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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 최다안타 기록 세운 날

2018.06.23 23:29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1.

양준혁이 가지고 있던 2318 안타 기록을 오늘 박용택이 넘어섰다. 사실 양준혁은 지금처럼 게임이 대폭 늘어날지 잘 몰랐을지도 모른다. 알았더라면 그렇게 일찍 은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무리해서라도 2~3 시즌은 더 했을 것 같다.

 

어쨌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든다. 요즘 딱히 부럽거나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박용택은 부럽기도 하고, 멋지다는 생각도 든다.

 

박용택이 막 데뷔하던 시절, 2002년은 나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많다. 아마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했던 회의에 갔다가 다시 총리실로 돌아오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해 코리안 시리즈에 삼성과 결승에서 만났다. 이상훈이 공을 던졌고, 이승엽이 홈런을 쳤다. 동점. 그리고 다시 마해영이 홈런.

 

그 때 막 한강 건너서 남산 1호 터널 지날 때였는데,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아마 이것저것, 생각이 겹쳐서 그렇게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하여간 그 시절, 나는 내 인생의 최악의 순간들을 지내고 있었다. 아마 아무리 더 힘들어져도 그 때만큼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

 

그 때 박용택이 데뷔를 했다. 그게 한국 시리즈에 그가 올라가보는 마지막이었던 것을 그는 몰랐던 것 같다. 아무도 몰랐다. 우승은 못해도, 그 언저리에 계속 있었다. 그리고 흑역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 다음 해 봄, 노무현 정권에서 인수위랑 첫 인선 명단 보고 바로 사직서 냈다. 그 즈음에 청와대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얘기랑 조금만 더 기다리면 외국 근무 보내준다는 얘기가 있기는 했다. 글쎄, 그렇게 아쉬움을 조금 더 연장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내 이름을 되찾고 싶었다.

 

2.

막 데뷔한 박용택이 야구하는 기간이 이상훈을 너무 좋아했던 나의 청춘이 완전히 끝난 시점과 이래저래 맞물린다. 그리고 그가 오늘 대기록을 세웠다.

 

나는 이제 그런 건 잘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보낸다.

 

요 몇 주 기분이 아주 좋다. 좀 생각해봤는데, 한 달 전부터 산책을 좀 늘렸고, 몇 주 전부터 줄넘기를 시작했다. 그 외에는 크게 잘 되는 것도 없고, 크게 망하는 것도 없고, 그냥 비슷비슷한 하루의 연속이다. 그냥, 줄넘기를 시작해서, 매일 조금씩 하는 정도로도 나는 기분이 좀 더 좋아졌다.

 

오늘 점심 때 윤호중 의원하고 밥을 먹었다. 그도 좀 고민이 있나 보다. 오늘은 내 얘기도 좀 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다 안 한다고 하면 어떻게?”

 

지난 2년 동안 벌어진 일들을 그동안은 조각조각만 얘기를 해줬는데, 오늘은 따로 할 급한 얘기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약간 모아서.

 

저는, 그냥 이러구 살래요.”

 

요즘 내가 편한 것은, 크게 영광을 구하는 게 없으니까, 크게 망할 것도 없고, 크게 실망할 것도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이들이 좀 커서, 주말 오후 내내 집안에서 웃음 소리가 끊이지가 않았다. 방안에 있는 고양이도 아무 문제 없고, 마당 고양이 강북도 요즘은 저녁이면 집에서 쉰다. 가끔 다른 고양이랑 시비가 붙기는 한다. 오늘은 검은 고양이랑 기싸움이 붙어서 내가 개입을 해서, 검은 고양이 쫓아냈다.

 

내 삶은 이만하면 더 바랄 것은 없다. 크게 아픈 데 없고, 30대 이후 처음으로 수영 말고 다른 운동을 조금씩 한다. 스테리칭 운동도 하면서 오매오매, 이 장작대기”, 혼자 웃는다. 유학 시절에는 혼자서 운동을 많이 했다. “죽을 수 없다”, 그냥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텼다. 지금은 그런 이를 악무는 일은 나에게 벌어지지 않는다. 되면 되고, 안 되면 말고. 그렇다고 내가 혼자 뭔가를 다 하냐? 그런 것도 아니다.

 

어제는 전체 회식이 있었다. 1차 끝나고 마무리하면서 기획팀 대표로 아주 짧게, 한 마디 했다. 어느덧 같이 일하는 사람이 50명도 넘었다. 그냥 나는, 티 나지 않게 내가 맡은 역할만 하면 된다.

 

3.

박용택이 한 마디를 했다. 이제는 우승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보니, 나는 그런 목표도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실제로 그렇다. 요즘은 내가 지금 쓰는 책이 마지막 책이 된다고 해도 별 상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억지로 뭔가 목표를 세우고, 그걸 위해서 기를 쓰는 것, 덜 재밌는 방식이다.

 

요즘은 프로야구에 절절함이 키워드다. 나는 그런 절절함이 없다. 절절함이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기보다는 좀 더 즐기면서 지내고 싶다.

 

50대 에세이를 쓰면서 내가 많이 변했다. 제일 큰 건, 이제 덜 괴로워하면서 책을 쓰게 되었다. , 그렇다고 해서 엄청나게 갑자기 책이 더 팔리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내 책을 10년 가까이 계속 읽어준 동료들이 이번 책은 처음으로 잡자마자 한 번에 다 읽었다는 얘기를 한다. 그거면 된 거다.

 

전에는 책 쓰면서 괴로워하고, 몸부림을 하면서 썼다. 50대 에세이 때, 즐기면서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쓰지는 않았다.

 

직장 민주주의는, 보람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고 써보려고 한 건데, 막상 시작하니까, 내가 얘기에 빠져든다. 독자들도 그렇게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쓰면서 재밌기도 할 뿐더러, 내가 빠져든다. 보람이 문제가 아니다. 이건, 돈 주고도 하고 싶은 일이다.

 

내년도 출간 리스트를 잠시 살펴봤다. 10년을 넘게 책을 썼는데,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나만 쓸 수 있거나, 나만 쓰려고 하는 주제가 남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물론 잘 팔기도 하면 좋겠지만, 그건 내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래도 최소한의 체면 치례 정도라도 할 수 있다는 게 고맙기만 하다.

 

나도 언제까지 책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짧으면 3~4, 길면 10년 정도 쓸 것 같다. 환갑이 넘어서도 책을 쓰고 있을까?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이미 10년짜리 한 턴을 돌았는데, 또 한 턴을 돌기도 어려울 뿐더러, 하지 않은 주제가 남아있을 것 같지도 않다. 더 할 새로운 얘기가 없으면, 언제든지 펜을 내려놓겠다고 생각하고 산다. 기록? 몇 년 전부터, 그런 것의 의미는 없어졌다. 영광과 화려함, 잠시의 일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음 흐름이 오면 기억할 사람도 없다. 기억할 의미도 없고.

 

그냥 내가 지키려고 하는 것은, 내 책을 산 사람들이 보기에 저건 아니지”, 그런 아주 이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정도 아닐까 싶다. , 특별히 하는 게 없어서, 특별히 이상해지기도 어렵다. 잘 못하는 것,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얼마 전 청와대에 있는 어떤 아저씨랑 잠시 통화할 일이 있었다. 언제까지 쉴 거냐고 물어본다. 워낙 친한 사람이라,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그냥 이렇게 살 거라고. “그래요, 지금은 잠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네요.” 요런 애기를 들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지금 쉬는 것은 아니다. 내 능력이 되는 대로, 내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중이다. 야구 용어를 하면, 나는 지금 내 게임 뛰는 중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가끔 책 새로 내면 나에게 몇 권 냈냐고 사람들이 물어본다. 글쎄, 잘 모른다. 10권 때까지는 세었던 것 같은데, 나도 세어보지 않은지 좀 된다. 몇 권 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쓰고 있는 직장 민주주의가 얼마나 이 사회에 유의미하게 만들어질 것인가,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다.

 

그나저나 박용택,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승하고, 막 신나는 분위기에서 잘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렇지만 꼴쥐소리 들으면서 꼴지 언저리를 헤매는 팀에서 자기 흐름대로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박용택의 많은 별명 중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광고택이다. 하다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안 될 때, 잘 참으면서 기본 정도라도 하는 것, 그게 사실 어렵다. 그걸 잘 참고 이겨낸 사람이라서,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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