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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행위

2018.05.15 04:48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간만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 책을 조금 읽었다. 책을 읽는 것은, 자기 시간을 내어놓는 것과 같다. 나에게 책은, 언제나 괴로운 일이다. 내가 모르는 것에 관해서 책을 읽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내가 전혀 모르던 것에 대해서 생각을 죽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전혀 모르던 것에 대한 작은 우주가 생기고, 내가 알던 작은 소행성 하나가 산산히 부수어져 나간다. 그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책을 읽는 가장 나쁜 자세 중의 하나가, 자기가 필요한 것만 읽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실용적인 자세로 장점들만 자기 안에 들어올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10년 혹은 20년이 지나면 이게 결정적으로 해로운 일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책의 실용적 장점만이 모여서 지식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머리에 똥만 차게 된다.

책을 읽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저자를 온전하고 완벽한 한 사람이라고 일단은 전제하고 그의 생각들을 읽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책은 부분적으로 옳고, 부분적으로 틀리다. 시기가 변하면 그 자체로 완벽하게 자신과 맞는 책은 없다. 심지어 자기가 쓴 책도 시기에 따라서 다루는 대상과 생각의 변화 때문에 자기와 맞지 않게 되기도 한다. 남이 쓴 책이야 오죽하겠냐.

그걸 자기가 우월자의 시선으로 재단하고 심판하면서 읽으면, 책의 미덕 자체도 온전하게 자신에게 오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배운다는 생각 그리고 '온전하게' 하나의 세계관을 맞이한다는 생각으로 읽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고통스럽다. 매번 고통스럽다.

이런 생각을 딜타이 등의 말을 빌려서, 해석학적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키워드 하나면 꼽으면 context,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컨텍스트를 읽을 수 없는데, 텍스트를 어설프게 재단하면서 자신이 더 우월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건방떨면, 컨텍스트 근처에도 못 가본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여전히 나에게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여전히 내게 독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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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17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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