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시편을 참 좋아하는 데, 굳이 신앙과 상관이 없더라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거나, 결심을 도와주는 구절이 많다. 어두운 계곡을 지날 때... (물론 이 구절은 종종 일부의 기독교인이 되지도 않는 행위를 해놓고 명박식으로 "그것은 오해입니다!"라고 할 때 종종 인용되기도 한다.)
대학원 다니던 시절, 세미나 지도하시던 할아버지가 나를 달달 볶아서 정신분석학을 한참 공부했었고, 동구가 무너지던 90년대, 어차피 <자본론> 공부해서는 먹고 살기가 어려울테니, 임상심리학을 공부하라고 프랑스 친구들이 많이 조언을 해줬었다. 그러나 몇 가지 사정과 능력 부족으로 인하여 그렇게까지는 공부하지 못했다.
허무주의라는 것에 대해서 그 시절 약간 관심을 가지기는 했었는데, 하여간 허무주의는 쇼펜하우어 이후의 철학적 개념이기는 한데, 임상심리학 혹은 정신병리학과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분석 개념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엄청나게 싫어하는 것은, '낙관적 접근' 혹은 마케팅이 만들어주는 "너도 할 수 있다" 아니면 "너무 비관적이다"와 같은 접근법이다. 이것은 과학도 아니고, 마약도 아니고, 구조 속의 악마가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신념과 비슷하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이 한 표현이 사회의 많은 진리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이 말을 뒤집으면, "눈 감지 말이야" 혹은 "정신차려, 너는 지금 죽어가고 있어"와 같은 말이 된다.
내가 정의하는 바에 의하면, 인간이 악마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나라도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텔레스가 사람들을 유혹하는 방법이다. 인간은 본래 집체 동물이라서, "나라도 살아야겠다' 방식으로 인류가 된 것은 아니고, 그렇게 진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라고 하는 것은, 인류사 보편적 법칙에 반하는 일이고, 그렇게 구성된 사회는 반드시 붕괴하게 된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남을 위하여..." 이게 너무 강해지면, 테러리스트 사회가 된다. 나는 내가 사는 사회구성원들에게, 폭탄이라도 지고 가라는 자살폭탄의 신봉자로 유도하고 싶지는 않다.
이 양 극단을 설정하면, 중간 어디에서인가 임시 거처가 필요한데, 임시로 내가 찾아낸 것은 '명랑한 희망'이라는 개념이다. 희망은 남발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을 허무주의와 "내 입 먼저"가 채우지 않기 위해서 사회적인 요소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 장치가 명랑이라는 장치이다. 최소한의 사회성이다. 혼자서 피식피식 웃어봐야, 남들 눈에는 배시시하게 넉놓고 살아가는, 똘아이에 불과하다.
길게 보면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것,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 사회의 박정희적인 것, 전또깡적인 것, 그리고 노무현적인 것들을 해결하는 그 정도가 내가 눈을 뜨고 살아갈 때 시도해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 한다. 아직 내가 보지 못한, 혹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위기,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는 어렵다.
명박 현상은, 그것들을 모은 일종의 한국 사회에 있는 '불쾌한 것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신명 나는 사회라면, 명박의 사회는 '신명 안 나는 사회' 그리고 한국이 '역동의 사회'라면 명박의 사회는 '역동 안나는 사회' 그리고 우리 안에 추한 것들이 있다면, 명박의 한국은 '왕 추한 사회', 그 정도 될 것이다.
그 이유가... 그런 것들이 총체적 힘으로 작용해서 명박 정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을 경제 페티시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명박의 경제는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는데, 무엇보다도 이 경제는 흥이 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위 10% 이하, 대표적으로 중산층, 죽도로 일해도, 자기 몫으로 돌아올 것이 거의 없는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공공 부문 개혁은 천천히 해도 되는데, 이걸 팔아서 자신의 지지자층 손에 꼴랑 줄려고 하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에, 이 경제가 흥이 날리가 없다. 그야말로 IMF 경제 위기 때 "이대로!"를 외쳤던 사람들 아니라면, 죽었다고 봐야 하고, 이 납짝 엎드린 시기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중남미형 구조가 만연한 한국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흐름은 100일 동안에 명박이 한 것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찍 알아버렸다. 조금 천천히 하고, 조금 숨어서 해도 되는데, 이 요란한 똘아이가 너무 대놓고 소망정권을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그 실체가 너무 금방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악질이 조선일보라는 사실도 너무 금방 드러나버렸다.
사실 중산층들은 어지간해서는 명박 같은 똘아이한테 잘 투표 안하는데, 노무현이라는 아주 확실한 똘아이한테 디었고, 그래서 노무현스러운 것이 아닌 것에 표를 몰아준 간단한 현상이다.
이 지배가 영원하기 위해서는 중산층, 전문직, 이런 것을 없애야 하는데, 사실 이런 구조는 국민경제에게 위태로운데, 이로 인해서 이득 볼 집단은, 조선일보였다. 생각은 그렇게 하더라도 그걸 실제 실천하면 안되는데, 참 내... 이 인간들이 진짜로 그걸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서민 경제'의 맥락 속에서 숨은 의미가 그렇다. 경제 우민화, 어쩌면 이게 조선일보의 10년 집권 프로그램이자, 영구 집권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선일보에게 불행했던 것은, 어쨌든 국민소득 2만불 가까이 형성되면서, 선진국 시민에 가까운 그런 집단이 한국에 탄생하게 되었는데, 내 해석으로는, 이들이 촛불 집회의 본대를 형성하게 되었던 '배운 녀자', 그들의 남편, 직장인, 전문직, 그리고 촛불 소녀들이다.
중남미형으로의 전환과 유헙형 선진국으로의 전환이라는 큰 갈림길에서, 조선일보는 과감히 미국 프로그램에 의해서 중남미형으로 국민경제를 끌고 가려고 했다.
대책없는 FTA, 묻지마 민영화, 황당한 입닥치고 있어, 이런 세 가지 프로그램이 조선일보가 명박을 통해서 구현해보려는 세 가지 영구집권 프로그램이었다.
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이 프로그램은 진짜로 구현되어, dollarization이라는, 완전히 중남미를 붕괴시킨 또 다른 하나의 프로그램만 더 꺼내놓으면, 정말로 중산층이 사라져서 5% 집권층과 대다수 평민들을 데리고 영구 집권할 수 있는, 그 직전까지 한국 경제는 갔었다, 명박의 삽질만 없었다면...
그러나 정말로 그들이 간과한 것은, 다양성을 갖추고, 전문성을 갖추고, 아직은 '공동체'라는 생각을 머리 속에서 완전히 지우지 않은, 그야말로 한국식 시민들이 어느덧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격발장치는 10대 소녀들이었지만, 실제로 이 장치는 한국의 본진들의 가슴에 불을 당긴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배후', 이 생각을 청와대가 지우지 않으면, 절대로 전세는 역전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게 사실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배후가 있을까? 글쎄, 비교적 나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편인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배후라는 것을 나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지난 토요일의 사건을 보자. 홍준표는, 지방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대부분이고, 순수시민은 얼마 없다고 데이타를 해석했다. 이 생각은, '배후'라는 색깔있는 렌즈로 너무 사태를 bias를 가지고 해석한 경우라고 나는 이해한다.
오후 4~5시경, 분명히 일반 시민들은 서울광장 근처에 모여있었고, 청계광장에는 민노총 조끼를 입은 민노총 노동자들이 모여있었고, 그들의 숫자는 대략 2만과 1만 정도 되어보였다.
내 오래된 경험으로 사태를 보건데... 그 민노총 아저씨들, 즉 조끼입은 아저씨들 중에서 10시 넘어서 촛불 집회에 남아있던 사람들 거의 없었고, 일부 있던 사람들도 대부분 뒤로 빠진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실제 그날 앞자리를 차지했던 사람들은, 익숙한 인터넷 카페에서 모인 사람들, 배운녀자, 그리고 학생들, 그랬고, 민노총 아저씨들 중 10시 넘어있던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어디엔가 술처마시러 가서, 신나게들 놀고 있을 것이다... 그게 내 해석이다.
보이지 않았던 민노총 조끼들, 그들은 배후가 아니었고, 촛불의 작동방식에 여전히 끼지 못하고, 집에 가거나 놀러 가거나, 하여간 사라져버렸다. 원격 조정? 공상과학 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것은 아니실까?.
조선일보에서 폭력집회라고 떠들어낸 그 토요일이 지난 일요일, 그 자리의 특징은, 오래된 서울에 노인들, 그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 나의 관찰 결과이다.
4.19와 5.16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즉 그들은 4.19는 되었는데, 5.16이 터지면 역사가 뒤로 가게 되니까, 손자 손녀들을 위해서 나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노인들이 많았다.
그걸 나는 '서울의 오래된 기억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작고 미묘한 차이들, 그리고 일상화된 모임 같아도 미묘하게 변화하는 것들을, '배후'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려는 사람은, 절대로 풀지 못할 것 같다.
그것은 과학도 아니고, 왜곡도 아니다. 정확하게 보고 나야, 왜곡도 할 것 아닌가?
미안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대로 보면, 지금의 청와대는 기본이 안된 놈들이고, 조선일보는 자세가 안된 놈들이다.
청와대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고, 집단과 구조를 살피려는 노력을 한 번도 안해본 사람이라서 절대로 사태를 파악할 기본이 안된 것이고, 조선일보는 과학 같은 것은 써 본 적도 없고, 또 그렇게 접근하기에는 '마음 속의 것들'을 조금 바꿔야하기 때문에 자세가 안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싸움은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가 나왔는지, 왜 나왔는지, 그리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하는 집단과, 중남미형 국가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 그러나 아직도 수단과 방법은 모호한 - 사람들의 싸움에서, 누가 이길지는 너무 뻔하다.
세상은 시장과 시장 아닌 것, 이렇게 두 가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누가 90년대 네오콘식 이분법을 가지고 경제를 보는가? 한국에 얼마나 다양한 집단과 다양한 메카니즘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걸 그렇게 지들 보고 싶은 데로만 보면서 통치하려고 하는가? 3천불에서 5천불 시대에 잘 통했던 방식, 그리고 만 불 시대까지 어떻게 어떻게 통했던 방법을 2만불 시대에 또 써먹으려 하는데, 그게 될리가 있는가?
내가 최장집 선생의 말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8천불에서 1만 5천불 사이에 했으면 괜찮았을 정당주의와 대의민주주주의론, 이미 한국은 2만불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대의 민주주의의 약점을 직접 민주주의 요소로 보완하려는, 이미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68년의 유럽이 지금 한국의 모습이 아니라, 2008년, 유럽형과는 조금 다른 궤적을 가지고, 자신의 힘으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지금의 우리 모습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미완의 혁명, 혹은 해소되지 않은 고질적 문제 - 과외나 지방분권, 그리고 문화적 획일성 같은 -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대의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아서 지금 이 혼란이 오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조선일보가 2만불 시대의 국민들 특히 그 본진에 해당하는 중산층의 수준을 못 따라온 것처럼, 민주당의 정치인들도, 그 수준을 지금 못 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왔다면, 벌써 촛불들이 바턴을 그들에게 넘겨주고, 사태를 해결하였을 것이다. 몰라서 안 준게 아니라, 줄 사람이 없어서 안주고 있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어설프게 국회에 갈 시기가 아니라, 도대체 우리가 갈 곳이 어디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있는 최소한의 합의점이 어딘가, 그걸 찾아내고, 그걸 위해서 토론하고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 촛불은 한국 혹은 한국 경제가 다음 단계로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그 출발점을 찾기까지, 지지 않는다. 이미 다 자라버린 어른들에게, 아기 때 배내옷을 입으라고 하는데, 입고 싶어도 입을 수가 없는 것이 현 상황이다.
왜 그 옷을 안 입느냐 혹은 맞는 옷 따위는 애당초 없다라는 두 개의 시각이, 현 상황에서의 허무주의이다.
보통 때에는 그런 허무주의가 대세가 되고, 대중은 패배하게 되는데, 지금 그러지 않는 것은, 명박의 미학적 요소 때문이다. 아니, 쟤를 어떻게 믿어? 늘 조감도로 밀어붙였던 그 스타일이, 오히려 지금 역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참고할 외국 모델, 그리고 빌려올 외국 이론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과서적인 도식으로 현 상황을, 그리고 2008년의 촛불을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은, 내가 보기에는 없어 보인다.
"촛불 속으로 들어가다"... 나는 매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는 꾸준히 촛불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 편이다. 우선은 내 양심이고, 또 다른 것은 궁금했다.
한두번 얼핏 본 것으로 분석하려는 청와대, 그런 방식으로는 이 복잡하고도 미묘한 현상을 절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왜곡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번도 제대로 현 상황에서의 촛불의 작동방식을 보려고 하지 않고, 버스 차벽 뒤에서 숨어서 보거나, 아니면 보더라도 이미 "어떻게 왜곡할까?"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다만 나이가 어리다고 이 난국 속으로 밀어넣어진 조선일보의 평기자들의 '왜곡식 접근' 그걸로는 이 사태가 이해되기 어렵고, 그래서 왜곡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비교적 초기에 어느 중앙일보 기자가, 첫 번째 폭력사건이 나왔을 때, '나도 초기에는 좋게 봤어'라고 말했다.
글쎄... 기자들의 경우는 모르겠는데, 이것은 사회과학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절대로 가져서는 안되는 입장이다.
어떻게든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문화적 편향 때문에 관찰에는 왜곡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왜곡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또 다른 방식의 투사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왜곡 경향과 불찰 경향을 줄이는 것이, 최초의 마음 자세이다.
특히 촛불 현상처럼 복합적인 것을 볼 때는 말이다. 자신의 작업가설이 맞다고 생각할 때, 그걸 기각하기 위해서 수많은 반대편 설명방식을 적응해보고, 그것을 수십번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요소 혹은 현 상황의 특수성을 찾는 것이 과학의 관찰자의 미덕이다.
최소한 카르납 이후의 실증주의가 포퍼의 비판적 논리실증주의로 전환될 때까지의 그 수많은 과학철학의 논쟁들을, 조선일보는 문득 까먹은 것 같다. (청와대의 미국파들은, 카르납이 시카고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칭송하는 밀턴 프리드만이 학부시절 카르납의 수업을 듣고 너무나 감명을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결국 실증주의와 인식론에 관한 논문을 쓴 적도 있다는 사실, 그런 것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지금의 청와대, 분석가로서나 정책전문가로서, 기본이 안되어 있다.)
역사는 늘 승리하는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때때로 굴절하고, 때때로 배반한다.
그러나 지금의 촛불은, 내가 50일 넘게 지켜보고 분석해본 바에 의하면, 승리한다. 처음부터 실력 차가 너무 나는 싸움이었고, OECD 국가로 10년을 지내면서 만들어진 시민사회, 정말로 발생한 시민의 힘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분석해본 적도 없는 황당한 집단과 '실체가 생긴 시민' 사이의 싸움이라서, 이번에는 시민들이 이긴다.
최소한 도착지에서 본다면, 출발점이 아득해보이는 점, 즉 소녀들이 소라광장에서 처음 촛불을 들었던 그 순간을 회상하기가 너무 까막득해 보여서, 저런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크기로 승리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언젠가 한국에도, 그리고 지금의 촛불들에게도 새로운 위기가 올 순간들이 있기는 할 것이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니다.
비과학과 과학, 몰상식과 상식, 그리고 '왜곡'과 '연대'의 싸움에서, 이번에는 과학파, 상식파, 그리고 연대파가 이긴다. 촛불이 강해서가 아니라,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너무 약해서 그렇다.
30년 동안 조선일보는 한국에서 공포였다. 박정희가 '밤의 대통령'이라고 한 것은 괜히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들의 몸집이 너무 커버렸다. 인식하지 못하다가 어느날 일어서서 보니까, 에게 이 담벼락이 이만했단 말이야? 그리고 그냥 넘어가 버렸다.
그게 지금의 상황이 아닐까?
지독할 정도의 "내 입만" 혹은 "나만이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딱 1할만 버리면, 허무주의는 극복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중앙일보가 전경 차벽 뒤에 숨은 날, 그들은 객관적 관찰의 통로를 스스로 막아버렸다. 그런 넘들에게 어떻게 지나? 질 수가 없는 싸움이 되어버렸다.
권투에서 맞으면서도 눈을 뜨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아직 때리지도 않았는데, 눈을 먼저 감아버렸다.
대학원 다니던 시절, 세미나 지도하시던 할아버지가 나를 달달 볶아서 정신분석학을 한참 공부했었고, 동구가 무너지던 90년대, 어차피 <자본론> 공부해서는 먹고 살기가 어려울테니, 임상심리학을 공부하라고 프랑스 친구들이 많이 조언을 해줬었다. 그러나 몇 가지 사정과 능력 부족으로 인하여 그렇게까지는 공부하지 못했다.
허무주의라는 것에 대해서 그 시절 약간 관심을 가지기는 했었는데, 하여간 허무주의는 쇼펜하우어 이후의 철학적 개념이기는 한데, 임상심리학 혹은 정신병리학과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분석 개념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엄청나게 싫어하는 것은, '낙관적 접근' 혹은 마케팅이 만들어주는 "너도 할 수 있다" 아니면 "너무 비관적이다"와 같은 접근법이다. 이것은 과학도 아니고, 마약도 아니고, 구조 속의 악마가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신념과 비슷하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이 한 표현이 사회의 많은 진리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이 말을 뒤집으면, "눈 감지 말이야" 혹은 "정신차려, 너는 지금 죽어가고 있어"와 같은 말이 된다.
내가 정의하는 바에 의하면, 인간이 악마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나라도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텔레스가 사람들을 유혹하는 방법이다. 인간은 본래 집체 동물이라서, "나라도 살아야겠다' 방식으로 인류가 된 것은 아니고, 그렇게 진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라고 하는 것은, 인류사 보편적 법칙에 반하는 일이고, 그렇게 구성된 사회는 반드시 붕괴하게 된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남을 위하여..." 이게 너무 강해지면, 테러리스트 사회가 된다. 나는 내가 사는 사회구성원들에게, 폭탄이라도 지고 가라는 자살폭탄의 신봉자로 유도하고 싶지는 않다.
이 양 극단을 설정하면, 중간 어디에서인가 임시 거처가 필요한데, 임시로 내가 찾아낸 것은 '명랑한 희망'이라는 개념이다. 희망은 남발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을 허무주의와 "내 입 먼저"가 채우지 않기 위해서 사회적인 요소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 장치가 명랑이라는 장치이다. 최소한의 사회성이다. 혼자서 피식피식 웃어봐야, 남들 눈에는 배시시하게 넉놓고 살아가는, 똘아이에 불과하다.
길게 보면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것,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 사회의 박정희적인 것, 전또깡적인 것, 그리고 노무현적인 것들을 해결하는 그 정도가 내가 눈을 뜨고 살아갈 때 시도해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 한다. 아직 내가 보지 못한, 혹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위기,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는 어렵다.
명박 현상은, 그것들을 모은 일종의 한국 사회에 있는 '불쾌한 것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신명 나는 사회라면, 명박의 사회는 '신명 안 나는 사회' 그리고 한국이 '역동의 사회'라면 명박의 사회는 '역동 안나는 사회' 그리고 우리 안에 추한 것들이 있다면, 명박의 한국은 '왕 추한 사회', 그 정도 될 것이다.
그 이유가... 그런 것들이 총체적 힘으로 작용해서 명박 정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을 경제 페티시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명박의 경제는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는데, 무엇보다도 이 경제는 흥이 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위 10% 이하, 대표적으로 중산층, 죽도로 일해도, 자기 몫으로 돌아올 것이 거의 없는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공공 부문 개혁은 천천히 해도 되는데, 이걸 팔아서 자신의 지지자층 손에 꼴랑 줄려고 하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에, 이 경제가 흥이 날리가 없다. 그야말로 IMF 경제 위기 때 "이대로!"를 외쳤던 사람들 아니라면, 죽었다고 봐야 하고, 이 납짝 엎드린 시기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중남미형 구조가 만연한 한국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흐름은 100일 동안에 명박이 한 것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찍 알아버렸다. 조금 천천히 하고, 조금 숨어서 해도 되는데, 이 요란한 똘아이가 너무 대놓고 소망정권을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그 실체가 너무 금방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악질이 조선일보라는 사실도 너무 금방 드러나버렸다.
사실 중산층들은 어지간해서는 명박 같은 똘아이한테 잘 투표 안하는데, 노무현이라는 아주 확실한 똘아이한테 디었고, 그래서 노무현스러운 것이 아닌 것에 표를 몰아준 간단한 현상이다.
이 지배가 영원하기 위해서는 중산층, 전문직, 이런 것을 없애야 하는데, 사실 이런 구조는 국민경제에게 위태로운데, 이로 인해서 이득 볼 집단은, 조선일보였다. 생각은 그렇게 하더라도 그걸 실제 실천하면 안되는데, 참 내... 이 인간들이 진짜로 그걸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서민 경제'의 맥락 속에서 숨은 의미가 그렇다. 경제 우민화, 어쩌면 이게 조선일보의 10년 집권 프로그램이자, 영구 집권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선일보에게 불행했던 것은, 어쨌든 국민소득 2만불 가까이 형성되면서, 선진국 시민에 가까운 그런 집단이 한국에 탄생하게 되었는데, 내 해석으로는, 이들이 촛불 집회의 본대를 형성하게 되었던 '배운 녀자', 그들의 남편, 직장인, 전문직, 그리고 촛불 소녀들이다.
중남미형으로의 전환과 유헙형 선진국으로의 전환이라는 큰 갈림길에서, 조선일보는 과감히 미국 프로그램에 의해서 중남미형으로 국민경제를 끌고 가려고 했다.
대책없는 FTA, 묻지마 민영화, 황당한 입닥치고 있어, 이런 세 가지 프로그램이 조선일보가 명박을 통해서 구현해보려는 세 가지 영구집권 프로그램이었다.
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이 프로그램은 진짜로 구현되어, dollarization이라는, 완전히 중남미를 붕괴시킨 또 다른 하나의 프로그램만 더 꺼내놓으면, 정말로 중산층이 사라져서 5% 집권층과 대다수 평민들을 데리고 영구 집권할 수 있는, 그 직전까지 한국 경제는 갔었다, 명박의 삽질만 없었다면...
그러나 정말로 그들이 간과한 것은, 다양성을 갖추고, 전문성을 갖추고, 아직은 '공동체'라는 생각을 머리 속에서 완전히 지우지 않은, 그야말로 한국식 시민들이 어느덧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격발장치는 10대 소녀들이었지만, 실제로 이 장치는 한국의 본진들의 가슴에 불을 당긴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배후', 이 생각을 청와대가 지우지 않으면, 절대로 전세는 역전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게 사실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배후가 있을까? 글쎄, 비교적 나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편인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배후라는 것을 나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지난 토요일의 사건을 보자. 홍준표는, 지방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대부분이고, 순수시민은 얼마 없다고 데이타를 해석했다. 이 생각은, '배후'라는 색깔있는 렌즈로 너무 사태를 bias를 가지고 해석한 경우라고 나는 이해한다.
오후 4~5시경, 분명히 일반 시민들은 서울광장 근처에 모여있었고, 청계광장에는 민노총 조끼를 입은 민노총 노동자들이 모여있었고, 그들의 숫자는 대략 2만과 1만 정도 되어보였다.
내 오래된 경험으로 사태를 보건데... 그 민노총 아저씨들, 즉 조끼입은 아저씨들 중에서 10시 넘어서 촛불 집회에 남아있던 사람들 거의 없었고, 일부 있던 사람들도 대부분 뒤로 빠진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실제 그날 앞자리를 차지했던 사람들은, 익숙한 인터넷 카페에서 모인 사람들, 배운녀자, 그리고 학생들, 그랬고, 민노총 아저씨들 중 10시 넘어있던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어디엔가 술처마시러 가서, 신나게들 놀고 있을 것이다... 그게 내 해석이다.
보이지 않았던 민노총 조끼들, 그들은 배후가 아니었고, 촛불의 작동방식에 여전히 끼지 못하고, 집에 가거나 놀러 가거나, 하여간 사라져버렸다. 원격 조정? 공상과학 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것은 아니실까?.
조선일보에서 폭력집회라고 떠들어낸 그 토요일이 지난 일요일, 그 자리의 특징은, 오래된 서울에 노인들, 그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 나의 관찰 결과이다.
4.19와 5.16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즉 그들은 4.19는 되었는데, 5.16이 터지면 역사가 뒤로 가게 되니까, 손자 손녀들을 위해서 나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노인들이 많았다.
그걸 나는 '서울의 오래된 기억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작고 미묘한 차이들, 그리고 일상화된 모임 같아도 미묘하게 변화하는 것들을, '배후'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려는 사람은, 절대로 풀지 못할 것 같다.
그것은 과학도 아니고, 왜곡도 아니다. 정확하게 보고 나야, 왜곡도 할 것 아닌가?
미안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대로 보면, 지금의 청와대는 기본이 안된 놈들이고, 조선일보는 자세가 안된 놈들이다.
청와대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고, 집단과 구조를 살피려는 노력을 한 번도 안해본 사람이라서 절대로 사태를 파악할 기본이 안된 것이고, 조선일보는 과학 같은 것은 써 본 적도 없고, 또 그렇게 접근하기에는 '마음 속의 것들'을 조금 바꿔야하기 때문에 자세가 안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싸움은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가 나왔는지, 왜 나왔는지, 그리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하는 집단과, 중남미형 국가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 그러나 아직도 수단과 방법은 모호한 - 사람들의 싸움에서, 누가 이길지는 너무 뻔하다.
세상은 시장과 시장 아닌 것, 이렇게 두 가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누가 90년대 네오콘식 이분법을 가지고 경제를 보는가? 한국에 얼마나 다양한 집단과 다양한 메카니즘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걸 그렇게 지들 보고 싶은 데로만 보면서 통치하려고 하는가? 3천불에서 5천불 시대에 잘 통했던 방식, 그리고 만 불 시대까지 어떻게 어떻게 통했던 방법을 2만불 시대에 또 써먹으려 하는데, 그게 될리가 있는가?
내가 최장집 선생의 말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8천불에서 1만 5천불 사이에 했으면 괜찮았을 정당주의와 대의민주주주의론, 이미 한국은 2만불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대의 민주주의의 약점을 직접 민주주의 요소로 보완하려는, 이미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68년의 유럽이 지금 한국의 모습이 아니라, 2008년, 유럽형과는 조금 다른 궤적을 가지고, 자신의 힘으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지금의 우리 모습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미완의 혁명, 혹은 해소되지 않은 고질적 문제 - 과외나 지방분권, 그리고 문화적 획일성 같은 -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대의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아서 지금 이 혼란이 오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조선일보가 2만불 시대의 국민들 특히 그 본진에 해당하는 중산층의 수준을 못 따라온 것처럼, 민주당의 정치인들도, 그 수준을 지금 못 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왔다면, 벌써 촛불들이 바턴을 그들에게 넘겨주고, 사태를 해결하였을 것이다. 몰라서 안 준게 아니라, 줄 사람이 없어서 안주고 있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어설프게 국회에 갈 시기가 아니라, 도대체 우리가 갈 곳이 어디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있는 최소한의 합의점이 어딘가, 그걸 찾아내고, 그걸 위해서 토론하고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 촛불은 한국 혹은 한국 경제가 다음 단계로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그 출발점을 찾기까지, 지지 않는다. 이미 다 자라버린 어른들에게, 아기 때 배내옷을 입으라고 하는데, 입고 싶어도 입을 수가 없는 것이 현 상황이다.
왜 그 옷을 안 입느냐 혹은 맞는 옷 따위는 애당초 없다라는 두 개의 시각이, 현 상황에서의 허무주의이다.
보통 때에는 그런 허무주의가 대세가 되고, 대중은 패배하게 되는데, 지금 그러지 않는 것은, 명박의 미학적 요소 때문이다. 아니, 쟤를 어떻게 믿어? 늘 조감도로 밀어붙였던 그 스타일이, 오히려 지금 역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참고할 외국 모델, 그리고 빌려올 외국 이론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과서적인 도식으로 현 상황을, 그리고 2008년의 촛불을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은, 내가 보기에는 없어 보인다.
"촛불 속으로 들어가다"... 나는 매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는 꾸준히 촛불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 편이다. 우선은 내 양심이고, 또 다른 것은 궁금했다.
한두번 얼핏 본 것으로 분석하려는 청와대, 그런 방식으로는 이 복잡하고도 미묘한 현상을 절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왜곡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번도 제대로 현 상황에서의 촛불의 작동방식을 보려고 하지 않고, 버스 차벽 뒤에서 숨어서 보거나, 아니면 보더라도 이미 "어떻게 왜곡할까?"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다만 나이가 어리다고 이 난국 속으로 밀어넣어진 조선일보의 평기자들의 '왜곡식 접근' 그걸로는 이 사태가 이해되기 어렵고, 그래서 왜곡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비교적 초기에 어느 중앙일보 기자가, 첫 번째 폭력사건이 나왔을 때, '나도 초기에는 좋게 봤어'라고 말했다.
글쎄... 기자들의 경우는 모르겠는데, 이것은 사회과학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절대로 가져서는 안되는 입장이다.
어떻게든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문화적 편향 때문에 관찰에는 왜곡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왜곡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또 다른 방식의 투사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왜곡 경향과 불찰 경향을 줄이는 것이, 최초의 마음 자세이다.
특히 촛불 현상처럼 복합적인 것을 볼 때는 말이다. 자신의 작업가설이 맞다고 생각할 때, 그걸 기각하기 위해서 수많은 반대편 설명방식을 적응해보고, 그것을 수십번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요소 혹은 현 상황의 특수성을 찾는 것이 과학의 관찰자의 미덕이다.
최소한 카르납 이후의 실증주의가 포퍼의 비판적 논리실증주의로 전환될 때까지의 그 수많은 과학철학의 논쟁들을, 조선일보는 문득 까먹은 것 같다. (청와대의 미국파들은, 카르납이 시카고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칭송하는 밀턴 프리드만이 학부시절 카르납의 수업을 듣고 너무나 감명을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결국 실증주의와 인식론에 관한 논문을 쓴 적도 있다는 사실, 그런 것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지금의 청와대, 분석가로서나 정책전문가로서, 기본이 안되어 있다.)
역사는 늘 승리하는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때때로 굴절하고, 때때로 배반한다.
그러나 지금의 촛불은, 내가 50일 넘게 지켜보고 분석해본 바에 의하면, 승리한다. 처음부터 실력 차가 너무 나는 싸움이었고, OECD 국가로 10년을 지내면서 만들어진 시민사회, 정말로 발생한 시민의 힘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분석해본 적도 없는 황당한 집단과 '실체가 생긴 시민' 사이의 싸움이라서, 이번에는 시민들이 이긴다.
최소한 도착지에서 본다면, 출발점이 아득해보이는 점, 즉 소녀들이 소라광장에서 처음 촛불을 들었던 그 순간을 회상하기가 너무 까막득해 보여서, 저런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크기로 승리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언젠가 한국에도, 그리고 지금의 촛불들에게도 새로운 위기가 올 순간들이 있기는 할 것이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니다.
비과학과 과학, 몰상식과 상식, 그리고 '왜곡'과 '연대'의 싸움에서, 이번에는 과학파, 상식파, 그리고 연대파가 이긴다. 촛불이 강해서가 아니라,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너무 약해서 그렇다.
30년 동안 조선일보는 한국에서 공포였다. 박정희가 '밤의 대통령'이라고 한 것은 괜히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들의 몸집이 너무 커버렸다. 인식하지 못하다가 어느날 일어서서 보니까, 에게 이 담벼락이 이만했단 말이야? 그리고 그냥 넘어가 버렸다.
그게 지금의 상황이 아닐까?
지독할 정도의 "내 입만" 혹은 "나만이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딱 1할만 버리면, 허무주의는 극복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중앙일보가 전경 차벽 뒤에 숨은 날, 그들은 객관적 관찰의 통로를 스스로 막아버렸다. 그런 넘들에게 어떻게 지나? 질 수가 없는 싸움이 되어버렸다.
권투에서 맞으면서도 눈을 뜨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아직 때리지도 않았는데, 눈을 먼저 감아버렸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말 이번에는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촛불들의 질적인 변화(성숙)속에서 그 물살의 희망을 예감합니다...시작은 그러했지만 허접한 ㅁㅂ이나 조중동이 이제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이미 이 물살은 원대하게 흐르고 있으니까요...
잘 읽고 갑니다. 매일 새벽 집회에서 돌아올 때마다 승리할 그날에 광장을 메울 함성과 노랫소리를 그려보곤 합니다.
ps. 촌놈들의 제국주의 잘 읽었습니다. 평화를 위한 경제라는 부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대안과 모델을 제시해 주실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정의하는 바에 의하면, 인간이 악마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나라도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경우이다."너무 좋습니다^^
그리고..시민들이 이기는 싸움... 그렇게 믿으렵니다... 이미 너무나 촛불이 오래됬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가 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MB 쟤는... 이제 너무나 싫다는 마음이 들어서, 어쨌든 촛불로 향하고 있는 중인데...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비록 수단이 아직 모호하더라도, 제대로 상대를 보려고 하지 않고, 알지도 못하는 저들에게... 질수는 없다는 말씀을 들으니... 힘이 납니다^^ 역시 오늘... <임시연습장> 깃발로 향해야겠습니다~
비밀댓글 입니다
비밀댓글 입니다
쌩뚱맞지만....
한겨레21 하고 시사인..
넘 멋지십니다..
헤화역 사진의 가방이 탐이나요...^^
세상은 시장과 시장아는것> 세상은 시장과 시장아닌 것
사실 저도 지쳐가고 있던 통에, 다시금 청수씨가 저를 불타오르게 해서... :)
항상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희망을 이야기해주셔서.
말씀하신 양 극단을 언제나 조심해야 겠네요.
ps. 어느 분이 눈이 아프다고 댓글다셨던데, 금세 스킨을 바꾸셨네요. 이전에 아주 특이한 느낌이 나서 좋았는데 이번 것도 차분해서 좋네요.
절망스러우면서 희망스러운 나날들입니다.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고 있지만
아기가 탄 유모차에 소화기를 뿌리는 걸 보고, 누운채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을 짓밟고 패는걸 보고, 비무장 여성을 집단 구타하는걸 보고, 어쩐지 절망이 더 커지려던 참이었습니다.
(위험하지만 이런 생각했었거든요. -아이와 엄마들이 제일 앞줄에 서야 하는게 아닐까. 아이와 함께 갔던 가두시위에서는 예비군 친구들이 우리의 앞을 막아준다고 했지만 말이죠. 차라리 아이들과 엄마들이 꽃 들고 경찰들에게 노래라도 불러서 우리들이 원하는게 폭력적 전복이 아닌것을 상징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그리고 엄마의 마음이 어떤건지 보여줘야 한다고 미련하게 생각했는데....유모차를 뺏고 소화기를 뿌리는걸 보고 이 정권엔 최소한의 상식이나 양심도 없어보여서, 그리고 이 길고 지리한 소통의 노력들이 모두 무위가 아닐까 절망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희망이 더 커집니다.
전에, 촛불이 까만 밤 불 밝히고 있는 것 같던 스킨이, 이제 환하고 명랑해졌군요.
이번엔 질려도 질수가 없지요..이 싸움 여기서 밀리면 끝이잖아요.
아무튼 이런 글 보니 한결 힘이 납니다.
분명히 어디엔가 술처마시러 가서, 신나게들 놀고 있을 것이다...
뜨끔할 따름이고 유구무언입니다.
7월2일이 걱정됩니다.
촛불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는데
우리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총파업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걱정이 앞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