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20대를 욕한다.
그러나 이건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다. 이미 3년 전에 이런 구조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2년쯤 전에는 이미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생겨난 현상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그렇게 욕할 필요도 없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는,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이냐... 제약조건은, 이미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88만원 세대>를 출간하면서 나는 충분히 어려움을 겪었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들도 자신들의 삶의 주체이다. 나는 그들에게 어디로 가라고 하거나, 무엇을 선택하라고 하거나, 그럴 마음은 전혀 없다. 논리적 귀결점 하나를, 정말 논리적인 방식으로 제시했을 뿐이다.
수없이 많은 똘아이들이, 자신들은 열심히 취직시험 공부하겠다고 말했고, 나에게 그게 이상한 거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리 하겠다고 대답했다.
2년 전에는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저주하거나, 그런 종류의 감정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있는 그대로,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그대로, 인정해주자는 생각이 더 많다.
.....
그리고 그리 안되어도 슬퍼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역사의 법칙이라는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법칙이 있다면... 그러면 설명이 된다.
하여간 한국의 20대. 한 번쯤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해봤는데, 너무 깊게 갇혀있다. 내 계산으로는 아직은 반반이다. 그래서 판단하기가 어렵다.
20대가 풀 문제는 내가 보기에는 한 가지다. 가장 옆에 있는 그 사람과 친구를 믿느냐... 이 질문에 yes라고 할 것인가, no라고 할 것인가, 그 원초적 질문 앞에 서 있는 것이라는 게 내가 이해하는 현 상황이다.
참 마음 안 좋다. 나에게 거짓말 한다고 들이대는 넘들이 있다. 웃는다. 내가 할 일이 없어서 느그들에게 거짓말하고 있겠냐?
나한테 책상사한다고 들이미는 넘들도 있었다. 내가 나중에 좀 넉넉해지면, <88만원 세대> 샀던 20대들에게, 몇 달 내에 꼭 그 책 가지고 오면 내가 받은 인세, 그만큼은 다 그대로 다 돌려 주겠다고 벌써 몇 달 전에 마음을 먹었다. 지금은 내가 경제적으로 아직은 어려워서 그리 못하지만, 나중에, 내가 집 팔아서라도 책 가지고 온 넘들에게는 그 돈 그대로 다 줄 거다. 책장사 한다고? 내가 참기 어려운 말이었는데, 참았다. 그래도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난 그건 안 참기로 했다. 난 이해 못하겠다. 내가 니들한테 돈을 받으려고 했다고? 십원도 안 받을 참이다.
그래서 그 책 값 그대로 다 돌려줄 참이다. 20대 돈 받았다는 그런 말, 죽을 때까지라도 듣고 싶지 않다.
내가 별의별 책을 다 써봤는데, 나한테 책 장사 한다고 들이민 넘들은, 한국의 20대들이 처음이었다. 조금만 있다가 내 넉넉해지면, 책 가지고 오면 다 돌려줄 셈이다.
나는 한국의 20대들에게, 10원도 받고 싶지 않다.
이 책은 6만권 팔렸다. 공저자랑 나누기는 했지만, 다 해봐야 인세로 6,000만원 조금 넘는 돈이다. 내 그 돈 그대로 책 샀다고 하는 20대에게 돌려주기로 6개월 전에 마음을 먹었다. 돈 벌렸고 했다... 그런 말 듣고 살 수는 없다. 너무 억울해서 그렇게 단디 마음을 먹었다. 내가 니들 돈을 받을려고 이러는 줄 아느냐? 니들은 날 잘 모른다.
언제고 내가 6,000만원쯤 아내 눈치 안보고 꺼내쓸 날이 오면, 반드시 <88만원 세대> 산 20대들에게 책 가지고 오면 돈 돌려주는 행사를 할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한국의 20대들에게 겪은 마음의 아픔대로라면, 다시는 그들을 위해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정도는 아니고, 그들이 내 책에 지불한 돈까지 언젠가는 다 도로 돌려줄 생각이다.
나는, 장사하는 사람 아니라는데도...
그래도 오래 보니까 정도 들고, 아픔도 공유하게 되었다. 책 샀다고 와서 지랄하는 넘들부터, 지들은 잘났다고 생지랄 하는 넘들, 지는 꿈쩍 안할 거니까 니들도 그러지 말라고 생쇼하는 넘들까지...
그러나 그것도 모두 우리 시대의 아픔이다. 그 꼴통들도 다 우리 시대의 유산이다. 그들과 같이 가야 한다. 그 꼴통들 보면 맘 아프지만, 그래도 그들도 우리 시대의 일부분이다.
역사에 지울 수 있는 페이지는 없고, 좌파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양심은, 우리는 승리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하여간 지난 며칠 동안 나에게 20대를 증오하고, 10대를 칭송해달라는 부탁이 많았는데, 원래 내가 한국의 10대에게 많은 희망을 걸었기에 반 쪽은 수락했고, 20대는 아니다라는 말에는 거절을 했다.
한국의 20대,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아직 한두번은 더 도약과 자유의 기회가 있다. 그게 언제인지, 그것이 언제일지, 그것은 그들이 결정할 바이다.
(6월 달에 '20대 권리선언'을 만들고 앞에 설까 했었는데, 그건 안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짱돌맞고 죽을만큼, 내가 한가하지는 않다. 니들 문제는, 니들이 풀어라. 나도 힘들어서 더 이상 같이 버티지를 못하겠다. 그리고 한 번만 더 돈 벌려고 책 썼다고 쌩지랄하면, 나도 생각을 단디 바꿀 참이다. 아니면 그냥 이 책 인세 전부 기부해버릴 수도 있다. 내가 니들 생각하듯이 돈독 올라서 지랄맞게 몇 년간 한국의 20대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한 줄 아냐... 별 지랄 같은 넘들이 쌩지랄 떠는 꼴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두 가지가 정말로 키워드이다.
communication 그리고 trust... 오랫동안 진지하게 한국의 20대를 관찰한 내가 해줄 수 있는 정말 마지막 말이다.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20대들에게 당한 건 너무 속상한 일이다. 인세 돌려주고, <88만원 세대> 책 돌려받아서, 불태워버리는 일, 꼭 할 거다... 녀석들, 날 너무 울렸다...)
-
浪 2008/05/07 00:04
나는 속지 않을거야! 라는 울타리와
갈데없는 감상에 빠져있는.. 늪을 봅니다.
'꼴통'과 '질문' 딱 이 두 단어로 거기서 꺼내주셨다는ㅎ
감사합니다(__) -
sumi 2008/05/07 03:24
우리도 무언가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가장 가슴아프게 만들던 자식이 나중에 더 열심히 효도하잖아요.
하다못해 굽은 나무가 선산지킨다는 말고 있고요.
역사의 법칙이라고 하셨지요.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지금 처음으로 작은 균열을 경험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워낙 소심하여 나서는 이는 적겠지만,
대다수가 화학적으로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우석훈 님 책을 보고 생협에 가입했고,
책을 읽는 것을 숨길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았고,
새삼 스스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처럼 우석훈님을 고맙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kay 2008/05/07 09:42
지난 밤 읽었던 수선손택의 글을 쓰고 싶네요.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
**
문학은 자유다 pp113~116 (수전 손택), 1부 아름다음에 대하여
- 소멸되지 않음, 빅토르 세르주를 옹호하며
진실은 때로 불편하고 역효과를 내는 것, 사치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다. (이런 것을 현실적 사고 혹은 정치적인 사고라고들 한다.) 그런 한편 좋은 뜻을 품은 사람들이 이상을 쏟아 부은 일, 관점, 제도를 저버리기를 주저하는 것도 그럴 만한 일이다. 진실과 정의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상황이 발생한다. 정의가 요구하는 바를 인식하는 것보다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더 큰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편이 쉬운 것이다. 특히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제공하는 집단의 가치와 충돌할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자기가 기꺼이 귀 기울이려고 한 사람에게 진실을 듣게 되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쿠스틴 후작이 1세기 전 러시아를 다섯 달 동안 여행하면서 (예언적으로) 러시아 사회의 중심에 지나친 전체주의와 순종성과 외국인에게 끝없이 거짓말을 하는 태도가 있다고 파악하고 편지형식으로 된 일기 1839년의 러시아에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 쿠스틴의 애인이었던 젊은 폴란드인 이그나치 구로프스키 백작에게서 차르 압제의 잔학상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930년대 소련을 방문한 좌익 작가들 가운데 왜 지드만이 공산주의의 평등과 혁명의 이상이라는 수사에 현혹되지 않았을까? 도무지 의심할 바 없는 인물인 빅토르 세르주에게 사전 정보를 얻었기 때문에 자기를 초청한 사람들의 부정직함과 불안감을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르주는 겸손하게도 진실을 말하려면 약간의 명석함과 독립심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한 혁명가의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내가 여러 중요한 상황을 명료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 그것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평범한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주변의 압박과 사실에 눈감으려는 자연적 성향, 직접 이익, 문제가 발생할 것에 대한 공포에서 나오는 유혹을 이겨 내련면 뛰어나고 영민한 지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양식, 선의, 그리고 일종의 용기가 필요하다. 프랑스 작가가 이렇게 말했다. "진실을 추구할 때 있을 수 있는 끔찍한, 일은 진실을 아는 것다." 진실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좁은 자기 세계의 편견을 따르거나 유행하는 상투 문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진실을 추구할 때 있을 수 있는 끔찍한 일은…"이라는 문구는 모든 작가의 책상머리에 붙여 놓아야 할 문구다.
시어도어 드라이저, 롤랑, 앙리 바르뷔스, 비어트리스와 시드니 웹 부부, 할도르 락스네스, 에곤 에르빈 키슈, 월터 듀런티, 리온 포이히트방거 등등의 창피스러운 둔감한과 거짓말은 대부분 잊혀졌다. 그들에 대항한 사람, 진실을 위해 싸운 사람들도 잊혀졌다. 일단 진실이 밝혀지면 더 이상 그것에 감사하지 않는 법이다. 모든 사람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증언이 아니라…… 문학이다. 진실을 좇은 영웅 대부분이 맞이한 운명인 망각에서 세르주만은 구해 내자는 주장의 근거는 결국 그의 소설이 위대하다는 데 있다. 특히 "툴라예프 동지 사건"이 그렇다. 그러나 전적으로 혹은 주로 교훈적인 작가로 간주된다는 것, 그의 작품을 경전으로 받아들여 줄 나라가 없다는 것, 이런 복잡한 운명때문에 세르주의 위대하고 매혹적인 책은 잊혀져 왔다. -
flygogo 2008/05/07 12:03
같은 20대로써 챙피하면서 답답함을 느낌을 느낍니다.
저도 그들을 질타하면서도 또한 같아질것에 두려움을 느끼네요.
그렇지만, 또한 그렇지 않는 소수의 20대도 존재한다고 믿기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저 또한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할것이구요. -
envia 2008/05/07 12:22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 마음 아프셔도 힘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경제학이 부자 되자고만 하는 학문은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건강하시고, 건필하십시오.
-
나도 20대 2008/05/07 15:53
얼마전에 읽었던 글이며 역시 20대가 쓴 글.
내용은 20대가 3~40대 욕하는 글이네요.
거기에 우석훈 박사님에 관한 부분이 있어서 가져와요.
http://rarararara.egloos.com/1846989
혹시 이런 20대를 두고 한 말인가 싶어서요~ -
분주 2008/05/08 00:55
댓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지만...처음으로 남깁니다.
오전에 선생님의 글을 보고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는 취직시험에 실패한 뒤 고민하던 중 공부의 길로 들어선 케이스인데...
우석훈 선생님과 김현진 언니의 글을 읽으면서
지금껏 해온것과 다르게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선생님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저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희망을 품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그래도 끝까지 놓지 않으려 노력해 볼 것입니다. -
쿠온 2008/05/10 09:19
저도 88만원세대를 읽었고 우석훈씨가 세대간 편가르기를 할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읽은 글에서는 우석훈씨가 한 신문의 컬럼에서 20대의 총선투표율(그것도 잘못된 정보인)을 가지고 20대를 비난했고 현재의 정치적 결과를 20대의 탓으로 돌릴려고 한다고 하더군요. 물론 우석훈씨는 386세대의 대편자도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에서 세상의 변화를 원하는 쪽에 서 계신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88만원세대에서도 궁지에 몰린 20대가 보수정권 지지쪽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쓰신것도 기억합니다. 20대의 정치적 수동성도 익히 아실 것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20대를 몰아 붙이면 그 동인은 전혀달라도 (보수당이 집권한것에 열받아하는)386세대와 똑같이 보이는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현재 상황은 communication의 부재와 Trust의 부족 아닐까요(20대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우석훈씨와 20대 사이에서도 말입니다.)
끝으로 요즘 드는 생각은 우선훈씨가 말하는 소위 "중간에 끼인 세대의 눈"으로 보면 우리나라도 점점 "세대"를 가지고 그룹을 나누는것이 힘들어지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20대 내에서도 수많은 그룹들이 존재하며 그들은 한 세대를 가로지르는 횡적 연결이 아닌 관심 분야를 바탕으로하는 종적 연결을 하고 있으니까요(이것은 인터넷의 특징이기도 합니다만...) -
한상훈 2008/05/11 05:25
위에 말씀하신 선생님을 울린 20대 꼴통 중에 하나로써 정말 죄송스럽다는 말씀드립니다.
아무리 주옥같은 글이 있을지라도 읽고자 하는 자가 없고,또 읽어도 그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게 저희 세대의 특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를 포함하여 제 또래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과 쓰신 글들을 통해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선생님의 노력을 접지 마시기를 조심스레 부탁드립니다.
p.s 인세 돌려준다 하셔도 저는 안가고 책을 소장하겠습니다. ^^; -
DDFR 2008/05/15 05:45
20대의 10대시절을 생각해 보셨나요? 20대는 경제적 또라이로 태어난게 아니라 길러진 겁니다. 제나이 25, 제 10대시절의 사회이슈는 온통 돈밖에 없었습니다. 우리10대때 '경제' 이거 말고는 누가 다른 말 했나요? 공포심에 쩔어서 금모으기 하는 어른들 보면서 나라가 아찔한 경제지표들 그래프 보면서 아무런 무기력증에빠지거나 스스로도 등을 돌려버린 이념적 낭만적 좌파어른들 보면서 본받기를 바랬던가요? 그시절은 좌파 지식인들도 숨죽이던 시대 아니었던가요?.. 하도 숨죽이고 있길래 진짜 그쪽으로 빠지면 죽는지 알았습니다. 요즘 보니 아닌거 같더군요 왜 더 용기있게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던 거죠?.. 나이 구분 없이 우리 모두 무서웠잖아요. 다른점이 있다면아무래도 어린나이에 겪은 공포가 기저에 깔려있다는 점이겠죠..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쨋든 말없는 20대는 문제인건 사실이지만요.

Pre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