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민주주의 책 작업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참 보람 있는 일이다. 누군가 벌써 했어야 했던 작업인데, 수 십년간 미루어지거나 포기된 일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이건 영광스럽고, 보람된 일이다.

 

돈으로 치면, 이런 사회과학 한 쪽 구석에 있는 책이 얼마나 팔리겠나. 돈으로 치면 내려놓고 다른 걸 하는 게 훨씬 낫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보람을 느낄 수 있겠나? 돈이 많은 것을 결정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 탈락.

 

재밌는 일과 보람 있는 일을 한 번 비교해보았다. 재밌는 일의 단점이, 오래 재미를 느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좀 지나면 재밌는 일이 시시해 진다. 안 그러면? 정말 다행인 것이고. 반복되는 일은 점점 덜 재밌게 되어간다. 로또에 당첨되는 일이 재밌는 일이라고 하자. 그것도 한두 번이지, 두세 번 계속되면 좀 덜 재밌어질 것 아닌가. 반복은 흥분이 가라앉게 만들고, 재미를 덜 하게 만든다.

 

보람은 좀 다른 것 같다. 결정적 흥분이나 순간적 감각, 이런 것은 별로 없다. 보람 있는 일이 주는 행복은 깊이는 깊지만, 순간적인 측면은 약하다. 술로 비유하면 바디감이 좋은 술이라고 할까? 언제가 가장 보람있는가, 이 특정한 순간을 잡아내기도 어렵다. 그 반면, 지겨워지는 일이 별로 없다. 보람이 실망으로 바뀔 수는 있다. 그 순간이 제일 무섭다. 보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전혀 엉뚱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어쨌든 직장 민주주의 책 작업을 하면서, 나는 재밌는 일보다는 보람 있는 일을 훨씬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미는 그 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만, 보람은 누적되어 점점 더 행복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 싸움이 재미없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다. 이기는 싸움은 재밌지만, 사실 재미는 이기는 그 순간 뿐이다. 그리고 지면? 정말로 재미 없다. 보람은 재미와는 좀 차원이 다른 행복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재밌는 일과 보람 있는 일 사이에서 고르라면 보람 있는 일

 

 

(영화 <머니볼>의 마지막 시퀀스 중 한 장면. 1루에서 넘어져 주루사한 경험이 많은 포수가 1루까지 전력질주하고 넘어져, 황급히 1루 베이스를 붙잡고 있다. 상대편 1루수가 홈런이니까 일어나라고 하고 있다. 그는 자기가 홈런친 걸 몰랐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른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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