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레이버2

영화 이야기 2017. 3. 22. 11:20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7편의 영화를 며칠에 걸쳐서 봤다. 2014년에서 2015년, 2년에 걸쳐서 영화 7편이 만들어진 거였다. 딱 둘째 애 태어나고 세 살 될 때까지 그리고 내가 뭐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던 그 시절에 만들어진 거였다.

봄이 오고, 둘째 아픈 것도 한시름 놓고 나니까 제일 먼저 한 게 실사판 레이버 영화 찾아본 셈이다. 그 동안에 정신이 없어서 이런 거 있는 줄도 몰랐다.

오시이 마모루가 신이라들 하는데, 진짜로 신 맞는 것 같다. 공각기동대는 매트릭스를 비롯해 수많은 얘기들의 원형이 되었다. 그 정도 하면 어느 정도 한 생에서 해야할 정도의 일은 다 한 거다. 그 반에 반에 반에 반도 못하고 그냥 삶을 낭비하게 되는 게 삶이다.

흔히 하는 말로, '한 바퀴 더' 돈다고 한다.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라는 이 복잡한 제목의 시리즈가, 진짜로 한 바퀴 더 돈 얘기이다.

내 입장에서는 공각기동대보다 더 재밌다. 공각기동대의 최근 시리즈도 봤다. 처음 공안9과가 만들어지는 그 배경에 관한 얘기들이 최근에 다시 하고 있다. 소령이 아직 소령이 아니던 시절...

패트레이버의 특차2과는, 그보다 설정이 훨씬 더 재밌고, 우리의 삶과 더 밀접하다. 그리고 '잉여'와 공무원 사이의 긴장 관계가 더 팽팽하다.

공각기동대는 앞으로 올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전뇌가 더 발달할 것이고, 더 많은 것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설정되어 있다.

패트레이버는, 이미 경쟁에서 밀려버린 기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레이버, 이제는 아무도 만들지 않는 두 발로 걸어다니는 게다가 사람이 타고 조용해야 하는 로봇, 경쟁에서 졌다.

언젠가 퇴화하게 될 기술, 이건 지금 우리의 얘기이다.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이 짧으면 10년 길면 20년 내에 사라지게 된다. 그래도 남을 것과 남지 않을 것, 그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오사이 마모루의 얘기는, 그렇게 경쟁에서 애당초 밀려버렸지만, 아직은 문을 닫지 않은 집단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직이지만, 결코 한가하지는 않은.

며칠에 걸쳐 보면서, 진짜로 몸 세포 구석구석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해리포터, 그런 세계적 빅히트를 친 연작 시리즈들을 아주 재밌게 봤다. 그런 얘기들은, 대부분 내 얘기는 아니다.

Man of the West...

반지의 제왕의 마지막 전투에서 나오는 대사다. 아주 격론이 붙었던 대사다. 그래, 너희는 서양 넘들이고, 저 중간계 한 쪽 끝의 나쁜 넘들은 동양인이라 이거지.

아무리 보편주의, 범용적 감정을 얘기해도 내 얘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는, 딱 우리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 조직, 공기업, 그 중간중간에 잉여 부서들이 있다. 한직, 그렇지만 결코 한가하지 않은...

박근혜와 함께, 한국 자체가 한가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미국에 끼고 중국에 끼고. 전혀 남의 나라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앞으로 뭘 해야할지, 아니 어떻게 해야할지, 좀 방향이 잡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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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실사판은 편이 있다. 공교롭게, 7편부터 봤다. 그리고 한 편을 더 봤는데, 이게 뭔가, 잘 이해를 못했다.

원래 패트레이버는 극장판은 전부 dvd를 가지고 있고, 그 외에도 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찾아봤었다.

주말 내내 애들한테 시달리다가 그 주말의 마지막, 일요일 밤에 아이들 재우고 넥스트 제네레이션 1편의 에피소드 0을 봤다.

뭐지? 이 익숙하고, 오래 전부터 내 피부였던 느낌은?

나중에 보니 감독이 오시이 마모루, 공안 9과의 얘기를 극장으로 옮긴, 바로 그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였다.

영화를 보면서, 아니 책이든 소설이든 아니면 시든, 어떤 얘기라도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본다.

98년이었던 것 같다. TV판 에반게리온을 처음 봤을 때, 그 느낌과 유사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강렬했다.

수 년 아니 수십년 동안 잠자고 있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깨어나는 느낌?

내용상 유사한 것은, 2000년인가, <춤추는 대수사선>을 봤을 때...

그 때의 강렬함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자라서, 몇 년 후 결국 공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2.
넥스트 제네레이션 시리즈의 백미는 1편이 에피소드 0이다. 에피소드 제로, 이걸 봐야 그 뒤에 이어지는 허무 시리즈의 줄기가 잡힌다. 나도 이걸 안 보고 뒤의 얘기를 먼저 봤더니, 도통 뭔지 감을 못 잡았다.

얘기는 한직에 관한 얘기이다. 한직이기는 하지만, 진짜로 한가하지는 않다. 두 개의 레이버를 운용하기 위해서 3명씩 두 조, 그 두 조가 24시간 비상 대기한다. 물론 비상 상황은 몇 년째 벌어지지 않는다.

편의점을 딱 두 명이 운용하는 것과 같다고 영화는 설명한다.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바쁘기는 겁나게 바쁘고, 비상 운용체계이다, 몇 년째.

<춤추는 대수사선>이 헤이세이 공황 이후의 일본 관료의 고민을 담고 있다면,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도 마찬가지다. 대수사선에서는 일선서의 애환과 본청 사이의 갈등이 중심이다.

패트레이버는 더 하다. 일선에 있는 경찰서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레이버는 이미 기술적 실패에 대한 논쟁이 끝난 상황이라 - 필요없다고 - 부처가 언제 해체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무의미하지만, 최선을 다 한다...

울 뻔했다. 그리고 조금은 울었다.

난 늘 한직에 있었다. 대기업에 있을 때나, 정부 기관에 있을 때나, 심지어는 연구원 부원장을 할 때나, 늘 한직이었다.

그런데 한직이 한가하지는 않았다. 그런 걸 뭐하러 하느냐는, 남들의 관심 밖에 있는 일들을 했는데, 언제 부서가 없어질지 몰라서 진짜로 죽어라고 밤새고 일했다.

한직이 가끔 바빠진다. 회장 보고 할 때, 장관 보고 할 때 혹은 대통령 보고 할 때, 밤 샌다.

영화 에피소드 2는, 이 한직이 가끔 바빠지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무의미하지만, 안할 수는 없으니까 밤을 새는...

장관 보고로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장하준 교수의 아버님께서, 장관이 되어 상관으로 모시던 시절이 있었다. 겁나 밤 샜다. 장관이 바보면 바보라서 밤 새는 게 힘들고, 바보가 아니면 바보가 아니라서 또 힘들고.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무의미한 일이다.

3.
내 삶은 전체적으로 '한직'이 딱 맞는다. 늘 한직에 있었다. 환경, 에너지, 이런 게 전형적인 한직이다. 아, 그렇다고 해서 바쁘지 않은 건 아니다. 여의도에서는 연구직, 이게 전형적인 한직이다.

지금은?

지금도 한직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 키우고, 기저귀 갈고, 동화책 읽어주고, 빨래 개키고, 그런 데 쓴다.

한직이라고 안 바쁜 건 아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본은 90년대 이후 계속 공황이다. 그러다보니 공직과 대기업의 구호와 위상 그리고 내부적 논의가 많이 바뀌었다.

일상의 한직화?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시리즈가 딱 그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화될 가능성 제로,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이 얘기를, 아 딱 내 얘기도, 그렇게 받아먹을 사람들이 있다.

에피소드0을 보면서, 몸 안에 수 년 동안 잠자고 있던 세포들이 막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오 예, 한직. 이게 나의 가장 익숙한 정체성이다. 나, 이런 거 좋아, 딱 좋아.

4.
몇 년째,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 앞에 섰는데, 마땅한 답을 못찾았다.

패트레이버 에프소드 0을 보면서 이 질문에 답을 찾았다.

한직.

공각기동대의 공안9과보다 훨씬 내 삶에 싱크로율이 높은 특차2과 얘기, 진짜 재밌다.

딱 작년 요맘 때, 류승환 감독이랑 사기꾼 얘기를 하면서 '경제 사시꾼'이라고 가제를 잡아놓은 책이 있었다. 출판사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사기'라고 약간 바뀌었다.

어떻게 풀지, 큰 기둥이 세워지지 않아서 계속 미루고 있던 책이다.

한직, 이 생각이 들자마자, 사기꾼 얘기의 주요 줄기들이 딱 맞춰졌다.

오 예, 구성 끝...

점심 때 이 책의 에디터 만나서 밥 먹었다.

이보 보행 로봇이 왜 시대에 뒤떨어졌는가? 인간의 바보 같은 생각...

재밌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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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책의 마지막 절은 '신들의 경제' 정도의 제목을 달고 종교 얘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종교 얘기에 얽히는 게 귀찮기도 하고, 또 몇 년된 정보들을 다시 최근형으로 업데이트 할려면 에고고...

그래도 마음을 먹은 것은, 내가 왜 책을 쓰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내가 책을 쓸까? 모른다. 올해까지는 쓸 것 같고, 내년은 나도 모른다. 수 년에 걸쳐 이것저것, 출판사와 계약된 책들은 올해 다 끝난다. 내년에는 출간 계획이 없다. 2005년부터 시작해서 출간 계획이 없는 해는 내년이 처음이다. 갑자기 마음이 엄청나게 바뀌지 않으면 내년 출간계획을 따로 잡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쓸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

모르는 게 흠은 아니다.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다 예상할 수도 없다. 모르는 게 흠은 아니지만, 모르는 데도 아는 척하는 것은 흠이다. 다음 정권은 어떻게 될까? 모른다. 잘 하기를 바라지만 잘 할지 못할지, 모른다. 어떻게 될지 미리 예상하고 설정할 수는 없다. 급격한 변동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그러니 미리 예상을 하고, 출간 일정을 세울 수는 없다.

입문서나 청소년용 책, 그런 가벼운 책에 대한 요구를 많이 받는다. 사회과학 방법론에 대해서 딱 한 번 입문서를 쓴 적이 있다.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처음 책 쓰기 시작하면서, 입문서를 쓰거나 좀 더 대중적으로 편안한 책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책 쓰는 일을 내려놓겠다고 나하고 했던 약속이 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책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방가르드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물론 그렇게 아방가르드처럼 살지도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경제라는 주제를 다루는 내 입장은, 가장 첨예한 전선, 바로 그 대치점 맨 앞에 서 있을 거 아니라면 안 다룬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게 치열한 전장 한 가운데 어딘가에 서 있지 않을 거라면, 굳이 경제학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필요도 없고, 그걸 또 어렵게 많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책으로 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만큼은 지금도 변한 것은 없다.

삶은 지난 10년 동안 많이 변했다. 한 때 시민운동의 상근활동가였고, 연대 조직의 사무국장도 했다. 현장 한 가운데에서 살았고, 늘 내 몸은 전국의 현장 어딘가에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더는 현장에 서 있기가 어려워졌다.

맨 앞에 있는 치열한 얘기들 혹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논의되지 않짐나 궁극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별 재미는 없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내가 책을 쓰고, 시간을 들일 이유는 없다.

종교와 경제, 전격적으로 한 권으로 다루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늘 치열한 현장에 서 있었다,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사회적 경제의 마지막 절은 종교 얘기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이럴 생각이다. 치열한 얘기 아니면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다. 언제부터인가, 책 한 권 낼 때 연구조사 등 내가 쓰는 돈이 더 많아졌다. 내 책은, 준비하는데 돈 많이 들어가는 책이다. 그만큼 치열한 얘기니까, 내 돈을 써가면서 연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거라면, 논쟁을 피하거나 숨어가면서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간만에, 내가 왜 책을 쓰는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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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 가장 큰 일이 있다면, 1995년 BBC 드라마로부터 시작한 일종의 다시 연대기를 거의 한 바퀴 돈 것이다. 드라마도 다 봤고,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도 다시 몇 번씩 돌려가면서 봤다. 심지어 <킹스맨>도 봤다. 다아시, 바로 콜린 퍼스의 이야기이다. 브리짓 존스 3편이 작년에 나왔으니까, 95년의 BBC 드라마부터 물경 20년간 다아시는 콜린 퍼스가 했었다. <킹스맨>의 극중 캐릭터 이름이 다아시가 아닌 게 서운할 정도였다. 그 때 방한한 콜린 퍼스의 인터뷰 방송까지 찾아서 봤다.


다아시 혹은 콜린 퍼스, 이 얘기는 다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까지 이어졌다. 원래 소설이 있고, 소설 역시 엄청 히트쳤다고 들었다. <오만과 편견> 패로디는 엄청나게 나왔고, 아직도 나오는 중인가 보다. 다아시를 엄청 좋아하거나, 영국 B급 코메디, 소위 화장실 유머를 그닥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 돈 들여서 이런 영화를 왜 만들었어, 캐 박살 날 영화다.


<고무 인간의 최후>를 끝까지 볼 수 있는 사람에게 다아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좀비 영화는 아무 것도 아니다. <고무 인간의 최후>를 만든 피터 잭슨이 뉴라인시네마에서 <반지의 제왕> 만든다고 했을 때, 배신이라고 한바탕 난리들 났었다. 대중적인 감성은 아닐지 몰라도, <고무 인간의 최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름 폭넓게 존재한다.


나는 <고무 인간의 최후>를 보았을 정도가 아니라 DVD로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이건 간만에 엔돌핀 팍팍 돌게 하는, 도대체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출발했는가, 나의 감성의 기원에 관한 영화이기도 했다.


그래, 저 장면에서 바로 "19세기 영국에서는...", 이렇게 역사 왜곡 들어가야지, 갖다붙이기, 그래 바로 저거야. B급 정서에서는 은유와 직설, 이런 게 탁탁 들어가면서 "그래, 저런 게 순실이야", 요 정도로 바로 꺽고 들어가줘야 한다.


원작에서 백작부인 캐서린 드뵈프 매우 강직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나온다. 물론 하는 역할은 좀 그렇다 싶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는 와중에서도 나름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리하여 결코 밉지만은 않은 캐릭터이다. 캐서린 여사와 엘리자베스의 논쟁, 이 밀리지 않는 최강의 여상 캐릭터 둘의 설전이 원작에서는 클라이막스에 해당한다.


좀비판 오만과 편견에서는 캐서린 여사가 아예 영국 최강의 여전사이며, 사상최대의 좀비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초강력 캐릭터로 나온다.


오 예, 캐서린 드푀프, 이 정도 해줘야지! 거럼 거럼, 원작을 정말 충실하게 잘 해석했다니까! (이 장면을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나말고 동아시아에 또 있을지는 모르겠다.)


심지어는 캐서린 여사는 애꾸눈 안대까지 하고 나온다. 오 마이 갓! 혹시나 모르고 그냥 넘어갈 관객을 위해서 짚고 넘어간다.


"안대는 기능성이예요, 패션이예요?"


"당연히 기능성이지."


19세기 영국 사교계 여성들의 과장스러울 정도의 패션이 나름 기능성이었다는 꼼꼼함, 이 장면에서 문득 그 시대를 살았던 경제학자, 톨스타인 베블렌을 연상.


영화 시간 대에 집어넣기 위해서 중요한 장면들은 많이 스킵하고 넘어가지만, 결정적 장면들은 대부분 살렸다. 아, 이런 패로디 소설이나 영화를 볼 사람들은 이미 원전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 그냥 보면, 다아시가 도대체 왜 강물에 뛰어들어? 그 날이 엘리자베스가 나중에 실제로 다아시를 사랑하게 된 첫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소감,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걸 다시 깨달았다.


비주류의 비주류,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감성과 느낌의 출발점이다. 비주류만 해도 벌써 주류 축이지, 뭐. 비주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진짜 축에도 못끼는. 그게 내 감성이고, 그럴 때 딱 좋다.


영화 <황산벌>에 악의 축에 관한 대사가 나온다. 그리고 곧 이어,


"이런, 축에도 끼지 못하는..."


난 이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이 감성이 딱 좋다. 한국에서는 영국식 B급 코미디, 축에도 못 들어간다. 90년대, 2000년대, 프랑스의 극단적 예술영화와 영국식 B급 코미디 그리고 간간히 나오는 이해 난이도 너무 높은 독일 영화, 이런 게 헐리우드가 싫으면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그 시절에는 일본 문화가 수입금지라서, 일본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 때부터 나는 B급 영화, 그 중에서도 화장실 유머 범벅이고, 도대체 왜 만들었을까, 기획의도 같은 게 잘 안보이는 영화들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렇게 살았다.


유학은 왜? 목표, 그딴 거 없었다. 그냥 되는 대로 살고, 흐르는 대로 흐르고, 가끔 수틀리면 팍 개겼다. 입 다물고 살지만, 가끔 개기는 일도 안 하지는 않았다.


그 시절에 내 피에 흐르는 극단적 비주류 감성, 오 예,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이걸 보면서 다시 살아났다.


도대체 이런 걸 왜 만들었어? 너는 다아시 다시 한 번 안보고 싶어. 네네, 보고 싶어요, 소희 선생님 (둘째 아이의 작년 담임이신데, 새학기 들어 담임이 바뀌니까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요즘 난리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거, 다 맞다고 할 때, 아니 난 그냥 딴 거 할래요, 이런 축에도 못끼는 사람들의 많이 가볍고, 약간 저질스러운 정서, 이게 그냥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에는 이런 캐릭들이 많이 나온다. 간만에 긴장 풀고 편하게 영화 봤다. 딱 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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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 어린이집에서 요즘 "박근혜는 퇴진하라", 요게 놀이로 꽤 인기를 끈다. 거짓말 할머니(=최순실) , 대통령 할머니, 이런 용어로 어떤 일이 돌아가고 있는 중인지, 기본적인 설명은 해주었다. 요 '거짓말 할머니'라는 용어도 어린이집에서 유행이다.

둘째가 워낙 호흡기가 안 좋아서, 촛불집회에 한 번도 데리고 가지 못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쨌든 6살짜리 반에서 "박근혜는 퇴진하라", 그런 놀이가 한참인다. 큰 애는 이 말 뜻을 못 알아들었다.

"박근혜는 돼지 나와라, 박근혜는 돼지 나와라."

집에서 이러고 있다. 촛불집회 구경 못시켜준 아빠 잘못이다, 돼지 그만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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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토요일 점심, 아내와 아이들이 외출한 이후, 동네 식당에서 혼자 육개장을 먹었다. 특이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메뉴, 간만에 혼자 먹는다는 것 말고는 정말로 특이할 게 없다.

그래도 오늘 점심은 진짜로 특이했다.

어제 박근혜 탄핵이 있었다. 판결문은 생각보다 어조가 강했고, 전원일치로 판결이 나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간만에 아무 걱정이 없는 날이었다.

지난 10년간, MB 이래로 늘 걱정이 마음 한 구석에, 그야말로 '램상주' 프로그램처럼 상주하고 있었다. 그게 없는 첫 날이었다. 정말이지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일들은, 그냥그냥 잘 된다. 어려운 고비들도 많았는데, 이렇게 저렇게, 고비들을 조금씩 넘기고 이제는 자리를 잡아간다. 그렇다고 무슨 엄청난 변화가 생기고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세 끼 밥 먹고 살 걱정까지는 없다는 정도...

DJ가 당선되고는 기쁘다고 할 수가 없이, IMF 경제위기 한 가운데였다. 나는 별 일 없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워낙 힘들어서 기쁘다는 생각 자체를 가질 수가 없었다.

노무현의 당선 때는 어땠을까? 며칠 기뻤다. 아주 잠시. 그리고 인수위 명단 보던 순간부터 마음이 확 잡쳤다. 아니나 다를까, 인수위 뒤로 흘러나오는 온갖 잡소리, 거기에 첫 인선들.

내가 정부에서 더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정부 출범한 다음 주 사직서를 냈다. 아직 결혼하기 전인 아내에게 내가 그만둘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몇 주 걸렸다. 실제로 결혼은 그 후 1년 후에 했다.

가끔 그 시절 얘기를 하면, 노무현 정부 사람들이, 그렇게 알았으면 얘기를 좀 해줘야 했었을 것 아니냐, 내 탓을 한다.

난 그냥 실무 팀장일 뿐이다. 그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그렇다고 비선 따라따라 더 위에 "이건 아니다", 그렇게 말할 상황도 아니고.

MB가 되었을 때, 뭐 우리는 바보가 아니니까 그 몇 달 전에는 알았었다.

좃됐다...

이 생각이 들었다.

근혜가 되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하나다.

도닦자...

다음 날 사놓고 방치되었던 유모차 조립을 했다. 큰 애 태어난지 4개월째 일이다.

MB가 당선되기 직전, 가장 친한 친구가 암으로 죽었다. 오늘 혼자 밥 먹다가 든 생각이, 딱 그거다.

이재영, 참 아깝다...

근혜가 탄핵되기 몇 달 전, 한 살 위의 선배가 암으로 죽었다. 스트레스가 과하면...

노무현 시절에 정부연구소 원장하다가 MB 때 '코드인사' 한다고 쫓겨난 선배도 몇 달 전 암으로 죽었다. 화만 내다 인생의 마지막을 한 번도 웃어보지 못하고...

정말로 아무 걱정 없는 순간, 어른이 되면 그런 순간이 몇 번 없다. 그리고 지난 10년, 아무런 걱정도 없는 순간이 정말로 단 한 번도 없었다. 걱정이 아주 많거나, 그나마 걱정이 좀 줄거나, 그렇게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살았다.

앞으로도 걱정스러운 일이 또 생겨날 것이다. 새로 출범할 정부가 잘 한다는 보장도 없고, 또 그냥 잘할 것이라고 멍하니 보고만 있기도 그렇다.

그래도 미래의 걱정까지 당겨서 미리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제의 걱정이 어제 끝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또 걱정이 생기고, 또 조바심낼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 때 가서 고민하려고 한다.

혼자 앉아서 먹었던 육개장 한 그릇, 정말로 아무 걱정 없이 밥알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하면서 먹었던 밥, 진짜로 오랫만이다.

벌써 20년 전이다. 학위 막 끝내고 한국에 오기 전, 잠시 별 걱정없이 그냥 편안하게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막 학위 받고 제일 처음 제안받은 자리가 아시아 WTO의 아시아담당관이었다. 파리 생활을 7년을 했는데, 또 제네바에서 직장생활을?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그냥 서울에 왔다.

그 시절, 큰 걱정이 없었다. 시드니와 싱가폴 같은 데에서도 제안이 왔는데, 그냥 편하게 살래요, 그렇게 하고 서울에 왔다.

그 이후로는? 진짜로 걱정 없는 날이 거의 하루도 없었다.

내가 오늘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가?

며칠 전에 받아놓은 강석훈 선생 전번을 만지작 만지작거리면서 차나 한 잔 하자고 해볼까, 말까, 그렇게 다른 사람을 다 챙길 정도다.

그 양반한테 개인적으로 고맙다고 해야 할 게 좀 있다. 오래된 것도 있고,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도 있고. 1년 반 전인가, 국회에서 만나서 소주 한 잔 하자고 서로 신신당부했었다.

그리고는 쪼르르, 나는 아기 아파서 집으로 왔다. 그 양반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갔다. 이 난감한 시절, 소주 한 잔 마시자고 얘기하기가 좀 그랬다. 순실이 파동이 날 줄, 그 때 그가 알아겠는가? 나도 잘 몰랐다.

대통령 직무정지 그리고 탄핵, 그 시간에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지내는 게 어떤 마음일까? 그래도 위로를 좀 해주고 싶었을 정도로, 내가 오늘은 편한 마음이다. 진짜로 편안하게, 아무 걱정 없이 밥 한 그릇 먹었다.

살면서 진짜로 아무 걱정 없이 밥 먹을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몇 번 안된다. 이제 50, 어른이 된 이후로 편안하게 먹은 밥이 진짜로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리고 오늘이 갑 중의 갑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내일, 마음에 깊이 남을 편한한 한 끼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원없이 맘 편해도 되는 날, 인생에 몇 번 없다.

다행히 둘째 애의 거친 기침이 어제 조금 가라앉았다. 오늘은 편해도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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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불황 10년』 등 경제와 계층에 대한 통찰을 꾸준히 전해온 우석훈 박사가 자신의 땀이 녹아있는 육아 이야기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로 돌아왔다. ‘두 아이의 아빠가 내 정체성’이라고 적을 만큼 우석훈 박사의 삶은 이제 오롯이 아빠의 역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주말은 완전히 아이들과 함께 보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일을 줄여야 했다. 물론 그 역시 일을 줄이는 선택을 내리고 육아에 전념하면서는 조바심이 났다. 좋은 제안을 받으면 “마음이 하루에 세 번 바뀌”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수밖에.


“들어오는 일들이 있는데 ‘내년에 하면 안 되나?’ 생각해보거든요. 꼭 그때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에요.”라는 우석훈 박사의 말은 자신을 ‘보조양육자’라고 칭하면서도 ‘양육자’에 방점을 찍어둔, 자신이 다른 누구도 아닌 ‘아빠’라는 사실을 단단하게 의식한 사람의 말이었다. “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소득을 줄이고, 연봉을 포기하고, 아픈 둘째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갖는 길을 택했다. 다른 부모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들이 있을 것이다.(중략) 이건 내가 가진 문화적 취향이고 정서적 선택이다. 나는 매순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것을 선택하면서 살아왔다. 먼 훗날의 더 큰 행복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방식으로 살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먼 미래에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행복은 믿지 않는다.(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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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지불하는 몫이 너무 과하다


요즘 하루 일과가 어떤가요?

 

아침 8시 반에서 9시 정도에 일어나요. 세수만 하고 아이들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요. 그러면 10시가 조금 넘어요. 그때부터는 두세 시간 책도 보고, 글도 써요. 그렇게 오후까지 계속 있을 수 있으면 집에 있고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나와서 사람도 만나죠. 주말은 완전히 죽음이고요.(웃음)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까지는 완전히 몸으로 때우는 시간이에요. 그나마 요즘은 두 아이가 둘이서 놀기도 하니까 조금 편해졌죠. 이전에는 둘을 다 신경 썼어야 했는데요. 지금은 조금 먼 거리에 있어도 돼요. 둘이 친해졌거든요. 잘 놀아요. 점점 더 편해지겠죠.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는 육아에 관한 아주 꼼꼼한 기록입니다. ‘기록’의 의미가 많이 엿보이기도 하거든요.


이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영어 조기교육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선행학습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하는 이야기를 꼭 한 번 써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파서 경황이 없었어요. 이 책은 틈나는 대로 겨우 메모해둔 것들이에요. 육아일기는 쓸 수가 없는 거더라고요.(웃음) 앉아 있을 시간 자체가 없으니까요. 둘째 백일 지나서야 조금씩 쓰기 시작했죠. 지나보니 메모해둔 것들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책을 쓰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끝나고 나니까 이제 뭐하고 노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책이 두꺼워졌어요. 이대로 쓰면 두 권은 쓰겠더라고요. 많이 덜어냈어요.

 

앉아 있을 시간도 없다, 육아의 현실이겠죠.


게다가 두 아이가 같은 남자 아이라도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그러다보니 선호하는 것도 다르고, 기저귀 떼는 방식도 다르고요. 보통 일이 아니죠. 똑같이 하는데도 다르더라고요.

 

거듭 사회가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을 개인과 가정이 담당하고 있다고 문제제기 합니다. 특히 출산 장면에서 그랬어요. 이는 경험에서 온 것이기도 한데요.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숨을 못 쉬어서 집중치료실로 갔어요. 열흘 정도 입원을 했거든요. 첫째 때는 안 시킨 검사도 다 하고요. 검사 결과가 괜찮아야 퇴원을 할 수 있었어요. 보니까 병원비가 200만 원이 넘게 나온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출산하다가 생긴 일은 그냥 보험수가만 조정하면 되는 건데, 하고요. 어떤 경우에는 병원을 가야 하는데 돈이 무서워서 못 가는 일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병원비 부분은 그렇게 개선이 어려운 일은 아니거든요. 생각만 조금 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병원비를 내면서도 이런 비용은 괜히 지불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플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 그야말로 기본이잖아요.

 

몇 살 이전, 처럼 기준만 정하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이죠. 개인이 지불하는 몫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산후조리원도 그래요. 곳곳에 방치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조금씩 개선한다고는 하는데 경험하는 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느껴요.

 

국가의 출산 장려 정책이라는 게 탁상공론에 머무는 경우가 너무 많죠. 앞부분에서 첫 아이 지원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라고 적기도 했어요.


지역별로 지원정책이 다 있어요. 그것도 넷째, 셋째, 둘째, 첫째 순이거든요. 그런데 첫째 아이 지원 수준을 올리는 게 사실은 맞아요. 넷째는 아무도 안 낳거든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말이죠. 셋째도 낳으면 엄청 준다고는 하는데 그걸 위해서 셋을 낳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분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럴 바에야 첫째 아이에게 지원금을 많이 주는 게 출산율 상승의 효과는 있겠죠. 하지만 돈이 많이 들잖아요. 절대 안 하죠.

 

지금 한국 수준에서 출산/육아 정책 분야에 가장 해결이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병원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요. 약도 마찬가지인데요. 많이 쓰는 약은 보험에서 빼는 것 같더라고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좋아지는 것 같진 않아요. 이야기는 많은데 실제 육아하면서 느끼는 건 전혀 다르거든요. 어린이집 옮기는 것조차도 너무 힘들고요.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대학도 옮기잖아요. 초, 중,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어린이집만 안 돼요. 진짜 힘들어요. 일단 어린이집이 되면 아무 데도 이사 못 가요. 옮기려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니까요. 10% 정도 추가 정원만 허용을 해줘도 한결 나을 텐데 말이에요. 제도만 조금 손보면 될 일인데 답답하죠.

 

그렇게 안 하는 이유는 뭘까요?


현장과 동떨어진 곳에서 결정을 하니까 그렇죠. 이건 고도의 행정력을 발휘할 일도 아닌데(웃음) 말이에요. 반드시 예산이 필요한 일이 아니더라도 이런 것처럼 있는 것 안에서 조정을 하면 편해지는 것이 많아요. 야간 베이비시터 제도(공공 아이돌봄 서비스)가 있거든요. 하지만 대기 줄이 수천 킬로미터예요. 엄두도 못 내죠. 한두 번 알아보다가 포기했어요. 많은 것들이 명목상으로만 있는 거예요. 뭐가 되게 많긴 한데 보통의 경우 거의 해당이 안 되죠. 차라리 써놓지를 말든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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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다


제목에 우선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특히 육아에 있어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간다’는 말이 참 절묘해요.


한 다큐에서 본 거예요. 평생 해녀로 사신 할머니가 나왔는데요.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 끝에 나온 말이에요. 생활하는 입장이 다 똑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들 엄청나게 돈을 쌓아놓고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대부분 그럴 것 같아요. 돈이 있으면 있는 규모 안에서 먹고, 없으면 또 없는 규모 안에서 먹죠. 딱 두 배 나가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지낼 만하면 유모차가 망가지고요.

 

유모차부터 도시 문화까지 아우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경제학자 관점으로 본 육아, 생각할 부분이 많았어요.


한두 살짜리 아이에게 명품 브랜드 옷 입히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기억도 못할 때인데 말이에요. 그 아이가 커서 그 얘기해주면 좋아하겠어요? 그 돈 그냥 주지(웃음), 할 거예요. 그러느라고 지금 돈이 없다면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겠어요. 영어 유치원도 그렇더라고요. 우선 의미도 없고요. 아이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나중에 영어 하는 데 엄청난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대만은 우리 식으로 치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영어 과외 시키는 것을 금지시켰더라고요. 정말 영어를 가르치고 싶으면 영어 유치원 보낼 돈을 모아서 하와이로 몇 달 여행을 다녀오면 돼요. 그게 낫잖아요.

 

육아 산업은 절대 안 망한다고 하는데 ‘이것만큼은 꼭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자유로운 양육자가 얼마나 되겠어요.


육아 산업도 망해요. 연구하시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은 90년대 말에 알았다는 거예요. 출산율이 줄고 산업이 위축될 거라고요. 고심하다가 럭셔리 전략을 택했다는 거죠. 아이들이 줄어도 단가를 높이고, 브랜드를 차별화시키는 방식으로요. 90년대 말에 그렇게 이미 했다는 건데요. 그러니 럭셔리 전략에는 한계가 없는 거예요. 가격으로 차별화시키는 건 최근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걸 모두가 따를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아요. 돈은 벌기가 힘들지 쓰기는 쉽거든요. 저는 자녀에게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의미 있게 쓰는 게, 돈을 가지고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인 거죠. 돈을 부수면 다시 안 모이거든요.

 

갈등 장면이 많이 나오거든요. 가령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도 고민을 하죠. 양육자가 가지고 있던 가치와 배치되는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많잖아요. 육아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마주한 갈등의 순간은 언제였어요?


진짜 아이스크림은 안 먹게 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초콜릿 안 사줘요. 그러면 뭐 해요, 할아버지가 사주는데요.(웃음) 이번 생일에는 초코 케이크도 사줬다니까요. 하는 수가 없어요. 되도록 안 먹이고 싶지만 너무 원하면 어쩔 수 없더라고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 덜 먹게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잘 안 돼요.

 

그럴 때 어떻게 하세요? 계속 타협을 해나가는 건가요?


요즘은 자꾸 스마트폰을 보고 싶어 해요. 재미있는 것들이 워낙 많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스마트폰과 TV를 연결 시켰어요. 안 보여줄 방법은 없고, 작은 화면을 보면 눈에 안 좋으니까요. 며칠에 한 번 30분 정도 정해놓고 보여주는 거죠. 타협을 한 거예요.

 

생애 주기에 따라, 자녀의 성장 과정에 따라 고민 주제가 달라질 텐데요. 이것만은 절대 안 하도록 하고 싶다, 하는 것이 있으세요?


게임기를 사달라고 하는 날이 오겠죠. 지금도 게임기를 보면 너무 황홀하게 쳐다봐요. 진짜 고민이에요.(웃음) 모르겠어요.

 

강하게 기억에 남은 대목이 있어요. 식사를 하면서 ‘세상에 굶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부분이었는데요. 그 부분에서 양육자의 철학이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의 진실이기도 하고요. 시민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하는 부분이에요. 밥투정을 할 때 세상의 절반이 굶는다고 말하면 처음엔 잘 이해를 못해요. 왜 밥을 못 먹느냐고 되물어요. 설명을 해도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듣죠. 그래도 알아야 할 것들이 있죠. 모두가 우리 같은 것은 아니고,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투정하면 안 된다, 가르치는 거죠.

 

그런 영역이 많이 있잖아요. 식사 이외에 잘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가르치는 내용이 더 있나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는 하죠. 첫째는 최순실이 누군지도 벌써 알고 있어요. 계속 뉴스에 나오니까 묻더라고요. 거짓말을 많이 해서 사람들이 화가 났다, 맛있는 걸 자기 혼자만 먹었다, 사람들이 밥 먹으려고 줄 서 있는데 혼자 새치기했다, 얘기했더니 진짜 나쁜 사람이네(웃음) 하더라고요. 또 시장 놀이는 일찍부터, 세 살 쯤부터 했어요. 놀이처럼 하면서 교육도 되고요. 반드시 경제 교육이 아니더라도 가게가 무엇이고, 돈이 무엇인지는 일찍 가르친 것 같아요. 돈은 진짜 빨리 알았어요.

 

“고래 팔아요.”
“몇 마리 있어요?”
(중략)
우리는 그때부터 미끄럼틀을 ‘소중이네 고래 가게’라고 불렀다. 그 가게에는 고래가 세 마리 있고, 상어도 판다. 흥정이 끝나면 둘째는 주먹 쥔 손을 내민다. 고래를 팔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걸 받아줘야 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손을 펴서 다시 내민다. 돈 달라는 얘기다. 그 손에 돈을 주는 시늉을 하면 거래가 끝난다.(227-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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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지금은 버틸 수밖에


한 구절, ‘조바심은 인내와 기다림으로 바뀌었다’고 했어요. 여기서 질문이 떠오르더라고요. 육아로 많은 걸 희생한 듯한 느낌을 이야기했는데 실제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의 경우 대부분이 주양육자이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많이 할 테니까요. 박사님은 이런 느낌 앞에서 어떻게 마음 정리를 하셨어요?


버티는 수밖에 없겠죠. 답이 없거든요. 사회 분위기도 호의적이지가 않고요. 계속해서 개선을 하자고 하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텐데요. 당장 지금은 버틸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는 조바심이라는 게 못 먹는 떡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경우도 좋은 제안이 많이 왔었어요.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요. 마음이 하루에 세 번 바뀌더라고요. 안 간다고 해놓고는 다시는 이런 제안이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고요. 그렇지만 결국은 기다리는 마음인 거예요. 다음에 또 오겠지, 하고요. 어쨌든 당분간은 육아에 전념할 생각이거든요. 아이가 아프면 우선순위가 다 바뀌어요. 하는 수 없죠. 아이들은 금방 크니까요. 또 아이들 보는 게 재미있어요.

 

참 새삼스럽게 느껴져요. 육아에 이렇게 참여하는 남성이 점점 늘어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보조양육자에 머물러 있는데 말이에요. 주양육자, 보조양육자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반증이기도 하겠고요.


보니까 아기 기저귀 갈 줄 아는 할아버지가 거의 없더라고요. 갈아봤어야 말이죠. 평생 기저귀를 한 번도 안 갈아본 거예요.

 

그런가 하면 박사님은 ‘두 아이의 아빠가 내 정체성’이라고 하기도 했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은 아빠들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희 집도 주양육자는 아내예요. 다만 아내가 일을 하려다보니 제가 더 시간을 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아내도 많이 힘들어했고요. 제가 프랑스에서 지낼 때 본 건데요. 프랑스 엄마들은 출산 후 열 달이 지나도록 예전 몸매를 회복하지 못하면 좀 놀리는 게 있더라고요. 자기보다 아이를 더 돌보는 건 집착이라는 거죠.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선 상상하기 어렵잖아요. 저는 그런 걸 보고 살았으니 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선진국은 이미 다 그렇게 지내고 있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되겠죠.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어쨌거나 지금 당장은 아내보다는 제가 더 상황이 되니까요. 들어오는 일들이 있는데 ‘내년에 하면 안 되나?’ 생각해보거든요. 꼭 그때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에요.

 

각자의 상황에 맞는 삶의 방식이 있는데 워낙 한국 사회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어요.


제 차를 없앴는데요. 그러면서도 따져보니까 차 유지비를 생각하면 딱 절반만 가지고 택시 타거나 하면서 지낼 수 있겠더라고요. 차 없다는 핑계로 모임에 덜 나가도 되고요.(웃음) 이제는 아이들이 어린이집도 가고 하니까 낮에는 시간이 있거든요. 그때 글도 쓰고 해요. 많이 나아졌죠. 둘째까지 기저귀를 떼고 나면 이제 아이인 거지 아기는 아닌 거거든요. 좀 서운한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몇 년 간 집에 아기가 있었는데 이제 없는 거니까요. 더 이상 아기는 없고, 악동들만 남겠죠. 그게 아쉽더라고요. 그동안 충분히 놀고 좋은 마음, 편안한 생각으로 아이들이 자랄 수 있어야 뭘 배우더라도 되지 미리 스트레스 줄 이유가 없어요. 그런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흔들리며 사는 거고, 또 그런 게 생활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돈을 많이 들인다고 좋은 것도 아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빠들이 육아에 시간을 더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두에게 좋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워낙 집에서 아빠들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요. 조금만 더 해도 만족도가 확 올라가요.(웃음)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책 읽어주는 게 체력적으로 죽도록 힘든 일일까? 아니거든요.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요즘은 어린이집 가서 봐도 아빠들이 많이 보여요. 종종 있어요. 그런 아빠들이 결혼을 했겠지(웃음) 싶기도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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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이 사위에게 권하면 어떨까


어떤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책을 쓰셨어요? 이 책을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으세요?


책을 쓸 때는 그런 생각이 아니었는데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장인이 사위에게 권해주면 좋겠더라고요. 참고하면 좋겠어, 유럽 스타일이래, 하면서요. 결혼할 때 예단을 보내잖아요. 거기에 끼워 넣어도 창피하지 않을 것 같아요. 장모가 권하기엔 좀 그렇고, 장인이 사위에게 나는 이렇게 생각해, 라면서 권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이 얘기를 했더니 장인이 사위에게 전쟁하자는 거냐(웃음) 하시더라고요.  
 
『88만원 세대』, 『솔로계급의 경제학』, 『불황 10년』 등 경제와 계층에 대한 통찰이 담긴 책도 써오셨고, 『모피아』처럼 소설도, 『1인분 인생』처럼 삶에 관한 이야기도 책으로 꾸준히 써오셨는데요. 아직 쓰지 못한, 꼭 써보고 싶은 책이 남았다면 뭘까요?


에너지 분야 이야기를 거의 안 썼어요. 이쪽으로 더 써볼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한동안 안 봐서 공부해야 할 게 많긴 하지만요. 자료도 업데이트 해야 하고, 현장도 봐야 해요. 몇 년 동안 약속 해놓고 못 쓴 책들이 많아서요. 일정대로 계속 책을 낼 계획이에요.

 

계획이 잡힌 다음 책은 뭐예요?


에세이예요. 50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거든요. 지금 생각하는 제목은 ‘남의 말을 50번 좋게 합시다’인데요. 50세가 넘으면 남의 말만 좋게 해도 밥은 먹고 살겠더라고요. 50대가 되면 욕하고 싶은 사람이 인생에 걸쳐 생기거든요. 성질대로라면 하루에 50번은 욕을 할 수 있어요.(웃음) 그런데 남의 말을 50번 좋게 하면 돈 벌 거예요. 어렵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최순실 씨처럼 되겠죠. 돈이 없어서 그 사람처럼 못 되는 거지 본능과 느낌대로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람과 많이 다르지 않을 거예요. 비싼 음식점에서 욕했다는데 막상 비싼 음식점에 갈 일이 없어서 못하는 거거든요. 나이 많은 할아버지들 보면 욕을 달고 살잖아요. 제 또래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요. 다음 책은 그 이야기가 될 거예요.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우석훈 저 | 다산4.0
곳곳에서 인구절벽과 보육대란을 논하는 시대, 저자는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아이는 낳아야 한다고 강변하는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또 대표적인 복지 전문가답게 정책의 구체적인 수정 방향과 보완책 또한 제시한다. 프랑스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검증한 방식을 토대로 국내 상황에 특화한, ‘부모와 아이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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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올해 50이다. 이 나이가 공교롭다. 서른이 되었을 때, DJ가 집권을 하였다. 군바리들과 싸우면서 보냈던 20대를 뒤로, 전혀 새로운 시대를 만났다. 그리고 다시 노무현의 시대가 열렸다. 이렇게 30대가 지났다.

마흔이 되었을 때, 명박이 왔다. 그리고 박근혜가 순실과 함께 또 5년을 난리를 치고 나니, 40대가 끝났다. 돌아보면 사기꾼의 시대 그리고 바보의 시대를 보낸 셈이다. 그리고 나의 40대가 끝났다. 40대의 기억은, 고생한 것, 힘들었던 것, 안타까왔던 것 그리고 촌티낸 것, 그런 것 밖에 없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40대가 지나갔다.

요약하면, "진짜로 '드럽게' 힘들었다."

이 10년 동안, 행복한 기억이 아주 드물다. 아이들 태어나고 아이들하고 지지고 볶고, 어쩔 수 없이 같이 지냈던 그 시간들을 빼면 대부분의 기억이 안타깝거나 힘들거나.

지금까지의 패턴이라면, 또 새로운 10년이 올 것이다. 이 시기는 어떨까? 어떤 시기가 올지 예상하는 것보다는 어떤 시대를 같이 만들어갈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노무현의 시대는 참여를 내걸었지만, 실제로 참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던 것 같고.

사기꾼의 시대, 바보의 시대를 넘어서 새로 펼쳐질 시대, 어쨌든 즐거움과 보람으로 가득찬 시대가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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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위기, 6월 위기, 아니 사드위기


 

지난 연말,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5, 경제는 진짜 살얼음처럼 지나왔다. 그걸 억지로 버티게 - 아니 버티는 것처럼 보이게 - 만든 것이 초이노믹스라는 황당한 이름으로 불린 최경환 독트린이다. 이론은 단순하다. '빚 내서 집 사라', 그야말로 빚 권하는 사회였다.

 

4월 위기설, 6월 위기설, 그렇게 두 개의 위기설이 돌았다. 2008년에도 그런 게 돌았었다. 그렇지만 9월에 리만 브라더스발로 그렇게 터질지, 사실 거의 몰랐던 것 같다. '마진콜' 같은 영화의 소재가 될 정도로 긴박하고 급박했다.

 

나는 올해가 한국 경제의 최대 위기라는 생각은 하지만, 4월 위기설, 6월 위기설,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트럼프 집권을 너무 공포스럽게 생각하면서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복합적인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위기설인데, 개연성이 높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시기는 맞출 수 있지만, 한국 경제의 위기 메커니즘이라고 보기에는 좀 너무 멀어 보였다.

 

그렇지만 중국에서 사드를 견제하기 위한 경제 제재는 진짜로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단시간에 끝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약점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형적인 토건 경제이고, 국토부 장관 서승환, 기재부 최경환, 이 두 전형적인 토건쟁이 이후로 더 심해졌다. 원래 있던 구조를 근혜네 얘들이 더 공고하게 만들었다.

 

토건과 같이 가는 쌍은 관광이다. 물론 원래 의미의 관광산업은 토건과는 좀 다르고, 프랑스에서 관광부가 만들어진 이유도 좀 다르다. 문화와 노동, 복지, 이런 유럽식 개념의 연장에서 관광산업이 현대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전형적인 토건경제인 일본과 한국은 이런 복지의 연장으로서의 관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냥 집 짓고 싶어서 짓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집이 예전처럼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 이 때 토건이 눈 돌리는 대형 사업이 관광이다. 90년대 경제 위기가 오면서 일본에서 리조트법 같은 거 생기고, 죽어라고 골프장과 테마파크 짓고, 이런 거 위해서는 공항 필요하다고 나중에 유령 공항이 되는 지방 공항들 만드는 게 딱 일본식 토건 메커니즘이다.

 

박근혜 시절, 우리도 똑같이 갔다. 그리고 여기에는 좌우도 없고, 지역감정도 없다. 있다면 쪽지 예산만 있다.

 

중국이 건드린 것은, 이 토건의 마지막 판에 불같이 타오르게 되는 관광 메커니즘이다. 명동에 가게 몇 개 망하고, 면세점 사업 어려워진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망하거나 위태로워지지는 않는다. 그것보다 덩치는 크다.

 

그러나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어서 관광발 토건으로 지난 몇 년간 지방에서 벌여놓은 사업들은 진짜로 위기가 된다. 이건 아파트 과잉 공급으로 집값이 부분적으로 하락하는 것과는 질을 달리하는 근본적 위기이다.

 

중국이 건드린 건 여기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얹히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조만간 올라갈 것 같다. 금리인상이 여러 군데에 충격을 줄 것인데, 어쨌든 가장 직격탄은 토건경제가 만들어놓은 어마무시한 가계부채다. 이건 방법이 없다.

 

중국발 위기와 금리인상이 동시에 타격을 주는 데가, 하필이면 건설사와 지방경제다. 서울의 큰 회사 몇 개 혹은 특정 산업의 충격 가지고 한국이 당장 어려워지지는 않는다. 규모가 주는 효과다.

 

그렇지만 서울 등 중앙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터져 나오는 위기는 경제의 근본을 해체시킬 정도로 강력할 것 같다. 일부는 롯데가 망하고, 그 충격으로 경제 위기가 온다는 분석을 하기도 하는데, 롯데나 망하냐 마냐, 이런 건 전국화된 분산형 위기에 비하면 뉴스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근본부터 붕괴되고 하면, 국민경제가 진짜 재건을 얘기해야 하는 수준으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금방 극복될 성격, 즉 우리에게 익숙한 V자형 혹은 그래도 감내할만한 U자형 패턴이 아니라, 모두가 두려워하는 L자형 혹은 W, 심지어는 연속 W형 같은 게 될 수도 있다.

 

이 위기를 4월 위기나 6월 위기라고 부르는 것 보다는 '사드위기'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위태위태하지만 어떻게든 버티고 넘어갈 수도 있던 것이 사드에 대한 과대한 이념적 욕심 때문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경제는 경제로 보는 게 맞다. 순실이네, 경제를 너무 이념적으로 보았다. 보는 건 이념적으로 봐도 된다. 그러나 행동은 좀 조심스럽게 그리고 사려 깊게 했어야 했다. 너무 이념적으로 경제를 운용하다 보니, 지금은 돌아나올 길이 없다.

 

중국도 우리와는 매락이 좀 다르지만, 토건 겁나게 한 나라이다.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지역별로 발생하는 토건의 폐해를 우리보다 좀 더 다양하게 알고 있다. 오죽하면 지역균형과 소득주도 등, 유럽 사민주의자들이 할 얘기를 먼저 했겠나.

 

한국 경제의 약점을 중국이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 이게 순실이네 얘들한테 경제를 맡겨 놓은 우리의 비극이다. 돌아나올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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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주일 남짓 남았나, 헌재 결정까지? 나는 기다리는 건 그래도 잘 하는 편이다. 많은 걸 기다리면서 살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밖에 없는 경우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지가, 기다리지 않으면 어쩔 건데?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그리고 그 결과도 잘 감내해왔다. 몇 번을 제외하면, 그렇게 기다린 결과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참고, 또 다음 번 일이나 다음 번 기회를 기다렸다.

마지막 남은 이 일주일 정도는, 진짜로 기다리기가 어렵다. 기다리지 않고 뭐라고 할 수 있으면 좀 낫겠지만, 아이들 줄줄 끌고 뭔가 하기도 힘들다. 그냥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어쩌면 내 삶에서 가장 초조하고, 가장 큰 기다림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대학이야, 떨어지면 후기로 가던지, 재수하면 그만이었다. 별 거 아니었다. 유학 가서 대학원 시험 결과 기다릴 때, 어차피 한 번에 붙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별 생각 안하고 있다가 갑자기 합격증이 왔다고 해서, 몇 배로 더 기쁘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 때 시간이 생겼다고 몇 배로 더 행복해지지도 않았다. 뒤돌아보면, 시간 남는다고 괜히 뻘짓만 했다.

그 후에도 기다렸던 것들이 있기는 한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결과가 그렇게 내 삶을 바꾸지는 않았을 것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보지도 않았다. 안되면 다음, 또 안되면 또 다음, 그리고 정 안되면 그 옆의 비슷한 길, 되는 대로 살았다. 처절하게 무엇인가를 기대한 적도, 간절히 바란 적도 없다.

결혼하고 9년을 기다려서 아이가 태어났다. 그렇지만 그건 기다림과는 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세상 일, 억지로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기다리고 감사하고, 그냥 자연이 지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사는 수밖에 없다. 아이를 기다린다고 뭐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소하게 기다리는 일이 여전히 있지만, 본질적으로 삶에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덜 피곤한 방식으로 갈 것인가, 좀 더 피곤한 방식으로 갈 것인가, 그 정도의 차이만 있다.

이번의 기다림은 다르다. 헌재의 인용은, 삶의 거의 대부분을 바꿀 정도로 큰 일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뀔 것이다.

MB 이해로, 찌질하게 살았고, 화내는 것을 줄였다. 그리고 참았다. 참는 것은 기다림과는 좀 다른 일이다. 화나도 참고, 참으면 참는 만큼, 속으로 깊어지는 게 아니라, 찌질해졌다. 그리고 더 참으면 더 참을수록, 삶의 벼랑끝으로 내몰린다. 존심? 그런 건 애저녁에 시궁창에 처 박았다.

10년을 참았다. 그렇게 참다 보니, 속으로 쌓아놓은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방법 자체를 아예 까먹었다. 참는 게 그냥 삶의 방식이 되었고, 찌질함은 본질이 되었다.

마지막 1주일, 기다림이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도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다시는 이런 기다림이 존재하지 않을 그런 미래를 사람들과 같이 만들고 싶다. 이런 치사한 종류의 기다림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다시 기다린다. 내 삶에서 가장 간절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기다림, 그래도 다시 참고 기다릴 것이다. 다시는 기다릴 일이 없도록, 지금 기다릴 것이다.


- 우석훈 (2017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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