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4'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4.14 어머니 3
  2. 2018.04.14 대충 살자...

 

 

어머니는 몇 년 전에 치매로 쓰러지셨다가, 큰 애 4살 때 놀러간 어느 날 기적과 같이 그냥 일어나셨다. 치매판정도 받으셨고, 도우미도 집에. 아직 이유는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지내신다. 요 몇 달 건강도 많이 나아지셔서, 얼마 전에는 여의도에 벚꽃 보러 갔다오셨다는.

어머니 쓰러지시기 전에 모 공중파에서 어머니 얘기로 휴먼다큐를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그래도 정정하실 때 마지막 기억일 것 같아서 나는 한다고 그랬는데, 어머님이 우울증이 심해지시면서 다 귀찮다고... 그래서 안 한 적이 있었다. 

일어나시고 난 다음 사진이 너무 없어서, 겸사겸사 애들 데리고 놀러갔다. 

렌즈는 50미리. 이게, 사실 겁나게 싼 렌즈다. 오늘 확인해보니까 신품가로 26만원 정도 한다. 프로들은 안 쓰는 렌즈고, 왠만한 사람들도 렌즈 축에 끼어주지 않을. 밝은 게 특징이기는 한데, 밝은 것 빼고는 다 단점이다. 극단적으로 느리다. 화각도 애매하고, 렌즈도 느리고, 그래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런 싸구리 쓰지 말라고 조언해주는 렌즈다. 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가끔은 기가 막힌 사진을 뽑아주기는 한다.

어머니 웃는 모습은 잘 보기 어렵다. 그리고 둘째랑 같이 웃는 모습은 더더욱 보기 어렵다. 웃을 수 있는 날이 잘 없다. 그렇게 자주 뵙는 것도 아니고.

 

Posted by retired
,

몇 달 동안 이래저래 내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될 기회가 되었다.

결정을 내릴 때 난 주변 사람들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이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한다. 특히나 중요한 결정일수록, 중론을 따른다. 고집은 거의 안 부리는 편인데, 가끔 하지 말자는 것에 대해서는 좀 고집을 부린다. 하자는 것에 대해서 고집을 부린 적은 별로 없다.

살면서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결정을 내린 적이 있기는 하다. 경제학 전공인데 프랑스로 유학 간다고 할 때, 진짜로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다. 또 한 번은 내 이름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에너지관리공단 부장에서 그만둘 때. 두 번 다 나는 한 가지 답변을 했다. 내 인생 대신 살아줄 거 아니면 관심 끄시라고. 참, 싸가지 없이 말했다.

나머지 결정들은, 찬반이 분분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랬거나 저랬거나, 그 때는 중요한 것 같았었는데, 어느 쪽을 선택해도 별 상관이 없었을 것 같다. 인생에서 하나하나의 선택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 같지만, 지나와서 돌아보면 별 상관도 없었을 것 같다. 그 순간 순간, 결정이 어려워서 술을 많이 마셨다. 돌아보면, 술 마시려고 억지로 핑계를 만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결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뭐 그렇기는 하지만 그 전제로 이것저것 생각을 하는 게, 그게 너무 도구적 사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삶을 중요한 결정을 중심으로 보는 것, 간단하고 편하기는 한데, 결정이 그게 뭐 그렇게 큰 것인가 싶기도 하다.

몇 년 전까지는 내가 프랑스에서 공부한 게 내 정체성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50이 되고 보니까, 그건 하나도 안 중요한 일이다. 내가 박사인 것이 중요할까? 지금 와서 보면, 글을 쓰고 책을 쓰는 것하고 학위가 있는 것, 사실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다. 기분이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생각을 하고, 생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학위가 있느냐 없느냐, 이건 아무 상관도 없다. 학위도 그런데, 그게 프랑스일지, 독일일지, 영국일지, 아니면 미국일지, 이런 게 그렇게까지 중요할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허상인 것 같다.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지, 나머지는 사실 다 허깨비일지도 모른다.

하나하나의 결정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매 순간 좋은 결정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면… 암 걸린다. 너무 긴장하지 않고, 적당히 생각하고, 되는대로 결정하고, 그 순간을 즐기는 것, 나는 그렇게 잘 못살았다. 앞으로는 그냥 대충 살 거다. 그럼 인생 개판 될까? 그렇지 않다. 매일매일매일이 즐겁고. 오늘이 영원히 붙잡고 싶은 바로 그 순간인 삶이 왜 개판일까? 뭔가 엄청난 것을 하거나 자기 희생 속에 엄청난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는 삶이 개판이 될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다. 얼굴은 엄청 진지한데 삼구삼진 당하는 타자들… 요렇게 될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그래서 나는 마치 오늘만 있는 사람처럼 살 꺼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오늘 행복하지 않은데, 내일 내가 행복할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엄청나게 중요한 결정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 요것도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의 삶, 긴장도가 너무 높다. 그것을 낮추기 위해서 조금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편안해진다. 괜히 인상 쓰지 말고, 괜히 배 내밀지 말고. 그냥 담백하게,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고 싶다.

'남들은 모르지.. > 50대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50대  (0) 2018.05.01
30년은 더 살아야...  (0) 2018.05.01
친구들에 대한 단상...  (0) 2018.04.05
50대 에세이 서문 끝내고  (0) 2018.03.11
어린이집의 이별  (0) 2018.03.08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