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그런 용어를 거의 안 쓰지만, 예전에는 아방 가르드라는 말이 한참 유행했었다. 가드 보다 더 앞에 있는 그런 척후병 같은 용어인데, 이걸 전위라는 말로 번역해서 쓰기도 하였다. 전위예술, 물론 재미 없다는 얘기와 동의어다.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약간의 도치나 전복적 시도를 가지고 전위라고 뻥까는 거, 아주 질리도록 보았다. 한동안 누벨 바그 계열의 프랑스 영화들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이건 전위가 아니라, ‘덜 만든 것’, 마무리 짓지 못한 것. 그래 놓고 인생이 원래 답 없어”, 턱하고 엔딩 타이틀. 뭐야, 이거.

 

2005년에 미세먼지 문제로 처음 데뷔를 하였다. 책이 나오고 나온 첫 기사는 서평이 아니라 사회부의 스트레이트 기사였다. 물론 나에게는 익숙한 얘기였고, 가장 익숙한 얘기였으니까 데뷔할 주제로 골랐지 않았겠나. 요즘의 한국에너지공단, 예전의 에너지관리공단의 팀장을 그만둔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이 미세먼지였다. 총리실 파견을 정리하고 돌아와서, 나는 발전소 오염물질 관리나 하겠다고 신청을 했다. 그리고 내가 관리하는 항목에 pm-10을 포함시켰다. 원래 내가 하던 일들을 아주 좁히고 좁혀서, 이런 거나 하고 쉬겠다는 약은 판단이었는데. 위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모르는데, pm-10은 업무 영역을 넘어가니까 이거 빼고 하라고 통보가 내려왔다. 그 날 사직서 써야겠다, 마음 먹었다.

 

미세먼지는 그 시절에도 최전선이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최전선이다. 지금 쓴다고 해도 가장 종합적인 보고서를 쓸 수 있다. 미세먼지 대책은 아직도 헤매고 있다.

 

내가 왜 계속 책을 쓰는가? 이건 내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에게도 질문 거리다. 가능하면 책 쓰는 과정을 즐기면서 하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즐겁거나 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돈으로 생각하면, 내가 책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은 인세로 딱 우리 집 생활비 만큼이다. 평균 내보면 그것보다는 많이 벌었다. 최근에는, 맞춘 해가 있고, 못 맞춘 해가 있다. 평균 내보면, 그래도 대충 비슷하다. 저자 데뷔 이후 최악의 2년간을 보냈다. 방송, 강연, 전부 최소 수준으로만 하고, 한동안 신문 칼럼도 못 썼다. 그런 거 치고는 그래도 선방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나에게 생긴 원칙이 하나 있다. 내가 아니면 못 쓸 것 같은 책 아니면 안 쓴다. 이건 어쩌다 나가는 방송을 제외한 내가 만드는 전분야에 걸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방송은 내가 기획하고 준비한 게 아니라 그것까지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그걸 나는 나름 최전선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동기가 생겨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게 먹고 살 만하게 된 이후의 폐해일지도 모른다. 돈 되면 아무 거나 다 해야하는 거, 맞기는 한데, 나는 그렇게는 못 한다. 하기가 싫어지고,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나, 심통이 든다. 다른 사람의 제안을 받아서 책을 쓰는 일을 안 한 게, 그런 이유다. 해봤는데, 그런 식으로는 책을 마무리하지를 못하겠던.

 

직장 민주주의 책이 처음으로 외부에서 제안을 받아서 쓴 책이었다. 외부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그 이전에 같이 작업하는 동료였던 에디터의 제안이었다. 그리고 충분히 최전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렵고 난해한 작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직장 민주주의 책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안 쓰는 게 입문서나 청소년용 책이다. 다른 출판사에서 오는 제안의 대부분은 그런 거다. 물론 그런 걸 전혀 쓸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저히 최전선에서 버틸 수 없는 수준으로 내 능력이 떨어지면. 퇴물이 된 마음으로 지나간 것들을 정리해보는. 그렇지만 실제로 나이 먹어서 최전선에 있기 어렵게 되면, 결국 입문서도 안 쓸 것 같다. 나이 먹어서 최전선에 서기 어려우면 그냥 책을 안 쓰면 되지, 뭐 하러..

 

아직도 해보고 싶은 실험들이 좀 있다. 예를 들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사람들 만나는 인터뷰와 조사한 결과들, 그런 것들을 가지고 경제 다큐 만들어보는 것. 생각만 있지 아직 그렇게까지 넓힐만한 여력은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

 

최전선에 서는 것은 직장 민주주의 책으로 어느 정도는 정점을 찍은 것 같다. 더 앞으로 가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면서, 오히려 삶의 노예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직장 민주주의 책 수준 밑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내 능력으로는 그 정도가 극대치다. 그 상황에서 포맷과 양식 등 형식 실험을 좀 더 해보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웃길 수 있나, 어떻게 하면 사회과학이 가지고 있는 근엄함을 좀 더 누그려뜨리고, 확 깨는 스타일로 할 수 있나. 움베르트 에코도 했는데, 우리라고 못할 건 없지 않나?

 

예전에는 있던 일인데, 요즘은 좀 어려워진 게, 책의 힘만으로 책을 파는 것. 이게 2년 전부터 내가 방송을 갖지 않는다, 그런 몇 가지 원칙들을 만든 이유다.

 

10년 넘게 저자로 살아오면서 저자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은 이미 다 누렸다. 20만 부 넘게 팔린 책도 있어서, 책도 팔만큼 팔아봤다.

 

요즘은 내 인기가 바닥이다. 일반적이면 그 인기를 높이는 게 우선순위일텐데,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수단이 없는 건 아닌데, 애 보면서 하기에 좀 그렇기는 하다. 그리고 제일 해보고 싶은 게, 인기가 바닥인 상황에서 정말로 책의 힘만 가지고, 그것도 최전선에 서서 팔리는 책을 해보고 싶다.

 

몇 사람 안 오는 블로그 정도 운영하면서 이미 그것도 올드 매체가 되어버린 약간의 강연, 그 정도만 가지고 책의 힘으로 스스로 팔려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래야 이게 선례가 될 것 같다는. 그게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 날을 위해서 나도 참고 버틴다.

 

그런 이유라면 참고 버티고, 계속 책을 쓰는 게 나에게 의미를 준다.

 

가끔 출판사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이건 딱 팔릴 것 같은데, 왜 안 쓰냐고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본다. 물론 그 정도 틀이면 충분히 팔릴 거라는 것은 나도 안다. 그렇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이 써도 되고, 더 젊은 사람들이 써고 되고. 굳이 내가 쓸 이유는 없다. 책을 잘 팔아서 돈을 벌기 위해서 책을 쓴다면, 내가 이미 보내 버린 나의 청춘 시절이 너무 불쌍해진다. 인생에.. 돈이 다가 아니다. 명예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나에게 인생은, 명분이다. 명분이 없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시도도 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어떤 연구원의 연구원장 자리 제안이 왔다. “머리에 총 맞았어요, 지금 와서 그걸 하게.” 진심이다.

 

인기 바닥인 상태에서 최전선에 서 있는 책을 책의 힘만으로 파는 것.. 그걸 위해서 차관 자리 몇 개 장관은 아니고 몇 개의 기관장 자리를 안 한다고 했다. 차관 해봐야, 그걸 누가 기억하겠나? 사람들은 잠시만 시간이 지나가면 총리 이름도 다 까먹고, 장관은 더더군다나. 차관은 정말 아무도 모른다. 그냥 자기 만족이다. 혹은 아버지, 할아버지 좋으라고. ‘가문의 영광’, 그런 건 집에서 같이 사는 고양이의 환한 미소 보다도 가치가 없는 일이다.

 

책은 부드럽게, 팔리게 써야 한다는 게 지금의 출판 시장에서 대세다. 그리고 맡지를 못해서 그렇지, 어떻게든 방송을 맡고, 그렇게 얼굴을 알려야 책도 더 팔린다고 권유하는 게 대세가 된지 벌써 몇 년이다.

 

나는 그 흐름과는 정반대로 간다. 능력이 안 되서 못하지, 더 최전선으로, 더 전위로 내가 다루는 주제를 밀어넣는다. 농업경제학, 생각만 해도 머리 지끈지끈하다. 이걸 누가 하겠나? 내가 한다. 그런 자부심 정도는 가지고 산다.

 

정말 터프하고 지나치게 정공법이다. 내가 책을 사랑해서 그렇다. 읽는 것도 사랑하고, 좋은 책이 나오는 것도 사랑하고, 읽은 만한 것을 쓰는 행위도 사랑한다. 그래서 책을 능멸하거나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건 괜찮다, 그 정도는 그런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 서는 게 나는 보람이 있고, 즐겁다. 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내 책만 파는 건 쉽다. 그러나 더 좋은 책을 많이 쓰고, 그런 게 더 많이 읽히고, 그렇게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내가 꿈꾸는 세상은 그런 정공법의 세상이다. 그리고 난 그런 게 좋다.

 

나는 돌맹이, 이리 치고 저리 치여도, 굴러가다 보면 좋은 날 오겠지

 

마시따 밴드의 <돌맹이>와 함께 올해도 한 해를 버텼다.

 

블로그의 여러 분들에게도, 한 해를 같이 지내면서 지지고 볶었던 시간을 위해서, 감사의 말씀을.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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