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살던 집에서. 이 시절에는 모든 것이 드라마틱했다. 숨소리마저 파란만장했다. 딱 6년 전의 일이다. 나도, 저 오른 쪽에서 젖을 빨던 아기 고양이 강북도, 이제는 저 시절로 돌아가지 못한다...) 

 

1.

얼마 전부터 어려운 것을 쉽게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쉬운 것을 어렵게 하는 게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책에 관해서는 그렇다.

 

영화에는 13579라는 표현이 있다. 일삼오칠구, 말 그대로 순서대로 나가는 걸 얘기한다. 전통적 방식으로 앞뒤 맞추고, 적절하게 구조를 맞추는 것을 이렇게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영화가 끝까지 가면 웰메이드라는 소리를 듣는다. 어지간히 맞출 것은 다 맞춰어 놔서 왠만큼은 한다. 그렇지만 새로운 것은 없다. 당연히 실험적인 것도 없거나 극소로 등장한다. 왠만하기는 한데, 강렬하지는 않다.

 

책이 그렇다. 이것도 일종의 13579가 있어서, 적당한 형식과 양식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자꾸 하다 보면 이런 게 익숙한 양식이 된다. 익숙한 게 나쁜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효율성과 전달력을 가지니까 그게 일종의 양식화가 된 것이다.

 

어려운 것을 쉽게 하기, 익숙한 양식에 집어넣고 앞뒤를 맞추면 책 한 권이 된다. 그 익숙한 양식에 사람들이 처음 생각했을 것 혹은 처음 제기하는 문제, 그런 어려운 얘기를 집어넣는 것이 어느덧 내가 책을 쓰는 방식이 되었다.

 

어느덧 13579가 되어버린 내 모습.

 

13579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글을 쓰거나 뭔가 만드는 재미는 없다.

 

어느 순간부터, 이게 일종의 직업처럼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조금만 돈 안될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은 주제는 그냥 내팽겨쳐져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일본은 촘촘한 나라라서,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 주제가 그리 많지는 않다. 뭔가를 발견했을 때, 이미 누군가가 한 평생 그걸 추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과는 달리, 아주 펑퍼짐한 나라다. 아주 좁은 구멍 몇 개에 모두가 몰려 있고, 그걸 조금만 벗어나면 아무도 없는 곳이 많다. 형편무인지경, 형편이 없는 곳이라서 무인일 가능성이.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그 주제도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무가치할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무가치하다는 것은, 인기가 없거나 연구에 돈을 댈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아무도 손 대지 않은 주제들이 우리나라에는 거의 무긍무진이라고 할 정도로 많다. 내가 이제 나이 50이다. 내가 잘 움직여야 봐야 10, 엄청나게 부지런해야 15년 움직일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5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로서 책을 쓰는 시간이 5년이든, 10년이든, 어쨌든 그 길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젠 나도 슬슬 내가 쓰던 것들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정리할 시간이 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가 지금이다.

 

13579 방식으로, 펜 내려놓는 순간까지 책을 계속 쓴다고 해서, 나아질 게 뭐가 있느냐, 이런 질문을 나도 나에게 던져보게 된다. 몇 년 전부터, 내가 몇 권의 책을 냈는지도 세어보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한 권 한 권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책을 낸다는 것이 나에게 가슴 찡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통으로 본 그 시간들이 절절한 사연으로 남지도 않는다.

 

굉장히 기능적이고 기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준익 감독이 가끔 나에게 라이팅 머신이라고 한다. 큰 의미를 담고 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잘 생각해보면 욕이다.

 

2.

어려운 것을 쉽게 하는 것은, 가장 효율적인 방식에 관한 얘기다. 그렇지만 요즘 내 고민은, 어떻게 하면 쉬운 것을 어렵게 할 것인가, 양식 실험을 포함해서 조금 더 전위적이거나 실험적인 시도들을 하는 것, 왜 나는 이런 것을 피하는가, 이런 거다. 13579를 깨고,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들을 담아내는 것, 이런 걸 더 해보고 싶다. 물론 힘들다.

 

아이 둘 보면서 뭔가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 무작정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방식을 쓰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그냥 하던 대로 하고 싶지도 않다. ‘직장 민주주의라는 질문이 딱 이 양식 실험 한 가운데에 있다. 개념 자체가 쉬운 개념은 아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개념도 아니다. 딱딱하다. 그리고 이 얘기를 듣기 전에는 전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가 막상 그 얘기를 들으면 마치 아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개념이다. 정의? 당연히 우리 맥락에 맞게 정의되어 있지 않은 개념이다. 그리고 책으로 진지하게 다루는 것도 처음이다.

 

이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양식 실험을 해볼 수 있을까? 오매나야, 하여간 그런 고민 중이다.

 

답은 아직 모른다. 모색해볼 수 있는 시간이 한 달 정도 남아있다. , 나도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카페에 두 개의 글을 썼다...)

 

http://cafe.daum.net/workdemo/iPgv/17

 

http://cafe.daum.net/workdemo/iPgv/18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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