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기>, 마무리 준비하며 메모

 

1.

지난 해 있었던 총선은, 아마도 지난 10년 동안 내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사건일 것이다.

 

둘째가 아팠고, 총선일을 경계로, 내 삶은 많이 바뀌었다.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아갈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하던 일들을 내려놓았다. 둘째 아이가 많이 아프고, 연거푸 폐렴으로 입원한다는 것 외에는 정해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총선이 끝난 다음 날, 제일 처음 만난 사람이 류승환 감독이었다.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냥 약속을 잡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뿐이다.

 

그는 그 때 <군함도> 크랭크인을 준비하면서 아주 바빴고, 나는 아무 할 일이 없어서, 진짜로 간만에 한가했다.

 

하여간 그 때 했던 얘기 중에 사기꾼 얘기가 있었다. 우여곡절을 거치고 또 거치다 보니까, 그 얘기가 씨앗이 되어서 자라난 얘기가 <국가의 사기>라는 책이다.

 

2.

처음에는 별로 이 책을 열심히 할 생각이 없었다. 동기도 별로 없었고, 목표점도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알게 된 일이 있다.

 

나는, 다단계를 진짜로 싫어한다

 

다단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아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좀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나는 다단계도 싫어하고, 다단계 권유하는 사람도 싫어하고, 다단계 권유하는 사람도 싫어한다. 한 마디로, 진짜로 싫어한다.

 

영혼 깊은 곳에서 혹은 무의식 깊은 곳에서부터, 나는 다단계를 싫어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단계에 대한 얘기들을 골격으로 하는 책은, 나는 쓸 생각도 없고, 쓸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뭘 싫어하는지, 이렇게 진지하고 깊이, 몇 달을 걸쳐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진짜로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뭘 싫어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약간은 좀 알게 되었다. 깨달음, 뭐 그런 수준은 아니지만, 나도 잘 모르던 내 안의 생각들을 나도 좀 알게 되었다.

 

나는 다단계를, 정말로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싫어한다

 

3.

그 다음은 비교적 순탄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몰라도, 뭘 싫어하는지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렇게 살고,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으면 뭘 좀 알까? 알긴 뭘 아나결국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자신과 자신을 구성하는 구조에 순치되거나, 약간 저항하는 척하다가 끌려 가거나, 그런 둘 중의 하나의 삶을 살게 된다.

 

어쨌든 책을 고민하면서, 내가 뭘 그렇게 싫어하는지, 약간은 알게 되었다.

 

매듭을 풀 첫 실마리를 찾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약간은 기계적인 일이 진행된다.

 

4.

만약 아이들 보면서 작업해야 하는 조건이 아니라면 <국가의 사기>는 아마도 대선이 끝나고 여름에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대선 이후 몇 달을 지켜보면서 내 생각도 좀 변하였다.

 

, 이거 아닌가벼

 

처음에는 200페이지 안팎의 팜플렛 형식의 책을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400페이지를 많이 넘지 않은, 약간 두꺼운 책이 되었다.

 

400페이지? 지금 추세로는 그것도 넘기게 생겼다.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제 거의 마무리한 2장만으로도 어지간한 300페이지 책 하나 나올 분량이다. 이 흐름대로 가면, 500페이지는 가뿐히 넘고, 그대로 밀고 가면 600페이지도 넘게 생겼다.

 

잠시 호흡을 다듬고

 

3장과 4장을 조금 슬림하게, 절을 딱 반으로 덜어내고

 

1장 시작하는 세 개 정도의 절을 일단 날리기로 했다. 정 필요한 내용은, 별도로 나중에 쓸 서문에 일부 살리고.

 

국부론의 <자연이자율> 얘기가 처음에는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는데날리기로 했다.

 

3, 4장에서 결론과 대안을 써야 하는데, 이미 너무 많은 분량을 1, 2장에서 해먹었다. 잠시 구조조정.

 

5.

1장은 개인은 왜 속는가, 그런 제목을 가지고 있다. 2장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그리고 3장과 4장에서 결론과 대안을 이야기하는, 그런 구조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4장 구조의 책을 아주 선호하게 되었다. 4장일 필요는 없는데, 그렇게 쓰다보니까, 그런 구조가 제일 편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제목은 '국가의 사기'지만 별로 음모론적인 책은 아니다. 내가 또 별나게 음모론을 싫어하기도 하고. 구조 분석과 조직 분석에 더 가깝다. 클랜 개념을 새로 만들었고, 이념 현상이라는 용어를 별도로 정의하였다.

 

해보지 않은 분석인데, 필요한 단계마다 필요한 개념을 만들고, 그렇게 오다 보니까, 이 작업이 은근 재밌다.

 

출판사나 에디터에서는 이 책이 나의 대표작이 될 거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한국에 대해서 아는 얘기들을 거의 다 털어내기도 했고, 또 내 무의식까지 탈탈 털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얘기들만 쓰는 중이다.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별로 목숨 걸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뺐다. 남은 얘기들은목숨 걸 가치가 있는, 그 정도로 문제 있는 것들 것.

 

하여간 이제 반환점을 돌고, 마무리 국면으로 들어간다.

 

3장의 한 개 절 정도, 4장의 한 두개 절 정도, 넣을지 뺄지 고민 중이다.

 

그리고는 달릴 것이다. 구조를 잡고 기본틀을 잡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아고고, 애들 보면서 뭔가 하는 게, 진짜로 힘들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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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마피아 겨우겨우 끝냈다. 클랜편에는 이제 두 개 남았다. 교육 문제와 과학 분야. 교육 토피아와 박사들의 클랜, 요렇게 이름을 붙였다. 원래도 r&d 분야 넣을 생각이었는데, 최근에 청와대의 과학계 인사 보고 조금 충격 먹었다. 이게, 뭐가 이래. 도대체 반성이라고는, 끌끌. 처음에 국가의 기본 시리즈 구상할 때에는 11권에 '과학과 기술의 경제학'이 들어가 있었다. 이래저래, 사세 불리하야, 흐지부지... 그 얘기를 절 하나에 쑤셔넣을 생각이다. DJ와 노무현 때에 과학기술은 잘 된 거 아냐? 도대체 누가 그런 신화스러운 얘기들을 만들어내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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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아빠의 한푼두푼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가?

곤히 잠든 아이들 보며 공적 영역의 사랑을 생각하다.

제1177호
등록 : 2017-09-01 22:11 수정 : 2017-09-0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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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고 잠든 4살·6살 형제. 우석훈

나는 4살·6살, 두 아이의 아빠다. 밤 11시, 아이들이 잘 자는지 방에 들어가보았다. 형과 동생, 엉망으로 누운 두 아이가 손잡은 채 자고 있었다. 다른 집 아이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가끔 손을 잡고 잔다. 돌 지나 자녀를 따로 재우고 각방을 주는 미국식 육아에선 보기 어려운 모습일 것이다.

손잡고 자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래도 세상이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낮 시간에 두 형제가 늘 행복하고 편안한 모습만 연출하는 것은 아니다. 형은 자기 장난감을 동생이 만지지 못하게 고집을 피우고, 동생은 손에 쥔 것을 다시 안 빼앗기려 안간힘을 쓴다. 이따금 갈등이 격렬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아이들에게 손들기 벌을 세운다. 이렇게 형제는 티격태격하며 가장 친한 친구로 나이 들어갈 것이다.

사람의 삶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나뉜다. 사적 영역을 움직이는 최대의 힘은 여전히 사랑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적 영역을 움직이는 힘은? 한쪽에 돈과 권력이 있고, 다른 한쪽에 정의와 올바름이 있다. 그리고 가끔 재미와 관련된 것이 있다. 지난 10년 동안 방송 포맷으로 자리잡은 그룹토크, 일명 ‘떼토크’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선에서 재미를 추구한다. ‘공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공과 사의 경계는 모호하고 때로 그것이 숙명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공적 영역에서 우리는 정치, 부당한 권력, 인권과 생태의 문제, 분단 조국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일은 드물다. 공적 영역에서 이뤄지는 사랑 이야기는 국가나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 즉 애국심이나 향토애인 경우가 많다. 애국심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지난겨울 등장한 ‘태극기집회’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고향에 대한 사랑은 새만금 개발처럼 지역 ‘숙원 사업’ 형태로 종종 등장한다. 이것들은 공적 자리에선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삶의 공간에선 그리 간단치 않다. 한겨울 헌법재판소 앞에 선 ‘태극기 할아버지들’ 무리에 나의 아버지가 계셨다. 언젠가 지금 손잡고 자는 저 두 아들이 나에게 ‘급진좌파’ 혹은 ‘생태근본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른다.

21세기 들어 경쟁에 대해 무수히 많은 담론이 벌어졌다. 시장주의가 더 강해지면서 경쟁의 효용성 등 위험한 주제를 논의하게 된다. 그러나 경쟁의 또 다른 축인 사랑에 대한 얘기는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질문해본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가? 지난겨울 촛불집회가 끝나고, 대선을 치렀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과연 증오·대결하는 시대를 종료하고 더 많이 서로 사랑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가? 끔찍하게 퇴행적인 시대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우린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해야 한다. 미워할 이유를 성토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부었던 시대를 지나, 서로 사랑할 이유를 더 많이 얘기하는 공적 영역이 되었으면 좋겠다. 손잡고 잠이 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해보는 생각이다.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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