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나랑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경제학자 두 명을 꼽자면, 신의순과 이정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비유를 들자면, 신의순은 나를 돕기만 한 사람이고, 이정전은 내가 돕기만 한 사람이고. 어쨌든 이 두 사람이 나와 이론적 싱크로율이 가장 높다.

 

만약 신의순 선생이 그 때 대선에서 이회창 환경특보가 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나도 가끔 돌아보는 질문이다. 어쩌면 나는 적당히 연세대학교 교수가 되었을 거고, 그냥 특별한 주제로 학위를 한 고만고만한 학자 중의 한 명이라,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명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나는 판단을 했고, 신의순 선생과 멀어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도 그 시절이 생각나는 것은, 신의순 선생이 마침 그 때 연세대 경제학과의 학과장이 아니었다면, 나는 너무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훨씬더 황당한 곳에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없다. 빨갱이라도, 쟤가 하는 말이 맞아, 수업도 챙겨주고, 이것저것 챙겨준 사람은 신의순 선생이었다. 나는 그렇게 한국에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렇다면 이정전은?

 

반대로, 이래저래 나는 그를 돕기만 한 것 같다.

 

문재인 당대표 시절이다. 이준구, 이지순, 이런 경제학계의 원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런 된장..

 

그 때 찾아간 사람이 이정전 교수였다.

 

내가 알았던 가장 최근의 스토리는..

 

이정전, 이준구 테니스를 치다가, 이정전 선생이 쓰러졌다는 거. 그걸 이준구 선생이 정말 눈치 빠르게 조치해서 이정전 선생이 살아날 수 있었다는 거.

 

그 시절, 우리는 야당이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표는 코너에 몰려있었다. 안철수 등, 무지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여간 갔다..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 막 은퇴한 이준구 교수와 이지순 선생이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햐, 할배들.

 

나는 그냥 꾸벅, 도와달라고 했다.

 

이정전 선생이, 내가 갈 거라고, 연통 정도 넣어주신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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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순 선생은 그날, 점심으로 햄버거 같이 먹었다. 그 때 나에게,

 

"아내 얼굴 봐서라도 제발, 헛짓거리 하지 마시게."

 

그런 얘기를 하셨다. 문재인 메시지를 들고 찾아갔는데,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돌아서서, 이준구 선생 방앞까지 안내해주셨다.

 

이준구 선생은..

 

"잘 해요, 우박사가 잘 해야.."

 

하여간 난 메시지는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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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도 난 그 일을 몇 달을 더 했다. 장하성 선생도 고대 경영학과까지 찾아가서 만나고.. 틈 나는 대로 그런 양반들을 찾아다녔다.

 

난 배알도 없냐? 방법 없다. 그 시절에는, 그 일이 내 일이었다.

 

야당 시절, 그냥 도와달라고 찾아다녔다. 연구실 앞에 몇 시간씩 기다리기도 하고. 쪽지도 남기고, 그러고 다녔다.

 

아마 둘째가 폐렴으로 입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나는 그뒤로도 꽤 오래 그런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아프다..

 

나는 내가 하던 일을 그만해야겠다고 결정을 했다.

 

당대표를 그만 둔 이후의 문재인, 그 뒤로 두 번 만났다. 통화는 몇 번 했지만, 실제로 본 건 두 번이다. 한 번은 양산집에서, 한 번은 마포에서.. 마지막 만났을 때, 캠프는 안 한다고 했다.

 

그 날 식당에서 나오면서, 아마 이 순간이 마지막 보는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었다.

 

곧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안해요", 그렇게 돌아서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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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전의 책 "주적은 불평등이다" 서문을 읽으면서, 이정전과 지낸 시간은 물론이고, 그와 겪은 많은 일들이 생각났다.

 

그러나 내가 그의 책을 정독해서 읽은 게 과연 몇 번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정전 선생이 그의 절친 동료, 이준구나 이지순 선생을 설득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섭섭해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이 한 것이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자로서 이정전이 하는 얘기, 나 역시도 성실하게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준구나 이지순, 한국경제학회 학회장인 이지순의 상징과 자리를 탐한다.

 

나도 그런 잡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그들의 친구이자, 여전히 성실하게 글을 쓰는 이정전의 메시지를 너무 가볍게, 어, 늘 하던 그런 얘기.. 이렇게 가벼이 취급한 거 아닌가?

 

개뿔, 내가 알기는 뭐를 알았나.

 

"주적은 불평등이다", 이 책 서문을 읽으면서 지난 몇 년간 나의 개떡 같은 삶을 잠시 돌아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햐..

 

우리 시대 최고의 경제학자는, 이정전이다.

 

나는 이제야 알겠다. 그걸 모르고 살았다. 내가 까막눈이다..

 

이정전 선생을, 이준구 선생 만나는 소개처 정도로 생각했던 내가, 사람도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참, 잡놈.. 스스로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state of art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는 분들께, 이정전 선생의 책을 권해드린다. 당대 최고의 학자가 촛불집회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한 책이다. it 아이템.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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