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을 쓰다 보면 팔리는 책도 있고 안 팔리는 책도 있다. 내 경우는 그 편차가 더 크다. 내가 다루는 주제들은, 어둡고 무거운 주제들이다. 내 책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나쁜 놈에 대한 책과 불쌍한 놈에 대한 책들로 나뉘어진다. 예전에 박경철 선생이 방송에서 내 책을 추천하면서, 그래도 이 책만 '불쌍한 사람'에 대한 책이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 해에 대상을 탔다. 나쁜 놈이든, 불쌍한 놈이든, 무거운 얘기인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좀 가벼운 거, 팔릴만한 거 하면 안돼?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그런 책을 내가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 게 나빠서가 아니다. 그런 얘기 쓰고 싶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많다. 엄청나게 많다. 안 팔릴 것 같은 내용만 고르고 골라서 쓰는 것, 그게 내 일이다.

 

책을 쓰는 사람을 저자라고도 부르고 작가라고도 부른다. 예전에는 author writer라는 차이만큼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10년 넘어가다 보니, 이러거나 저러거나, 엎어치나 메치나, 마찬가지다. 큰 차이 없다.

 

나는 책 쓰는 일을, 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직업적으로 책을 쓰고 싶지도 않고, 이게 내 직업이라고 어디에 쓰고 싶지도 않다. 공식적으로도 내 직업은 책 쓰는 사람은 아니다. 내 명함에는 프로듀서라고 되어 있고, 실제로 하는 일도 그게 기본이다. 그것도 올해로 9년째, 그 일을 한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책을 쓴다. 이건 형식적인 논리이고.

 

실질적으로도 책을 쓰는 건 내 직업이 아니다. 연구를 하거나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것, 그건 내 일이다. 요즘은 아이들 키우느라 단체 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지만, 좀 짬이 생기면 적당한 단체로 복귀해서 내 여건상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생각하고는 있다. 그런 연구나 활동의 부산물로 책이 나오는 것이지, 책을 쓰겠다고만 책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내가 책에 대해서 생각하는 판매의 기준은 단순하다. 책을 쓰기 위해서 들이는 내 돈이 환수될 수 있으면 좋겠고, 출판사가 약간의 도움을 받는, 체면치레 정도다. 되는 경우도 있고,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꼭 많이 파는 것을 목표로 책을 쓰지는 않는다. 그냥 운에 맡긴다. 내가 다루는 주제들, 대부분 정말 책 안 팔릴 것 같은 주제들이다. 농업경제학 같은 것은 쓴다고 생각한지 거의 10년 만에 쓸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좀 안 팔리는 것은 괜찮은데, 너무 안 팔리는 것이 뻔할 것을 준비하기가 출판사에 미안하다. 출판사는 괜찮다고 하지만, 내가 안 괜찮다. 어차피 평생에 한 번 쓰는 것인데, 너무 민망하게 팔리면 속상해진다. 나도 사람이다. 내년 초에 농업경제학을 쓰기로 한 것은, 바뀐 것은 다른 게 아무 것도 없지만, 내가 용기가 났다는 게 바뀌었다. 여전히 무섭다. 그렇지만 용기를 냈다.

 

내가 농업 경제학 공부를 책 쓸려고 했나? 절대 아니다. 필요해서 공부한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싸움이 벌어지니까 그 싸움을 한 거고. 다른 것들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책 쓰는 것이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 일이 내 주전공도 아니고, 주로 하는 일도 아니다. 그리고 삶의 목표도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책을 계속해서 내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하는데, 그래도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다. 더 좋고 더 편한 매체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기꺼이 선택할 것이다.

 

2.

내가 책 판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기준은 매우 단순하다. 우리 집 생활비.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장한 '사회과학 전업작가'로 불러준 것에 대한 약간의 답변이다. 책으로 먹고 사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다음에 이 길을 걸을 사람을 위해서 보여주고 싶다.

 

전체적으로 계산을 해보니까, 고맙게도 지난 10년간 우리집 생활비 보다는 많이 벌었다. 나는 그것을 진짜로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은 미니멀리즘 라이프에 가깝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독자에 대한 생각도 일부 있다. 내 책을 사주는 사람들은 10대부터 대학생까지, 젊은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나보다 훨씬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사서 읽어주는 것이, 내가 저자로서 아직도 버티고 있는 이유로 알고 있다. 그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비싼 거 사고, 외제차 타고, 이런 거는 아직도 잘 못하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워낙 안 쓴다. 그래서 책 인세로 충분히 생활이 된다. 물론 매년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균 내면 그것보다는 많이 번다. 사람들에게 눈물 나게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서 더 다루기 어려운 주제들로 간다. 이제 나는 출판사 너무 어렵게 하는 경우만 아니면, 더 어렵고, 더 안 팔릴 것 같은 얘기들을 해도 된다. 나까지 말랑말랑한 얘기하고 있고, 하나마나한 소리하면 안 될 것 같다.

 

책이라는 게 비밀이 하나 있다. 쓰는 사람이 가장 실력이 는다는 사실.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사람의 키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역시 쓰는 사람이 가장 많이 키가 큰다. 책 한 권을 쓰면, 생각은 물론이고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엄청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약간이라도, 변하게 된다.

 

초기에 날 보고서 사람들이 강준만 선생을 넘을 거라는 둥, 다산보다 넘어갈 거라는 둥, 그런 얘기들을 했었다. 그 때도 그게 중요한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내가 살았던 시대가 행복해지지 않았는데, 얼마나 많이 쓰는지, 얼마나 좋은 책을 쓰는지,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나. 좋은 시대가 만들어지는 것, 그것 외에는 나는 아무 관심 없다. 거기에 기여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내 삶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진짜로 행복해졌다. 나는 내 삶에 더 바라는 게 없다. 내게 남은 유일한 관심은, 내가 살았던 시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더 유명해질 필요도 없고, 더 인기 있을 필요도 없다. 이미 누릴 만큼 충분히 누렸다.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가 얼마 전부터 인사를 하시기 시작했다. 망했다. 밤 늦게 술 사던 집인데, 창피해서 이제는 술도 다른 동네 가서 사와야 할 것 같다.

 

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시도한다.

 

3.

에세이집을 몇 년 전부터 내기 시작했다. 잘 된 책도 있고, 잘 안 된 책도 있다. 사회과학책과 굳이 구분해서 에세이집을 내는 것은, 나에게는 작동 원리가 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글을 잘 쓴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어린이 백일장에서 상 타는 정도, 그렇지만 쓰기는 진짜 많이 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평생 글을 썼다. 형식 실험도 해보고, 내용 시험도 하면서 죽어라고 글을 썼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 공부는 학기 중에만 했다. 방학 때는 책 읽고, 글 쓰고, 그런 것만 했다. 방학 때에도 시험 보는 공부하면, 진짜 바보 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집이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은 아닌데, 나는 우리 집이 아주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일찍 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봐야 그걸로 먹고 사는 거 아니라는 것은 진짜 일찍 알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나에게 가장 큰 놀이는 글 쓰는 것이었다. 평생 그랬고, 여전히 그랬다. 그렇게 글을 많이 쓰면 글이 좀 늘까? 잘 안 는다. 냉정한 세계다.

 

어차피 쓰는 글이라서, 주제를 정하고 고민을 한 것이 에세이집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시도들을 계속해서 해보려고 한다. 50대 에세이는 그런 시도 중의 하나다.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멀리 왔다. 멀리 온 게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멀리 온 것은 사실이다.

 

오늘 50대 에세이 에필로그의 마지막 글을 썼다. 나는 그 글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글은, 삶을 바꾸는 글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내 삶은 바꾸었다. 나도 바꾸지 못하는 글은, 가짜 글이거나 함량 미달의 글이다. 쓴 사람의 삶과 생각도 바꾸지 못하는데, 그게 글이냐? 글자 모음이지.

 

50대 에세이는 결국 나를 위한 글이 되었다. 그래서 부제는 '나와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하여'라고 달 생각이다. 원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 쓰고 나니까 나는 진짜로 나와 내 인생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훈련받은 것 같다.

 

, 이제 다음 에세이집으로 넘어가야 할 때래서, 그 동안 블로그 맨 앞에 있던 '50대 에세이' 폴더는, '옛날 글들'로 옮겨질 것이다. 몇 달 동안, 이 글들을 쓰면서 진짜로 나는 행복했다. 행복이 뭔지, 어떻게 사랑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50, 이제야 그걸 알았냐? 지금이라도 안 게 다행이다. 평생 모르고 미움만 갖고 살다가 죽을 뻔했다.

 

폴더 하나가 닫히면, 생각의 흐름 하나가 바뀌게 된다. 나는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죽기 보다 싫어한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매듭을 짓고, 다음 길을 걸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나는 '50대 에세이' 폴더의 마지막 글을 쓰고, 그 폴더를 닫는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다음 글의 주제는 아름다움이 될 것 같다. 아름다움, 51세에 찾아봄직한 주제다. 그 전에, 뱃살부터 좀 빼야겠다. 바지가 안 맞는다. 이렇게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해보니까, 에세이집이 좋은 점이 있다. 삶을 조금씩이라고 바꾸어 나갈 수 있다. '아날로그 사랑법'이라는 겁나게 안 팔린 에세이집이 있다. 아마도 내 책 중에서 안 팔린 책 기록을 세울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이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책이 되었다.

 

내 삶을 바꾸었다. 그 이전의 내 삶과 그 이후의 내 삶이 다르다. 나는 진정으로, 사랑을 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진짜로 나는 책이 팔리거나 안 팔리거나,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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