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영화를 다 보는 건 아닌데, 그래도 너무 보기 힘든 걸 제외하면 어지간히 보려고 하는 편이다. 특히 사극은 망했어도 어지간하면 대충 챙겨서 본다. 망한 영화를 보면 배우는 게 많다. 왜 망했을까, 고통스럽지만 이게 망한 영화를 보는 진짜 이유다. 승승장구, 늘 잘 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수는 있다. 나는, 수많은 망한 영화에 가까운 인생을 사는 것 같다. 망한 영화의 아픔이 곧 내 아픔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망할 확률을 조금이라도 내릴 수 있다면, 시간을 내서 망한 영화를 본 본전은 건진다.

 

그리고 가끔은 뭔가 얘기와 발상의 전환도 건진다. 망한 영화가 완전 꽝인 경우는 정말 드물다. 최근의 한국 영화 시스템에서, 성공한 영화와 망한 영화의 품질 차이라면 아마도 2% 내외일 것이다. 근사치에까지는 간 영화들이 실제로 제작에 들어간다. 물론 얼척 없는 영화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약간의 요소들의 결핍 혹은 과잉들 때문에 망한다.

 

영화 <고산자>는 완전 망했다. 그렇지만 그 소재나 시대 배경 그런 것들 마저도 망한 것은 아니다. 고산자 얘기를 접근하는 방식이 과거적이라서 망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할 꺼냐? 다른 접근을 생각해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로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영화 <흥부>는 대표적으로 망한 영화다. 개봉도 전에 상태 안 좋다는 소문이 났었다. 얼마 전에 봤다. 한 쪽에 국뽕이 있다면, 그 옆에 백성뽕이 있다. 하여간 백성 엄청 찾는다. 그게 그런데, 사실 별 맥락이 없이 백성뽕으로 기울면 영화 밸런스가 깨진다. <흥부>는 좀 더 개발할 좋은 미덕이 있는 영화이기는 한데, 백성으로 가는 결말을 위해서 중간이 좀 뒤틀렸다. 좀 더 코미디풍으로, 정우의 간데 없는 발랄함을 더 밀어붙였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남는다.

 

그건 그렇고영화보고 나서 홍준표 등 한국당 찌끄레기들이 경제를 살리자고 난리들을 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놀부의 경제학’. 극 중 놀부의 원형이 되는 풍산 조씨의 조항리, 이게 나름 매력 있는 캐릭이다. 왕이 된다고 설정을 지나치게 들이밀지만 않았으면, 딱 한국당 하는 얘기들하고 정확하게 매치된다.

 

트리클 다운 얘기가 한참 세상을 휩쓸고 가더니, 정세균이 분수 경제학이라는 용어를 썼었다. 발상은 재밌는데, 딱히 이미지가 와 닿지는 않았다. 정세균이 인기가 없어서인지, 분수가 인기가 없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놀부홍준표 스타일의 이미지로는 딱이다. 그간 새누리당 시절 이후로 한국당이 결사 반대해서 통과되지 못한 법률안들과 제도들, 이런 것들을 모아서 정리하면 ‘21세기 놀부’, 요런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건물주를 지지하면서 그들이 했던 숱한 괘변들, 집값 내려가면 그 손해는 누가 보전해줄 것이냐, 차와 보행자의 패러독스 같은 얘기들이다.

 

나는 출간 일정이 꽉 차 있고, 더 밀어 넣을 형편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당명을 새로 바꿀 한국당 비대위를 위해서 책 한 잔 드리고 싶기는 하다. 위험의 외주화, 이런 법 정도는 놀부 아니라면 통과시키는 게 맞는 거 아니여?

 

아저씨들이 지금 새로 만든 강령이 놀부경제학이예요. 요런 호쾌하고 경쾌한 중거리 슛을 한 방, 쓰리, , , 고 슛! (베이 블레이드,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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