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8 00:25

폭력과 비폭력, 그리고 평화의 기준은 어디인가?

세상의 언어는 맥락 속에서 정의된다. 맥락(context)이라는 해석학 용어는, 포스트 모던이라는 용어와 함께 소개되면서 너무 단편화된 경향이 있으나, 여전히 어려운 용어이다.

쉽게 말하면, 때와 장소가 변하면, 인간사에 절대절명으로 영원한 기준은 별로 없다는 말이다. '맥락'이라는 용어가 서 있는 대전제는 이것이다.

폭력, 비폭력, 평화라는 용어도 이와 같다.

이는 불법의 기준, 즉 국가를 정의하고, 법률를 정의하고, 특수한 맥락에서 그 법률에 반하는 행위를 정의하는 기준의 하나로서, "도로 위에 서 있는 행위"를 규정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대체적으로 촛불 집회 내에서 사람들이 폭력이 아니라고 용인하는 가장 최대의 행위는, 버스를 밧줄로 당기는 행위, 그리고 버스 위에 올라서는 행위까지 정도인 것 같다.

여기에 극한으로 비폭력의 범위를 잡는다면, 계란 투척까지일 것이다. 계란투척은 모호하다. 세상 어디에서 계란을 던지는 행위를 비폭력의 범주에 넣을 것인가?

그러나 영국을 비롯해서 많은 문명국가에서는 계란, 토마토 그리고 양배추까지를 비폭력으로 본다. 물질로는 폭력이 맞지만, 이런 물건들은 상징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계란은 부패를 상징하고, 토마토는 야합을 상징하고, 양배추는 비겁함을 각각 상징한다.

처칠은 토마토도 맞고, 양배추도 맞았는데, 대개는, 맛 좋다... 고 말했다. 이런 물건들은 그 자체의 물리력보다 상징성이 강한 물건들이라서, 폭력으로 간주하기 보다는 상징 행위로 간주한다.

물론 이런 것도 많이 던지면 당연히 폭력이다. 토마토의 경우는, 특히 몇 야드에서 던졌느냐, 100미터에서 던졌느냐, 200미터에서 던졌느냐, 이런 것들이 주로 얘기가 된다. 명중시켰을 때, 가까이에서 던지면 아무 것도 아니고, 멀리서 던져서 맞췄으면... 투수해라... 이렇게 상징 속에서 놀이가 되는 물건들이다.

이 극한이 대체적으로 버스를 당기기, 그 전후에서 설정되는 것 같다.

주먹질을 하거나, 투석전을 하거나, 이것은 볼 것 없이 폭력이다.

이러한 정의에 대한 생각을 더 넓히면, 언어도 때로는 폭력이다.

지단이 월드컵에서 박치기를 했다. 그의 여동생과 관련된 언어폭력과 실제로 박치기를 한 지단의 물질적 폭력, 그 비중 속에서 무엇이 진짜 폭력인가, 여전히 어려운 질문이다.

부부싸움의 예를 들어보자. 한 편은 막 말로 "니가 말이야"라고 얘기했고, 한편은 쌩무시하고, 냉냉한 얼굴로 팽하고 돌아져갔다. 누가 더 폭력인가? 참 판단하기 어렵다.

완벽한 비폭력, 그건 집에서 가만히 있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평화이고, 비폭력인가?

조선일보를 읽고, 저 폭도들이라고 한 마디 찍하고 가는 사람들은 평화인가, 아닌가? 판단하기 어려운데, 구조 속에서는 그들의 냉담 역시 구조적 폭력의 가담자일 수도 있다.

맥락으로 들어오면, 간단해보이는 판단도 쉽지 않다. 그리고 그 기준은 시대가 만드는 것에 가깝다.

물대포는 폭력이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촛불 집회 속에서는 '허용된 폭력'에 가깝다. 물론 한 방 맞으면 허용하기 어렵지만, 그것도 전체의 룰을 만들면서 게임의 한 요소가 되었다.

자, 이 물대포에 최루액을 타고, 형광액을 타는, 새로운 전환점이 벌어진다. 명박, 분명히 그렇게 할 스타일이다.

이건 지난 50일 넘게 일종의 '내제적 규칙'이 된 촛불집회에서 질과 폭을 달리하는 아주 높은 수준의 폭력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이다. 즉, 블러디 선데이, 블러디 6.25와 질을 달리하는 폭력의 등장이다.

철학은, 개기는 모든 놈은 괴롭힐 것이고, 또 한 명도 빼지 않고 잡아넣겠다... 이 상징은 그런 것이다.

이 고도의 메시지 앞에서,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순간이 오게 된다.

그렇다면 그에 대응해서 더 높은 수준의 폭력, 그리고 그 맥락에서 '방어적 폭력' 혹은 '공격적 평화'와 같은 몇 가지 개념의 변주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와는 질과 양을 전혀 달리하는 공폭력의 개입이 있을 것이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물리적 고통 속에서 힘들어질 것이다.

이 상징의 메시지는 하나이다.

군대의 개입을 제외한 최대한의 것으로 하겠다... 총을 제외한, 최고 수준의 폭력으로 정부는 움직이겠다는 말이다.

어려운 판단인데, 내가 보기에는...

이 사건은 명박이 그만큼 코너에 몰렸고, 쓸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말인 셈이다. 광장을 그대로 두고는, 더 이상 통치핧 수 없다는 선언과도 같다.

즉, 독재 선언인데, 최루액과 형광액을 탄 물대포, 이 굉장히 빠른 시간에 절정을 향해 달리게 되는 폭력의 방식을 선택한 셈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촛불이 의미있고, 말과 대화로는 더 이상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참 어려운 비폭력, 그 수단을 선택할 것인가, 아닌가... 그 기로에 있다.

명박이 이 업그레이드 물대포로 국민들에게 한 얘기는, 5천만 중에 100만명 정도 감옥에 집어넣어도, 통치는 할 수 있다.

물론, 그는 그렇게 믿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통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싸움, 끝을 행해 가는데, 철학적으로 폭력과 비폭력에 대해서, 어떤 철학자가 나와서 명확하게 구분을 해주고, 그 기준이 명박측이나 촛불측이나, 다들 끄덕거릴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그러나 내 생각에... 물대포에 형광액을 타는 순간, '국민이 뽑았다'는. 최소한의 헌정 질서도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2008년이다. 글로벌과 세계화 그리고 4만불을 저들이 말하던 것이 불과 100일 전이다. 물대포와 물대포에 최루액과 형광액을 타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은 민주주의 이전의 야만의 시기로 돌아간다.

그 속에서, 폭력, 비폭력, 그리고 평화의 기준이 동동 떠다닐 것 같다.

농담 삼아 최근에 들은 두 가지 얘기를 해보자.

명박식 소통 : 소망교회와 통하다
촛불식 소통 : 소로 인하여 통하다

명박, 소통 대신 물대포의 물로 인한, 수통을 원하는가 보다.
Trackback 2 Comment 4
  1. 와넬 2008/06/28 00:51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 최근에 에이프릴 카터의 <직접행동>을 읽으면서, 폭력과 폭력이 아닌 것에 대해 (적어도 양적으로는)많이 생각했습니다만, 쉽게 결론짓지는 못하겠더군요. 그나저나 명박은 저런 수단을 사용해도 촛불이 꺼지지 않으면 결국 군대라도 동원할 것 같습니다. 그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감안한다면 말이죠.

  2. 밤무대 2008/06/28 01:24 address edit & del reply

    이제 곧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움직일거 같은데요,
    그 정도의 폭력적 상황이 온다면 지식인,종교계,야당정치인들이 현재까지보다 더 활발히 움직여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불교신자인데요 불교계가 이번 '알고가'사건을 계기로 명박을 향한 인내심의 임계치에 달한 거 같더라구요.
    뭔가 빌미만 생기면...아마 이분들이 천주교사제단과 함께 선봉에 서지 않으실까...합니다.ㅎ
    '알고가'...나쁜 놈들 너무 치사했어요.

  3. 밝은미소 2008/06/28 03:43 address edit & del reply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폭력집회로의 변질이네 어쩌구하는 말들이 늘어가고.. 거기에 동조하는 의견들도 많이 보며 어지럽고 혼란스럽던 차에, 맥락이라는 측면을 짚어주시니 뭔가 시원한 느낌입니다^^ 정말 말씀하신대로 이런상황에서 누군가가 폭력과 비폭력에 대해 공감할만한 기준을 세워주었으면 좋겠네요..

  4. 행인 2008/06/28 08:48 address edit & del reply

    맥락에 맞는 소린지는 잘 모르겠는데, 폭력과 비폭력의 문제는 어쩌면 폭력을 너무 억압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폭력이라고 해도, 결론적으로 상대에게 어느 정도 피해를 주느냐에 따라서 용서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이상, 폭력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게 아닐까요. 결국 폭력의 수위를 조절하는 능력이 있어야 겠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폭력을 무조건적으로 금기시하기 때문에 한쪽은 양, 한쪽은 늑대 이런 식으로 극단화되어 버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