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신부들이 몇 시간 만에 서울광장의 결계를 풀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신부님들이, 조금만 기다리라고 얘기하시던 것을 듣기는 했는데, 과연, 엄청난 상징을 동원해서 텐트 하나로 서울광장을 찾아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움베르트 에코가 '기호학'이라는 이름으로 체계화시킨 것들은 상징에 관한 것들인데, 사람들은 먹는 것과 입는 것 혹은 말하는 것만이 아닌 상징으로 사유하고 행위한다는 대전제가 있는 것이다.
가끔 나는 종교 특히 카톨릭이 움직이는 방식을 '스펙타클 이미지'라고 표현하는데, 이 집단이 스펙타클 이미지를 다루는데 가장 익숙하고 숙련된 집단들이다.
(이 얘기는 <문화와 예술의 경제학>, 스펙타클편에 사용할려고 준비하고 있는 비장의 카드인데, 에라... 촛불 앞에 내가 뭘 꺼내놓지 못하랴.)
하여간 중세 시대에 카톨릭은 상징만으로도 왕들을 여럿 잡았고, 오랫동안 그렇게 상징을 다루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되었다. 최근에는 힘이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스펙타클 이미지에 아직은 문화적으로 익숙지 않은 한국에서는, 여전히 상징을 다루는 데에 가장 강력한 사람들이다.
오늘 미사에서 나온 몇 가지 상징들과 새로 준비한 교리들을 살펴보자.
오늘 시국미사에서 사제님들에게 장백의와 영대를 준비하라고 했는데, 이 그림이 바로 장백의이다. 예전에 카톨릭의 복잡한 미사 의복체계에 대해서 지나가면서 공부한 적이 있기는 한데, 하여간 엄청 복잡하다. 그리고 미사의 성격과 흐름에 따라서 의복이 바뀌고, 그 구성이 바뀌기도 한다.
장백의는, "사랑으로 감싼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육신과 마음의 결백 그리고 은총을 상징한다. 이 곳을 입을 때, 사제들이 하는 기도는 다음과 같다.
"주여, 나를 결백하게 씻으시어 내 마음을 조찰케 하사 고양의 피로 결백하게 되어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소서."
결백과 은총을 상징하는 장백의를 입었기 때문에 사제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이명박 대통령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사에서의 기본 의상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는 상징이 많은 의상이다.
경찰과 정권에게 도덕적 우월성을 보이기 위해서, 성결을 뜻하는 복장을 준비하였고, 동시에 사제로서의 권위를 갖기 위하여 영대도 준비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대는, 그냥 당하지는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촛불식 언어로 하면, "평화이기는 하지만, 권능 있는 비폭력' 정도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 다음에 준비한 상징은, 대박 상징이다.
보통 종교계에서 특정 사회적 사안에 개입할 때, 이런 말씀 하나씩을 준비한다. 이건 교단의 이론가들이나 원로의 몫인데, 최악은 노무현 시절에 조계종 종정이 사패산 터널 해인사에서 양해해줄 때 보도자료에 들어간 "항산이라야 항심이라.' 이게 최악인데, 아니, 조계종 최고 어른이 인용할 부처님 말씀이 없어서 맹자를 인용해?
이걸 놓고, 배신이다, 아니다, 뜻 있는 사람 새겨들으라는 말이다, 논란이 분분했다. 경제회생에 힘을 실어준다는 해석과, 청와대의 힘으로 밀려 합의는 해주지만, 이건 부처님의 뜻이 아니라, '맹자님' 뜻이다, 라고 완전 한 쫑코 먹은 것이라는 해석 등...
하여간 요한복음 1장 5절의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는 구절은, 오늘의 대박이고, 카톨릭 행진의 맨 앞에 플랑카드로 사용되었다. 짧지만 시적이고 간결하게 현 상황을 요약해주는 이 구절은, 카톨릭이 촛불에게, 즉 외부인에게 던진 메시지이다. 촛불을 빛으로, 명박을 어둠으로, 이 얼마나 간결하면서 명확한 메시지인가.
자뭇, 개신교의 기도회와, 조계종의 법회에서 어떤 구절을 찾아낼 것인가가 기대된다. 가히 한국 최고의 학승들끼리의 결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마경의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수경스님이 삼보일배 때 등장했고, 최근 금강경을 비롯한 몇 개의 경전말씀이 나오기는 했는데, 요한복음 구절만큼 임팩트가 강하지는 않았다. 조계종 학승들, 머리 깨나 아프실 것 같다, 키키. 그야말로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이 두 가지의 상징 외에 카톨릭이 신도들을 위해서 준비한 상징 역시 대박 상징이다.
수녀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시는 CEO가 예수님이시라는데, 예수는 헐벗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하여간 어디에서 명박이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는지만, 어쨌든 그런 말을 찾아내서, 예수가 CEO로서 위대하다고 생각했다면, 너는... 참 무서운 말이다.
그야말로 기독교 체계 내에서 신앙의 맨 기반에 해당하는 것을 찾아낸 셈인데, 이런 방식은 중세 때를 비롯해 카톨릭이 세속의 힘과 싸울 때 종종 등장했던 것들이다.
이런 진단 위에 "대통령, 회개하시오."라는 사제들의 말이 자연스럽게 설 근거를 찾게 된다.
어쨌든 개신교 측에서는 어떻게 교리를 상징적으로 해석하게 될지, 역시 기대되는데, 이렇게 보니까 카톨릭에서는 일종의 '상징을 다루는 법'이라는 차원에서 금번 시국 미사를 꽤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했던 것 같다.
복장, 말씀 그리고 교리해석까지, 그야말로 전통적으로 스펙타클 이미지를 다루는 법에 가장 익숙한 집단다웠다. 대단하신 분들이다.
여기에 보너스로 상징 하나가 따라붙는다. 전경들이 점유하려고 했던 서울광장을 사제들이 텐트 하나로 뺏어왔는데, 그 사유가 '단식' 기도회이다.
단식과 금식이라는 말은 유사하면서도 뉘앙스가 다른, 즉 전혀 다른 상징 위에 서 있는 단어인데, 세밀한 용어 선택 또 하나, 이건 '금식' 기도회가 아니라 '단식' 기도회입니다... 무섭다.
상징이라는 면으로 볼 때, 한국 개신교는 아직 역사가 짧아서 그런지, 상징을 잘 못 다루고, 특히 '스펙타클 이미지'라는 면에서는, 영 꽝이다. 시청앞의 극우 기독교 시위를 비롯해 부흥회까지, 동원되는 상징들은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동시에 폭력적인 속성이 있다. 폭력적인 것은 강해보이기는 하지만, 개개인의 내면을 움직이기에는 어쩐지 어색하다.
한국에서 이만큼 상징을 잘 다루는 집단은 불교계인데, 하여간 7월 4일, 조계종에서 어떤 상징들을 내놓을지, 자뭇 기대되는 바이기는 하다만... (최근 불교계에서 꽤 촉망받는 몇 명의 학승들과 동국대 교수들과 서로 다른 경로로 만나서 얘기들을 해본 바, 그 사람들이 현 법회의 1진이라면, 엄청난 헛발에 실망할지도 모르겠다는...)
한편, YMCA의 일부는 명박을 '적 그리스도'로 지칭하였는 바, 아직은 교리 해석과 상징적 장치가 없어서, 약간 뜨악하다는...
어쨌든 촛불이라는 거대한 상징에서 비폭력, 시민으로 이어지는 것들 옆으로 오래된 상징 전문가들인 종교계가 해석과 주석으로 무장하고, 이미지들을 내어놓았다. 상징치고는 볼 거리가 아주 풍성하다.
반면... 명박은, 상징을 다루는데 좀 무식하다. 투박할 뿐더러, 이미지를 형상화시키고, 여기에 세련과 우아함을 더하는데, 박정희보다도 못하고, 심지어 전또깡 보다도 못하다.
전또깡의 궁중어, 즉 국어학자에게 배워서 억지로라도 익힌 서울식 표준어가 섞인 사투리, 그런 상징 조작의 시도도 없이, 약간 무대뽀로 자기식 표현과, 아무런 정권을 상징하는 이미지 없이 그냥 덤벼대니, 쥐, 불도저, 2메가, 이런 상징들만 자꾸 붙는다.
게다가 스스로 만드는 상징이 없으면, 하다못해 조선일보의 상징조작 전문가들이라도 움직일 법한데, 이들이 만드는 상징이, 불법, 폭력, 사이버 테러, 이런 것이니, 좀 고루하고 남루하다.
오래된 카톨릭의 상징들은, 시기를 그렇게 많이 겪었어도, 2008년 공간에서 여전히 왕 세련이다. 고개가 끄덕거려지는데, 방패, 물대포, 진압봉, 이런 상징 가지고는 이 게임은 게임이 안된다.
나 같으면 전경들에게, 꽃다발을 들게 하겠고, 비둘기를 모자에 꼽게 하겠다. 그리고 전경 지휘부에게 선비들의 옥주의를 입히겠다.
(가만 있으니, 미친소 정찬우의 해바라기를 머리에 사람들이 꽂아준다.)
사면초가라는 말이 있다. 내가 중국 고대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바로 그 토사구팽의 한신이 맹활약했던 사건인데, 여기에서도 초나라의 노래라는 그 상징으로 항우를 마지막으로 끌어내린다. 우미인이 슬프게 자결하고...
명박은, 스스로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상징을 다루는 데 너무 미숙해보이고, 그래서 영 모자란 인간 아니냐는 의심이 들게 된다.
상징에 익숙해지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읽어야 할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그야말로 백과사전 같은 지식을 요구하는 일이다. 에코를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명박 진영에 유능하고, 노련한 기호학자 한 명만 있었어도 사태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든 계엄령, 위수령 혹은 쿠데타와 같이 군대와 관련된 얘기들은 민망해서 잘 입에 담지 않으려고 하는 요즘 같은 시절, "우리가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이냐, 왜 청와대로 오는가?"라고 말하니, 저게 인간이냐, 새 대가리냐, 그런 말이 절로 나온다. 맞고 싶다고 머리 들이미는 격이 아니냐.
오늘 사제들이 보너스로 준비한 마지막 상징, "우리는 남대문으로 간다."
불타버린 남대문, 그 잊혀진 기억을 되살리는 센스, 그저 무서울 따름이다.
이 상징의 의미는, 명박 왕따와 함께, 무능 명박, 무식 명박, 그걸 불타버린 남대문이라는 상징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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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2008/07/01 01:57
송월주스님등 불교스님들 제발 시민원로랍시고 보수우파들 모이는데 가서
'국민통합'어쩌네 얼굴마담하는 소리 좀 안했음 좋겠습니다. 천주교 사제단 말처럼, 지금은 '시국미사'를 하고 있고, 할 때입니다. 근데 송월주스님은 시민원로들 모임가서 '국민통합' 이야기나 하고 있으니 이게 현실파악이 제대로 된건지 듣고 있으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촛불집회하는 이들 중 한가하고 할 것 없어서 거리나와서 물대포 맞고 다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대불련 생활도 해보았었지만 불교계의 정치적 시각은 현실 파악에 나이브하면서도
대세추종적이지요.
천주교의 대 사회적 행위에 비하면 불교계는 전두환시절 10.27법난 이후로
항상 굴종적이었습니다.
제발 이번에 하는 시국법회에서는 시민들의 요구를 호도하는 발언은 안나오기만 바랍니다. -
쏘녀 2008/07/01 02:10
방금 시국미사에 막 다녀왔습니다. 머릿수나 채워주려고 갔다가 감동 먹고 천주교인이 되어볼까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돌아오니 또 이런 대박 분석이 기다리고 있네요 ^^ 그냥 막연하게 '멋진 미사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생생한 분석을 읽으니 감동 10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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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a 2008/07/01 04:03
요한복음 1장 5절은 감동적이었지만, 거기에 쓰인 καταλαμβάνω는 이긴다는 뜻 외에 이해한다는 의미도 있어서, 공동번역 성서에는 신부님들이 말씀하셨듯이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라는 의미로 옮겨져 있지만, 예를 들어 개역개정판에는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로 옮겨져 있습니다. 얄궂은 것은, 양쪽의 해석이 둘 다 현 시국에 적절하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전자가 희망의 메시지라면, 후자는 비관적인 현실 진단이겠죠.
신부님들의 해석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
김구래 2008/07/01 04:25
스킨 바꾼 것도 상징과 관련되나요? 알아서 생각하겠습니다. ^^
내일 6시까지는 못가는데 아쉽네요.
늦더라도 한번 나가려고요. 누가 봉화라도 올려주면 어떨까요?
미나스티라스에서 누가 메리가 되주실 수 없을까요?
제 시력으로는 깃발을 못찾는다는......ㅠ.ㅠ -
sancu 2008/07/03 18:27
7월4일 포스터에 나온 불교의 메시지는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 이군요..^^
이벤트는 꽃등을 직접 만들기... 와우... 이제 촛불이 연등으로 진화하는군요.
좀 일찍 가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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