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짝패, 충청도 사투리가 겁나 나온다. 그렇기는 한데, 장소가 충청도 어디인가를 가르쳐주는 것 외에 언어로서의 내면적 기능은 없다...) 

 

1.

몇 년 전부터 코미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웃음과 풍자, 그런 것을 갈망하는 생각이 나에게 계속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20대에서 30대를 짙게 누르고 있던, 뭔가 모르는 비극적 결말 혹은 구조 악 같은 것만을 다루던 상태에서 잠시 일탈적 해방 같은 느끼고 싶다는 본능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지고 있지 못한, 아니면 가져 보지 못한 장난감을 더 가지고 싶은 그런 욕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형식이 무엇이든, 코미디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약간의 시도는 했었다. 정치 코미디를 써보려고 했었고, 기본적인 얼개를 잡아 놓기도 했었다. 매번 쓰다 만 글에는 바빠졌다거나 형편이 되지 않았다는 비겁한 변명이 달린다.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곧 죽어도 능력이 안되어서 포기했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그렇다.)

 

2.

여전히 코미디는 언제나 내가 써야 할 글 목록의 매우 상위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물론 예전에도 방법이나 대안은 없었지만, 지금도 그렇다. 리스트에 올리고, 때가 되면 뚝닥뚝닥 결국은 해치우는, 나는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은 아니다. 수많은 목록을 리스트에 올리고, 지우고, 또 올리고, 또 지우고, 언제나 그 지랄을 한다.

 

그래도 이렇게 쓰고 싶은 글을 리스트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영향을 받기는 한다. 잠재적으로라도 하고 싶다는 것이 지금 하는 일에 아주 약간이라도 영향을 주게 되기는 한다. 나의 리스트에 절대로 올라오지 않는 것은, 절절한 사랑 이야기 같은 거아니면 로맨스 코미디. 별의별 희한한 흡혈귀나 좀비 얘기 아니면 찌질한 SF류까지 전부 리스트에 올라오는데, 절절한 사랑류에 대해서는 한 번도. 하여간 마음이 안 간다.

 

3.

사투리를 사투리라고 그냥 생각하지 않게 된 계기는 제주도 연구할 때인 것 같다. 양씨니 고씨니 하는 제주 할망과 함께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들 혹은 입도 몇 대를 따지는 제주도 사람들하고 작업을 꽤 길게 했다. 그 시절에 지방의 방언, 사투리, 이런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었다.

 

요즘 지방에 가도 사투리 듣기가 쉽지는 않다. 처음 대구에 갔을 때 들었던 그 느낌을 지금은 거의 받기 어렵다. 지방 사람들을 만나도 마찬가지다.

 

4.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 멀리 놀라 가기가 어려우니까 요 몇 년간은 주로 충청도로 갔었다. 태안과 그 인근 지역들. 꽤 길게 머물기도 했다.

 

사투리에 관한 얘기들이, 사실 우리는 많이 써먹었다. 전두환 시절부터 서울말 가미된 대구 사투리를 궁중어라고 불렀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했던 바로 그 말. 강남 살던 시절, 사방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바로 그 궁중어였다. DJ 시절에는 목포 형님들과 함께, 전라도 사투리에 익숙해졌다. 한 때 내 바로 위의 상관이 목포 형님, 그와 함께 매생이국이라는 것을 처음 먹었다. 그리고 노무현 시대가 되었고, 평생 들은 것 만큼의 부산말들을 듣게 되었다. 부산 말, 다시 대구 말, 부산 말 대구 말 그리고 그 틈틈이 광주말

 

충청도 사투리는, JP와 함께 찾아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직은 익숙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덜 소비된 말이기도 하다. 백제로 치면, 어디가 본당이야? 전라도권, 충청도권? 지금에 와서, 알게 뭐냐? 그리고 그런 화석화 된 논쟁이 뭐가 중요할까 싶다.

 

그래도 재미는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당분간 나는 충청도 갈 일이 많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보면, 얻어걸리는 것도 있기는 할 것이다.

 

5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재능과는 아주 거리가 먼 스타일이다. 아쉽지만 그렇다. 뭔가 기똥찬 생각이나 아이디어 같은 것이 불현듯 떠올라, 일필휘지별로 안 그렇다. 앞으로 할 것, 꼬박꼬박 리스트를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일정표도 몇 년치, 꼬박꼬박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계획한 대로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매번 수정한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는 처지였으면, 그렇게 일정표 만들고 메모 정리할 시간에, 그냥 그걸 쓰라고 할 것 같다. 그렇긴 하다.

 

<88만원 세대>가 대표적으로, 몇 년간 모아둔 메모와 이건 좀 이상한데?”, 그렇게 적어 둔 것들 것 모아서 만든 대표적인 책이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이 기획하다가 버린 메모 노트 같은 것까지 참고했다. 자기는 쓸 필요 없다고 버리려고 하는 걸 그것 좀 잠깐 줘보세요”, 그런 것까지 탈탈탈 털었다. 독일 사례가 그렇게 나온 얘기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아니, 종종 배신한다. 그렇지만 그런 배신까지 다 포함해서, 뭐라도 진도를 나가기 위해서는 그래도 땀은 좀 흘려야 한다.

 

뭔가 메모를 하고, 리스트에 올려놓으면 시간이 지났을 때, 모이는 게 좀 생긴다. 그런 메모도 없이 멍하고 있으면, 시간이 흘러도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다. 내 경우는 그렇다.

 

블로그에 이것저것, 되는 얘기 건 되지 않는 얘기 건, 생각날 때 정리해 놓는 것은 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한 것 같다 (제일 잘 했다거나, 제일 많이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충청도말 + 코미디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결합한 메모 하나를 더 한다. 조각조각 모아서 해보는 일을, 한 번 더 하려고 한다.

 

어차피 나는 시간이 많다. 가진 것은 시간밖에 없다. 천천히 모아가면서 해도 충분하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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