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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1.10 강연에 대해서 2


(첫 책 내고 신문 인터뷰 사진. 금향 기자가 급해서 핸펀으로 그냥 찍었던 걸로 기억...)



강연에 대해서

 

1.

몇 달 동안 강연을 꽤 많이 했다.

 

몇 년 동안 사람들에게 신세만 지고, 뭔가 챙겨준 게 너무 없다. 진짜로 몇 년간 도움만 받았다. 머리 숙이는 걸 진짜로 싫어하는데, 선거 몇 번 치루면서 도와달라고 부탁만 하고 다녔다. 그런 사람들이 강연 부탁하면, 안 한다고 할 수는 없는 거. 기왕에 하는 거, 최선을 다 해서 한다고 했더니, 이래저래 너무 많이 했다. 하여간 몇 달 동안, 진찌로 강원도 빼고는 거의 전국을 다 이잡듯이 다녔던 것 같다. 제주도만 제주시, 서귀포시, 그렇게 두 번을 갔다.

 

12월이 되면, 전에 약속한 것 몇 개만 남고, 내년 봄이 오기 전까지는 강연은 안 하려고 한다. 특별히 안 하는 거라기 보다는, 원래도 안 하던 거, 그냥 안 하는 상태로.

 

2.

90년대에 내 강연은 비쌌다. 특별히 내가 비싸게 받은 건 아닌데, 그 때는 후하게들 줬다. 한 번에 보통 500만원 정도 받은 것 같고, 더 준 경우도 있다. LG였던 걸로 기억난다. 500만원 준다고 했는데, 강연 끝나고 나니까 경영진이 너무 고마웠다고 결국은 천 만원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시절에, 내가 아는 지식은 우리나라 최고였다. 지금은 그 정도 아는 사람들은 가끔 있기는 한데, 그 때 환경 문제에 관해서 공장 관리인들이 알아야 할 지식으로는, 내가 최고였다. 그걸 업으로 했으면, 아마 많이 벌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때에, 정말 넉넉하게 벌었고, 특별히 돈에 대해서 욕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아마도 가장 비싸게 받을 뻔했던 것은, 전경련 소속 사장들이 일본으로 골프 여행을 가는데, 거기 동행해서 몇 번의 강의를 해주는 걸로

 

근데 나는 잠시 짬을 내서라도 별도로 강의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골프 라운딩을 하면서 틈틈히 얘기해주는 그런 거였다.

 

안 한다고 그랬다. 골프 질 줄 모른다. 전경련에서는 그냥 골프 치는 시늉만 하면 안되느냐, 그래서 골프 안 치는 건 내 철학이라고 그랬다. 이래저래, 돈 겁나게 많이 준다고 그러기는 했는데, 일 없슈

 

그 시절에도 돈과 철학이 부딪히면, 나는 철학을 선택했다.

 

3.

아내가 나에 대해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풀뿌리 시민단체나 생협 조직들 전국으로 찾아다니면서 5만원, 10만원짜리 강연을 하고 다니던 시절이다. 농사지은 쌀을 받아온 적도 있고, 달걀 한 판을 받은 적도 있다. 2000년대 초중반, 책 아직 발간하기 전이다.

 

내가 쓴 거의 대부분의 책들의 논리는 그 시기에 구성된 것이다. 프랑스에서 뭘 배워서개뿔, 배우기는 뭘 배워? 한국의 밑바닥 사람들이 왜 잘못된 정책으로 인하여 고생하는가, 어디서부터가 문제인가, 이런 걸 유학 가서 배우긴 어서 배우나? 정부는 알까? 개뿔, 알긴 뭘 알아총리실과 몇 년간 일했고, 실제로 근무도 했다. 알긴 뭘 알아!

 

진짜로 전국의 바닥을 돌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내 생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절, 건강을 잃었다. 진짜로, 너무 무리했다.

 

아내는 '봉투돈'이라고 불렀다. 내가 봉투에 받아서 아내에게 준 돈들을, 아내는 남편이 가장 자랑스럽던 시절로 기억한다. 그 때, 5만원, 10만원, 이렇게 집에 가져간 돈 들을 아내는 꼭 통장에 넣었다. 나는 그냥 쓰라고 했는데, 아내는 꼭 통장에 입금시키고는 했다. 그렇게라도 내가 돈을 벌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슬퍼질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그 시절의 지금도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자기가 아는 학자 중에서, 이렇게 밑바닥을 돌면서, 사람들의 문제를 진짜로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 시절에 아내와 외국에서 좀 길게 체류하는 일들도 몇 번 있었다. 우리의 문제를 보고, 외국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나, 그렇게 외국에 있다가, 그런 시절이 꽤 길게 지나갔다.

 

그 고민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때, 책을 내기 시작하고, 강연은 정리를 했다. 더 하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4.

지금도 가끔 강연을 하기는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책 나왔을 때 출판사에서 부탁하는 몇 번 정도다. 그 외에는 안 한다. 할 얘기는 책에 다 썼고, 그걸 일일이 다니면서 소개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 팔리면? 그만이다. 내 능력이 거기까지니까, 아니면 그만이다.

 

그래도 꼭 강연을 하려면?

 

이제는 명분이 필요하다. 어려운 시민단체나 정부기관에서 꼭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일부, 지역의 사회적 경제 관련 단체나, 이 정도, 아니면 가끔 대학. 다른 데에는 나에게 명분이 없다.

 

50이 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명분 없는 일은 절대로 안 하려고 한다. 길게 보니까, 남는 건 명분 밖에 없다.

 

너는 돈 안 필요해? 가끔 나에게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하는 일들만으로도, 넉넉하지는 않아도 식구들 세 끼 먹고 사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다. 강연으로 가끔 받는 돈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아주 어려웠던 잠깐을 제외하면,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공부한 것은 아니다. 살기 위해서 가끔은 돈이 필요하니까, 나도 돈 버는 일을 조금씩은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을 사람들에게 얘기하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서로 슬퍼지는 일이다.

 

별 큰도 아니고, 슬퍼지기만 하는 일을 왜 해?

 

5.

가끔 강연 부탁이 오면서, 이것저것, 주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해는 간다. 어차피 아는 건데, 약간만 수정해서 이렇게, 저렇게

 

이해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학자는, 지식의 최전선에 사는 사람이다. 요 몇 년, 내가 그런 경험을 가끔 한다. 내가 모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물어볼 데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야 한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살았다.

 

지난 몇 달, 내가 나에게 했던 질문이며 동시에 다짐인 얘기가 있다.

 

앞으로 9년 후, 어떤 주제가 가장 중요한 정책적 질문이 될까? 9년 후면, 개헌 등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다음 대선 직전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이 그거다.

 

앞의 책들을 보면, 보통 책 낸지 7~8년 정도 되면 대중적 주제가 된다. 그 순간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최첨단인 것처럼 보인다. 미세먼지의 경우는, 10년도 넘은 후 그 주제가 대중적이 되었다. KBS 했던 미세먼지 강연이 그랬다.

 

보이는 건 그렇지만, 실제로 그 문제를 뒤지고 고민하던 시점은 그 한참 전이다. 지금부터 내가 붙잡고 씨름하는 주제들이, 10년 후 한국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공부한다. 아직까지는 그랬는데, 지금부터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각오로 하루를 산다.

 

물론 나도 아주 나이를 먹으면, 예전에 한 것들을 반복하고, 재해석하면서 말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오면, 애들 돌보거나, 3살짜리 애들 '기저귀 교실' 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뭔가 있는 척, 옛날 얘기를 들척거리면서 '잘난 척',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놀고 쉬면 된다. 뭘 잘 모르고, 더 이상 최전선에 서 있지 않은데, 남들 앞에 서는 것, 학자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12월부터 당분간 강연을 안 하기로 결정을 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집안에 있는 일상으로 돌아갈 필요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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