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영상 인류학이라는 게 슬슬 유행을 탈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몇 달 전에 관련된 곳에서 심사위원을 맡아달라는 부탁이 있었는데, 내가 원래 심사위원을 안 하는 게 살아가는 신조이다.

 

나는 무엇인가 선정하거나 상을 주는 위치에 있지 않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생각이다. 심사위원이 되면 권력을 가지게 된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심사위원을 통해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이유는, 심사위원의 눈과 그러한 위치에서 세상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작업하는 사람들, 글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다큐를 만드는 사람들과 같은 눈을 가지고, 같은 위치에서 세상을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기획자의 위치나 감독자의 위치에 있기 보다는, 똑같이 현장에서 굴르는 실무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그런지 꽤 된다.

 

내가 20대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사실 내 주변의 조언자나 감독자, 그런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동료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대학 교수가 되지 않으려고 생각한 것도, 그리고 '선생'으로 살아가지 않으려는 이유도, 내가 꼰대처럼 되어서, 위의 모습에서 보지 않으려고 한 그런 생각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극장에서 잘 개봉하지 않는 다큐멘타리를, 그리고 DVD 제작을 통해서 판매하지 않고 공동체 상영 등으로만 볼 수 있는 다큐들의 DVD를 방에서 편안하게 담배 뻑뻑 피면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부담스럽다.

 

나는 뭐라고 남들처럼 잠깐 공개되는 인디 상영관에서 줄 서서 보지 않고, 남보다 조금 먼저, 혹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이렇게 공들여서 만든 다큐들을 보게 되는 것인가.

 

2.

 

여성 다큐집단 '반이다'의 개청춘은 중간중간에 티저들을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다. 20대와 관련된 시사다큐는 지난 몇 년 동안 몇 개나 같이 만들 기회가 있었고, 후지 TV, 아사이 TV 그리고 NHK와 몇 번을 같이 만들었었다. 그래서 특별히 더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나도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시사 프로의 형식 그리고 다큐라는 형식을 통해서 참 많은 프로들을 같이 만들었었다. 르뽀에도 몇 번이나 참여했었고, 그 중에 한국과 일본에서 출간된 것도 몇 권이나 된다.

 

새롭게 편집되어 개봉된 다큐멘타리 <개청춘>은 이와부키 히로치의 <조난 프리타>와 주로 비교되는 것 같다. 개청춘 내에서도 <조난 프리타>를 같이 보는 장면이 나오고, 또 그로 인해서 20대 문제를 제기할 때 생겨나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드러내는 중면이 있다.

 

실제 제작자들도 그 영화와 많이 비교하는 듯하고, 또 셀프 카메라와 같은, 최근에 유행하는 그런 형식도 유사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내가 들은 평은, <조난 프리타> 보다는 훨씬 재밌고, 유쾌하고, 경쾌하다...

 

인데, 그 말은 맞기는 하다. <조난 프리타>는 무겁고, 진중하고, 철학적이다.

 

반면에 <개청춘>은 유쾌하고, 명랑하며, 현실적이다. 그리고 조금 더 입체적이다.

 

3.

 

그렇지만 <개청춘>은 <조난 프리타>와 비교될 다큐멘타리가 아니라, 다큐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바로 그 장르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일종의 메타 텍스트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일본의 20대 다큐 vs 한국의 20대 다큐, 이런 포맷 보다는 전문 다큐 vs 아방가르드 다큐, 혹은 다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그런 것으로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제작하는 20대 스탭들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유형의 20대들, 그 두 가지의 층위는 때때로 충돌하고, 때때로 해소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두 번 있는 것 같다. 군대를 앞둔 인식이, 더 이상 다큐를 계속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런 고민과 함께 다시 다큐팀에 합류하는 장면. 영화의 첫 째 클라이막스이다. 사실 나는 그가 계속해서 촬영을 할지, 그렇지 않을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결국 이전에 촬영한 부분들을 드러내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장치들을 찾아내게 될지. 그 얘기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어떤 액션 스릴러보다도 계속해서 결말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고, 그 장면의 클라이막스가 인식과 제작팀이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또 다른 클라이막스는, 그리고 영화의 진짜 클라이막스는 민희가 집을 나오는 장면이다. 대개 하나의 모순은 또 다른 꼬리를 물고 있는 다른 모순의 연장이며, 이 모든 것들이 집약되어서 터져나오는 장면들이 영화에서는 클라이막스를 형성하게 된다.

 

고졸, 정규직, 민희라는 두 가지 조건을 형성하는 배경 속에 있는 남성 폭력 그리고 영화 초반에 스쳐 지나갔던 민희의 엄마, 이런 것들과 한국의 20대에 대한 모든 얘기들이 총합적 모순처럼 옥탑방에서 폭발했다.

 

전혀 울만한 장면이 아닐 듯 싶지만...

 

이 장면을 보고 울지 않는 남성은 자신의 젠더적 감성에 대해서 한 번쯤은 의심해봐도 좋을 듯 싶다.

 

4.

짧게 짧게 나온 음악들이 아주 좋았고, 무엇보다 인트로에 나온 음악의 나팔 소리들이 경쾌해서 너무나 좋았다.

 

<개청춘>이 어느 정도 흥행을 할지는 모르지만, 상업적 성공과는 또 상관없이, 과연 21세기 한국에서 다큐라는 독특한 영화의 위치가 무엇이고, 어떤 길을 갈 수 있는가, 제작자와 대상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화해해나갔던, 한 길을 먼저 걸어간 영화로서 한국 다큐사에 남지 않을까 싶다.

 

있는대로 보여준다고 해서, 솔직히 보여준다고 해서 다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장면을 만들고, 솔직한 그림들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내적 흐름을 만들고, 플롯들을 잡아내는 것에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다큐는 찍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고, 진짜 일은 바로 편집 작업에 있다는 세간의 평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한편으로 <개청춘>은 한국의 20대들에게 바쳐진 작품이지만, 정말로는 아직 메이저 매체의 얹저리에서 자리를 잘 못잡고 있는 한국 다큐멘타리에게 바쳐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실험적이며 성공적인 다큐를 한 번쯤 볼 수 있는 기회들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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