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때, 대중들에게 면죄부를 받은 사람은 장 폴 샤르트르 정도였다고 들었다. 물론 실제로는, 그 68이라는 공간에서 맹활약한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얘기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아도르노에게 여학생이 가슴을 들이밀면서, 우리는 다 잡혀가고, 망가지고... 근데 넌 왜 이렇게 잘 처먹고 살고 있어, 우리보러 나가라고 하더니.
하여간, 명제라는 것은 언제나 서슬이 시퍼렇다.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형식논리상의 촛불에 대한 첫번째 질문은, "집에 가라"와 "집에 가지 마라", 두 가지 밖에는 없다.
1.
"집에 가라"에는, 최장집 버전이 제 1 버전이다. 약간 택도 없는 소리다. 언젠가는 집에 가게 되는 것인데, 지금 갈 수 없다는 반론에 바로 부딪히게 된다. 대의민주주의와 관련된 몇 가지 얘기로 더 들어가면 논쟁은 치사해지는데, 결국 초기에는 손학규를 봐라, 그리고 최근에는 정세균을 봐라...
정세균, 돌아보면 정말 가슴이 미어터진다. (건너건너, 좀 도와달라고 집요하게 나에게 요청 중인데, 새만금 포기하면... 절대 포기할 사람 아니다.)
아니면 최장집 교수, 본인이 나서서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을 좀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형태로 좀 바꾸던지. (이건 무슨 강건너 불구경, 아니면 내기 바둑의 훈수꾼이냐.)
하여간 이 버전의 "집에 가라"에는 논리적으로 "언젠가는 집에 간다"라고 답변하게 될 것 같다.
최장집과 백낙청은 평생의 적수였는데,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이번에는 백낙청 완승.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얘기하는 '집에 가라" 제 2버전은, 상당히 대답하기가 어렵다. 일단 집에 가고, 그 대신 매주 토요일날 가족 모임으로 하거나, 그렇게 정례화시켜서, 아예 1,000일 동안 촛불을 들자. 일종의 아고라 광장으로 촛불 집회의 국조를 전환시키자는 것인데, 애매하기는 하지만, "집에 가라" 버전에 포함된다. 그러나 현실적인 고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50일 넘게 새벽까지 버텼던 사람들의 파토스를 담아낼 수 있을까? 쇠고기 문제는 하나도 풀린 게 없잖아, 당장 이 다음 질문에 답하기가 어렵다.
내가 접한 "집에 가라" 세 번째 버전은 Deep Ecology라고 불리는, 소위 근본생태주의 혹은 근본평화주의 진영 일부에서 나오는 '성찰론'인데, 이명박 반대로는 진정한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이 구도를 풀고 개인들에게 자신들의 삶, 그리고 지금의 이 문명에 대한 성찰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말은 알겠는데, 역시 집에 가라 버전이다. 사회적 운동과 개인적 성찰의 경계에서, "아직 대중은 멀었다"라는 위험한 선 위에 서 있는데, 이 얘기를 나보러 좀 하라고들 하셔서,
냅다 블로그 깃발들고 시청광장으로 나와버렸다. 이제 와 밝히는 것이지만, 깃발까지 만들게 된 직접적 동기는, 이 생태주의 버전의 "집에 가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개인적으로, 난 국민, 시민, 대중, 혹은 그게 뭐라고 불리든, 나를 우월적 위치에 놓고 접근하는 방식은, 질색하는 편이다.
이 외에 기타 분류되지 않은 지방방송 버전의 '집에 가라'가 조금 더 있다.
피곤하다... 보통,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비관론 버전의 "집에 가라"도 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기자들과 PD들의 90% 정도가 이 비관론 버전의 집에 가라파이다. 어차피 질 것, 괜히 허파에 바람들어갔다가, 나중에 실망만 커지니까, 지금이라도 집에 가라.
2. 왜 나는<계속> 나오는가?
한국은 좌파 30%, 우파 30%, 그리고 40% 정도의 "그때그때 달라요"로 정치 지형이 보통 구성된다. 대부분의 선거가 이렇고, 이 정도 구도면 대부분의 사건을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연령별, 지역별, 그리고 직업별 기준을 집어넣으면 훨씬 복잡해지기는 한다. (나는 여기에 마초 지수를 하나 더 넣으면 한국의 정치현상은 90% 이상 설명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촛불은 "그때그때 달라요" 40%가 본진이다.
여기에 좌파 30%가 촛불 쪽에 붙었고, 이 구도에서는 좌파들이 "그때그때 달라요"이다.
그리고 우파 5~10%, 그러니까 진정으로 자신들이 '합리적 보수'라고 생각한 5% 정도의 국민들이 촛불을 지지한다.
그렇게 계산하면, 20~25%의 명박 지지율이 계산이 된다. 한 때 '합리적 보수'의 15%까지 촛불을 지지해서, 이 때 명박 지지율이 10% 초반까지 갔었는데, 적극적 공안정국으로 명박이 5%를 데려갔다.
이게 청와대가 '집토끼'라고 부르는 사람인데, 30%까지, 즉 원래의 전통 우파를 다 회복하는 순간이 청와대가 기획한 '공포의 백 드래프트'가 작동하는 순간이다.
정치적으로 유화책, 정책적으로는 강공책 - 747 공약과 대운하 - 가 전면에 나서는 기점은 30% 즈음한 지점으로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이제 '산토끼' 즉 촛불을 들었던 "그때그때 달라요" 혹은 중도 40%를 다시 되찾아와서, 2010년 지방선거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 그 계산이다.
촛불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우파 쪽에서 정치적 생각을 바꾼 사람이 있을까? 매두 드물어보인다. 한나라당 지지율 30%는 변한 게 없다. 다만, 명박에 대해서는, "너는 아니야"가 우파 내에서도 발생한 셈이다.
(이런 이유로,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거나, 지지율 구조가 구조화되어 전환될 기미가 보이면, 한나라당의 명박을 탄핵할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한나라당 지지율이 20% 정도로 내려가면, 사태는 매우 빠르게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공간에서 좌파는 뭘 좀 얻은 게 있을까? 별로 없다. 왜냐하면 좌파는 본진이 아니라서 그렇고, 뻘줌한 민주노총, 혹은 깝깝한 민주노동당, 역시 얻은 게 별로 없다. 애당초, 이들은 촛불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음은 물론, 분석도 제대로 안한 것 같다. 얻은 것이라면, 민주노총에 대한 파업의 약간의 지지 정도...
그러나 운수노조로 얻은 것을, 현대자동차의 2시간 파업으로 대충 까먹고, 기본 3점 난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2시간? 그것도 엄청난 것이라고 민주노총에서 개뻥을 치지만, 10시간 이상 물대포 맞으면서 집회했던 사람들에게, 2시간? 장난하나?
애당초 좌파, 정확히는 구좌파 - 여기에는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다 포함해도 좋다 - 들의 문화와 대응능력으로는, 그야말로 그냥 촛불에 묻어가거나 혹은 "우리 편 같아"가 된 셈이다.
강기갑, 진중권, 그렇게 두 명의 거리 스타가 나온 것으로 만족할 상황이다.
민주당? 멱살잡히지 않은 게 다행이다.
이회창을 지지하면서 촛불집회에 매일 나오시는 아주 부자이고, 아주 공부 많이한 박사님을 알고 있다. 생물학 박사 되신다. 부자는, 나도 추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자인데, 이런 분이 물대포를 맞고, 열받고 씩씩거리는 작금의 상황... 이분은, '건전한 보수'로 내가 존경한다. 오른쪽 30% 중에서, 건전한 보수들 중 촛불을 지지한 5~10%로 설명할 수 있다.
최장집 선생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최장집 선생의 "집에 가라"의 권위가 이번에는 안 통하는 것이, "그때그때 달라요" 40%는, 일단 최장집 누군지 모른다.
만일 그가 인도의 간디처럼 "촛불 들자"고 제안하고, 민중들과 고난의 행군을 같이 했고, 그런데 이건 아니다, "집에 가라" 했으면 좀 통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이 구조이다.
왜 촛불에 대한 대안이 "집에 가라" 외에는 없는가? 지난 30년 동안, 한국에서 이 40%, 꼭 중산층은 아니지만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 그룹이 마음을 주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이론도, 사람도, 그리고 설명틀도 없었기 때문이다.
손학규를 비롯한 지난 대선의 황석영 등등이 "이건 바로 중도다"라고 삽질을 했는데, 이 사람들은 본원적인 의미에서 중도도 아니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만, 한국에서 중도의 특징은, 막상 가운데 가면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중도? 한국에서 중도는 공터이다.
여기는 중도, 여기는 중도, 아무도 없다, 오바.
중도좌파, 중도우파는 있다. 그러나 정중앙, 중도에는 아무도 없다.
사실 그들이 처음으로 한국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그들끼리 소통하기 시작한 현상이, 기존 좌파 이론이나 우파 이론의 프레임가지고 설명되지 않는 촛불 현상의 특이성이라고, 나는 본다.
이들이 의지하거나 혹은 준거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명박이 재협상을 하겠다고 얘기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어떤 버전이든, 그것이 심각하든 아니든, "집에 가라"가 안 통하는 것이다.
이들은 본래, 지지할 정당과 사람을 가지지 않는데, 그게 특징이다. 그것이 한국의 중도진영에 있는 40%의 특징이다.
몇 개의 통계와 샘플을 가지고 봤는데, 평소에 '중도'라고 말했던 사람들, 이번에 맨 오른쪽 10% 안에 거의 다 들어가 있었다.
한국의 중도는, '중도'라는 말도 쓰지 않고, 원래 정치에 관심도 별로 없고, 그때그때 선택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그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변자', 즉 대의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자면, 그들의 대의 세력이 없으니까, 자신들 외에는 믿을 수 없는 것이 현 상황이다.
그러니까 정당과 국회를 믿고 "집에 가라" 말하면, 즉각, 썰렁탕 대령이오.
3. 근본적 딜레마
결국은 이 촛불의 에너지, 정확히 말하면 한국 사회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거나 임시로만 지지했던 - 예를 들면 2002년에 노무현을 잠깐 지지했던, 혹은 2007년 이명박은 좀 다를려나, 잠깐 찍어주었던 - 이 사람들의 에너지는 촛불집회의 끝없는 원동력으로 작동한 것처럼, 대단한 것이기는 하다.
명박의 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전에는, 15~25% 정도의 지지율로 5년을 가거나, 아니면 버티다 버티다 못해서, "못해먹겠다" 하거나, 하여간 그 이상의 지지율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사실상, 피의 일요일 몇 번을 거치면서, 명박 정부는 식물정부가 되었다.
"이 빨갱이들" 하면서, 엉뚱한 사람을 때린 것이다.
YMCA 이학영 총장이, "내가 경찰 자문위원인데, 날 때린단 말이야?"라고 씩씩거리게 된 사건과 똑같다.
"나야, 나, 너 찍어준 나"하는데, 그걸 방패로 찍고 진압봉으로 팬 셈이다.
내가 현장에서 관찰한 결과로는... 그것이 민주노총이든, 시민단체든, 밤 12시 이후에 현장에 남은 사람들 중에, 좌파는 거의 없었다. 술 처먹으러 갔거나, "재충전" 한다고 갔다.
다함께의 "이제 그만 집에 갑시다"라는 구호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들은 파토스의 흐름을 잘못 읽었는데, 다함께만 그런 게 아니고, 대부분의 운동단체 그리고 심상정-노회찬의 초기 대응도 다 같은 흐름 위에 있다.
그래서 정말로 순진무구하며, 정치와는 상관없던, 정말 '선량한 일반시민'들이 주로 맞았다.
때려놓고, 지지를 바란다? 사람들은 그런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존재이다.
문제는, 헌법을 개헌하면서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단시간에 확충하는 정치 틀에 대한 대대적 정비가 곤란하다는 점이고 - 한나라당 계열 국회의원이 200명에 육박한다 - , 그렇다고 마음을 줄 정당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정당을 만들면 될 것 아니냐? 그러나 중도진영의 복합성으로 인하여 이걸 하나로 묶어서 정당을 만들게 되기가 쉽지 않다.
당장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에서, 안 됩니다, 여러분, 그것은 보수의 책동입니다, 쌩난리를 칠 것이다.
구경하다가 슬금슬금 끼어든 민주당도, 촛불당 만든다고 하면, 잔인한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녹색당 만든다고 설치던 시절, 그 진짜 얼굴을 몇 번 보았다. 정말 무서웠다.)
분열된 양상 그것이 원래 중도 40%의 속성이라서, 이게 당이 되기는 참 어렵다.
이게 딜레마다. 촛불이 자신들의 당을 만들고, 그 당이 알아서 이후부터는 문제를 풀도록 하고, 돌아갈 수 있다면, 거의 유일한 해법인데, 이것도 딜레마 구조에 걸려있다.
그래서 "집에 가라"와 "집에 가지 않는다", 두 가지 외에 진로에 대한 논리적 결론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4. 질긴 놈이 이긴다
촛불에 대해서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때그때 달라요" 40%가 촛불을 들고, 이를 지지하는 한, 그리고 "때러서 정말 미안합니다"라는 인간적으로 수긍이 가는 사과를 받기 전까지, 이 정부는 식물정부 상태라는 점이고, 명박은 국민 행사에 잘 가지 못하는 식물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좀 미안한 표현이지만, 촛불의 진로를 놓고 토론한다고 해서, 난 좀 삽질이라고 생각했다. 100분토론 같은 게 웃겨보이기는 한데, 전문 패널이 아니라 일반인이 나와서 토론한다고 해도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차피 결정권이 없고, "코멘트" 얹어주는 것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100분 토론의 유일한 강점은, 여기에 나올 때 패널들이 내용을 준비해서, 가끔 '사실관계'의 대박이 터질 때 뿐이다.
내 생각에는, 진로 토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촛불이 믿을 수 있는 권력의 위임관계, 즉 이름이야 뭐가 되든, 대책위가 아니라 '민회'와 같은 것, 즉 "너희들이 우리를 좀 대신해서 뭘 좀 해라"라고 할 것을 만드느냐 아니냐, 이것이 명박이 계속 꼴통치고 있을 때 촛불이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논리적 조건으로 보인다.
그런게 정당일 수도 있고, 시민단체의 형식일 수도 있고, 민회라는, 서양 정치이론으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대단히 한국적 형식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권한의 위임관계가 벌어져야 비로소 '니들이 잘 좀 해봐"라고 하고, 촛불들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단계까지는 못 간 것 같다. 한국 내에서 정치적 냉소주의와 패배의 경험이 너무 깊어서 그런 것 같다.
질기게 버티다 보면, 그 안에서 피곤해서라도 그런 구조에 대한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잘하거나, 민주노동당이나 환골탈퇴의 모습을 보여주면, 에이 귀찮은데, 그냥 니들이 잘 해봐. 이럴 수는 있다. 그러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가능성, 아주 희박하다.
하여간 next stage로 넘어가기 위해서, 결국 질기게 가고, 이 판에서는 질긴 놈이 이긴다는 가장 간단한 진리가 관철되는 것 같다.
다음 주면, 우파들은 물론 좌파들도 "집에 가라" 총공세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촛불은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 지금까지는 우파들에게만 공격받았는데, 최장집의 공격을 시작으로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좌파들도 촛불들 "집에 가라"고 공격할 것이다.
유럽의 경험만을 말하자면, 촛불집회처럼 이렇게 짧고 종합적으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유사한 흐름은 80년대 후반 이후로 동구권의 점차적인 몰락 그리고 붕괴와 함께 '아주 길었던 촛불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 공간에서는 신좌파라고 불리던, 구좌파와는 아주 다른 흐름이 나와서 그 에너지를 상당 부분 제도권 내로 흡수했다.
그렇다면 한국도 신좌파가 등장하고, 뉴라이트 같은, 원단 똘아이 극우파들 말고 '젋은 합리적 보수들'이 나타나서 이 에너지를 흡수하고, 그것을 제도와 질서로 내재화시키면 될 것 아니냐?
이럻게 질문 할 수 있기는 한데, 한국에서 신좌파, 아직 실체도 없고, 실력도 없다. 냉정한 진단이지만, 이미 스스로 진화하는 촛불의 속도를 따라가면서 같이 움직일 그런 유능한 신좌파 같은 것, 한국에는 없다.
그렇다면 '젊은 합리적 보수'는? TV나 라디오에서 꼴통치는 저 극우파들을 봐라. 도대체 정 가게 말하는 분이 한 분도 안 계시고, 믿음 가게 멘트다시는 분이 있나?
결국 명박이 재협상하거나, 아니면 지금의 촛불이 그 스스로 실체가 되거나, 논리적인 방법은 두 가지 외에는 없어보인다.
두 가지 다 희미하지만, 촛불이 스스로 정체성을 갖추고, 자기조직화 하는 편이 조금 더 확률이 높다.
질긴 놈이 이긴다고 이렇게 대처하고 있으면, 몰리다 몰린 한나라당이 뭐라도 할지 모른다. 그러나 박희태, 참 한숨 밖에 안나온다.
그러니 "들어가라", "들어가지 마라", 이 논리적인 진단 같아 보이는 두 얘기 다 촛불들에게는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불과하다.
진중권이 들어가라고 말해도, 한 번 생각은 해보겠어요... 라고 할 것 같다. 한국의 지성과 양심이 촛불에게 요구할 수 있는 최대치가, 카톨릭을 포함한 종교계의, "오늘 밤은 이제 그만, 내일 또 만나요", 이 정도이다.
첫 날 촛불 집회에서 들은 얘기이다. "질긴 놈이 이긴다", 그게 한국의 중도 40%가 본진인 이 촛불 집회의 거의 유일하고도 일관된 본질이다.
100일 기준으로, 아직 절반 밖에 안 왔고, 재협상 없이는, 들어갈 폼새가 아니다.
여기에는,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는 것인데, 불행히도 정치문화적 해법이 없다.
이걸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의 문장이다.
"우리는 세계사의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는 중이다."
(압축성장으로 불균형을 잔뜩 안고 있는 국민경제가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는가, 그 실험 과정이라고 표현해도 같은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얘기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아도르노에게 여학생이 가슴을 들이밀면서, 우리는 다 잡혀가고, 망가지고... 근데 넌 왜 이렇게 잘 처먹고 살고 있어, 우리보러 나가라고 하더니.
하여간, 명제라는 것은 언제나 서슬이 시퍼렇다.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형식논리상의 촛불에 대한 첫번째 질문은, "집에 가라"와 "집에 가지 마라", 두 가지 밖에는 없다.
1.
"집에 가라"에는, 최장집 버전이 제 1 버전이다. 약간 택도 없는 소리다. 언젠가는 집에 가게 되는 것인데, 지금 갈 수 없다는 반론에 바로 부딪히게 된다. 대의민주주의와 관련된 몇 가지 얘기로 더 들어가면 논쟁은 치사해지는데, 결국 초기에는 손학규를 봐라, 그리고 최근에는 정세균을 봐라...
정세균, 돌아보면 정말 가슴이 미어터진다. (건너건너, 좀 도와달라고 집요하게 나에게 요청 중인데, 새만금 포기하면... 절대 포기할 사람 아니다.)
아니면 최장집 교수, 본인이 나서서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을 좀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형태로 좀 바꾸던지. (이건 무슨 강건너 불구경, 아니면 내기 바둑의 훈수꾼이냐.)
하여간 이 버전의 "집에 가라"에는 논리적으로 "언젠가는 집에 간다"라고 답변하게 될 것 같다.
최장집과 백낙청은 평생의 적수였는데,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이번에는 백낙청 완승.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얘기하는 '집에 가라" 제 2버전은, 상당히 대답하기가 어렵다. 일단 집에 가고, 그 대신 매주 토요일날 가족 모임으로 하거나, 그렇게 정례화시켜서, 아예 1,000일 동안 촛불을 들자. 일종의 아고라 광장으로 촛불 집회의 국조를 전환시키자는 것인데, 애매하기는 하지만, "집에 가라" 버전에 포함된다. 그러나 현실적인 고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50일 넘게 새벽까지 버텼던 사람들의 파토스를 담아낼 수 있을까? 쇠고기 문제는 하나도 풀린 게 없잖아, 당장 이 다음 질문에 답하기가 어렵다.
내가 접한 "집에 가라" 세 번째 버전은 Deep Ecology라고 불리는, 소위 근본생태주의 혹은 근본평화주의 진영 일부에서 나오는 '성찰론'인데, 이명박 반대로는 진정한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이 구도를 풀고 개인들에게 자신들의 삶, 그리고 지금의 이 문명에 대한 성찰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말은 알겠는데, 역시 집에 가라 버전이다. 사회적 운동과 개인적 성찰의 경계에서, "아직 대중은 멀었다"라는 위험한 선 위에 서 있는데, 이 얘기를 나보러 좀 하라고들 하셔서,
냅다 블로그 깃발들고 시청광장으로 나와버렸다. 이제 와 밝히는 것이지만, 깃발까지 만들게 된 직접적 동기는, 이 생태주의 버전의 "집에 가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개인적으로, 난 국민, 시민, 대중, 혹은 그게 뭐라고 불리든, 나를 우월적 위치에 놓고 접근하는 방식은, 질색하는 편이다.
이 외에 기타 분류되지 않은 지방방송 버전의 '집에 가라'가 조금 더 있다.
피곤하다... 보통,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비관론 버전의 "집에 가라"도 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기자들과 PD들의 90% 정도가 이 비관론 버전의 집에 가라파이다. 어차피 질 것, 괜히 허파에 바람들어갔다가, 나중에 실망만 커지니까, 지금이라도 집에 가라.
2. 왜 나는<계속> 나오는가?
한국은 좌파 30%, 우파 30%, 그리고 40% 정도의 "그때그때 달라요"로 정치 지형이 보통 구성된다. 대부분의 선거가 이렇고, 이 정도 구도면 대부분의 사건을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연령별, 지역별, 그리고 직업별 기준을 집어넣으면 훨씬 복잡해지기는 한다. (나는 여기에 마초 지수를 하나 더 넣으면 한국의 정치현상은 90% 이상 설명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촛불은 "그때그때 달라요" 40%가 본진이다.
여기에 좌파 30%가 촛불 쪽에 붙었고, 이 구도에서는 좌파들이 "그때그때 달라요"이다.
그리고 우파 5~10%, 그러니까 진정으로 자신들이 '합리적 보수'라고 생각한 5% 정도의 국민들이 촛불을 지지한다.
그렇게 계산하면, 20~25%의 명박 지지율이 계산이 된다. 한 때 '합리적 보수'의 15%까지 촛불을 지지해서, 이 때 명박 지지율이 10% 초반까지 갔었는데, 적극적 공안정국으로 명박이 5%를 데려갔다.
이게 청와대가 '집토끼'라고 부르는 사람인데, 30%까지, 즉 원래의 전통 우파를 다 회복하는 순간이 청와대가 기획한 '공포의 백 드래프트'가 작동하는 순간이다.
정치적으로 유화책, 정책적으로는 강공책 - 747 공약과 대운하 - 가 전면에 나서는 기점은 30% 즈음한 지점으로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이제 '산토끼' 즉 촛불을 들었던 "그때그때 달라요" 혹은 중도 40%를 다시 되찾아와서, 2010년 지방선거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 그 계산이다.
촛불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우파 쪽에서 정치적 생각을 바꾼 사람이 있을까? 매두 드물어보인다. 한나라당 지지율 30%는 변한 게 없다. 다만, 명박에 대해서는, "너는 아니야"가 우파 내에서도 발생한 셈이다.
(이런 이유로,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거나, 지지율 구조가 구조화되어 전환될 기미가 보이면, 한나라당의 명박을 탄핵할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한나라당 지지율이 20% 정도로 내려가면, 사태는 매우 빠르게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공간에서 좌파는 뭘 좀 얻은 게 있을까? 별로 없다. 왜냐하면 좌파는 본진이 아니라서 그렇고, 뻘줌한 민주노총, 혹은 깝깝한 민주노동당, 역시 얻은 게 별로 없다. 애당초, 이들은 촛불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음은 물론, 분석도 제대로 안한 것 같다. 얻은 것이라면, 민주노총에 대한 파업의 약간의 지지 정도...
그러나 운수노조로 얻은 것을, 현대자동차의 2시간 파업으로 대충 까먹고, 기본 3점 난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2시간? 그것도 엄청난 것이라고 민주노총에서 개뻥을 치지만, 10시간 이상 물대포 맞으면서 집회했던 사람들에게, 2시간? 장난하나?
애당초 좌파, 정확히는 구좌파 - 여기에는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다 포함해도 좋다 - 들의 문화와 대응능력으로는, 그야말로 그냥 촛불에 묻어가거나 혹은 "우리 편 같아"가 된 셈이다.
강기갑, 진중권, 그렇게 두 명의 거리 스타가 나온 것으로 만족할 상황이다.
민주당? 멱살잡히지 않은 게 다행이다.
이회창을 지지하면서 촛불집회에 매일 나오시는 아주 부자이고, 아주 공부 많이한 박사님을 알고 있다. 생물학 박사 되신다. 부자는, 나도 추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자인데, 이런 분이 물대포를 맞고, 열받고 씩씩거리는 작금의 상황... 이분은, '건전한 보수'로 내가 존경한다. 오른쪽 30% 중에서, 건전한 보수들 중 촛불을 지지한 5~10%로 설명할 수 있다.
최장집 선생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최장집 선생의 "집에 가라"의 권위가 이번에는 안 통하는 것이, "그때그때 달라요" 40%는, 일단 최장집 누군지 모른다.
만일 그가 인도의 간디처럼 "촛불 들자"고 제안하고, 민중들과 고난의 행군을 같이 했고, 그런데 이건 아니다, "집에 가라" 했으면 좀 통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이 구조이다.
왜 촛불에 대한 대안이 "집에 가라" 외에는 없는가? 지난 30년 동안, 한국에서 이 40%, 꼭 중산층은 아니지만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 그룹이 마음을 주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이론도, 사람도, 그리고 설명틀도 없었기 때문이다.
손학규를 비롯한 지난 대선의 황석영 등등이 "이건 바로 중도다"라고 삽질을 했는데, 이 사람들은 본원적인 의미에서 중도도 아니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만, 한국에서 중도의 특징은, 막상 가운데 가면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중도? 한국에서 중도는 공터이다.
여기는 중도, 여기는 중도, 아무도 없다, 오바.
중도좌파, 중도우파는 있다. 그러나 정중앙, 중도에는 아무도 없다.
사실 그들이 처음으로 한국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그들끼리 소통하기 시작한 현상이, 기존 좌파 이론이나 우파 이론의 프레임가지고 설명되지 않는 촛불 현상의 특이성이라고, 나는 본다.
이들이 의지하거나 혹은 준거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명박이 재협상을 하겠다고 얘기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어떤 버전이든, 그것이 심각하든 아니든, "집에 가라"가 안 통하는 것이다.
이들은 본래, 지지할 정당과 사람을 가지지 않는데, 그게 특징이다. 그것이 한국의 중도진영에 있는 40%의 특징이다.
몇 개의 통계와 샘플을 가지고 봤는데, 평소에 '중도'라고 말했던 사람들, 이번에 맨 오른쪽 10% 안에 거의 다 들어가 있었다.
한국의 중도는, '중도'라는 말도 쓰지 않고, 원래 정치에 관심도 별로 없고, 그때그때 선택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그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변자', 즉 대의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자면, 그들의 대의 세력이 없으니까, 자신들 외에는 믿을 수 없는 것이 현 상황이다.
그러니까 정당과 국회를 믿고 "집에 가라" 말하면, 즉각, 썰렁탕 대령이오.
3. 근본적 딜레마
결국은 이 촛불의 에너지, 정확히 말하면 한국 사회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거나 임시로만 지지했던 - 예를 들면 2002년에 노무현을 잠깐 지지했던, 혹은 2007년 이명박은 좀 다를려나, 잠깐 찍어주었던 - 이 사람들의 에너지는 촛불집회의 끝없는 원동력으로 작동한 것처럼, 대단한 것이기는 하다.
명박의 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전에는, 15~25% 정도의 지지율로 5년을 가거나, 아니면 버티다 버티다 못해서, "못해먹겠다" 하거나, 하여간 그 이상의 지지율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사실상, 피의 일요일 몇 번을 거치면서, 명박 정부는 식물정부가 되었다.
"이 빨갱이들" 하면서, 엉뚱한 사람을 때린 것이다.
YMCA 이학영 총장이, "내가 경찰 자문위원인데, 날 때린단 말이야?"라고 씩씩거리게 된 사건과 똑같다.
"나야, 나, 너 찍어준 나"하는데, 그걸 방패로 찍고 진압봉으로 팬 셈이다.
내가 현장에서 관찰한 결과로는... 그것이 민주노총이든, 시민단체든, 밤 12시 이후에 현장에 남은 사람들 중에, 좌파는 거의 없었다. 술 처먹으러 갔거나, "재충전" 한다고 갔다.
다함께의 "이제 그만 집에 갑시다"라는 구호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들은 파토스의 흐름을 잘못 읽었는데, 다함께만 그런 게 아니고, 대부분의 운동단체 그리고 심상정-노회찬의 초기 대응도 다 같은 흐름 위에 있다.
그래서 정말로 순진무구하며, 정치와는 상관없던, 정말 '선량한 일반시민'들이 주로 맞았다.
때려놓고, 지지를 바란다? 사람들은 그런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존재이다.
문제는, 헌법을 개헌하면서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단시간에 확충하는 정치 틀에 대한 대대적 정비가 곤란하다는 점이고 - 한나라당 계열 국회의원이 200명에 육박한다 - , 그렇다고 마음을 줄 정당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정당을 만들면 될 것 아니냐? 그러나 중도진영의 복합성으로 인하여 이걸 하나로 묶어서 정당을 만들게 되기가 쉽지 않다.
당장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에서, 안 됩니다, 여러분, 그것은 보수의 책동입니다, 쌩난리를 칠 것이다.
구경하다가 슬금슬금 끼어든 민주당도, 촛불당 만든다고 하면, 잔인한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녹색당 만든다고 설치던 시절, 그 진짜 얼굴을 몇 번 보았다. 정말 무서웠다.)
분열된 양상 그것이 원래 중도 40%의 속성이라서, 이게 당이 되기는 참 어렵다.
이게 딜레마다. 촛불이 자신들의 당을 만들고, 그 당이 알아서 이후부터는 문제를 풀도록 하고, 돌아갈 수 있다면, 거의 유일한 해법인데, 이것도 딜레마 구조에 걸려있다.
그래서 "집에 가라"와 "집에 가지 않는다", 두 가지 외에 진로에 대한 논리적 결론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4. 질긴 놈이 이긴다
촛불에 대해서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때그때 달라요" 40%가 촛불을 들고, 이를 지지하는 한, 그리고 "때러서 정말 미안합니다"라는 인간적으로 수긍이 가는 사과를 받기 전까지, 이 정부는 식물정부 상태라는 점이고, 명박은 국민 행사에 잘 가지 못하는 식물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좀 미안한 표현이지만, 촛불의 진로를 놓고 토론한다고 해서, 난 좀 삽질이라고 생각했다. 100분토론 같은 게 웃겨보이기는 한데, 전문 패널이 아니라 일반인이 나와서 토론한다고 해도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차피 결정권이 없고, "코멘트" 얹어주는 것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100분 토론의 유일한 강점은, 여기에 나올 때 패널들이 내용을 준비해서, 가끔 '사실관계'의 대박이 터질 때 뿐이다.
내 생각에는, 진로 토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촛불이 믿을 수 있는 권력의 위임관계, 즉 이름이야 뭐가 되든, 대책위가 아니라 '민회'와 같은 것, 즉 "너희들이 우리를 좀 대신해서 뭘 좀 해라"라고 할 것을 만드느냐 아니냐, 이것이 명박이 계속 꼴통치고 있을 때 촛불이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논리적 조건으로 보인다.
그런게 정당일 수도 있고, 시민단체의 형식일 수도 있고, 민회라는, 서양 정치이론으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대단히 한국적 형식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권한의 위임관계가 벌어져야 비로소 '니들이 잘 좀 해봐"라고 하고, 촛불들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단계까지는 못 간 것 같다. 한국 내에서 정치적 냉소주의와 패배의 경험이 너무 깊어서 그런 것 같다.
질기게 버티다 보면, 그 안에서 피곤해서라도 그런 구조에 대한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잘하거나, 민주노동당이나 환골탈퇴의 모습을 보여주면, 에이 귀찮은데, 그냥 니들이 잘 해봐. 이럴 수는 있다. 그러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가능성, 아주 희박하다.
하여간 next stage로 넘어가기 위해서, 결국 질기게 가고, 이 판에서는 질긴 놈이 이긴다는 가장 간단한 진리가 관철되는 것 같다.
다음 주면, 우파들은 물론 좌파들도 "집에 가라" 총공세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촛불은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 지금까지는 우파들에게만 공격받았는데, 최장집의 공격을 시작으로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좌파들도 촛불들 "집에 가라"고 공격할 것이다.
유럽의 경험만을 말하자면, 촛불집회처럼 이렇게 짧고 종합적으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유사한 흐름은 80년대 후반 이후로 동구권의 점차적인 몰락 그리고 붕괴와 함께 '아주 길었던 촛불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 공간에서는 신좌파라고 불리던, 구좌파와는 아주 다른 흐름이 나와서 그 에너지를 상당 부분 제도권 내로 흡수했다.
그렇다면 한국도 신좌파가 등장하고, 뉴라이트 같은, 원단 똘아이 극우파들 말고 '젋은 합리적 보수들'이 나타나서 이 에너지를 흡수하고, 그것을 제도와 질서로 내재화시키면 될 것 아니냐?
이럻게 질문 할 수 있기는 한데, 한국에서 신좌파, 아직 실체도 없고, 실력도 없다. 냉정한 진단이지만, 이미 스스로 진화하는 촛불의 속도를 따라가면서 같이 움직일 그런 유능한 신좌파 같은 것, 한국에는 없다.
그렇다면 '젊은 합리적 보수'는? TV나 라디오에서 꼴통치는 저 극우파들을 봐라. 도대체 정 가게 말하는 분이 한 분도 안 계시고, 믿음 가게 멘트다시는 분이 있나?
결국 명박이 재협상하거나, 아니면 지금의 촛불이 그 스스로 실체가 되거나, 논리적인 방법은 두 가지 외에는 없어보인다.
두 가지 다 희미하지만, 촛불이 스스로 정체성을 갖추고, 자기조직화 하는 편이 조금 더 확률이 높다.
질긴 놈이 이긴다고 이렇게 대처하고 있으면, 몰리다 몰린 한나라당이 뭐라도 할지 모른다. 그러나 박희태, 참 한숨 밖에 안나온다.
그러니 "들어가라", "들어가지 마라", 이 논리적인 진단 같아 보이는 두 얘기 다 촛불들에게는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불과하다.
진중권이 들어가라고 말해도, 한 번 생각은 해보겠어요... 라고 할 것 같다. 한국의 지성과 양심이 촛불에게 요구할 수 있는 최대치가, 카톨릭을 포함한 종교계의, "오늘 밤은 이제 그만, 내일 또 만나요", 이 정도이다.
첫 날 촛불 집회에서 들은 얘기이다. "질긴 놈이 이긴다", 그게 한국의 중도 40%가 본진인 이 촛불 집회의 거의 유일하고도 일관된 본질이다.
100일 기준으로, 아직 절반 밖에 안 왔고, 재협상 없이는, 들어갈 폼새가 아니다.
여기에는,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는 것인데, 불행히도 정치문화적 해법이 없다.
이걸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의 문장이다.
"우리는 세계사의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는 중이다."
(압축성장으로 불균형을 잔뜩 안고 있는 국민경제가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는가, 그 실험 과정이라고 표현해도 같은 말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근데요. 저번 입고 오신 반지의 제왕 티셔츠는 무슨 상징이 있는건가요 몇일째 궁금해서요 ^^ 하악 ^^;;;
<아픈 아이들의 세대>에, 아주 자세히...
아부성 멘트로 들리실 지도 모르겠지만... 아픈아이들의 세대 정말 좋은 책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처음 <임시연습장>에서 우선생님께서 반지의 제왕 T셔츠를 입고 오셨었군요. 아하~ 우석순 선생님의 책은 제일 처음나온게 음식국부론인줄 알았었는데... 아픈아이들의 세대가 제일 먼저 나온 책이었네요.
누가 나오라고 등 떠밀어서 나가지 않았던 것처럼
집에 가는 것도 똑같은 거죠. ^^
마지막 문장..뭉클!
저도 비슷한 진단을 해보았었더랍니다. 왜 이런 국면에서 좌파 정당들은 쪽을 못 펴나? 포스트모던해진 대중의 권력 분화를 이해 못하는 모더니스트의 중앙집권적 사고 방식이 쫓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고, 대의민주주의가 더 이상 희망이 되지 못한 상황에서 정당에 대한 기대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촛불을 직접민주주의의 새로운 길을 만든다면 진정 세계사의 새로운 길이 될 수 있겠지요. 지금껏 쇼비니즘의 광기 속에서 대중을 읽고 절망하고 있었는데, 요즘 최장집 선수의 헛발질로 대중이 가지고 있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창조적 오독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저도 깃발 따라 가볼까 싶습니다.
비밀댓글 입니다
당을 지지하고 싶어도 지지할 당이 없는 현실-_ㅜ
그나마 진보신당...을 신뢰한다고나 할까.
정치에 관심없던 저도 이번 일로 엄청난 각성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 촛불들이 언젠가 집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 될 지.
그 이후에 촛불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만한 통화구가 있는 것인지.
약간 허무할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청와대나 한나라당은 이제 촛불에는 관심 놓은 것 같아요.-_-
ㅎㅎ 어르신들이랑 논쟁;;하다가.. 딱 이러시는거예요.
"거 최장집이라고 좌파 수장이 있는데 '대의민주주의'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뭔 혈기만 넘치는 학생들이 나와서 저러나."
그 때 아 최장집, 이름은 들어봤는데, 좌파라는 데, 왜 저런 소리 해서 코너에 몰리게 만드는 지 엄청 속상했었지요 ㅠㅠ
좌파건, 엄청 유명한 사람이건 뭔 상관입니까 헛소리하는데 -_- 지금 제도권 정치 세력들로는 도저히 안 되는 구조잖아요.. 사람 사는 세상에 절대로 불가능 한 일은 없고.. 현재의 대의민주주의도 여러번의 실험을 통해서 성립된거 아닌가요..
인터넷도 잘 발달 되어서 정보의 흐름도 좋고, 개개인의 의견을 모으기도 불가능하지 않은데..
민주노동당이나 환골탈퇴의 모습을 보여주면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잘하거나, 민주노동당이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여주면
사실 근데 그 그때그때달라요40%중에 2~30%는 아직도 작금의 사태에 대해
떠먹여주는대로 사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꽤나 많은 젊은이들이 자기네 문제에 대해 인지조차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구요.
정말 질긴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방심하는 순간 뒤통수를 몽둥이로 후드려 맞을지도 모르니까요. 근데 이기고 싶습니다. 정녕.
어제 백분토론에서 '집시법' 물고 늘어지는 한나라당 의원도 짜증났지만.. 김민웅의 대응도 짜증났습니다. 요즘 방학 때 학생들과 수업하기 위해 읽은 책(저는 고등학교 국어교사입니다.)에서 본 하워드 진의 말을 옮겨봅니다.
"1956년부터 1963년까지 저는 애틀랜타에 있는 흑인 여성을 위한 초급대학인 스펠먼 칼리지에서 가르쳤습니다. 거기서 운동에 관여하게 됐습니다. 때로 사람은 어떤 것에 대해 흐릿하게만 아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쭈 뼈저리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제가 뼈저리게 느낀 것은, 사회에 아주 심하게 불만을 느낀다면 정부나 헌법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정부 주도로 또는 법이 이야기 하는 걸 가지고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건 인민들 스스로 실천하는 행위를 통해 해결될 거라는 말입니다."
이 말이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요? 왜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런 식으로 반론을 펴진 않는지.. 조금 답답합니다. -_-;;
예. 김선생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사회에 아주 심하게 불만을 느낀다면 정부나 헌법에 의존할 수 없다." 짧지만...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문구 같습니다. 국민들의 (누적된)원성에 귀기울이지 않고... 이명박 정부 옹호론자들은... 시위대의 도로점거,늦은시각 집에 안가고 집회한다는 것만 물고 늘어지는꼴이... 에휴 정말 소통안되지요. 김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 학생들은 고등학교때 하워드진의 책을 읽다니... 저의 고교시절엔 상상도 할수 없었던 일이네요. 그때 아마도 어느 서울대 합격생이 논술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다며... 하워드진의 책을 언급했다면 읽은 학생들이 급증했을 듯 싶네요. T_T
비밀댓글 입니다
비밀댓글 입니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어떤 발언도 홍보도 대책도 말고 국민들이 모여서 뭔가 대안을 제시하고 그걸 조절하게 하는 것이 가장 맞다고. mb가 나와서 슬쩍 내뱉는 말, 쇠고기 잘 팔린다는 것도 모두 홍보 그런 것들이 국민들이 모두 거짓이고 삽질이거 알고 짜증을 내는데 자꾸 정부는 옆에서 더 염장을 지르는 꼴이니 촛불은 절대 꺼질 수 없을 거에요.
비밀댓글 입니다
비밀댓글 입니다
음. 일부 동의 합니다. 저 또한 광우별 대책위원회를 해체하고 가칭 "검역주권회복과 신공안정부 척결 국민대책위원회" 형태로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할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위원회와 별도로 민노총같은 진보단체는 별도의 강력한 운동을 병행하여 강온 전략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별로 깊이 생각해보고 하는 이야기는 아닌데...
꼭 하나로 모아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들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하다가 서로 결합될 수 있는 지점이 있으면 순간적으로 같이 결합해서 함께 가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하고...
다음 아고라가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데 ~~위원회 보다는 민의를 담아내는데 훨씬 효과적인 듯 합니다.
"이회창을 지지하면서 촛불집회에 매일 나오시는 아주 부자이고, 아주 공부 많이한 박사님을 알고 있다. 생물학 박사 되신다." -> 아...전공이 전공이다보니 무지하게 궁금해집니다. 누굴까요? "최~~"는 아니시죠? 생물학 박사들 중에 부자 별로 없는데 말이죠. 인터넷 검색하다가 포기했어요. ㅋ
와... 좀 정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좌파정당, 세력들의 부진... 그리고 촛불의 실질적 동력이 되는 중도 40%라는 세력이라는 것.. 정말 물대포를 맞고 새벽까지 광화문에 머물던 그 사람들은... 늘 주위에서 볼 수 있었던 '정치적'이지 않았던 분들이었던 것 같네요.. 저역시도 그렇구요..
우리나라에는 중도가 없다고 하신 것처럼, 이들은 '덩어리'로 취급되며 선거때만 찾아졌던 것 같네요... 그래서 이런 사회경제적 구조로 왔을 것이고...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앞으로의 촛불의 진행과 매듭지어지는 것들이... 경제문제나 사회구조등의 해결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줄 것 같네요... 저 역시.. 일단 촛불의 힘이... 어떤 방식으로든... 보다 느슨한 조직이라 해도 모이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