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경제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대체적으로 중도 우파에서 중도 좌파 정도의 시각을 가진 글들이 많이 모이는 곳인데, 아마 한국에서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경제 기사로는 디테일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증권회사나 보험회사에도 경제학자들이 많다. 이런 데 수석 이코노미스트 같은 거 하거나 아니면 상무나 전무 정도 되면, 연봉이 좀 괜찮다. 전부 물어본 거는 아니라서 샘플에 좀 문제가 있을 수는 있는데, 하여간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6억원 내외를 연봉으로 받는 거 같다. 평균 내면 시니어급이면 연봉 3억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사람들이 써놓은 글이나 아니면 방송에서 경제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들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데, 또 막상 만나서 얘기할 기회가 생기면 그렇게 황당한 사람들은 아니다. 이게 참...

 

아주 극우파에 자리한 경제학자나 아주 극좌파에 자리한 경제학자들을 제외하면, 술 마시면서 이것저것 얘기할 때, 생각보다 그렇게 견해의 차이가 많지는 않다. 물론 글이나 방송에서는, 완벽하게 입장이 갈리지만, 경제가 그렇게 극단적인 것이 아니라서 중국 경제, 일본 경제, 심지어 부동산에 대해서 얘기할 때에도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견해가 비슷하다.

 

차이라면, 명박을 위해서 조언할 것인가, 민주당을 위해서 조언할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일반인들을 위해서 조언할 것인가?

 

한국 증시에 대한 해석에서 정말로 일반인들에게 조언하는 사람은 '시골의사 박경철' 정도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가 정치권에 아부하거나, 증권회사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는 없을테니 말이다. 실제로도 그는 '개미' 혹은 평범한 개인들을 자신의 고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쨌든, 경제는 언제나 정치경제학이라고 하는 것처럼, 증권사나 부동산 회사의 크고 작은 정보들 속에도 정치적 견해와 의도가 빼곡하게 들어가 있다. 꼭 작전이 아니더라도 회사의 희망과 개인의 소망, 이런 게 켜켜히 얽힌다.

 

물론... 우리끼리 만나는 술자리에서는 그런 작전을 펼치는 사람은 없다. 그래봐야 경제학자들은 별 큰 돈도 없고, 게다가 선수들이니까 여기서 정말 특종급의 정보를 가지고 말 하지 않는 한, 어설픈 썰레발은 잘 통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참 신기하다. 별도의 자리에서는 그렇게 솔직한 사람들이 어째 신문이나 방송에 나올 때에는 또 그렇게 살짝 몇 글자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정치적인 뉘앙스를 보이는지.

 

가만히 돌아보면, 내가 현대의 연구소에 있던 시절, 나도 그런 짓을 하기는 했던 것 같다. 기자들을 만나거나 공무원을 만날 때, 몇 개의 단어 혹은 약간의 뉘앙스 차이로 오해를 유도하는 그런 짓을 하기는 했던 것 같다. 총리실에 있던 시절에도, 그런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가슴에 손을 얹기는... 못하겠다.

 

그런 점에서 다른 글이나 책들도 그렇겠지만, 전문가의 세계에서도 그리고 학자의 세계에서도 자유인은 잘 없다.

 

회사나 기관에 소속된 분석가가 자기 맘대로 얘기했다가는 바로 위의 상관에게 심하게 터지게 된다.

 

교수들도 마찬가지이다. 정부 연구용역을 시작하게 되면, 할 수 있는 얘기의 범위와 방향에 제약이 걸린다. 물론 그런 제약이 없더라도 기꺼이 그럴 사람도 많지만, 그러지 않을만한 사람도 용역 발주자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게 되는 것 같다.

 

명박 시대에는 그런 영향의 정도가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얼마 전에 아주 친한 지인이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서 갔다 왔다. 원래도 우파이기는 했는데, 그 이후로 말의 뉘앙스가 조금 더 변했다. 학자라면 그래서는 안된다...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는 학자이기 이전에 생활인이기도 하다. 그래, 당신도 먹고 살아야겠지.

 

이런 이유로 경제에 대한 얘기들은, 그 얘기가 맞고 틀리는가 보다는 그게 누가 한 얘기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장관 시절에는 너무 바빠서 못 보다가 퇴임한 이후에나 만나게 되는 양반들이 있다. 물론 대개는 장관이 끝나고 나면 산하기관 기관장으로 한두턴 더 돌기는 하지만, 이미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오면 총리나 부총리로 갈 거 아니라면, 사실상 퇴물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삶의 회한을 담아서 지난 날을 회고하며, 자신의 영광을 곱씹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이런 양반들에게, 그 때는 왜 그러셨어요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너라고 별 수 있었겠냐?

 

한나라당이나 장관이나, 우리는 쉽게 확신범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짜 확신범은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 이상한 일을 하면서도, 표 때문에, 여론 때문에, 청와대의 눈치 때문에, 적극 그것을 옹호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도 괴롭지만, 하여간 그걸 세상 사람들은 "총대 맨다"라고 부르고. 명박이 가장 좋아하는 측근 인사 스타일은 바로 이 총대 매는 스타일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총대 매는 것을, 명박은 "일을 한다"라고 이해한다.

 

현대 시절, 건설 용역이나 기타 등등, 수없는 문제가 생기고 사장 대신 감옥 가는 부하직원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워보였겠는가?

 

용산 현장에서 그리고 비슷한 사건에서 명박은 "일하다 문제 생기는 것은 문제 삼지 않겠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총대 맨 사람과 총대 매게 시킨 사람들 사이의 눈물 나는 우정이다.

 

뭐, 부작용은, 그러다보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적극적으로 삽질 하는 고위직들이 종종 등장하고, 과잉 충성이 등장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말이 좀 길어졌다.

 

선대인의 <위험한 경제학 1, 2>는, 경제학자 내에서 비교적 합리적이라고 자칭타칭 불리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지금 동의하고 있는 내용에, 선대인 특유의 종합적 분석과 언론 등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해석이 결합된 책이다. 어느 정도는 암묵적으로 합의된 내용이 70% 그리고 선대인의 연구와 해석이 30% 정도 결합되어 있는 그런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자, 돌아서서 선대인만한 책을 쓸 사람이 한국에 몇 명이나 있을지 생각해보자.

 

얼핏 꼽아도 20~30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 중에 절반은 너무 바빠서 도저히 책을 쓸 형편이 안된다. 그리고 그 중에 20~30%는, 국록을 먹고 있는데, 연봉은 작아도 국록을 먹고 있는 처지에서, 명박에게 대놓고 경제 기조를 바꾸라고 했다가는 자신만이 아니라 연구원 원장과 자기 팀까지 한 방에 날아가는 참상이 벌어지게 된다. 돌리고 돌려서, 예를 들면, 책 한 권에 비유적 문장 2~3개 삽입할 수 있는 게 전부일 것이다. 경제학자도 '학자'라서, 자신의 양심상 도저히 그 얘기를 안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반인은 도저히 알아먹지 못할 문장 한 두개를 집어넣는다.

 

정말로 선대인만한 책을 쓸 사람을 딱 한 명만 꼽아보자면...

 

이한구다. 이한구가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몇 개는 나와는 견해가 분명히 그리고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명박의 경제가, 이거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 선대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한국 경제의 모습과 90% 가까이 비슷한 얘기를 쓸만한 사람은 이한구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한구는 바쁘다. 직책도 높고, 한나라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되거나 고진화처럼 강제탈당 당할 각오를 하지 않은 이상, 이한구는 점잖게, "좀 이상하쟎아요"라고 한 마디 하는 것 외에 선대인처럼 친절하게 책을 쓰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2009년 한국 경제에 대한 종합적 조감도와 일반인들이 알고 싶어하는 증권과 부동산, 그리고 2010년 경제의 흐름에 대해서 써놓은 책 중, 자유인이 쓴 책은 선대인이 유일한 셈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어쨌든 김광수 경제연구소에서 선대인을 영입할 때, 상당한 자유와 자율권 같은 것들을 어느 정도는 보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김광수 경제연구소 자체가 디테일을 강조하는 실용주의라서, 정치적 고려가 그렇게 많은 곳은 아니다.

 

2010년 경제 상황에 관해서는 선대인과 다른 견해가 나에게도 좀 있지만, 그것은 시간의 차이와 양상의 데테일의 차이이다.

 

하여간 선대인은.

 

신문과 방송, 즉 공적인 곳에는 나오지 않는, 많은 한국 경제학자들의 상식적이며 암묵적인 합의를 온전히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에 선대인이라는 경제학자가 있는 것이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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