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환경, 에너지, 이런 데가 책에서는 정말 인기없는 동네다. 그래도 경제사상사 보다 인기가 없지는 않다. 석사는 국제경제학으로 받았는데, 대학원 졸업하자마자 사업 분석하는 회사에서 팀장 제안을 받았었다. 6개월짜리 짧은 과정만 하나 더 들으면 국제 선물시장 거래인 자격이 나오는 게 졸업 옵션이었던. 나중에 그 석사 전공으로 wto에서 제안이 오기도. 그걸 다 내려놓고 사상사 전공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생태경제학에 대한 사상적 기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사상사를 평생하고 싶었는데, 내 때에도 벌써 그게 쉽지가 않던 시대. 대학원 졸업 이후로 늘 춥고 배고프고, 한데 밥 먹으면서 살았다. 무관심, 이런 건 몸에 붙이고 사는 유니폼처럼 익숙하다.

좌파 내에서도 노동자 문제가 상대적으로 주류였다. 그 좋은 머리로 사상사나 생태 같은 거 하냐고, 이죽거리는 비웃음을 들으면서 20대를 지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진짜 주류는, 통일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하는 사람들. 통일파 1진, 노동파 2진, 그리고 나면 여성 문제가 조금 더 앞 줄이고, 나는 말진 중의 말진. 그래도 너니까 발표 기회를 준다고, 네 고맙고맙. 누구한테나 머리 숙이고, 고맙다고 말하고, 그런 게 입에 붙었다.

30대 이후는 시민단체와 함께 했다. 여기는 민주파가 또 절대 본진. '생태 파시즘'이라는 이죽거림과 함께 30대를 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냥 내 길을 걸었다. 인생의 목표, 그런 건 모르겠고, 돈은 밥 먹고 살 정도만 있으면 된다는 빈곤형 톤 앤 매너가 몸에 붙었다.

이제 50.. 드디어 농업 문제를 다루어도 되는 순간이 되었다. 나중에 먹고 사는데 큰 문제 없을 때 하겠다고 뒤로 뒤로 미루어둔 주제다. 이제 먹고 사는데 큰 문제 없고, 삶의 어려움 때문에 고통받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왔다.

페북에서도 농업 주제는 썰렁하고 별 관심 없다. 만약 좀 더 스포트라이트 받고, 화려한 삶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지금도 관심없고 미래에도 관심 없는 이런 주제를 집어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괜찮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보람있게 하는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대기업에서도 맨 앞에 서 봤고, 정부 내에서도 맨 앞에 서 봤다. 총리 주재 회의를 운영하는 일이 내가 했던 일이다. 경총회장이나 상공회의소 회장도 다 불렀었다. 그 시절, 내가 가장 어둡고, 다크했다. 정신적으로도 행복하지 않았었다. 내 논리는 모르겠는데, 내 몸은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 더 좋다. 몇 배 좋다.

민주파들이 농업에 한 가장 큰 명언은 "핸드폰 팔아서 쌀 사먹으면 된다"는 말이다. 통일파들이 농업에 대해서 한 가장 큰 명언은 '통일 농업', 결국은 식량부족인 북한에 쌀을 어떻게 보낼 수 있는가, 이런 방안을 찾아달라고 했다. 민중파들이 농업에 대해서 한 가장 큰 명언은 "우리 전농에서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면서 꼭 앞 말을 그렇게 붙였다. '우리전농파'라고 불렀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gmo 개발하고 팔아먹을 생각만 했다. 그 길이 막히니까 농림부 공무원들이 아주 우울해했다. 시대에 뒤쳐지는 것 같다고 한탄을..

민주당 농업 정책은 새만금에 걸려 있다. 이번 정권의 근원적 아픔은 새만금과 광주, 여기에 있다. 그나마 그래도 민주당이 하고 싶은 거라도 있기는 하다. 한국당은 진짜로 농민표 말고는 아무 관심이.

내가 정리하고 싶은 관점은, 국토생태라는 눈으로 보면 농업이 이렇게 보이더라.. 그 얘기다. 건설교통부 시절에 신문에 '국토부'라고 이름을 바꾸면 좋겠다고 신문에 썼었다. 결국 다음 정권에 국토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국토생태에 대한 생각은 탑재되지 않았다.

민주파라고 하고 농업은 하거나 말거나, 아주 지겹다. 얼마나 농업이 하기 싫었는지, 농업이라는 말을 농촌이라는 말로 다 바꿔버렸다. 1차 산업인 농업이 농촌 개발 혹은 농촌 정비인 3차 산업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아주 지랄들을 했다. 지금은 뭐가 좀 바뀌었나? 바뀌긴.. 90퍼센트 이상의 민주파 가슴 속에서는 여전히 "핸드폰 팔아 쌀 사먹으면 된다"는 정서가 존재하는 것 같다.

옥수수 사료로 살찌운 한우 특뿔, 이런 거 맛있다고 먹는 게 창피하기도 하지만, 그 입이 꼬진 것이다. 원래 인류는 그렇게 먹는 거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한국인은 특히 더 그렇다. 그게 다 자본 아니 국제 농업자본이 단기간에 길들여서 만들어낸 인공의 맛이다. 아니, 자본의 맛이다.

 

근본에 관한 얘기는 상업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그게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맛만 있으면 돼지."

 

요렇게 말하는 사람, 진짜 소주병으로 머리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니가 개, 돼지냐? 고양이 키워 보니까, 우와, 더럽게 까다롭네. 고양이만도 못한 사람이 너무 많다.

 

어려운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민주파의 권력 투쟁, 통일파의 더 근본적인 권력투쟁, 이런 속에 묻혀버린 농업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 2008년 11월, 첫눈 온 날, 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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