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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

2018.06.06 13:13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현충일이다. 아내는 해외출장 중이다. 어린이집은 논다. 결국 친가에 애들을 맡기기로 했다. 아침에 갔다 저녁 때 오는 건데, 왔다갔다 두 시간, 다 해서 네 시간은 운전만 한다. 그래도 이게 낫나? 물론 낫다. 하루 종일 애들 둘 보고 있으면, 죽는다. 잠시라도 쉴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양희은을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듣는데, ‘아침이슬이 나왔다. 어릴 때 살던 동네를 지나와서 그런지, 문득 초등학교 6학년 때 생각이 났다.

 

이유는 모른다. 그 때도 6월쯤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담임 선생님이 풍금을 치면서 아침이슬을 가르쳐주었다. 의미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지만, 노래는 재밌었다. 우리는 골목골목 다니면서 이 노래를 틈틈이 불렀다.

 

한 달쯤 지났을까? 선생님이아침이슬은 길에서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6학년이지만 우리들 때문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길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다시 이 노래를 부르게 된 건, 대학교 들어가서 소주 집에서. 그 시절에는 이미 집회에서 아침이슬 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아마 그 시절에 고분고분하던 모범생 모드가 내 인생에서 없어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굳이 아침이슬을 그 때 배우지 않았어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1 때 담임은 상대적으로 가장 나았다. 그는 학교에 별 관심이 없었다. 적당히만 해주면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그 때가 청년기로 치면, 나의 전성시대였던지도 모른다. 책도 가장 많이 읽었고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평생 먹고 살게 된 많은 상상력의 기반이 중3 때부터 고1 때까지 읽었던 무지막지한 소설책들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2 겨울방학에 얼마나 책을 많이 읽었냐면, 맨날 누워서 방학 내내 책을 읽었더니 척추가 휘었다. 한동안 고생했다. 집은 춥고, 책은 읽어야 하고, 이불 속에서 누워서 보느라.

 

2 때 담임은, 나와는 상극이었다. 물론 대학에 들어가서 더 황당한 교수 아니 교수 새끼들 을 보면서 고2 담임은 역대급에 들어가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하여간 상극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좋은 선생님이다. 그건 별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디. 교육에 열성이 아주 높은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그는 나를 싫어했던 것 같다. 아마 당신 교사 기간에 가장 냉소적인 학생으로 기억하는 것 같다. , 어떻게 보든 상관 없는데, 너무 많이 때렸다. 그 때까지는 대학은 그냥 국문과 간다고 적당히 생각하고 살았는데, 최종적으로 국문과를 안 가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내가 겪은 국문과 출신 선생님들은 애들을 너무 많이 때렸다. 그리고 애정이라고 했다. 내가 꿈에라도 사람을 때리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은 것은, 그 시절의 국어 선생님들 때문이다. 나는 문학도를 꿈꿨는데, 저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때리는 거야 교련 선생님들이 왕이고, 체육 선생님들이 제왕이기는 한데, 그 사람들은 애당초 개차반으로 나선 거라서 신경도 안 썼다. 실제로는 교련 선생님이나 체육 선생님들에게는 거의 맞은 적이 없다.

 

3 때 담임 선생님은 드물게 식크한 사람이다. 물론 생긴 것은 전혀 식크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역대급으로 식크하다. 세계사 선생님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는 내 인생에 결국 감옥에서 끝나거나, 헤매다가 잘 하면 공무원이나 되거나, 뭐 그럴 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학교에 또 다른 세계사 선생님은 전교조 이전에 학교 운동의 대부 같은 양반이었다. 결국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미국으로 이민 간다. 담임은 나에게 아무 기대나 아무 간섭이 없었다. 나도 크게 사고 치지는 않고. 되는 대로 살았다. 뭐 하라는 것도 없었고, 특별히 어디 가라는 것도 없었다.

 

세 명의 담임 중 나는 누가 되고 싶을까? 사실 아무도 되고 싶지 않지만, 굳이 고르라면 3학년 때 담임 같은 사람을 고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애들한테 아빠는 고3 담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뭐 하라는 것도 크게 없고, 뭐 되라는 것도 별로 없고, 노는 것도 누구 때리는 것만 아니면 이래도 잘 했어, 저래도 잘 했어.

 

이래서 우여곡절 끝에 경제학과에 들어갔는데, 나를 가르치게 된 누님 두 분을 만나고 완전 놀라게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있었나, 진짜 깜짝 놀랐다. 한 양반은 나보다 좀 늦게 유학을 와서 뒤늦게 박사가 되었다. 여전히 현장에서 눈부신(?) 활약 중. 그리고 또 한 명이 나중에 대장금의 작가가 된 김영현 선배, 하여간 어지간히 드라마 많이 쓰게 된 양반이다. 그 때 놀랐다. 우와, 똑똑한 게 이렇게 멋진 거구나. 집에서는 재수하기로 하고, 재수 하기 전에 잠깐 놀려고 아니 술 처마시려고 갔던 대학인데, 결국 이 양반들하고 노느라고 그냥 눌러앉았다. 재수는 뭔 재수. 살면서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을 다시 볼 것 같지는 않았다. 지내고 보니까 그 때 내 생각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엄청난 사람들을 만난 거였다.

 

그리고 아침이슬을 다시 부르게 되었다.

 

박정희 시절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전두환 시절에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초반을 보냈다. 지금도 어린 시절이나 학교 다니던 시절을 회상하면 어두워진다. 사람들이 특히 선생님들이 아주 개차반 같았다. 신해철이 그 선생님들 욕을 신랄하게 했다. 대부분 동의한다. 그렇지만 가끔 생각해보면 그 때 선생들이 개차반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회 평균 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학교 밖의 험악한 세상에는 그보다 더 형편무인지경인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친구들과 가끔 만나시는 것 같다. 가고는 싶은데, 애 보느라 자주 가기는 어렵다.

 

이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아직도 답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좀 아닌 것은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악다구리 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그것만은 명확해지는 것 같다. 남한테 소리 지르고 싶지 않다. 다른 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건 잘 모르겠는데, 되고 싶지 않은 것만 자꾸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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