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0대 에세이는 원래 서문을 쓸 계획이 없었다. 워낙 첫 글의 도입부가 좋았고, 정서적으로 매끄럽게 넘어가는 느낌이라, 좀 다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좀 고치다 보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30대 장관, 40대 총리'에 관한 얘기가 사실상 전체 결론인데, 뒷부분에 김구 패로디를 하다 보니까 어딘가 쑤셔 넣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결론에 첨가를 하려니까 흐름이 깨질 것 같다. 어딘가 밀어 넣으면 되기는 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때우는 방식으로 해서는 효과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이 얘기를 서문에 넣기로. 책의 결론이 앞에 나오는, 흔히 쓰지 않는 방식이 되었지만, 에세이집에 무슨 형식이. 효과만 있으면 되는 거지.

 

주위 사람들에게 서문에 들어갈 얘기를 가지고 좀 상의를 해봤는데,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고, 가장 강조하는 형식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다.

 

요즘, 청와대가 나이 너무 따진다는 조언들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그렇게까지 안 했는데, 요즘은 너무 심하다는 얘기들을 나에게 해주었다.

 

2.

책을 쓰면, 내가 변한다. 생각을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진짜로 할 수 있는 한 극한까지 생각을 하게 되니까, 안 변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번 책은, 내가 가장 많이 변한 책으로 남을 것 같다. 책 쓰기 시작할 때의 나랑, 지금의 나는 과연 같은 사람인가 생각할 정도로 내가 많이 변했다. 더 가벼워졌고, 더 말랑말랑해졌다. 그리고 가슴에 담긴 무거움 같은 게 사라졌다. 진짜로, 내가 가진 것들 다 털어낸 기분이다. 탈탈 털고 나면, 가벼워진다. 더 원하는 것도 없고, 더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책 쓰기 전에는 가슴 한 구석에 뭔가 힘들고 아픔 같은 게 남아있었던 것 같았는데, 이제 그런 건 없다.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지, 그런 게 좀 선명해졌다. 정리가 끝나면 산뜻해진다. 그런 느낌이다. 이제는 좀 더 명랑해질 수 있을 것 같다.

 

3.

프랑스에서 참 인상적으로 본 게, 저녁마다 뉴스 만평처럼 해주는 인형극이었다. 기뇰, 손가락 넣고 하는 간단한 인형극이다. 여기에 별의별 놈 다 나온다. 대통령과 총리는 맨날 나와서 치고 받고, 축구 선수도 나오고, 하여간 그날 웃겼던 놈은 다 나온다. 그렇게 서로 조롱하고 웃고, 그러다 보면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누구나 알 수 있게 된다.

 

역시 몰리에르의 나라답다고 생각했다. 몰리에르의 연극은 귀족들을 골려 먹는 내용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귀족들이 왕에게 고자질을 했다.

 

"쟤가, 아저씨 욕한대요."

 

그래서 결국 왕이 몰리에르의 연극을 보러 갔다. 잠시 후면 몰리에르의 목이 날라갈 순간이다. 그런데 연극을 보던 왕이 너무 웃겨서 진짜 크게 웃었다고 한다. 이게 왕을 웃겨서 목숨을 건진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왕도 귀족들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자기만 골려 먹은 게 아니라 자기가 싫어하는 귀족들도 같이 골려먹었으니까, 그도 통쾌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자기편이든 상대편이든, 높든, 낮든, 마음껏 조롱하면서 같이 웃는 게 프랑스식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웃기는 세계에, 우리 편 남의 편이 어딨냐. 오늘은 얘가 괜찮고, 내일은 쟤가 괜찮고. 오늘은 이놈이 웃겼고, 내일은 저놈이 웃겼고. 그런 시각으로 보면, 지금 한국에서 웃기는 사람은 딱 홍준표 하나다.

 

나는 한국이 너무 경건하다가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예전에는 군바리들 시대라고 그런가 보다 했다. 그 뒤에도 너무 경건했다. 그리고 다시 더 경건해졌다. 명박이가 오고, 순실이가 오고,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다. 지금도 너무 경건하다. 지금은 왜? 알 수 없다.

 

하여간 한국 TV에 인형극이 나오고, 거기에 대통령부터 그날의 맹활약, 그날의 큰 웃음, 그런 인형들이 너스레를 떠는 걸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전히 너무 경건하다. 이재용 인형도 TV에 나와서, "제가 좀 바보 연기를 해서 드디어 집에 오게 되었답니다, 여러분", 요렇게 사람들도 좀 웃기는 사회적 기여라도 좀 하면 좋겠다.

 

한국은 여전히 너무 무섭고, 너무 경건하다. 잘 못 웃겼다가는 토마호크 날라올 분위기다.

 

4.

한국 코미디, 사실 코미디도 아니다. 포 떼고, 마 떼고, 상 떼고, 직진만 하는 병졸 가지고 하는 코미디가 웃길 리가 있겠나? 좀 저질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나가는 폭스 티비만도 못하다.

 

우리는 웃고, 웃기는 것을 두려워했다. 대통령 소재의 코미디, 옛날에도 무서워서 못했지만, 지금도 무서워서 못한다. , 무섭다. 우리는 웃기는 것이 무섭고, 웃는 것도 무서운 나라에서 살고 있다.

 

상전을 비웃기면, 아예 가루를 만들어버리는 조선 시대의 마름 문화가 하나의 전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좀 웃고, 웃기고, 그렇게 많은 것들을 유머로 승화시켜야 논쟁이 부드러워진다.

 

웃는 게 무섭고, 웃기는 게 무섭다. 잘못 웃기다가 목 날아가는 수가 있다. 몰리에르 같은 천재가 다시 등장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걸 크게 웃은 왕의 기립박수로 넘어가주는 그 시대가 한 번 와야 하는 것일까?

 

줄 잘 못 서면, 너 날라가? 우리가 지금 만드는 나라는, 그런 숨막히는 나라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는가? 간신 나라 충신들이 충신 행세하는 나라가 된다. 순실이가 나라 주인 행세하던 시기가 그랬는데, 지금은 뭐 좀 많이 바뀌었을까?

 

경건 또 경건, 바뀐 게 별로 없다. 그리고 엄청들 심각하다. 그러면 일 좀 제대로? 절대 안 그렇다.

 

아주, 경건 지대로다. '시골 사또'에 관한 얘기를 사람들하고 같이 준비해보자는 얘기만 한 적이 있다. 지금 권력 상층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똑같이 카피해서, 네네, 이게 지금 얘기는 아니구요, 옛날 옛적에 어느 시골 관아에서 사또님과 함께 벌어지는 일이랍니다... 이렇게 해도 싱크로율 95% 나올 것 같다.

 

무섭다.

 

5.

나는 87년이 싫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니미럴. 요즘은 87년으로 돌아간 것 같다. 아주 거대한 87년 같다.

 

그 때 그 사람들을 이제는 집회가 아니라 TV에서 맨날맨날 보고, 그 때 그 톤으로 '우리의 미래' 얘기를 하는데, 문득 87년으로 돌아온 것 같은 공포가.

 

지금은 21세기다. 21세기 다웠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현실은 87년스럽다.

 

나는 이 경건함이 숨막힐 것 같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최루탄이 있어서, 왜 숨막힐 것 같은지, 설명이 쉬웠다. 논리적으로 도망가기도 쉬웠다.

 

지금 대학생이나 20대의 눈으로 한국을 한 번 보시라. 87년이나 지금이나, 뭐가 다르겠는가?

 

웃음의 역할이, 그 때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그렇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잘 못 웃었다가는 죽는 수가 있는 나라다. 그래서 서로 눈치 보면서 숨죽이고 있는 것, 왜 이래야 하나 싶다.

 

에세이집을 쓰고 나서 잠시 뒤돌아보니, 도대체 우리는 뭘 바꾼 거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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