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정책은 좌우가 결국 비슷한 지점으로 수렴한다. 현실을 반영한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렇다고 그 논쟁과 논의 과정을 생략하고 먼저 가운데에 가 있으려고 하면 안철수가 된다. 돌고 돌아서 사람들의 선택과 타협의 결과로 거기에 가야지, 나는 여기로 올 줄 알았어, 먼저 거기에 가면 정치인 안철수가 된다.

책을 쓰는 것은 정치와는 정반대의 과정인 것 같다. 논리이든 감정이든, 극한에 갈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생각 혹은 한 가지 감정으로 얘기가 최대한 전개되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극한까지 추구하는 것이 책의 정신인 것 같다. 감안해서 읽거나 타협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 극한까지 가는 경험을 제시하는 것, 그래서 독자는 책을 읽게 된다. 지금은 그렇다. 적당히 타협하는 글은 신문만 펼치면 사설에서 매일 볼 수 있다.

샤르트르는 까뮈가 너무 세속적이라고 비난하고는 했다. 그렇지만 까뮈도 사유의 세계에서 극한까지 상황을 몰고 간다. 이방인이 그랬고, 페스트도 그랬다. 그게 극한이고, 그런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독자도 않다. 그렇지만 만일 벌어진다면 당신은 무슨 선택을 하겠는가?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나는 지독할 정도로 극한까지 질문을 끌고 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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