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미국이 관치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소리이고, 우리나라보다 관주도 성향이 약한 미국조차도 그런 식의 조치가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뭐가 어찌되었든 간에 중요한 것은 민족경제론의 예측과 달리 현실에서 한국경제는 중화학공업으로 망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80년대 한국경제는 그 반대로 오히려 승승장구하면 잘 나갔다는 것입니다. 민족경제론의 주장이 다 헛소리였다는 것은 아닙니다.어느 정도 맞는 말도 있었고,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지적한 것도 분명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걸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조야한 측면도 만만치 않게 있었고 문제도 많았습니다.

  9. ㅍㅎㅎ 2011/02/10 15:18  Addr  Edit/Del  Reply

    참 재미있는 분이군요. ^^ 섣부른 지레 짐작과 넘겨 짚기를 하다가 제 풀에 제가 꺾이는 일을 자초하시니 말입니다. ^^

    내가 했던 말은 똑같이 석유 파동이 터졌는데도 1973년은 위기를 넘기고, 1979년-1980년은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면, 석유파동만이 유일한 위기의 요인은 아니지 않느냐,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있는 것 아니냐 라는 것입니다. 말귀를 좀 제대로 알아 들으세요. ^^

    그렇다면 1973년과 1979-1980년의 차이는 무엇이었는가. 그건 당신도 스스로 실토하더군요. ^^ 바로 중화학 공업의 과잉 중복 투자가 1973년과 1979-1980년의 상이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또한 73년은 박정희가 중화학공업을 선포한 원년입니다. 아직은 경제구조가 다량의 석유소비를 필요로 하는 중화학공업으로 79년만큼 적극 재편된 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 설비투자와 관련된 외자도입이 대략적으로 마무리 된 해가 바로 78년입니다. 73년은 79년과 비교해서 산업구조상 석유유발적인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낮았기에, 상대적으로 79년보다 덜 타격을 받은 것도 이유지요."

    또한 당신 역시 1970년대의 중화학 공업 과잉 중복 투자의 문제점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더군요. 그럴 겁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을 터이니까요. ^^ 당신이 지적한 1970년대 중화학 공업 과잉 중복 투자의 문제점에 대한 대목들을 그대로 보여드리죠.

    "70년대 인플레에는 적절치 못한 통화관리, 부동산 투기, 빠른 노임 상승, 중동특수로 인한 유동성 조절 실패 등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이 뭔지 압니까? 바로 원유를 비롯한 수입물사의 대폭적인 상승과 중화학공업 추진입니다"

    "정부지출을 늘리면서 엄청난 설비투자가 필요하는 중화학공업 추진은 필연적으로 인플레를 불러올 수 밖에 없습니다"

    요컨대 당신도 중화학 공업의 과잉 중복 투자가 1979-1980년 공황과 1970년대 인플레이션의 요인이라는 걸 인정한 겁니다. 근데 공황으로 장사는 하나도 안 되면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면 사람들이 편히 살 수가 있겠습니까?

    원래 인플레이션은 경제 호황 국면이 과열이 될 때 나타나고, 경제 공황 국면에는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나타나는 법인데, 당신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박정희는 경제는 경제대로 말아먹으면서 물가는 또 물가대로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든 거에요. ^^ 이게 당신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실토한 박정희의 본 모습인 겁니다. 아시겠어요? ^^

    그리고 박정희 유신 독재 체제에 대해서 공부 좀 더 했으면 합니다. 우리 나라 수구 꼴통들의 꼴불견 중 하나가 자신들이 박정희를 찬양하는 건 한 마디로 소련 스탈린이나 북한 김일성을 찬양하는 것과 논리적으로 다를 바 없는 짓이라는 걸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는 거에요. ^^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는 한 마디로 말해서 소련이나 북한이 밀어붙였던 스탈린주의 모델과 유사합니다. 일당 독재 국가가 은행 국유화를 통해 모든 자본을 중화학 공업 투자에 집중시키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 실제 박정희 유신독재와 소련, 북한의 공산당 1당 독재는 정치 경제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이 드러나는 시스템입니다.

    소련 북한 남한
    (1930년대 중후반-50년대) (1970년대 중후반) (유신독재 시대)
    헌법 스탈린 헌법 주석제 사회주의헌법 유신헌법
    (1972년 12월 27일 발표) (1972년 12월 27일 공표)
    독재자 스탈린 김일성 박정희
    독재정당 공산당 로동당 공화당
    권력창출 요식적 체육관선거 요식적 체육관선거 요식적 체육관선거
    은행소유 국영 국영 국영(1961.5.16 때 민간 은행 몰수&국영화)
    경제운용방식 5개년 계획 7개년 계획 5개년 계획
    경제사령탑 Gosplan(국가경제위원회) 국가경제위원회 경제기획원
    경제기조 중화학공업 투자집중 중화학공업 투자집중 중화학공업 투자집중

    그렇다면 왜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는 스탈린주의 모델을 방불케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바로 박정희를 비롯하여 1940년대 만주국에서 친일 괴뢰 만주군, 관동군이나 만주국 관료로 복무하며 스탈린주의를 참조한 일본 군벌들의 관치재벌경제 시스템을 체화한 인사들이 1970년대 유신독재 체제 때 한국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바야시 히데오의 <만철 - 일본제국의 싱크탱크>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만주국의 관치재벌시스템이 박정희 개발독재의 원형 마련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잘 지적하고 있지요.

    실제로 1940년대 만주국을 통치하던 일본 관동군과 만철은 '만철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리는, 일단의 좌파 그룹을 유치하여 소련 스탈린주의 모델을 본뜬 경제 모델을 운용합니다. 국가가 경제 계획을 통해 금융과 자원을 중화학 공업 투자에 집중하면서 특정 재벌을 키워주는 모델인데요. 박정희가 현대, 삼성을 키워주듯 관동군과 만철은 일본 닛산 그룹에게 중화학공업을 맡기며 투자를 집중시키는 경제 계획을 밀고 나갔지요. 그걸 현장에서 진두지휘했던 관료가 바로 2차대전 A급 전범 리스트에 이름 올렸다가 1957-1960년 일본 총리로 재직하고, 동생 사토 에이스쿠, 외손자 아베 신조 모두가 총리를 역임하게 하는 등 자기 집안을 자민당 1당 통치 하 정치 명문가로 만든 기시 노부스케였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김종필이 1964-1965년 굴욕적인 대일 청구권 협상과 한일 수교를 할 때 뒤를 봐준 것도 바로 기시였구요.

    1940년대 일본 관료들은 스탈린주의 모델을 본뜬 국가 주도 경제모델을 만들면서 '민유 관영'이라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보면 기절 초풍할 소유제까지 제기합니다. 쉽게 말해서 기업의 소유권은 민간에 두더라도 경영권은 국가 계획에 부합하게 정부가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제도화 하자는 것인데요. 오늘날 한국의 은행들이 비록 민간이 소유한다고 할 지라도, 실제 경영은 기획재정부 '모피아'들이 농단하는 현실 역시 어떻게 보면 일종의 '민유 관영'이라고 하겠습니다.

    자, 그렇게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는 스탈린주의 모델을 본뜬 독재 정권 주도의 중화학 공업 과잉 중복 투자 시스템이었던 것입니다. 근데 소련이나 북한의 운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런 시스템의 특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경제가 폭삭 망한다는 거지요. ^^ 소련도 1930-1950년대까지는 경제가 잘 나가다가 1960년대부터 침체하더니 1970-80년대가 되면 망하게 됩니다. 북한도 1950-1970년대까지는 잘 나가다가 1980년대부터 망하기 시작했지요. ^^ 박정희 유신독재 역시 1970년대 후반이 되면 1979-1980년 경제공황이 닥치면서 폭삭 무너지게 됩니다. ^^

    그렇다면 왜 스탈린주의 모델과 같은 독재 정권 주도의 중화학 공업 과잉 중복 투자 시스템이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 나중에는 망하느냐? 폴 크루그먼이 1997년 아시아 경제 위기 때 지적했다시피 스탈린주의 모델과 같은 독재 정권 주도의 중화학 공업 과잉 중복 투자 시스템은, 한 마디로 요소 투입형 경제 개발 시스템이라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거에요. 난로에다가 장작을 한꺼번에 잔뜩 집어 넣어서 불을 활활 때는 그런 시스템이라는 겁니다.

    이런 시스템은 처음에는 높은 투자율로 그런대로 성장률을 높게 유지합니다. 당연하지요. 난로에 장작을 잔뜩 집어 넣으면 처음에는 불도 잘 붙고 온도도 잘 높아지는 것처럼, 돈을 많이 몰아주고 풀어 대면 당장은 성장률 자체야 높게 올라가니까요. 2009년 이명박 정권이 마이너스 성장은 막겠답시고 국가 부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든 말든 수백조원의 돈을 마구 풀고 기준 금리를 2%로 낮춰서 0.2% 성장을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

    근데 나중에 가면 아무리 자본 투자를 집중시켜도 성장률이 높아질 수가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거에요. 아무리 난로에 장작을 많이 집어 넣어도 난로가 낡고 고물이면 난방이 잘 되지 않습니다. 난방이 더 잘되도록 하려면 기름 보일러와 같이 더 성능 좋은 보일러로 갈고, 집어 넣는 연료 역시 나무가 아니라 석유로 바꾸는 식으로,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가능하지요.

    자본 투자가 늘어나다보면 경제 성장률에서 자본 생산성이 기여하는 몫이 떨어지고, 대신 노동 생산성이 제고되어야만 하는 국면이 도래합니다. 그리고 노동 생산성 제고의 초석은 바로 기술 혁신과 경영 합리화에요. 근데 스탈린주의 모델은 북한의 '천리마 운동'처럼 당장 삽질 한번 더하고 1시간 더 일하게 만드는 식의, 양적 요소 투입은 잘 하지만, 기술 혁신과 경영 합리화에는 참으로 비효율적입니다. 그럴 수밖에요. 관료들이 독재자를 앞세우고 호가호위하면서 비효율적인 투자를 마구 밀어붙이고, 개인의 창의성 발현을 가로막는 그런 시스템에서 기술 혁신과 경영 합리화가 제대로 이뤄지겠습니까?

    바로 이런 스탈린주의 모델, 만주국의 관치재벌모델이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의 원형인 것입니다.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 역시 1970년대 후반이 되면 아무리 장작을 집어 넣어도 온도가 올라가지 않고 난방이 잘 되지 않는 낡은 난로처럼 체제 내부의 모순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한 거죠. 기술 혁신과 경영 합리화의 기반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에서 성급하게 빚을 마구 빌려다가 그 돈 고스란히 일본에서 기계 사는 데 써 버리고, 아직 숙련도도 높지 않은 노동자들 억지로 장시간 노동 시켜 겨우 만든 제품을 국제 시장에 내놔 봤더니 불황으로 팔리지도 않고.. 그러면서 창원 중화학 공업단지 공장 가동률이 50%로 떨어지고 현대양행이 "세계 최대의 창고"로 전락하는 지경에 이르고.. 이게 1979-1980년 경제공황의 '쌩얼'인 거에요.

    물론 스탈린주의 모델의 '샴쌍둥이'인 유신독재 체제의 내적 모순 못지 않게 제2차 석유파동 같은 외부 요인 역시 박정희 정권 몰락의 요소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소련과 북한의 붕괴를 오로지 외부 요인 탓만 할 수 없는 것처럼, 박정희 정권 몰락의 요인을 제2차 석유파동만으로 돌릴 수는 없는 것이죠. 근본적으로 스탈린주의 모델을 본뜬 유신독재 시스템 그 자체가 위기의 원인인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경제론에 대한 이해가 참으로 빈곤하군요.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단순히 외자 중심 경제체제를 한국 경제의 주요 문제로 본 것이라고 일갈하다니. ㅋㅋ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근본적으로 소련, 북한의 스탈린주의 모델을 방불케 하는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를 비판하면서 리버럴 혹은 사회민주주의적 대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 점에서 박정희 유신독재보다 차라리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 훨씬 더 시장친화적인 측면마저 있어요. 그런데도 유신독재를 예찬하겠다는 건, 본질적으로 "스탈린이 있었기에 소련 경제가 발전했다"와 다를 바 없는 논리입니다. ^^

    1980년대 일본 은행들의 크레딧 라인 가동에 대해서 언급이 없었다는 비판에 대해 앞에서 했던 말 갖고 반박했다는 따위로 은근히 구렁이 담 넘어가려 하고 있는데요. ^^ 특히 "크레딧은 말 그대로 신뢰입니다"라는 말에서 빵 터졌습니다. ^^ 금융권에서 '크레딧 라인'을 가동한다는 게 뭘 뜻하는지 아십니까? 그걸 알면 '크레딧 라인' 가동의 의미에 대해 은근슬쩍 넘어가지는 못할 터인데 말입니다. ^^

    그리고 미국 경제사에 대해서는 참으로 무지하시군요. ^^ 미국이 한국처럼 경제 개발을 하던 개발도상국 시점에서 한국 삼성처럼 반도체 만들던 회사가 자동차 시장에 뛰어 들어 반도체로 번 돈 자동차에서 입은 손해 돌려막기에 끌어다 쓰는 식으로 온갖 산업 분야에 문어발처럼 진출하는 그런 재벌이 있었습니까? 롯데처럼 '통큰치킨'이니 뭐니 해서 동네 치킨집 자영업자들이 하는 장사까지 떠맡겠다는 식으로 온갖 군데 다 끼어드는 그런 재벌이 있었나요? 또 삼성처럼 산업 재벌이 금융업을 지배하려고 보험사와 증권사를 총수의 사금고처럼 만들고 은행 인수를 집요하게 노리는 그런 재벌이 있었습니까? ^^ 무능한 아들, 손자에게 경영권을 세습하기 위해 탈세를 밥먹듯이 하는 그런 재벌이 있었습니까?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어/디/까/지/나 석유 산업을 했지 갑작스레 '통큰치킨'을 만든다느니, 자동차를 한다느니 하는 식으로 이 업종 저 업종 가릴 것 없이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설령 다른 산업에 진출한다고 해도 주 업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분야로 진출하지 아무 상관도 없는 분야에 뛰어 들었다가 개털되는 그런 짓은 함부로 하지 않죠. 또한 미국에서는 산업 자본이 금융 자본을 지배하려고 넘보는 식으로 금산분리가 무너진 적도 없었습니다. 누차 말하지만 2세, 3세로 넘어갈수록 경영권은 전문 경영인에게 넘기고 기업 실적만 신경 쓰는 식으로 소유/경영 분리가 이뤄졌구요.

    게다가 미국도 관치 금융을 했다면서 기껏 1998년 LTCM 사태 때 클린턴 행정부의 조치라는 하나의 사례를 드는데요. ^^ 1970년대 한국의 관치 금융과 전혀 다른 사례인데다가, 미국이 전 세계 금융을 주름잡는 선진국이 된 지 수십년도 훨씬 넘는 시점의 일이라는 점에서, 도대체 비교 자체가 안 되는 걸 끌고 오다니 무리수도 이런 무리수가 없네요. ^^

    LTCM 사태 때 미국 재무부와 FRB가 움직인 것은 어/디/까/지/나 파생 상품에 마구 손대다가 부실 채권으로 파산할 위기에 몰린 금융기관에 구제 금융을 지원한 겁니다. 1970년대 한국 재무부 관료들처럼 있는 돈 없는 돈 할 것 없이 무리하게 중화학공업 재벌 기업에 대출을 지시하는 식으로, 산업 재벌에 직접적으로 은행 돈을 퍼주기 하는 식의 그런 관치 금융과는 성격이 달라도 한참 달라요.

    금융 위기 때는 중앙은행이 위기에 몰린 시중은행이나 금융기관의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가 지급보증으로 신용도를 유지시키기도 하구요. 그건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제 위기 국면 때 통상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임무입니다. 근데 그것까지 '관치금융'이라 강변한다면, 세상에 관치금융이 아닌 나라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

    그런데도 기껏 LTCM 사태 때 미국 재무부와 FRB의 움직임을 들면서 미국이 경제개발기에 1970년대 스탈린주의 모델을 방불케 하는 한국 유신독재 체제처럼 대통령의 명령을 받들어 청와대와 재무부가 국영은행을 조종해서 중화학공업 재벌 기업에 투자를 집중시키는 따위의 관치 금융을 했다느니 하는 식으로 나올 수가 있는 겁니까? ^^ 어떻게 경제 위기국면이든 아니든 일상적으로 정부가 국영은행 조종해서 산업재벌에 돈을 '퍼주기'한 1970년대 한국의 관치금융과, 금융위기 국면에 접어들어서 정부와 중앙은행의 '최종 대부자' 역할을 수행한 것에 불과한 1998년 미국의 LTCM 사례를, 본질적으로 똑같은 관치금융이라고 강변을 하죠? ㅋㅋㅋ

    오히려 미국이 1970년대 한국과 같이 막 경제 성장을 통해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던 19세기 중후반-20세기 초반의 한 사례를 보면, 미국이 얼마나 관치금융과 거리가 멀었는가, 관치금융없이 경제발전을 했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1907년 일이었습니다. 그 때 미국에서 대규모 금융공황이 발생했죠. 이해 들어 9개월 동안 자그마치 8,000여 개의 기업이 쓰러지고, 주가는 대폭락하였습니다. 근데 미국 연방 정부는 어떻게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 연방 차원의 중앙은행이 없었거든요.

    이 때 다행히도 미국 금융계의 대부로 '월가의 암장군'이라 불렸던 J.P. 모건이 나섭니다. 일개 민간 금융업자가 다른 금융업자들을 설득시켜서 투신사와 영세 은행에 담보 제공을 조건으로 대형 은행의 대출을 지시하고, 뉴욕증권거래소에 연리 10% 대출로 자금을 지원하는 식으로 혼자 중앙은행장 노릇을 수행했거든요.

    이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지만,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한국의 1970년대에 비견할 수 있는 미국의 경제 개발 시점에서, 미국 금융은 철저히 민간 위주로 움직였습니다. 연방 차원의 중앙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경제 공황 시점에서 중앙은행 역할을 민간 금융업자가 수행하는 일까지 벌어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도 관치금융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모습을 보니 참 미국 경제사에 대해 무지해도 이렇게 무지할 수가 없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