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부터 문 걸어 잠그기로 했다. 내년에 꽃 피는 계절이 오기 전까지는, 강연 등 외부 활동은 일단 접기로. 운동 좀 하면서 내가 생각해도 이제는 좀 움직여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최소한으로 한다고 해도, 내가 동선이 커서 그런지 일단 한 번 움직이면 일이 너무 커져버린다. 별로 내 스타일 아니다.

공적인 일은, 딱 한 가지만 하기로 했다. 김윤철 박사랑 진보 쪽 미래 정책 정리하는 책 한 권을 같이 준비하기로 했다.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 어떤 정책들이 논의되는 것이 좋을 것 같은가, 예를 들면 기본소득, 직장 민주주의 등, 그런 것들을 좀 발굴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새로운 저자들을 찾아내고 좀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나도 그랬다. 김수행 선생이 '청년을 위한 경제학 강의', 한겨레 출판부에서 내면서 마지막 장을 나한테 맡겼다.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생태경제학에 관한 글이 나왔다. 그 시절, 나는 아직 20대였다. 그 때는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그 글이 돌고 돌면서 처음으로 나도 입지가 생겼다.

얼마 전 광주에 가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최근의 정책이라는 게, 캠프나 정당 일각에서 몰래몰래 한다. 그래서 사람들 술 마시고, 밥 먹고, 그런 루트를 통해서 가장 최신의 논의를 하게 된다. 20년 전부터, 익숙한 일이다.

그게 좀 은밀하고 비밀스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거창한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요즘 최신의 논의라는 게, 진짜 별 거 아닌 것이기는 한데. 지방에서 출마 준비하거나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이게 너무 고급 정보인 셈이다. 참, 별 것도 아닌데.

10년 전에는 강연이 한참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지방에서도 강연을 통해서 그런 정보들을 유통하고는 했는데, 요즘은 책만 죽은 게 아니라 강연도 죽었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정말로, 별 것도 아닌 정보마저도 말라비틀어질 정도로.

유투브에 있다는데..

어떤 전문가가 머리에 총 맞았다고 공 들여서 다듬은 정책을 유투브에 그냥 올리고 설명하겠느냐. 그냥 있으면 그거 하나 가지고 꽤 높은 자리에 갈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니더라도 논문으로 다듬어서 점수라도 챙기는 게 낫지.

유부트에는 정책에 관한 얘기도 거의 없거니와, 돌아다니는 얘기라고 해봐야 외국에서 떠돌아다니는 얘기 이리저리 '카더라', 이런 게 많다.

우리나라에서의 최신 흐름. 그딴 건 유투브에 없다.

신문에서 기획기사 쓰는 기자들에게 겨우겨우 약간의 정보가 가기는 하는데, 그것도 대부분은 작전 세력인 경우가 많다.

나만 해도 그렇다. 대뜸 무슨무슨 신문 기자라고 최신 얘기 밑도끝도 없이 물어보면, 바쁘다고 하지. 방송국도 마찬가지다. 무슨 방송국이라고, 아무 맥락없이 대충 이런 얘기 해줄 수 없냐고 하면..

아, 그러시냐고, 고생 많이 하신다고 하지. 한 번 보러 온다고 하면,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으실 것 같네요, 애 보느라..

정책 자체가 고급 정보인 것은 아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렇지만 '최근의 흐름' 혹은 '최근의 논의'라는 수식어가 하나 붙으면 엄청난 고급 정보가 되어버린다.

우리끼리야 누가 뭐 한다고 하면, 아 그러냐, 재밌겠네, 그러고 넘어간다. 사람이라봐야 워낙 뻔해서, 어디서 누가 뭐 하는지 결국에는 대충 알게 된다.

그런 가장 최근의 정책에 관한 얘기를 업데이트 하는 책을 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게 견적서 내면 안 하는 게 맞는 책이다. 여러 명이 자기 글 모아서 내는 책, 거의 안 팔린다. 예전에는 힘들어도 그런 거 기획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양반들이 장관이나 뭐 그런 걸로 이미 정부에 들어갔거나, 마음에 깊은상처를 입고 두문불출.

내년 봄까지는 문 걸어 잠그고, 나도 좀 쉬면서 정책에 관한 책이나 준비해보려고 한다. 사람들도 좀 모으고, 새로운 얘기도 만들어보고.

그 정도는 내가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는 말과 같다. 내가 굼뱅이 맞기는 맞는데, 그래도 기는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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