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동안 참 별의별 생각이 많았다. 결론적으로 내린 생각은, 그냥 나는 자랑스러운 좌파로 살아가겠다는. 당연한 얘기이기는 한데, 진보니 그런 어정쩡한 말 쓰지 않고, 빨갱이로.

물론 나도 좌우가 공통으로 가져야 할 소양이 있고, 같이 추진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얘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냥 좌파로.

이런 결정은, 앞으로는 정부에서 일하는 건 안 하겠다는 것과 같다. 어서 빨갱이가..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또 해야 할 이유도 잘 못 느끼겠다. 나는 그냥 좌파 경제학자로, 편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아마 죽을 때까지 뜨슨 밥 먹고 살기는 힘들겠지만, 뭐 많이 먹는 스타일도 아니고, 누가 나 챙겨줘야 일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해보고 싶은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이 꼭 내가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내가 하면 다르다", 이 생각과 2년간 싸워서, 결국 내가 이겼다. 내가 해도 별 수 없다...

오늘 간만에 교보에 가서 여기저기 돌아보았다. 문화칸에 갔는데, 보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았다. 시급한 일들 좀 끝나고 나면 다시 한동안 도서관에 틀어박히는 삶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게 제일 행복하다.

20대, 나는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는다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전혀 모르는 분야 칸에 가서 몇 주씩 머물면서 책을 읽었다. 다 읽은 것은 아닌데, 몇 년에 걸쳐, 내 손에 한 번도 머물지 않았던 책은 없을 정도로.

책방에 가면 전혀 모르는 분야에 가서 한동안 봐야 직성이 풀리고는 했다. 좀 무모한 방식의 독서를 한 건데...

결국 밥은 먹고 살게 되었다.

20년 가까이 좁게 보면 환경, 좀 넓게 보면 생태 쪽에서 주로 움직였다. 50대에는 이걸 크게 바꿔서 문화 쪽으로.. 요런 고민 중이다. 재미는 있을 것 같다.

한국이라는 데가, 뻔하다. 돈 좀 돌고, 권력 좀 있는 데에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줄도 길고, 텃세도 심하다. 별로 돈 없고, 빛 볼 일 없는 분야는 늘 가난하고, 배고프다. 사람도 별로 없다.

나는 그런 춥고 배고프고, 보람만 있는 (그러나 잘 못느끼는) 그런 데 있으면 진짜 우리 집 안방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행복하다.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그런 춥고 외지고, 각광받지 못하는 분야에서 보냈다. 그러다보니, 그게 체질이 된 것 같다.

문화 쪽도 엄청 배고프다. 문화연대 최근 상황 물어봤더니, 사무실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더 싼 데로 옮겼다고. 이런 분야에서 일하는 게, 난 제일 속 편하고 즐겁다.

해보고 싶은데 못 한 것, 제일 기억에 오래 남는 게 아프리카 경제학이다. 환경이나 경제 이런 전문가가 아니라 아프리카 경제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원 때 지도교수가 프랑스 최고의 아프리카 전문가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돈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돈 없으면, 아프리카 연구 자체를 할 수가 없다. 그게 마음 속에 남아있는 아쉬움 혹은 애잔함.

이건 나 아니면 못할 거라는 생각을 몇 번 했었다. 그리고 몇 십년 지나보니까, 나도 못했다. 별 방법 없다. 애도 낳아야 하고, 낳았으니 키우기도 해야 하고. 그래서 아쉬움만 남기고 손을 내려놓았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볼 수는 없더라도..

그냥 좌파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달리, 별로 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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