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7'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4.17 건물주 자식들의 금수저 놀이
  2. 2018.04.17 책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2

<메뚜기와 벌>, 추천사 쓰다가 요런 문장이 생각났다. 건물주 자식들이 금수저 놀이하는 경제, 재미없다... 우리가 만드는 경제, 사실 너무 재미가 없다. 이걸 정의로 접근하는 것도 한 시각이지만, 재미로 생각하는 한 시각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꿈꾸는 경제 - 과연 꿈이나 제대로 꾸는지도 모르겠지만 - , 그거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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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초기 소설에 관한 인터뷰를 보면 한국 독자들에 대한 각별한 감사의 말이 여러 번 나온다. 자신이 전업작가로 살 수 있게 된 건 순전히 한국 독자들 덕분이라는 거다. 그리고 주인공급 캐릭터들에 한국인이 등장한다. 절박함과 절절함의 표현이다.

 

나에게 사석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것이 책으로 먹고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첫 책이 2005년에 나왔으니까 대충 13년 정도 된 것 같다. 그 동안 먹고 살았으니 가능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2년 정도는 당대표 되기 이전부터 문재인을 돕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썼고, 그 때를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책과 함께 살아온 것 같다. 나나 아내나 돈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라서, 아주 넉넉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세 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애 둘 키우다 보니, 밥 먹을 때만큼은 우리 집도 중산층처럼 먹는다.

 

내가 처음 데뷔할 때 출판사 md들이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사회과학 전업작가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정말 처음인지는 잘 모른다. 내 앞에 박현채 선생, 정운영 선생, 이런 분들이 계셨다. 이 분들은 딱히 직함이 애매하니까 경제평론가라는 말을 썼다. 나는 평론가라는 말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경제학자라고 했다. 그 시절에는 다들 대학 교수 이름을 앞에 걸었었다. 정운찬 선생이 나중에 총장 그만두신 다음에 호칭이 애매하니까 경제학자라는 호칭을 썼다. 이제는 그냥 경제학자가 사회적으로 호칭이 되었다. 학자에 가까울 것인가 작가에 가까울 것인가, 가끔 나도 해보는 질문이기는 했다. 지금 와서는 별 의미는 없다.

 

어쨌든 선진국을 비롯해서 많은 나라에서 책 써서 먹고 사는, 소위 전업작가의 숫자는 매우 드물다. 한국에서도 많지 않다고 알고 있다. 흔히 말하는 버는 사람은 벌고, 아닌 사람은 못 버는, 그런 건 아니다. 그 숫자 자체가 워낙 적다. 거의 없고, 아주 일부가 베르베르처럼 전업작가가 되는 데 성공한 정도, 그렇게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사회과학의 경우는, 아직은 나 말고 못봤다. 강준만 선생이 교수를 그만두고 글을 쓰는 경우 같은 건데, 우리나라에도 드물고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글을 쓰기 위해서 교수를 그만둔 사람으로 가장 유명해진 경우는 아이작 아시모프 정도 될 것이다. SF만이 아니라 과학책들도 꽤 썼다. 결국 글을 쓰기 위해서 전업작가가 된 경우다.

 

2.

엉청난 대박을 생각하면서 책을 쓰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하면서 대박을 낸 사람도 가끔은 보았는데, 그걸로 행복해진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10년을 버티기는 불가능하다. 나보다 앞 순위에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등장한다. 그렇지만 오래 버티지를 못한 것 같다. 10년 전에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 중에서 아직도 책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버티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냥 기계적으로만 계산을 하면, 1년에 2~3권을 내면 사는 건 가능하다. 그냥 회사 다닌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 쓰거나 분석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고 생각하면 더 편하다. 그 정도는 일해야 구박받지 않고 회사 다닐 듯 싶다.

 

책은 크게 판매 수익과 부가수익으로 나눌 수 있다. 인세와 인세 아닌 것,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하다. 인세는 판매 부수에 따라서 결정된다.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다. 부가수익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어쨌든 책과 관련해서 올릴 수 있는 소득이 존재한다. 인기 개그맨처럼 행사 뛰는 건 아니니까 책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기고 등 원고 수입과 강연 수입이 있다. 그리고 드물지만 방송 출연으로 생기는 소득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10년 넘게 사회과학 전업작가로 버텨온 내 나름의 원칙이 있다. 이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드물지만 성공한 경우니까 참고는 될 것 같다.

 

3.

먼저 방송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나는 시민단체의 현장 싸움을 오래 하면서 새만금이나 골프장, 생태계 보호와 같이 방송에 사회적 이유로 나가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꽤 일찍 방송을 한 경우이기는 한다. 물론 방송 안 느는 대표적인 지진아이기도 하고.

 

처음 시작하는 경우라면 방송 소득은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워낙 작고, 불규칙하다. 그리고 신경이 분산된다. 혹시 자신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대중들에게 더 알리는 것이 책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예외적이고 효과가 있더라도 한시적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와 같다. 자신이 나가서 다른 사람의 책을 파는 건 도와줄 수 있는데, 자기가 자기 책을 파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그렇게 책을 사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즌제 등 많은 돌발 변수가 있어서 그걸로 삶을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다. 10년을 해보고, 나는 방송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나가지 않는다고 원칙을 정했다. 특히 지금, 사람들은 책이 좋으니까 사지 TV에서 얼굴 봤다고 사지 않는다. 그럴 사람은 한국에 한 명도 없다. 방송이 체질이고 카메라나 마이크 앞에 서는 게 좋으면 하는 거지, 책과 관련해서는 방송은 잊는 게 좋다. 자기 책 자기가 팔자고 하면, 흉해 보인다. 그 사람이 공적으로 옳은 일을 할 때 지지하는 것이지, 지지해달라는 말만 듣고 지지할 사람은 없다.

 

새누리당 정권에서는 반대 진영의 방송 출연이 워낙 어려웠다. 그래서 어떻게든 채널이 열리면 무조건 나가라고 주위에서들 권했었다. 나도 그리 내키지 않는 것을 참고 했었다. 그렇지만 이제 정권이 바뀌었다. 선의로 나온다고 생각할 사람 별로 없고, 돈이나 인기를 위해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얘기 들어서 좋을 것 같다.

 

방송 다음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칼럼 등 매체 기고다. 내 경우만 놓고 보면, 매체 기고와 책 판매는 통계적으로 무관하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사람들이 책을 더 사주지 않을까 생각하는 경우라면, 그런 이유로 쓸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특a급 소설 작가들이 정기 기고를 하지 않는다. 그게 도움이 되었으면 그들이 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하고 쓰는 것은 원고료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건 좀 슬프다. 지난 10년 동안 신문 등 원고료는 거의 오르지 않았고, 어떤 경우는 줄기도 했다. 게다가 보통은 6개월 정도 하고 필진 교체를 한다. 생활비 때문에 기고를 하는 경우, 교체되지 않기 위해서 좀 더 상관들에게 부탁을 해야할 것 같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런 아쉬운 소리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신문 등 매체의 칼럼은 정말로 공익적 목적, 무엇인가 꼭 알려야 하는 것 혹은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서 새로운 것들을 소개하기 위한 원래의 목적으로 쓰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낫다. 원고료를 놓고 생활비 구성을 꾸리면 나중에 아주 곤란한 상황이 온다. 진짜, 보너스라고 생각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많은 경우, 제대로 글을 쓰기 위해서 독서도 하고 취재도 해야 하는데, 결국은 원고비 보다 돈이 더 든다. 안 그러는 경우도 가끔은 있는데, 속에 든 걸 빼먹기만 하거나 맹탕으로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게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결국 정기적인 칼럼 기고는 그만두었다. 생활에 크게 도움되지는 않는다.

 

3.

연예인급으로 방송만 할 거 아니라면 방송이나 원고료가 아주 단기적인 급전 해결 이상은 안된다. 그래서 이런 소득을 기본으로 놓고 10년 정도의 생활을 계산하면 진짜 황망한 경우를 당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이러면 안되지만, 아직은 이런 데는 현실과 거리가 좀 있다. 최저임금을 몇 년 동안 올리자고 죽어라고 외친 작가들의 원고료는 최저임금과 무관하게 결정되는 것이 현실이다.

 

강연은 좀 다르다. 1~2권 나왔을 때에는 강연 요청도 별 게 없고, 단가도 아주 약하다. 그렇지만 몇 권이 나오면 판매와는 상관 없이 강연시장에서는 인기 강연자가 될 수 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요즘은 강연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이 생겨났다. 이런 데랑 연계되면 충분히 생활을 할 수 있고, 조금만 더 말랑말랑한 얘기를 할 수 있으면 몇 년 바짝 일해서 집도 살 수 있다. 강연만 가지고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가능하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경우는 운전수 딸린 차도 운용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직업이 경제학자다. -방송, -원고료, 이 조합은 경제적으로는 무의미한 조합이고, -강연, 이 조합은 가능만 하다면 어지간한 회사 부장 자리 정도는 던지고 나와도 될 정도로 의미 있는 조합이기는 하다. 물론 지속적으로 좋은 책을 낸다는 전제 하에서 하는 얘기다. 회사 직원 연수, 지자체 공무원 교육 등 수요는 아직도 무한히 많다.

 

여기서부터가 정신 바짝 차릴 대목이다. 내가 강연에 대해서 정한 제일 큰 원칙은, 유료강연은 안 한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파는데, 내가 하는 강연까지 독자에게 돈을 받는 건 내 양심상 안 맞는다. 일종의 2중 판매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유료 강연은 안한다. 그리고 좀 미안한 얘기지만, 차비도 안 되는 재능기부급 강연도 안한다. 친한 사람들 도와줄 일 있으면 차라리 그냥 해주지, 재능기부, 이렇게는 안한다. 아직 나는 그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다.

 

시민단체, 고등학교와 대학교, 가능하면 지역단체와 도서관, 이런 데가 우선 순위다. 사회적 경제 책 같은 경우는 특별히 더 알리고 싶은 생각이 많아서, 이런 건 좀 무리해서 강연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는 안 한다. 그러면 내가 돈 욕심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강연자 입장에서 보면 강연은 좋은 시장인 것 같은데, 마찬가지로 강연도 비즈니스가 된 상황에서 기획자의 시선이라는 것도 있다. 보통 강연자의 수명을 2년에서 길면 2년 반 정도 본다. 물론 고르바쵸프나 클린턴처럼 영원한 인기 강사도 있는데, 그건 그 사람들이고.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이 시효성이 2년 정도 될 것이다. 그 정도 되면 인기도 시들해지고, 하는 얘기도 유행하고 안 맞는다. 2년 동안 바짝 벌 것이냐, 장기전으로 갈 것이냐, 사실은 그 선택을 하는 것이다.

 

내가 내린 선택은, 공익적 이유 아니면 강연은 가급적 안 한다

 

강연은 소모성이다. 가진 것을 소모할 것이냐,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 것이냐, 그 중간에서 선택하는 것이 현실이다. 강연이 사회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걸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작가에게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닐 뿐더러 위험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나중에 미사리에서 노래 부르기 위해서는 누구나 아는 히트곡이 두 곡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작할 때 하나, 마무리할 때 하나, 이래야 미사리에서 쇼를 할 수 있다. 히트곡이 하나만 있는 가수는 미사리에도 서기 어렵다. 강연 시장이 그것과 비슷하다.

 

문화시장의 경제 법칙 그대로다. 문화 시장은 본원 시장이 튼튼해야 파생상품도 커진다. 영화로 치면 극장 관객수, 드라마로 치면 본방 시청률, 이런 거다. 책 시장도 마찬가지다. 본원 상품이 튼튼한 것, 이게 가늘지만 오래가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4.

좋은 책을 쓰는 것, 이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다.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책을 처음에 쓰면 팔리고 싶은 책을 먼저 쓰고, 안 팔릴 얘기는 나중에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 출판사에서도 대부분 그렇게 권한다. 잘 팔릴 책 먼저, 안 팔릴 책 나중에, 이렇게 시도한 사람들이 한 권도 못 내거나 한 권 내고 사라져갔다. 첫 책에 빅히트,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좋은 전략은 아니다. 그게 되면 대졸자 절반은 전업작가를 할 것이다. 좋은 책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잘 파는 건 더 어렵다. 그리고 도서관이라는 게 존재한다. 생각 보다 특수 영역이다. 

책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 넘어야 할 첫 번째 관문은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양서를 쓰는 것이다. 양서는 도서관에서 사주고 싶어하는 책이다. 도서관의 각종 위원회나 사서들은 책을 고르는 것이 직업이다. 팔기 위해서 쓴 책을 그들은 얄팍하다고 얘기하고, 읽기는 쉽지 않거나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그 도서관에 오는 분들에게 꼭 읽히거나 추천하고 싶은 책을 양서라고 한다. 양서를 쓰는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도서관에서 사준다. 물론 그게 엄청난 권수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책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넘어야 할 첫 번째 벽이다. 그리고 일단 양서를 썼으면, 그 정도 수준에서의 최소한의 품질 관리를 해야 한다. 순서를 바꾸어서, 팔릴 것 같은 책을 먼저 쓰고,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뒤에 쓰려고 한다면, 도서관 사서들이 보기에는 없는 예산에 먼저 사줘야 할 양서 작가로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인 상품과 책이 다른 결정적 이유다. 보통 상품에는 도서관이 없다.

 

어떤 책이 양서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얘기다. 사회에 꼭 필요한 얘기, 더 나왔으면 하는 책, 다양성에 기야하는 책, 이런 책들이다. 물론 기준은 좀 보수적이다. 도서관이 원래 좀 보수적이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양서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쟝르별 구분과는 달리, 도서관에서 책을 사는,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암묵적인 기준이 하나 있다. 팔리는 책을 먼저 써서 일단 생활을 안정시키고, 그 다음에 진짜 얘기를 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소기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이 개념을 이해한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부탁이 오면 정말 시간이 안 맞는 경우 아니면 어지간하면 간다. 책과 도서관, 끊을 수 없는 관계다. 도서관에서 별로 관심이 없는 책을 쓰면서 오래 버티려면 이제는 절대로 일반화될 수 없는 본인만의 기술과 장점이 필요하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못 본 것 같다.

 

책을 파는 것과 좋은 책을 쓰는 것, 둘 중의 하나만 고르라면 역시 좋은 책을 쓰는 것이 길게 가는 길이다. 자신의 책을 소개하는 것과 좋은 책을 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중에 고르라고 하면 역시 좋은 책을 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순전히 이론적인 계산이지만, 정말로 좋은 책을 쓰고 운대와 흐름이 잘 맞으면 지속적으로 1억 원 정도의 소득을 인세로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도시민 평균 소득 정도를 인세로 올리는 것은, 이 정도는 해볼 수 있는 영역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걸 위해서는 학위나 전공, 그런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일본 출판시장이 그렇게 움직이는데, 한국도 점점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18년 도서 시장, 교수라고 더 사주고, 박사라고 더 사주는 그런 독자는 이제 없다. 점점 더 전문가 타이틀이 책 판매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시장으로 가고 있다. 규모가 줄어들어서 그렇지, 우리의 출판 시장의 흐름이 건전한 방향으로 가고는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남는 고민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과 독자들이 읽고 싶은 것, 그 두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 그건 모든 작가들에게 영원한 질문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제 한 가지다. 돈을 벌기 위해서 책을 쓰면 오래 못 갈 뿐더러 정신 건강에 안 좋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하기 위해서 책을 쓰면, 한국의 독자들이 최소한의 삶은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렇게 한국을 믿고 한국의 독자들을 믿고 가는 편이 낫다. 정신건강에도 그게 좋을 뿐더러, 현실적으로도 그게 유효하다.

 

책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대학원 정도의 기본 훈련과 몇 가지의 간단한 원칙만 이해하면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만 되면, 인생을 조금은 더 즐겁게 그리고 의미있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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