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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다시 만년필을 꺼내 쓰기 시작했고, 오늘은 노트를 샀다. 노트는 많이 있었는데, 아내가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 아직 몇 개 남아있기는 할텐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결국 새로 샀다.

 

살면서 공부를 내가 언제 했더라? 잠시 생각을 해봤다.

 

중학교 3학년 때 공부를 좀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무슨 평가시험 같은 것을 봤는데, 전국 석차로 28등인가 나왔던 것 같다. 3 때 공부 조금 하고, 다시 공부를 한 건 대학교 2학년 1학기 때였다.

 

사실 난 경제학이 뭔지도 모르고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냥 점수 맞춰 아무 데나 갔다. 서울대 국문과 정도 갈 생각이었는데, 딱 공부도 그만큼만 했다. 근데 등록금 내줄 아버지랑 식구들이랑 국문학이나 역사학 같은 것은 안 된다고 생지랄들이시다. 정 그럴 거면 육사 가라, 아니면 공사라도. 내가 모아둔 돈도 없고, 세상을 진짜 안이하게 살았다는 작은 속상함 (그 때 술 처먹기 시작한 게 아직까지도 술을..)

 

방법 없어서 그냥 아무 데나 점수 맞춰 갔다. 어차피 재수할 거면 연대 경제학과나 고대 법대 가라고. 내 인생에 마지막으로 아버지 애기를 따른 순간이었다 (그 후로, 아버지 얘기는 들은 적도 없고, 같이 살기도 싫었다. 결국 대학교 3학년 올라가면서 집을 나왔다.)

 

고대는 집에서 너무 멀었다. 세상 끝까지 가는 것 같았다. 서울대 적당한 데 내고 재수할까 싶었는데, 여기도 대충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래서 집에서 제일 가까운 연대에 갔고, 거기서 제일 점수가 높다는 경제학과에 갔다.

 

고등학교 선배가 아주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공부는 겁나 잘 했다. 나중에 cpa랑 행정고시랑 그런 거 몇 개를 붙었다 (그렇다고 좋은 인생 사는 걸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양반이 서울대 경영학과에 갔다. 그래서 경영학이 뭔지는 좀 알았는데, 경제학이 뭔지는 정말.. 이게 뭐야? 이걸 왜 해? (그래서 지금도 청소년을 위한 경제학 책, 이런 거 부탁 오면 청소년이 무슨 경제학이냐.. 그러고 안 쓴다. 나도 그런 거 안 봤다. 심지어 나는 경제학이 뭐였는지도 몰랐으니까..)

 

대학교 1학년 때는 그냥 술만 마셨다. 그나마도 5월에 교통사고가 나서,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그 때 나에게 공부 좀 하라고 이것저것 챙겨준 누님이 두 분 계셨다. 한 분은 나중에 공부해서 지금은 경기연구원에.. 내가 세상에서 본 사람 중에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누님이다. 내 인성은 물론 경제학의 성격은 거의 다 누님의 인성에서 배운 것 같다. 자주 보지는 않지만 여전히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그리고 그만큼 존경했던 누님이 나중에 대장금의 작가가 된 김영현, 늘 웃었다. 그리고 인상 좀 쓰지 말라고.. 책은 잠깐만 읽고, 술만 마셨다.

 

대학교 1학년 겨울, 삭발을 했다. 술 먹고 일어난 아침,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내 손으로 머리를 밀었다. 뭐 이것저것 속상할 일이 겹쳐서 벌어지기는 했는데, 총체적으로, 이렇게 사는 건 좀 아닌 듯 싶었다. 그리고 강릉으로 갔다. 여인숙에서 하루를 자고, 동해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아주 예전의 7번 국도.. 속초까지 걸어가서, 거기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며칠간 우셨다. 삭발을 한 후, 나를 건드리는 사람은 집안에서 아무도 없었다. 나를 키워주신 외할머니 외에는 친척은 아무도 안 만났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친척은 아무도 안 만난다. 그렇게 살았다.

 

학교로 돌아와서 학교 매점에서 바인딩 노트를 비롯해서 노트 열 권 정도를 산 것 같다. 그리고 비싼 건 아니지만 만년필 세 자루와 형광펜 두 자루를 샀다. 그리고 어머니한테 책 살 돈 달라고 했다. 그 시절에는 복사본이라서 원서가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다. 선형대수 등 수학책을 포함해서 원서 교과서 30권 정도를 산 것 같다.

 

그렇게 대학교 2학년 1학기가 시작되었다. 그 때 내 생각은, 경제학과를 계속 다닐지 말지는 잘 모르겠는데, 경제학이 뭔지는 알고나 그만두어야겠다는. 한 학기 다녀보고 경제학 재미 없으면 그만 둘 생각이었다. 그래도 뭔지는 알고나 그만두는 게 맞을 것 같은.

 

그 한 학기가 끝나갈 때쯤 한열이가 죽었다. 그래서 나의 공부도 그걸로 쫑. 다시 술 먹고 놀기 시작했다.

 

대학을 통틀어서 진짜로 공부한 건 그 한 학기였던 것 같다. 나중에 보니까 경제학이 의외로 간단한 거였다. 한 학기가 공부 했는데, 대학원 시험 보는 데 아무 문제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경제학 대학원 시험이라는 게, 전세계적으로, 뻔하다. 심지어 박사 코스웍 때 게임이론 추가적으로 공부한 거, 나중에 미분방정식 공부한 거, 이 정도를 빼면 대학교 2학년 1학기 때 공부한 걸로 박사 졸업할 때까지 특별히 뭐가 더 어려운 거는 없었다. 문과 수준보다는 조금 어려운 수학이 나오기는 하는데, 그거야 하면 되는 거고. 선형대수 보고, 집합론 보고, 토폴로지 조금 더 공부하면, 경제학과 박사 코스웍까지는 약간의 미분방정식 말고는 더 어려운 거는 안 나온다.

 

어떻게 보면 2학년 1학기 때 몇 달 공부하고, 결국 그걸로 박사 코스웍까지는 무난하게. 심지어 나는 박사 과정에 1등으로 들어가서 코스웍 시험까지는 1등이었다. 심지어 처음 유학 가서 치룬 석사 입학 시험과 석사 1학기 시험 몇 개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과목이 1등이었다. (프랑스는 시험 보고 나면 점수를 다 과사무실 앞에 붙여서 공개한다.)

 

자본론은 2학년 2학기 때 도서관에서 읽었다. <국부론>은 유학 가서 읽었는데, 하여간 그 시절 나온 책은 다 읽은 것 같다. 그렇지만 솔직히, 그건 공부라기 보다는 독서에 가까웠다.

 

노트를 다시 산 건, <촌놈들의 제국주의> 준비를 시작하면서 산 것 같다. 지금 쓰는 크로스 아포제 만년필이 그 때 산 거다. 좀 쓰다 잃어버릴 줄 알았는데, 어캐어캐 아직도 내 몸에 붙어있다.

 

<불황 10> 때부터 노트를 안 쓴 것 같다. 큰 애 태어난 시기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시기가 대충 비슷하다. 하여간 노트고 뭐고, 죽지 못해 사는 시기였던 것 같다. 나도 내가 뭐하는 줄 모르고 대충 산 시기이고. 노트만 안 쓴 게 아니라, 가방도 안 썼다. 방송하면서 가방을 쓰기는 했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방송할 때 합숙갈 때 외에는 빈손으로 다녔다. 당연히 노트도 쓸 수가 없었고.

 

물론 그 시기에도 노트를 아예 안 쓴 건 아니다. 인터뷰할 때에는 노트를 쓴다. 그리고 라미 만년필을 썼다.

 

<당인리>를 준비하면서 만년필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노트를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보령이라는 도시가 끼어들면서 도저히 내 머리만으로 정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당인리>2년 정도 준비한 거라서, 기본적인 얼개는 물론이고 자료 준비까지 다 끝났다고 생각을 했다. 요이 땅..

 

그런데 뭔가 잘 안 된다. 전사로 설계해놓은 것을, 동료들은 그걸 뒤에서 흩어서 보여주지 말고 그냥 셋업에서 사용하자는 거다. 고래에?

 

보령이라는 도시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는데, 보령이라.. 이건 또 뭐지? 에 또, 에 또..

 

2016년 봄, 둘째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내가 하던 일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리를 할지, 아내에게 그냥 피박쓰라고 하던지.

 

그 때 애들 다 데리고 아내와 보령의 한화콘도에 며칠 갔다. 그래서 보령에 여행을 간 적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 때는 내가 머리가 복잡해서, 바닷가 풍경 잠깐 본 거, 재래시장에서 물고기 산 거, 그런 작은 풍경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

 

태안과 당진은 좀 안다. 서산도 좀 알고. 그런 데 얘기로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바뀌면서 보령이 그 자리를 차고 들어왔다.

 

머리가 혼돈스럽다는 표현을 쓴다. 살면서 머리가 혼돈스럽다는 생각을 한 적은 별로 없다. 난 언제나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었고, 설령 방향이 크게 바뀌더라도 뭘 준비하거나 아니면 그냥 기다리거나, 어쨌든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설사 뭘 해야할지 모르더라도, “그냥 버틴다혹은 기다린다아니면 움직인다”, 이런 최소한의 원칙이나 기준을 늘 정해놓고 있었다. 머리가 혼돈스러운 경험은 별로 없다.

 

내가 진짜로 혼돈스러웠던 순간, 그건 대학교 1학년 2학기 끝나고 삭발을 하기까지의 그 며칠 간이었다. 유학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며칠 생각해서 간다, 안 간다, 원칙을 정하고 학위 받을 때까지, 지지리 고생은 했지만 혼돈스러운 적은 없었다. 시간강사하던 시절도 그랬다. , 이건 아닌 것 같다, 취직을 해야겠다.. 그래서 제일 먼저 갈 수 있는 곳에 갔다. 물론 괴로운 시간들도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혼돈스럽지는 않았다.

 

보령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접하고, 잠시 혼돈스러워졌다. 2년 전에 내가 설계를 잘 못 했다는 건데.. 된장. 그래, 나도 이제 50이다. 이제 더 이상 내 머리도 노트 50개쯤은 머리 속에서 동시에 기록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상태가 아니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노트를 사러 갔다.

 

평생 노트를 샀다.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된 것도, 모닝 글로리를 가지고 썼던 짧은 꽁트였다. 이화여고 얘기를, 이화고녀로 뒤틀어서 모닝 글로리의 창업 스토리를 짧게 쓴 글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그 때 나가 천재인 줄 잘못 알았던.. (지내보니까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절절하게 알게 된. 그 정도가 아니라, 이런 병신이 세상 천지에 또 어딨냐 싶은.. 아내도 살아야겠다, 일단 돈부터 몰수!)

 

그래도 노트를 사는 순간이면, 삭발하고 대학교 매점에서 노트를 고르던 그 열아홉 살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난 그 때 경제학이 뭔지도 몰랐고, 이걸로 평생을 살아갈지도 몰랐다. 마르크스, 아담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살아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멀고 먼 길을 돌아서, 다시 노트 앞에 선다. 새로 산 노트 앞에 맨 처음 쓸 글자는 보령이다.

 

그리고 맨 처음 생각나는 장면은, 박경리 선생이다. 이 양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원주 사람들 잔디밭에 모아 놓고 대화 비슷한 강연을 한 게 방송으로 남아있다. 겁나게 재밌고, 느껴지는 것도 많은 방송이다. 토지 문학관에 가서 좀 지내도 된다고 했는데, 나는 회의만 하러 갔다.

 

일산에서 인공폭포를 지나 광화문까지 오는 버스 안에서 벌어진 얘기는,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히다. 얘기는 통영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 통영 얘기는 좀 실망이었다. 통영을 러시아 대문호들 얘기를 섞어서 문장과 문체에 대한 얘기를 하시는데, 그 얘기를 저렇게 어렵게 밖에 못하실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죽기 전에 혹시라도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해야 한다면 저렇게 어렵게 얘기하지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리고 어렵지 말고.

 

노트를 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프지 말고, 어렵지 말고..

 

초등학교 3학년이면 알아먹을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싶다. 난 내가 얼마나 많이 알고, 얼마나 복잡한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렵지 말고, 그건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래서 다시 노트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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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에 조명래 선생이랑 서울시에서 하는 행사에 같이 참석한 적이 있었다.) 환경부 장관이 조명래 선생이다. 알고 지낸지도 오래 되었다. 대부분은 같은 편 먹고 논쟁을 했었는데, 노무현 때 기업도시 논쟁할 때에는 반대편에도 섰었다. 맞은 편에서 부딪히니까, 좀 어색하기도. 공적인 자리 말고도 사적으로도 좀 안다. 워낙 오래된 사이.

환경부에서 나온 미세먼지 대책 보고 좀 얼척이 없었다. 뭐, 거기만 얼척 없는 건 아니다. 요즘 청와대에서 나오는 자료들, 대부분 얼척 없다.

환경부에서 미세먼지에 대해서 오죽 잘 알겠느냐, 장관도 환경 전문가다, 이런 택도 아닌 얘기를 하면서 나한테 막 뭐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환경성 질환과가 환경부랑 나랑 논쟁하면서 생겨났고, 미세먼지 개념도 그런 논쟁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환경성 질환이라는 개념은 2004년 민주노동당 총선 공약으로 처음 제시된 개념이고.

내가 미세먼지에 대한 책으로 데뷔를 했다. 2005년.. 피엠텐 정도로 부르던 시절이었다. 지금 정부에서 사용하는 많은 개념과 틀이 그 시절에 책 나오고 논쟁하면서 정립된 게 많다.

조명래 선생이랑 친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환경부 장관이라고 해서 환경 전문가라고 하는 건 좀 그렇다. 게다가 미세먼지 전문가니 얼마나 잘 알겠느냐.. 이건 좀 황당.

수소차 예산이 미세먼지 예산으로 잔뜩 들어가 있고, 주 감축 수단이 수소차라고 해서 내가 환경부 대책을 뭐라고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위에서 그냥 꽂아넣은 거라서, 장관이라고 어떻게 손댈 수 있는 범주는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설계 자체가 잘 못 되어 있다.

왜 이렇게 허당으로 정책이 수립되었는지, 필요하면 누구, 누구, 누구, 요렇게 잘못한 것이다, 알려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냥 입다물 생각이다. 애 보면서 감당하기에는 논쟁 스케일이 너무 커진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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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과 학부를 졸업했고, 공식적으로는 내내 경제학과 내에서만 학위를 받았다. 당연 경제사를 많이 들었고, 경제사가 붕괴하는 상황 아니었으면 경제사를 전공했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이제는 한국의 경제사 연구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 주경철 선배랑 같이 공부를 했던.. 몇 년간 커피 마시고, 떠들고, 또 술도 진창 마신.

 

그런데도 상속세에 관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안 배운 게 아니라, 안 가르쳐준 거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상속제도에 대해서 생각보다 깊은 연구가 없다. 외국은 알고, 우리는 모르고?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상속제도에 대해서 처음으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빨간 머리 앤> 때문이다. 앤은 입양아다. 그리고 여성이다. 앤의 양부모들은 앤에게 재산을 상속할 방법이 없었다. 그 대신 앤에게 공부를 시킨다. 이게 뭐야?

 

여기에는 여성의 재산권이라는 문제와 함께 여성도 교육을 시켜야한다는 스코틀랜드의 특이한 전통 같은 것들이 개입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이 때쯤 <오만과 편견>을 정말로 진지하게 읽게 된다. 된장.. 내가 까막눈이었구나. 소설 <오만과 편견>은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론>과 함께, 여성들의 경제활동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룬 거의 유일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

 

마침 또 bbc에서 만든 <오만과 편견> 드라마가 있었다 (얼마전 한정폰 블루레이가 나왔다. 아내가 샀다.) 달시가 물에 뛰어드는 순간, bbc 아니 영국 최고 시청률을 찍어다는 바로 그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장소는 여전히 관광객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는. 그 사진을 영국 얘기에 정통한 중앙일보 기자 한 분에게 기념으로 받은 적이..)

 

인류학에서 근대 유럽의 역사를 차남과 여성의 역사로 얘기하기도 한다. 차남들의 세계는 셜록홈즈에 보면 종종 나온다 (<88만원 세대>에서 이 얘기를 인용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는 반성했다. 아, 내가 아는 게 없구나..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사실 저 경제사 공부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들어앉아서 이 문제를 파기에는, 난 형편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생활인일 뿐이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여성과 은행 거래, 송금의 역사, 뭐 이런 회계의 역사와는 약간 곁박으로 들어가는 또 다른 여성들의 경제사 같은 게 있다. 있다는 것 혹은 있을 수 있다는 것만 알고, 나도 손도 못대고 있다.

 

내가 손도 못 대는 주제가 어디 한두 개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사실 보기는 봐야 하는데, 나는 요즘 소형 디젤 발전기 뒤지는 중이라, 여전히 손도 못대고 있는.

 

백승종의 <상속의 역사>는 이런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출발지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궁금한 게 다 풀리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 수준이 현재, 그렇다는 것을 확인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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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은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까 뭘 안 한다고 하는 일이 내 일 중에서 제일 크고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조그만 경제방송을 준비하는 게 있는데, 자문은 해줄 수 있지만, 진행은 못 하네요.. "네, 당연히 안 하지요." 몇 년 전 같으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네 고맙습니다, 그러고 했을 것 같다. 그 몇 년 사이에 나도 참 많이 변했다.

책은 요즘 인기도 없고, 사회과학은 비주류에서 더 비주류로 내려 앉았다. 당연히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제 뉴스 거리도 아니고. 공보식 논리로 하면, 뉴스 밸류가 없다. 아예 없고, 전혀 없다.

좀 화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게 갑갑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원래도 비주류의 비주류. 비주류로 살아가는 게 전혀 이상하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다 (그래도 술은 많이 줄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당당한 주류.. 왜 이러고 사는지 몰라.)

공부라는 게, 화려한 거 좋아하는 성격의 사람들은 하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씨 뿌리고, 김 매기까지 하는, 그런 노가다성 농사일과 공부가 비슷하다. 추수의 보람은 있지 않느냐? 추수절이 다가오면 누군가 차떼기로 도리를 쳐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누군가의 입에는 들어가지 않았겠어, 이렇게 농사 노가다 일을 보람으로 생각하는 성격, 그렇지 않으면 공부는 하기가 어렵다.

철학은 그래도 때로 폼이라도 좀 나지, 사회과학은 그렇게 폼 나는 일도 별로 없다 (서울대 김상환 선생이 박사과정 들어갈 때 철학과로 안 가고 그냥 경제학과로 갔다고, 니가 그럴 수 있느냐고 쓴 편지를 얼마 전에 아내가 짐 정리하다가 찾아냈다. 참, 그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지..)

그래도 쭈구리고 앉아 책 읽고, 종이에 뭔가 도표 같은 거 정리하고, 억지로 시간 내서 아이들하고 산책하고.. 이런 삶이 나에게는 잘 맞는다.

가끔 좀 더 화려한 데로 나오라고 하는 얘기들이 있기는 한데.. 나는 그렇게 무대에 서는 것보다는, 그냥 이론들 정리하고 숫자 비교하는 그런 공장일 같은 거, 뭔가 만드는 게 더 좋다. 그러니 지금까지 명랑을 잃지 않고, 웃으면서 살아올 수 있었던 거고.

뭔가 만드는 게, 그 순간이 나는 좋다.

연구원장 같은 제안은 심심치 않게 온다. 듣지도 않고, 싫어요, 그러고 만다. 지금 이 나이에 원장 해서 뭐하게. 남들 연구시키는 게 일이 되면서 50대의 마지막 기회를 낭비하면서 날려버리고 싶지 않다.

연구는 자기가 해야지.. 물론 나도 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기는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냥 살살, 조금씩 해도, 우리나라 어느 연구원장보다는 더 생산적이고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 연구시키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고속버스로 수십 대분 이상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나도 그 줄 중의 한 명이 되고 싶지는 않다.

책 쓰는 연구원장이 어딨냐? 신문 기고도 자기가 안 쓰는 판에..

팔리는 건 나도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직장 민주주의 책 정도의 의미와 품질을 가진 책, 3~4권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모피아'급 수준의 얘기도 3~4개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화려하고 넉넉한 삶 보다 내게는 100배는 가치 있어 보인다.

그러다보니까, 뭘 안 한다고 하는 말을 듣는 상대 심통나지 않게 하는 게, 요즘 내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빈번하고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희한한 50대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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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 comedy라는 단어가 있다. 헐리우드식 용어다. 나는 이걸 '소품 코메디'라고도 부른다. 한 블록 내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얘기할 때 이렇게 부른다. 코미디는 아니지만 제임스 완의 기념비적인 공포 영화 컨저링이 이런 구분에 들어갈 수 있다. 정확히 한 블록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건이 건물 하나와 정원 사이에서 벌어진다. 제대로 된 공포영화들이 이렇게 한 블록 안의 일로 집어넣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공포의 원조격인 '어셔가의 몰락'은 아예 집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다.

그에 비하면 또 다른 원형인 '드라큘라 백작'은 동선이 크다. 첫 장면부터 루마니아의 백작성에 도착하기까지, 마차 장면이 초반에 길게 펼쳐진다. 그리고 루마니아 성에서 런던에 이르는 항해 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그걸 거슬러가서 루마니아까지의 추격적, 역시 귀족의 상징인 드라큘라답게 동선이 크고 시원시원하다.

얘기를 한 블록 안에서 마무리지을 것인가, 기왕에 블록을 벗어난 것, 시원시원하게 움직여볼 것인가.. 얘기를 시작하기 전, 동선 스케일에 대한 설계가 필요하고, 공간의 이동 경로도 어느 정도는 설계를 해야 한다.

<장미의 이름>이 대표적으로, 얘기를 만들기도 전에 대부분의 얘기가 벌어진 수도원에 대한 설계부터. 이건 얘기가 장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가 얘기를 자연스럽게 인도해 낸 경우.

그렇지만 여전히 block comedy는 많은 사람의 로망이다. 한 블록 내에서 모든 것을 마무리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도 밀도 있는 얘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영화 <그래버티>가 우주 공간이라는 무한한 공간을 설정하고 있지만, 사실은 인공위성 몇 개 내에서 벌어지는.. 이것도 block comedy의 쟝르에 넣을 수 있다. 지구 괘도가 한 블록이라고 하면, 좀 큰 블록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지도가 있고, 주소가 있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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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 준비를 시작하며..  (3) 2018.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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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긴 하루가 이제 끝났다. 아침 9시 반에 집에서 나서서 대구에서 강연하고. 밤 12시까지 하는 kbs 신년 토론회.. 대구 왔다갔다 하는 것만 아니면 그렇게 고된 일정은 아닌데, 이동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 일은 잘 안 하려고 하는데, 가끔은 방법이 없다.

생방송은 언제나 힘들다. 예전에 아침 방송을 어떻게 했는지, 진짜로 모르겠다. 그 때만 해도 내가 더 젊었다. 이제는 매일 하는 아침 방송은 커녕, 주간 방송도 힘들어서 못한다. 방송만 하는 게 아니라서..

최근에 경제방송에 대한 얘기들이 몇 군데 있기는 한데, 다 몸사리는 중이다. 올해 책 일정 제대로 소화하는 것도 힘들다. 건강도 좀 회복해야 하고. 몇 년간 몸을 너무 막 굴리고, 힘들게 살았더니 진짜 온 몸이 만신창이다. 요즘은 힘들어서 술도 맛이 없을 정도.

그나마 이제 둘째는 폐렴에서 완전히 나왔고, 큰 애도 크게 신경 쓰게 하지 않으니까, 나를 돌아볼 여유가 조금 생긴. 애들 아플 때에는, 에고고, 매일매일 비상근무.

애들 키우면서 욕심을 내려놓는 혹은 관리하는 방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다. 더 할 수 있지만, 그 이상 뭔가 더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거기서 서는 게 좋다. 인생은 고지전이 아니다. 그렇게 올라갈 데가 있지도 않고, 올라간다고 해야 별 거 없다.

어제 <마약왕> 봤다. 돈 낸 게 아까와서 오늘 한 번 더 보려고 한다. 그래, 기왕 봤으면 뭐라도 교훈을.

<마약왕>의 유일한 교훈은, 뭔가 틀어쥐려고 한 자들은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는 거 (그러나 이 교훈이 한국에서 의미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나 싶다. mb 보라고 만든 영화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마약왕>이 아니라 <토건왕>으로 바꾸면 그대로 mb 영화일 것 같기도. 한 때, 한국 최대의 토건왕이기도 했고, 그걸로 정말 왕의 자리에 가기도 했다. 너무 재미없는 영화이기는 했지만, 저걸 mb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면 혹시 재밌는 게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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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쓰던 만년필 두 개. 하나는 내가 샀고, 하나는 학생들에게 선물받은 라미. 크로스는 필기감 개판인데, 그래도 기념으로. 요것보다 한 단계 위를 사고 싶기는 한데. 몇십만 원 그냥 써도 괜찮을 정도의 책을 쓰면 사기로 했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흘렀다. 돌아보면 참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다. 몽블랑이나 샤퍼에 비하면 정말 싸구려 만년필 하나 사도 괜찮을 정도의 책을 아직도 못썼다. 오죽 고민이 심하면 뭐야, 이게, 싸구려 같으니, 그렇게 던져놓은 작법책을 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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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보면서 매 순간이 힘들지만, 가장 힘들었던 때를 생각해보면..

 

작년 딱 요맘 때, 애들 어린이집 옮길 때였다. 둘을 동시에 옮길 수가 없어서, 큰 애가 한 달 먼저 갔다. 형이 먼저 가 있어야 동생의 대기 번호에 우선권이 주어져서 그래도 따라 옮겨갈 수 있다는 거다.

 

뭔 미친 짓인가 싶었다. 육아행정이 거지 같지만, 그 거지 같은 일의 끝판왕 정도 된다.

 

그 때 큰 애가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하는 일이 생겼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일단 몸이 너무 힘들었다. 아침에 꽤 먼 어린이집부터 집 근처까지, 그야말로 셔틀을 도는데, 진짜 죽을 맛 같았다. 같은 짓을 오후에 한 번 더 해야 한다. 방법 없다.

 

그 때 너무 힘들어서 차 잠깐 세워놓고 쉴 때였다. 박원순이 어머니들 만나서 82년생 김지영 무슨, 뭐 그런 토론회 비슷한 걸 한다는 얘기였다. 젠장, 눈물이 핑 돌았다.

 

힘들다, 이거 너무 힘들다..

 

나는 68년생 아빠다. 그날만큼은 나도 너무 힘들어서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당장 육아관련 무슨무슨 본부 같은 거 만들고, 내가 나서서 본부장 하겠다고 손 들 생각이 머리 끝까지 올랐다. 돈 말고도 간단한  행정 조치만으로 지금보다 2~3배는 편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담배 한 대 피우고, 제정신이 돌아왔다. 혹시라도 내가 뭐 한다고 나설까봐 견제가 몇 년째 장난 아니다. 한 때는 동지였고, 동료였던 사람들인데, 내가 움직일 만한 공간은 다 막아놓고 있다.

 

이제는? 마찬가지다.

 

그냥 애 키우면서 지내는 게 이제 2년이 넘었다. 이제는 애 보는 게 힘들어서 아무 일도 못한다.

 

내년이면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아내가 3월 한달은 육아휴직 신청을 했다. 방법이 없다. 그리고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 끝날 때쯤까지, 나는 매일 매일이 거의 같은 삶을 살게 된다.

 

그래도 나는 건강이 형편없는 거 빼면, 사정은 좀 낫다.

 

<82년생 김지영>은 그런 삶에 관한 얘기다.

 

바로 소설을 읽어야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정작 내가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된 건, 그 후로도 1년이 지난 다음이다. 책을 조금씩은 읽는데, 소설을 읽을 여유까지 생기지는 않는다.

 

여유.. 하긴, 그딴 건 없다. 그냥 다른 일을 밀어치고 하는 거지.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따로 서문이 없어서 1장을 읽었는데.. 햐, 1장 읽다가 눈물 날 뻔 했다. 소설로는 별로라고 개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야말로 애 안 키워본 할배 같은 소리 아닌가 싶다.

 

할배들, 이것들 정말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 순간이 있었다.

 

아주아주 유명한 할배들이다. tv에도 나오고, 책에도 나오고, 에 또 틈틈이 신문 인터뷰도 나오는, 겁나 유명한 할배들이다. 한국의 지성, 이런급 사람들이다.

 

"애 보는 게 그렇게 어려워?"

 

네, 그렇지요, 뭐. 얼버무리고 대답하고 얘기를 하는데, 진짜 애 보는 게 '눈으로' 애만 보면 되는 건 줄 알고 있는 할배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니가 뭘 좀 해야지, 애만 보고 있냐고 지랄들이다. 그 정도면 그냥 넘어갈려고 했다.

 

"조선 시대에 훌륭한 사람들은 다 처가에서 컸는데.."

 

애들은 처가집에 맡기고, 대충 자기들 따가리짓이나 마저 해달라는 건데..

 

솔직히 패 죽이고 싶었다.

 

나도 여력이 있으면 <48년생 할배들>, 그런 거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리고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책의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그런 할배로 늙어가고 싶지 않다는..

 

애 키우다 보면, 영혼이 산화된다.

 

소설은 그렇게 영혼이 산화된 어느 젊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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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가 번데기 야구단을 요즘 엄청 본다. 만화 그림도 엄청 그린다. 야구 조기교육이 효과가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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