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제품이 생산자의 원래 제작 취지대로 소비되지는 않는다. TV를 책 받침대로 쓴다거나, 나처럼 JBL 스피커를 옆으로 눕혀 영화볼 때 쓰는 모니터 다리로 쓴다거나. (일본 JBL에서 자기네 스피커를 내가 이렇게 쓰고 있는 줄 알면 소송걸지도 모른다.)
가끔 호텔 라운지 같은 데서 소위 '라운지풍' 음악을 들을 때, 저 원 작곡가가 얼마나 속이 탈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드라이브' 혹은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과 같은 콤파일레이션에 들어간 노래들 역시 처음 작곡할 때, 아, 내 노래가 그저 드라이브라는 제목을 달고 아무 생각없이 들으면 좋겠다, 라고 만들었을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원래 소비는 좀 그런 속성이 있다.
그런 소비 중에서 원래의 성격을 가장 많이 벗어난 상품으로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까, 역시 대학이다. 소르본느 대학이 신학에서 나와 처음으로 '인간'들의 학문을 위한 장치를 만들 때, 이게 취직을 위한 것이거나 교수들의 생활안정을 위한 것으로 만든 것은 아니고, 한국처럼 생활인의 장식품처럼 만들어진 상품은 아니었다.
가끔 호텔 라운지 같은 데서 소위 '라운지풍' 음악을 들을 때, 저 원 작곡가가 얼마나 속이 탈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드라이브' 혹은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과 같은 콤파일레이션에 들어간 노래들 역시 처음 작곡할 때, 아, 내 노래가 그저 드라이브라는 제목을 달고 아무 생각없이 들으면 좋겠다, 라고 만들었을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원래 소비는 좀 그런 속성이 있다.
그런 소비 중에서 원래의 성격을 가장 많이 벗어난 상품으로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까, 역시 대학이다. 소르본느 대학이 신학에서 나와 처음으로 '인간'들의 학문을 위한 장치를 만들 때, 이게 취직을 위한 것이거나 교수들의 생활안정을 위한 것으로 만든 것은 아니고, 한국처럼 생활인의 장식품처럼 만들어진 상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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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통에서 중요시되었던(大學이라는 표현은 아티클 이름 이전에 주나라때 그 아티클 읽히던 학교에 대한 것이었다는..) 국가 학교를 또 하나의 기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서울대학은 별로 벗어난 것은 아니긴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선생님께서 '여러분은 학업이 장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소비에 더 가깝다'라고 푸념처럼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쩌면 우석훈 선생님과 같은 취지에서 말씀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듭니다..
JBL 스피커를 눕혀서 긴 판넬을 올려놓고 티비 받침대로 쓰고 있거든요. 그게 이상한건지 잘 모르겠던데. 필요한 물건을 자기에게 맞게 쓰면 되지 않나 싶네요.
대학이야 간판 달러 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