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관련된 얘기를 내가 하는 경우는 드물다. 계약서에 비밀 유지 조항 같은 게 복잡하게 달려 있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냥 조용히 일하는 게 내 방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굴, 이름, 가능하면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한 게,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언젠가는 영화에 대한 책을 쓸 생각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나도 자연스럽게 영화에 관한 책을 쓰게 될 것 같다.

 

'세이브 더 캣'은 아마도 한국에서도 가장 많이 읽은 시나리오 작법서가 아닐까 한다. 또 실제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오래 전에 읽은 이 책을 다시 집어든 이유는, 이런 방식으로 얘기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지겨워졌기 때문이다. 성격 드럽다..

 

한 번 유행이 지나고나면, 혁신적이거나 창의적인 방식도 식상한 방식이 된다.

 

'캐릭터'에 대한 집착은 10여년 전에 한국에서 형성된 것 같다.

 

근데, 이게 재미가 없다. 캐릭터? 사람이 만드는 캐릭터는 다 거기서 거기다.

 

애들 책 읽어주다보니 그리스 신화나 <해저 이만리> 같이 오래된 책들을 지겹도록 여러번 읽게 되었다.

 

이게, 지금 봐도 다 재밌다. 캐릭터? 개뿔이다. 얘기가 재밌으면 그 자체로 재밌는 거지, 그 이상 뭐가 필요하나? 헤라클레스 같은 신화를 요즘의 캐릭터 분석식으로 해보면, 재미 하나도 없다. 그래도 그 얘기는 재밌는 얘기다.

 

<해저 이만리>를 다시 읽으면서, 몇 년 전 다윈의 <비글호 여행기>를 다시 읽는 것 같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아, 이게 그렇게 만만한 책이 아니었구나. 아마 언젠가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을 꼽으라면 결국 나는 <해저 이만리>를 꼽을 것 같다.

 

캐릭터? 개떡이다. 얘기가 재미가 없으니까 자꾸 곁다리 분석을 하고, 부수적인 것들이 오히려 상전 자리에 들어오게 된다.

 

이게 요즘의 내 생각이다.

 

'세이브 더 캣', 진짜 지겹도록 들은 얘기다. 요즘은, '세이브 더 캣 신'도 개떡이다. 그런 얄팍한 장치들을 배치하는데 힘을 쓰다보니까, 얘기의 본령에 대한 고민이 얄팍해지는.

 

힘은 어디에 써야 하나? 진짜 얘기가 재밌어야 하는. 그게 다다. 요즘 내 생각이 그렇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시나리오 작법책을 비롯한, 글쓰기 관련된 책들을 안 보는 건 아니다. 읽어두면 다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유행을 새로 만드는 것은, 그런 작법서로 되는 건 아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그런 얘기다. 고양이를 구하든 말든.. 사람은 그런 얄팍한 존재인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다시 나는 한국의 시나리오 표준 작법서가 되어버린 <save the cat!>을 다시 집어든다.

 

어쨌든 읽어두면, 정신 세계가 조금은 더 풍성해진다. 영화를 좋아하든 아니든, 이야기의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must it 아이템.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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