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만에 카메라를 들었다. 하도 오랜만이라 내 카메라에 어떤 기능들이 있었는지도 희미하고, 게다가 노안이 와서 펑션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일일이 수동으로 촛점 잡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눈이 그렇게 따라가지 못해서 기계에 그냥 의존한다.

이제 나도 50이다. 내 감과 내 느낌을, 나도 잘 믿지 못하겠다.

딱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나 혼자 무작정 끌고 갈 수도 없어서 포기했다. 작가들 취향이나 일정상 맡기기가 어려워서, 검토 중인 작품 하나를 일단 펜딩시키는 결정을 한 것이 한 달 전의 일이다. 마음만 가지고 할 수는 없는 일이 많다.

그래도 40대와 비교해서 한 가지 변한 것은 있다. 이제 나는 시간이 많다. 안되면 될 때까지.

사진은 중학교 때 찍기 시작했다. 학교 사진반을 했다. 근데, 이걸 좀 열심히 했다. 너무 사진만 열심히 찍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열심히 사진 찍었다. 집에다 암실을 만들까 막 고민을 하다가, 사진 그만 찍기로 어느 날 결정을 했다. 대학 내내 카메라 한 번도 집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내가 카메라를 두 번 사주었다. 지금 쓰는 카메라는 두 번째 히로시마 갈 때 공항에서 사 준 거다. 물론 그 뒤로 렌즈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기는 했는데, 렌즈도 전부 아내가 사주었다. 아내는 내가 찍는 사진을 좋아했다. 물론 나는 잘 나온 사진만 아내에게 보여준다. 가끔씩 삥 나간 사진 중에도 느낌 좋은 것들이 있기는 하다.

아내는 술 마실 때의 내 모습을 가장 싫어한다. 그리고 사진 찍을 때의 내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 나는 카메라에 돈 쓰는 걸, 진짜로 죽기 보다 싫어한다. 기능적으로, 꼭 필요한 최소한의 바디와 그보다 더 최소한의 렌즈를 사용한다. 그리고 성실하게 설계한다. 렌즈 2개 이상 가지고 나가는 날은 없다. 그리고 찍기로 마음 먹은 것을 찍기로 미리 설정한 화각에서 딱 찍고, 되면 다해, 아니면 그만, 바로 포기한다. 과잉이 없고, 욕심도 없다. 아내가 가끔 좀 더 찍어보라고 해도, 생각한 빛과 각이 안 나오면 그냥 포기.

술 마실 때의 내 모습은 그와 정반대다. 최대한의 량을 마신다. 그리고 이유도 없다. 술 마실 때에도 미리 설계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보다 몇 곱을 더 마신다. 그리고 포기하는 법도 없다. 그 모습을 아내는 제일 싫어한다.

필름 시절에 사진을 배워서, 지금도 최소 분량만 찍는다. 한 때 최고 성능의 연사 기능을 가졌던 바디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 장 한 장 숨죽여 누른다. 그리고 가끔 느낌이 왔다 싶을 때, 몇 장 정도 더 찍는다. 필카 시절에, 손 가는 대로 막 누르다가는, 정작 중요한 순간이 왔을 때 어쩔 수가 없을 수 있다.

내려놓았던 카메라를 오늘 다시 집어든 것은, 50대 에세이에 마지막으로 넣을 글과 뺄 글을 결정하기 위해서다. 짧은 열흘 사이에 넣다 뺐다 하니까, 마음 속에 맺힌 상이 다 흐트러져 버렸다. 심지어는, 이걸 내야 하는 건지, 왜 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친구가 연관되어 있지 않았다면, 안 냈을 것 같다. 삥이 딱 맞지 않은 것 같은 상태에서 책을 낸 적은 없다. 지금처럼 삥이 왔다갔다 하면, 이걸 지금 내야 하나, 그런 생각을 며칠 동안 했다.

사진은, 찍어놓고 보면 사실 별 거 아니지만, 그 과정까지 집중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집에서 나가기 전 렌즈 집어드는 순간, 빛이나 화각은 물론이고, 색감까지도 어느 정도는 결정을 하고 나가게 된다. 렌즈마다 약간씩 색감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설계치보다 덜 나온다. 얻어걸리는 날도 가끔 있지만, 그건 진짜 드물다.

오늘은 색감의 일관성,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나는 집중을 너무 많이 한다. 그 생각을 흐뜨러트리는 것이 내가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술 마시는 것과 사진 찍는 것과, 사실 나에게는 같은 효과다. 술 마시기 전 생각이 흐트러지는 것처럼, 사진을 찍고 나면 그 전에 했던 생각들이 흐트러진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 잠시 생각을 했다.

다른 글 여덟 개 정도를 버리고, 앞 부분에 있던, 그리고 맨 처음에 버렸던 '센치멘탈 블루스'를 다시 넣기로 했다. 제목은 중간에 썼던 '궁상주의 미학'으로. 초반에 설정치를 날려버리고 나니까, 중간에 다시 기둥을 세울 수가 없었다. 다른 기둥을 세우더라도, '센치'라는 아래 쪽 기반을 빼니까 위가 세워지지 않는다.

그 기둥을 세우고, 다른 얘기들을 흐트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음 카메라 견적을 이리저리 뽑아보니, 바디랑 몇 개 렌즈 합쳐서 800만원에서 천 만원 정도 들 것 같다. 아내에게 물어봤다. 벌써 몇 년 전에 사라고 한 건데, 내가 괜히 후달려서 아직 못사고 있었다. 사라고 한다. 8월에 사기로 했다. 이유는? 없다.

올 8월 전에는 중요한 결정은 하나도 안하겠다는 결정을 지난 달에 했다. 8월까지는 그냥 머리 박고, 조용히 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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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몇 권의 책을 내고 가지게 된 생각을 잠시 정리해보았다.

1. 책 제목은 정직하게. 기교나 은유 같은 것을 너무 많이 쓰는 것보다는 그래도 정직하게 제목을 잡는 게 나은 것 같다. 엄청나게 팔리지는 않지만, 최악은 피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 편이, 진짜로 그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좀 더 버티는 힘을 주는 것 같다.

2. 너무 얕게 쓰지는 않는다. 최근 출간 트렌드상, 덜어내고, 슬림하게 하고, 그리고 가능하면 얕게 하는 게 유리하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렇지는 나는 그렇게는 안 하고 싶다. 그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극한이라고 할 정도로 최전선에 서 있고 싶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내가 책을 쓰고 있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최전선이라고 생각한다고 그게 늘 최전선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우리 시대의 얘기를 극한까지 끌고 가고 싶다.

책 마무리 작업하면서,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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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0대 에세이는 원래 서문을 쓸 계획이 없었다. 워낙 첫 글의 도입부가 좋았고, 정서적으로 매끄럽게 넘어가는 느낌이라, 좀 다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좀 고치다 보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30대 장관, 40대 총리'에 관한 얘기가 사실상 전체 결론인데, 뒷부분에 김구 패로디를 하다 보니까 어딘가 쑤셔 넣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결론에 첨가를 하려니까 흐름이 깨질 것 같다. 어딘가 밀어 넣으면 되기는 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때우는 방식으로 해서는 효과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이 얘기를 서문에 넣기로. 책의 결론이 앞에 나오는, 흔히 쓰지 않는 방식이 되었지만, 에세이집에 무슨 형식이. 효과만 있으면 되는 거지.

 

주위 사람들에게 서문에 들어갈 얘기를 가지고 좀 상의를 해봤는데,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고, 가장 강조하는 형식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다.

 

요즘, 청와대가 나이 너무 따진다는 조언들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그렇게까지 안 했는데, 요즘은 너무 심하다는 얘기들을 나에게 해주었다.

 

2.

책을 쓰면, 내가 변한다. 생각을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진짜로 할 수 있는 한 극한까지 생각을 하게 되니까, 안 변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번 책은, 내가 가장 많이 변한 책으로 남을 것 같다. 책 쓰기 시작할 때의 나랑, 지금의 나는 과연 같은 사람인가 생각할 정도로 내가 많이 변했다. 더 가벼워졌고, 더 말랑말랑해졌다. 그리고 가슴에 담긴 무거움 같은 게 사라졌다. 진짜로, 내가 가진 것들 다 털어낸 기분이다. 탈탈 털고 나면, 가벼워진다. 더 원하는 것도 없고, 더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책 쓰기 전에는 가슴 한 구석에 뭔가 힘들고 아픔 같은 게 남아있었던 것 같았는데, 이제 그런 건 없다.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지, 그런 게 좀 선명해졌다. 정리가 끝나면 산뜻해진다. 그런 느낌이다. 이제는 좀 더 명랑해질 수 있을 것 같다.

 

3.

프랑스에서 참 인상적으로 본 게, 저녁마다 뉴스 만평처럼 해주는 인형극이었다. 기뇰, 손가락 넣고 하는 간단한 인형극이다. 여기에 별의별 놈 다 나온다. 대통령과 총리는 맨날 나와서 치고 받고, 축구 선수도 나오고, 하여간 그날 웃겼던 놈은 다 나온다. 그렇게 서로 조롱하고 웃고, 그러다 보면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누구나 알 수 있게 된다.

 

역시 몰리에르의 나라답다고 생각했다. 몰리에르의 연극은 귀족들을 골려 먹는 내용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귀족들이 왕에게 고자질을 했다.

 

"쟤가, 아저씨 욕한대요."

 

그래서 결국 왕이 몰리에르의 연극을 보러 갔다. 잠시 후면 몰리에르의 목이 날라갈 순간이다. 그런데 연극을 보던 왕이 너무 웃겨서 진짜 크게 웃었다고 한다. 이게 왕을 웃겨서 목숨을 건진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왕도 귀족들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자기만 골려 먹은 게 아니라 자기가 싫어하는 귀족들도 같이 골려먹었으니까, 그도 통쾌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자기편이든 상대편이든, 높든, 낮든, 마음껏 조롱하면서 같이 웃는 게 프랑스식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웃기는 세계에, 우리 편 남의 편이 어딨냐. 오늘은 얘가 괜찮고, 내일은 쟤가 괜찮고. 오늘은 이놈이 웃겼고, 내일은 저놈이 웃겼고. 그런 시각으로 보면, 지금 한국에서 웃기는 사람은 딱 홍준표 하나다.

 

나는 한국이 너무 경건하다가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예전에는 군바리들 시대라고 그런가 보다 했다. 그 뒤에도 너무 경건했다. 그리고 다시 더 경건해졌다. 명박이가 오고, 순실이가 오고,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다. 지금도 너무 경건하다. 지금은 왜? 알 수 없다.

 

하여간 한국 TV에 인형극이 나오고, 거기에 대통령부터 그날의 맹활약, 그날의 큰 웃음, 그런 인형들이 너스레를 떠는 걸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전히 너무 경건하다. 이재용 인형도 TV에 나와서, "제가 좀 바보 연기를 해서 드디어 집에 오게 되었답니다, 여러분", 요렇게 사람들도 좀 웃기는 사회적 기여라도 좀 하면 좋겠다.

 

한국은 여전히 너무 무섭고, 너무 경건하다. 잘 못 웃겼다가는 토마호크 날라올 분위기다.

 

4.

한국 코미디, 사실 코미디도 아니다. 포 떼고, 마 떼고, 상 떼고, 직진만 하는 병졸 가지고 하는 코미디가 웃길 리가 있겠나? 좀 저질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나가는 폭스 티비만도 못하다.

 

우리는 웃고, 웃기는 것을 두려워했다. 대통령 소재의 코미디, 옛날에도 무서워서 못했지만, 지금도 무서워서 못한다. , 무섭다. 우리는 웃기는 것이 무섭고, 웃는 것도 무서운 나라에서 살고 있다.

 

상전을 비웃기면, 아예 가루를 만들어버리는 조선 시대의 마름 문화가 하나의 전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좀 웃고, 웃기고, 그렇게 많은 것들을 유머로 승화시켜야 논쟁이 부드러워진다.

 

웃는 게 무섭고, 웃기는 게 무섭다. 잘못 웃기다가 목 날아가는 수가 있다. 몰리에르 같은 천재가 다시 등장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걸 크게 웃은 왕의 기립박수로 넘어가주는 그 시대가 한 번 와야 하는 것일까?

 

줄 잘 못 서면, 너 날라가? 우리가 지금 만드는 나라는, 그런 숨막히는 나라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는가? 간신 나라 충신들이 충신 행세하는 나라가 된다. 순실이가 나라 주인 행세하던 시기가 그랬는데, 지금은 뭐 좀 많이 바뀌었을까?

 

경건 또 경건, 바뀐 게 별로 없다. 그리고 엄청들 심각하다. 그러면 일 좀 제대로? 절대 안 그렇다.

 

아주, 경건 지대로다. '시골 사또'에 관한 얘기를 사람들하고 같이 준비해보자는 얘기만 한 적이 있다. 지금 권력 상층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똑같이 카피해서, 네네, 이게 지금 얘기는 아니구요, 옛날 옛적에 어느 시골 관아에서 사또님과 함께 벌어지는 일이랍니다... 이렇게 해도 싱크로율 95% 나올 것 같다.

 

무섭다.

 

5.

나는 87년이 싫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니미럴. 요즘은 87년으로 돌아간 것 같다. 아주 거대한 87년 같다.

 

그 때 그 사람들을 이제는 집회가 아니라 TV에서 맨날맨날 보고, 그 때 그 톤으로 '우리의 미래' 얘기를 하는데, 문득 87년으로 돌아온 것 같은 공포가.

 

지금은 21세기다. 21세기 다웠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현실은 87년스럽다.

 

나는 이 경건함이 숨막힐 것 같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최루탄이 있어서, 왜 숨막힐 것 같은지, 설명이 쉬웠다. 논리적으로 도망가기도 쉬웠다.

 

지금 대학생이나 20대의 눈으로 한국을 한 번 보시라. 87년이나 지금이나, 뭐가 다르겠는가?

 

웃음의 역할이, 그 때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그렇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잘 못 웃었다가는 죽는 수가 있는 나라다. 그래서 서로 눈치 보면서 숨죽이고 있는 것, 왜 이래야 하나 싶다.

 

에세이집을 쓰고 나서 잠시 뒤돌아보니, 도대체 우리는 뭘 바꾼 거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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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예전 어린이집 가보고 싶다고 해서,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 들렀다 들어왔다. 좋아한다. 친구들과 이별하는 일이, 아이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삶에는 이별이 많다. 근대화 이전 농업 사회보다, 지금은 이별이 더 많다. 학교 다니면서 매년 이별하고, 회사에서도 계속 이별한다. 그 때마다 늘 좋은 기억만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별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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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책상 이렇게 놔줬다. 좋아한다. 참, 짠하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책상이 생겼다. 그걸 대학교 때 집 나올 때까지 썼다. 책상이란 게, 먹고 살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어떤 때는 권위의 상징이라, 책상 종류와 책상 위치 때문에 어깨 싸움을 하기도 한다. 나는 몇 년째 아내가 쓰다버린 책상을 쓴다. 방 옮길 때 새 거 사준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되었다고 했다. 잠시 쓰고 말 거다. 좋은 거 필요없다. 별 이유 없는 욕심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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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쓰다 보면 팔리는 책도 있고 안 팔리는 책도 있다. 내 경우는 그 편차가 더 크다. 내가 다루는 주제들은, 어둡고 무거운 주제들이다. 내 책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나쁜 놈에 대한 책과 불쌍한 놈에 대한 책들로 나뉘어진다. 예전에 박경철 선생이 방송에서 내 책을 추천하면서, 그래도 이 책만 '불쌍한 사람'에 대한 책이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 해에 대상을 탔다. 나쁜 놈이든, 불쌍한 놈이든, 무거운 얘기인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좀 가벼운 거, 팔릴만한 거 하면 안돼?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그런 책을 내가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 게 나빠서가 아니다. 그런 얘기 쓰고 싶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많다. 엄청나게 많다. 안 팔릴 것 같은 내용만 고르고 골라서 쓰는 것, 그게 내 일이다.

 

책을 쓰는 사람을 저자라고도 부르고 작가라고도 부른다. 예전에는 author writer라는 차이만큼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10년 넘어가다 보니, 이러거나 저러거나, 엎어치나 메치나, 마찬가지다. 큰 차이 없다.

 

나는 책 쓰는 일을, 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직업적으로 책을 쓰고 싶지도 않고, 이게 내 직업이라고 어디에 쓰고 싶지도 않다. 공식적으로도 내 직업은 책 쓰는 사람은 아니다. 내 명함에는 프로듀서라고 되어 있고, 실제로 하는 일도 그게 기본이다. 그것도 올해로 9년째, 그 일을 한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책을 쓴다. 이건 형식적인 논리이고.

 

실질적으로도 책을 쓰는 건 내 직업이 아니다. 연구를 하거나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것, 그건 내 일이다. 요즘은 아이들 키우느라 단체 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지만, 좀 짬이 생기면 적당한 단체로 복귀해서 내 여건상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생각하고는 있다. 그런 연구나 활동의 부산물로 책이 나오는 것이지, 책을 쓰겠다고만 책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내가 책에 대해서 생각하는 판매의 기준은 단순하다. 책을 쓰기 위해서 들이는 내 돈이 환수될 수 있으면 좋겠고, 출판사가 약간의 도움을 받는, 체면치레 정도다. 되는 경우도 있고,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꼭 많이 파는 것을 목표로 책을 쓰지는 않는다. 그냥 운에 맡긴다. 내가 다루는 주제들, 대부분 정말 책 안 팔릴 것 같은 주제들이다. 농업경제학 같은 것은 쓴다고 생각한지 거의 10년 만에 쓸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좀 안 팔리는 것은 괜찮은데, 너무 안 팔리는 것이 뻔할 것을 준비하기가 출판사에 미안하다. 출판사는 괜찮다고 하지만, 내가 안 괜찮다. 어차피 평생에 한 번 쓰는 것인데, 너무 민망하게 팔리면 속상해진다. 나도 사람이다. 내년 초에 농업경제학을 쓰기로 한 것은, 바뀐 것은 다른 게 아무 것도 없지만, 내가 용기가 났다는 게 바뀌었다. 여전히 무섭다. 그렇지만 용기를 냈다.

 

내가 농업 경제학 공부를 책 쓸려고 했나? 절대 아니다. 필요해서 공부한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싸움이 벌어지니까 그 싸움을 한 거고. 다른 것들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책 쓰는 것이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 일이 내 주전공도 아니고, 주로 하는 일도 아니다. 그리고 삶의 목표도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책을 계속해서 내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하는데, 그래도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다. 더 좋고 더 편한 매체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기꺼이 선택할 것이다.

 

2.

내가 책 판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기준은 매우 단순하다. 우리 집 생활비.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장한 '사회과학 전업작가'로 불러준 것에 대한 약간의 답변이다. 책으로 먹고 사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다음에 이 길을 걸을 사람을 위해서 보여주고 싶다.

 

전체적으로 계산을 해보니까, 고맙게도 지난 10년간 우리집 생활비 보다는 많이 벌었다. 나는 그것을 진짜로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은 미니멀리즘 라이프에 가깝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독자에 대한 생각도 일부 있다. 내 책을 사주는 사람들은 10대부터 대학생까지, 젊은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나보다 훨씬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사서 읽어주는 것이, 내가 저자로서 아직도 버티고 있는 이유로 알고 있다. 그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비싼 거 사고, 외제차 타고, 이런 거는 아직도 잘 못하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워낙 안 쓴다. 그래서 책 인세로 충분히 생활이 된다. 물론 매년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균 내면 그것보다는 많이 번다. 사람들에게 눈물 나게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서 더 다루기 어려운 주제들로 간다. 이제 나는 출판사 너무 어렵게 하는 경우만 아니면, 더 어렵고, 더 안 팔릴 것 같은 얘기들을 해도 된다. 나까지 말랑말랑한 얘기하고 있고, 하나마나한 소리하면 안 될 것 같다.

 

책이라는 게 비밀이 하나 있다. 쓰는 사람이 가장 실력이 는다는 사실.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사람의 키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역시 쓰는 사람이 가장 많이 키가 큰다. 책 한 권을 쓰면, 생각은 물론이고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엄청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약간이라도, 변하게 된다.

 

초기에 날 보고서 사람들이 강준만 선생을 넘을 거라는 둥, 다산보다 넘어갈 거라는 둥, 그런 얘기들을 했었다. 그 때도 그게 중요한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내가 살았던 시대가 행복해지지 않았는데, 얼마나 많이 쓰는지, 얼마나 좋은 책을 쓰는지,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나. 좋은 시대가 만들어지는 것, 그것 외에는 나는 아무 관심 없다. 거기에 기여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내 삶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진짜로 행복해졌다. 나는 내 삶에 더 바라는 게 없다. 내게 남은 유일한 관심은, 내가 살았던 시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더 유명해질 필요도 없고, 더 인기 있을 필요도 없다. 이미 누릴 만큼 충분히 누렸다.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가 얼마 전부터 인사를 하시기 시작했다. 망했다. 밤 늦게 술 사던 집인데, 창피해서 이제는 술도 다른 동네 가서 사와야 할 것 같다.

 

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시도한다.

 

3.

에세이집을 몇 년 전부터 내기 시작했다. 잘 된 책도 있고, 잘 안 된 책도 있다. 사회과학책과 굳이 구분해서 에세이집을 내는 것은, 나에게는 작동 원리가 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글을 잘 쓴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어린이 백일장에서 상 타는 정도, 그렇지만 쓰기는 진짜 많이 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평생 글을 썼다. 형식 실험도 해보고, 내용 시험도 하면서 죽어라고 글을 썼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 공부는 학기 중에만 했다. 방학 때는 책 읽고, 글 쓰고, 그런 것만 했다. 방학 때에도 시험 보는 공부하면, 진짜 바보 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집이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은 아닌데, 나는 우리 집이 아주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일찍 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봐야 그걸로 먹고 사는 거 아니라는 것은 진짜 일찍 알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나에게 가장 큰 놀이는 글 쓰는 것이었다. 평생 그랬고, 여전히 그랬다. 그렇게 글을 많이 쓰면 글이 좀 늘까? 잘 안 는다. 냉정한 세계다.

 

어차피 쓰는 글이라서, 주제를 정하고 고민을 한 것이 에세이집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시도들을 계속해서 해보려고 한다. 50대 에세이는 그런 시도 중의 하나다.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멀리 왔다. 멀리 온 게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멀리 온 것은 사실이다.

 

오늘 50대 에세이 에필로그의 마지막 글을 썼다. 나는 그 글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글은, 삶을 바꾸는 글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내 삶은 바꾸었다. 나도 바꾸지 못하는 글은, 가짜 글이거나 함량 미달의 글이다. 쓴 사람의 삶과 생각도 바꾸지 못하는데, 그게 글이냐? 글자 모음이지.

 

50대 에세이는 결국 나를 위한 글이 되었다. 그래서 부제는 '나와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하여'라고 달 생각이다. 원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 쓰고 나니까 나는 진짜로 나와 내 인생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훈련받은 것 같다.

 

, 이제 다음 에세이집으로 넘어가야 할 때래서, 그 동안 블로그 맨 앞에 있던 '50대 에세이' 폴더는, '옛날 글들'로 옮겨질 것이다. 몇 달 동안, 이 글들을 쓰면서 진짜로 나는 행복했다. 행복이 뭔지, 어떻게 사랑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50, 이제야 그걸 알았냐? 지금이라도 안 게 다행이다. 평생 모르고 미움만 갖고 살다가 죽을 뻔했다.

 

폴더 하나가 닫히면, 생각의 흐름 하나가 바뀌게 된다. 나는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죽기 보다 싫어한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매듭을 짓고, 다음 길을 걸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나는 '50대 에세이' 폴더의 마지막 글을 쓰고, 그 폴더를 닫는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다음 글의 주제는 아름다움이 될 것 같다. 아름다움, 51세에 찾아봄직한 주제다. 그 전에, 뱃살부터 좀 빼야겠다. 바지가 안 맞는다. 이렇게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해보니까, 에세이집이 좋은 점이 있다. 삶을 조금씩이라고 바꾸어 나갈 수 있다. '아날로그 사랑법'이라는 겁나게 안 팔린 에세이집이 있다. 아마도 내 책 중에서 안 팔린 책 기록을 세울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이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책이 되었다.

 

내 삶을 바꾸었다. 그 이전의 내 삶과 그 이후의 내 삶이 다르다. 나는 진정으로, 사랑을 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진짜로 나는 책이 팔리거나 안 팔리거나,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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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초고는 끝났다. 제목은 '달달한 50대'로 하기로 했다. 경합 중인 부제목이 '개수작과의 결별', '우리는 이제 21세기로 간다' 그리고 '나와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하여', 요렇게 세 개가 있다. 셋 다 의미있는 부제이기는 하다. 감정적으로는 개수작과의 결별이 맞다. 논리적으르는 21세기로 간다가 맞고, 또 정직하다. 그렇지만 여운은 '나와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하여'가 길다. 크게 잘 팔린 책은 아니지만 '아날로그 사랑법'이 중간에 있던 포토 에세이집이다. 거기에서 다시 이어가는 데에도 사랑 얘기가 더 나은 것 같고. 이 세 가지를 놓고 마지막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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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에필로그도 마쳤다.

 

나는 나를 사랑할까? 이런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이제 50, 나에게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지금 잘못 생각하면 다음 기회는 60, 더 이상 무엇인가를 고민해봐야 의미가 없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제 50, 나의 최고 재산은 역시 시간이다. 경제학적으로 가장 의미가 있는 자산의 우선 순위를 매기는 방법이 있다. 재능은 이제 나에게 약점이 되었다. 50, 늙어가고, 가지고 있던 능력과 재능도 줄어드는 시기다. 재산, 내 인생의 특징은 재산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너무 불쌍해진다. 상대적으로 나에게 가장 많은 자산적 요소는 시간이다. 시간은 많다. 대부분의 50대가 나와 비슷할 것이다. 그 시간을 잘 쓰기 위해서, 나는 스물두 개의 글을 썼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내 친구들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고, 우리가 같이 만들고 싶은 세상은 무엇인지, 나름 곰곰이 생각해봤다. 10년 후, 지금을 회상하면서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나도 나를 사랑하고, 내 인생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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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마지막의 마지막 글이다. 형식은, 글짓기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 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백범 일지 중)

아주 유명한 글구다. 이걸 놓고 진짜 간만에 백일장 나간 것 같은 기분으로 글짓기 하는 게 에세이집의 마지막 글이다. 여기 필요한 썰래발들은 앞에 털어놓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글짓기에서 장원을 했다. 6학년 때, 이게 참. 뭔가 상을 많이 탔는데, 그게 국정원에서 후원한 거라는 건 나중에. 반공 글짓기를 너무 잘 해서, 국정원에서 내는 책에 들어갔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박정희 시절이다. 하여간 그 시절 이후로, 줄구장창, 진짜로 글 많이 썼다. 여기다 쓰고, 저기다 쓰고. 내가 다른 건 모르겠는데, 글 많이 쓴 걸로는 거의 태평양급.

글의 구성이라는 것은 6학년 때 겨우 생각을 해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전에는, 그딴 거 없었고, 대학 시절에는 형식 실험을 진짜 많이 했다. 익숙한 글을 또 쓰는 거, 재미 없었다. 하다하다, 왼손으로 글 쓰기를 시도했다. 그러면, 글 스타일이 또 변한다. 글 많이 쓸 수도 없고, 빨리 쓸 수도 없으니, 좀 담백해진다. 오른손으로 쓰면? 거의 지랄맞은 소리들을 늘어놓게 된다.

자, 이제 마지막 글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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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 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백범 일지 중)

 

 

50대 에세이의 마지막 글을 써야 한다. 이 자리에 백범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 대한, 일종의 패로디를 쓰기로 생각한 것은, 처음 50대 에세이를 구상하던 초기 단계였다.

 

내가 특별히 백범을 좋아해서? 별로 그런 건 아니다. 사실 잘 모른다. 그냥, 남들 아는 정도. 특별히 더 많이 알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좋아하거나 흠모하거나, 그렇지도 않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열성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은.

 

이상하게 김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좀 있었다. 테러리스트라서 싫다는 의견이 제일 많았고, 과대포장되었다는 의견이 일부. 그리고 무능해서 싫다는 것도. 다 맞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백범 일지가 과연 김구가 쓴 것이겠냐? , 이광수가 적당히 넣을 거 넣고 뺄 거 뺀, 춘원의 작품일 뿐이라는... 그럼 다 개구라?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여간 이 시점에 내가 백범 일지를 다시 읽고 뭔가 생각을 다시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문화가 강성한 나라이면 좋겠다는 백범의 '내가 만들고 싶은 나라' 21세기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의 글들은 20세기적이거나, 20세기적으로 해석되었다. 대부분의 냉전의 산물이거나 독재 시대의 산물이다. 혹은 동구가 붕괴하기 이전에 팽팽하던 시절의 산물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을 수용하던 생각 역시, 군인들과의 싸움 속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한국의 역사는 언제 결정적으로 페이지가 넘어갔을까?

 

아주 주관적으로만 생각해보면, 최순실이 이게 민주주의냐고 소리칠 때 청소부 아줌마가 "염병하네"라고 외치던 날, 우리는 이제 다른 시대로 넘어온 것 같다. 최순실에게 당당하게 염병하네, 과연 누가 외칠 수 있었겠나?

 

이제 한국의 역사는 그 뒤로는 가지 않을 것 같다. 뒤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 꼭 좋아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염병하네", 그 상태에서 아주 오랜 기간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50대 에세이를 굳이 쓰기로 마음 먹고, 그것도 아주 공개적인 형태로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염병하네"가 최순실만이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는 청소 아줌마 뒤로 싹 숨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저 거침없는 염병하네, 그건 나를 향한 것은 아마 아닐 것이야...

 

그래서, 염병하네...

 

내 안에 있는 20세기적인 것들을 한 번쯤, 나도 탈탈 털어내고 싶었다. 그게 50대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진짜 배경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면?

 

마치, 백범이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렇게 쓴 것처럼, 나도 내 생각을 정리해서 하나를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 모두 이런 글을 한 번쯤은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그럼! 네가 원하는 것은?

 

아니, 나는 원하는 건 따로 없고, 그저... 이런 것이 개수작이다.

 

개수작과의 결별을 위해서는, 고통스럽고 별로 안 쓰고 싶고, 그리고 남들이 싫어할지 몰라도,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글을 꼭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 하면? 나머지 50년의 삶이 다시 개수작이 될 수도 있다. 그저 하던 대로... 내가 제일 잘 나가, 아니 잘 나갔어, 이런 거적데기 같은 소리나 하면서,

 

그게 이 김구 패로디를 써보고 싶은 이유다.

 

그렇지만 막상 쓸려니까, 역시 무섭다. 그래서 계속 시간을 끌고, 또 시간을 끈다. 백범 일지를 다시 며칠에 걸쳐서 읽은 것, 이런 게 기본적으로는 개수작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읽었나, 그랬다. 당연히 기억 잘 안 나지...

 

그래서 다시 읽어보기는 해야 할 것 같은. 형식적으로는 맞는 얘기인데, 요런 게 개수작이다. 바로 써도 되는 데, 그래도 시간을 좀 끌고, 도망가고 싶은.

 

그러니까 지금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것 그리고 그 배경, 그런 것을 다시 생각하는 것도, 역시 개수작이다.

 

그리고 지금은 오후 1시 반,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몸에서 나는 신호에 뇌가 열심히 반응하는 것, 이런 것도 개수작이다. 생각은 물론이고, 내 몸도 알아서 개수작을 한다.

 

그래서 이 글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언제 이 개수작이 끝나고 글을 쓰기 시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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