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낭화. 2012년 4월. 예전 집에 있던 꽃인데, 진짜 철학적으로 생겼다. 못내 아쉬어서 오늘 줄기를 구매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진짜로 몽환적인 생각이 든다...) 

 

김희진이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에디터가 있다. 되게 많이 한 것 같은데, 사실은 <문화로 먹고 살기>, 한 권 밖에 같이 안 했다. <농업경제학>을 같이 할 예정이다. 하여간 출판 시장 상황이 지금처럼 어려워지지 않았으면 가볍고 편안한 책들 여러 권 더 같이 했었을지도 모른다.

 

50대 에세이 서문 마지막에 패러독스와 딜레마의 결합에 대한 얘기를 썼다. 나는 참 재밌고 좋았다. 내가 가진 내면을 진짜 잘 보여주는 글 같았다. 그리고 이틀을 고민하다가 결국 뺐다. 패러독스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 싶었다. 책에서 엄청난 기능을 하는 것도 아닌데, 초장부터 논리학 훈련시키는 그런 마음을 먹게 될까봐, 결국 뺐다. 무서워서 뺐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 같다. 별 의미도 없지만 엄청나게 고민하는 것, 그게 원래 내 특기다.

 

그리고 김희진 생각이 났다. 그녀와 초창기에 준비했던 책 중에 하나가 일상의 패러독스에 관한 것이었다. 몇 달 준비하다가 결국 접었다. 재미는 있는데, 준비하기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그 때만 해도, 내가 30대 후반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고, 또 내 주변도 내가 정신차리지 못할 정도로 급하게 돌아갔다.

 

이제 나는 목숨 걸고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사명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지도 않는다. 되는 대로 하고, 아니면 말고. 집중해서 하나의 주제를 계속 생각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하지만 긴 시간을 가지고 티끌 모아 태산전략도 잘 쓴다.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 몇 년간 일상적인 사회 생활에서 벌어지는 패러독스들을 모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흔하게 치는 뻥이나 과장법 중에 패러독스의 요소를 가진 것이 꽤 많다. 정부의 행정에도 많고. “진짜 힘들면 우리에게 요청하세요…” 요런 게 기본적으로는 패러독스다. 관광서 문을 두드리고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말할 정도의 사람이면, 사실 진짜 힘든 사람은 아니다. 홈 페이지 구석에 있는 눈꼽만한 공지문들 중에도 패러독스 요소를 가진 것들이 많다. 우리의 삶은, 매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끊임없는 패러독스의 재생산과 같다.

 

내 삶을 되돌아보면, 사실 내 인생 자체가 조그만 패러독스다. 나는 진짜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것도 싫어할 정도로 게으른 천성이다. 한 번 한 일을 두 번까지는 참고 하는데, 세 번째 하라면 정말로 때려죽여도 잘 못한다. 게으른 게 천성이다. 그래서 뭔가 몸을 움직여야 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미리 움직이는 편이다. 우와그래서 결국 게으르게 되는 데 성공했을까?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 중에 우회생산이라는 게 있다. 장비를 만들고, 좀 쉽게 하기 위해서 수단을 정비하는 데에 시간을 진짜 많이 들이게 된다. 요즘 말로 하면, 시스템을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할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서 시스템을 정비해 놓으면 처음 하는 일은 진짜 가볍게 한다. 그리고는? 다시 또 하기가 싫어진다. 벌써 지겹다. 그래서 결국 또 손가락을 움직이게 되는.

 

생각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패러독스가 많다. 특히 할배나 중년 남자들이 나는 말이야…”하고 시작하는 얘기들 중에는 대부분 한두 개의 패러독스들이 포함된다.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아서 잘 모를 뿐이다.

 

진리는 무엇일까? 사실 잘 모른다. 우리는 굉장히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잠시 생각그것도 역시 제한된 것들을 생각할 뿐이다. 대부분은 머리 속 이미지이고, 그 중의 아주 일부만 언어라는 도구를 거친다. 진리? 호모 사피엔스라는 입장에서 잠시 정형화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논리적인 오류에 빠지는 가장 쉽고 넓은 길이, 자신의 작은 성공에 기대어 많은 것을 일반화시키는 것이다. 사실 소크라테스가 니 꼬라지를 알라고 한 얘기가,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의 무지 사실은 횡포 에 관한 것이다. 해보면 알까? 알기는 뭘 아나. 긴 시간이 지나고 참고할 사례들이 늘어나면, 결국 아는 것 만큼이나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가 알았던 것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진리, 그딴 건 없다. 과연 우리가 뭘 알 수 있을까?

 

최근의 일이다. 외국 사람들 아니 외국 아이들하고 놀다가 라는 개념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 ? 이게 뭐지? 암만 생각해봐도, 영어로도 없고, 불어로도 없다. 그러네우리가 효를 아는 것일까, 효라는 단어가 없는 서양세상이 효를 모르는 것일까? 물론 효라는 단어가 개념적으로 없다고 해서 서양의 모든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가 개판이라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내가 나에게 다짐하는 게 있다. 나는 아는 게 없다, 하나도 없다진짜로 1도 없다. 이런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그런 생각을 안 하면, 볼 책도 없고, 참고할 것도 없고, 그냥 필요한 데이타만 보면 된다, 이런 겁나게 시건방진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런 지식도 이제는 새로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교조주의가 싫었고, 원본의 권위가 싫었다. 평생 그런 게 싫었다. 내가 뭔가를 안다고 생각하면, 내가 나한테 교조주의가 된다. 개뿔,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속에 든 거를 계속 비우는 게 더 편한 일이다.

 

패러독스는, 가장 쉽고 부드럽게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들을 해체시킬 때 도움이 된다. 내가 평생 안 하려고 하는 표현을 한 가지만 꼽자면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다. 대표적인 패러독스다. 몸도 늙었지만, 마음도 늙어서, 자신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끝까지 인정 안 하려고 하는 부작용을 만든다. 지가 무슨 엄청난 정신력을 가진 초능력 에스퍼맨이야? 어떻게 마음만 똑 떼어서 청춘이 돼? 그건 진시황도 못한 일이다.

 

아마 4~5년 정도 50개 정도의 패러독스들을 모으면 책 한 권이 되기는 할 것 같다. 아주 한국적인, 아주 20세기적인 그런 것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삶의 꿈은 하였던 것 같다. 모두가 맞다고 할 때 아니라고 하는 것. 그 꿈을 아직 나는 버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냥 싫어서 싫다고 하는 것, 이건 좀 아닌 것 같고.

 

나이를 먹고, 작은 성공을 몇 번 경험하면 자꾸 성을 쌓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혼자 맘 편하게 다른 사람을 야리고, 비웃게 된다. 결국 그렇게 병신이 된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소크라테스가 한 얘기를 그대로 따라하면, 돈 많이 번 넘은 돈 많아서 병신, 일 잘 한 사람은 일 잘 해서 병신, 회사 성공시킨 사람은 회사 성공시켜서 병신, 악기 잘 한 사람은 악기 때문에 병신, 그런 거다.

 

20세기 후반부터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자들이 한참 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개념이 아주 전세계를 싸그리 휩쓸었다. 그러면서 데리다가 얘기한 해체가 완전히근데, 이게 참. Deconstruire, 해체를 위해서는 앞의 것도 알고, 지금 것도 알고, 다음 것도 알고, 오매나야, 뭐 이렇게 알아야 할 게 많아? 차라리 그냥 헤겔만 보고 말래요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 그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요구하게 되었다. 그게 무슨 해체냐? 덕지덕지지.

 

선불교 얘기 한 마디만 하면 또 난리 난다. 5조와 6조 얘기는 물론이고, 길고 긴 선불교의 역사는 물론이고 혜총 등 한국 불교에 대해서도 어지간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도 성철 스님을 알고, 그 주변의 족보들도 알고. 모르면? 어디 찌그러져 있으라고 난리다. 원래 선불교가 그런 거였어?

 

우와. 결국은 레토릭의 세계일 뿐이다. 우리가 즐겁고 행복하게 세상을 살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게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런 얘기들을 틈틈이 모아볼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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