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 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백범 일지 중)

 

 

50대 에세이의 마지막 글을 써야 한다. 이 자리에 백범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 대한, 일종의 패로디를 쓰기로 생각한 것은, 처음 50대 에세이를 구상하던 초기 단계였다.

 

내가 특별히 백범을 좋아해서? 별로 그런 건 아니다. 사실 잘 모른다. 그냥, 남들 아는 정도. 특별히 더 많이 알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좋아하거나 흠모하거나, 그렇지도 않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열성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은.

 

이상하게 김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좀 있었다. 테러리스트라서 싫다는 의견이 제일 많았고, 과대포장되었다는 의견이 일부. 그리고 무능해서 싫다는 것도. 다 맞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백범 일지가 과연 김구가 쓴 것이겠냐? , 이광수가 적당히 넣을 거 넣고 뺄 거 뺀, 춘원의 작품일 뿐이라는... 그럼 다 개구라?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여간 이 시점에 내가 백범 일지를 다시 읽고 뭔가 생각을 다시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문화가 강성한 나라이면 좋겠다는 백범의 '내가 만들고 싶은 나라' 21세기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의 글들은 20세기적이거나, 20세기적으로 해석되었다. 대부분의 냉전의 산물이거나 독재 시대의 산물이다. 혹은 동구가 붕괴하기 이전에 팽팽하던 시절의 산물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을 수용하던 생각 역시, 군인들과의 싸움 속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한국의 역사는 언제 결정적으로 페이지가 넘어갔을까?

 

아주 주관적으로만 생각해보면, 최순실이 이게 민주주의냐고 소리칠 때 청소부 아줌마가 "염병하네"라고 외치던 날, 우리는 이제 다른 시대로 넘어온 것 같다. 최순실에게 당당하게 염병하네, 과연 누가 외칠 수 있었겠나?

 

이제 한국의 역사는 그 뒤로는 가지 않을 것 같다. 뒤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 꼭 좋아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염병하네", 그 상태에서 아주 오랜 기간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50대 에세이를 굳이 쓰기로 마음 먹고, 그것도 아주 공개적인 형태로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염병하네"가 최순실만이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는 청소 아줌마 뒤로 싹 숨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저 거침없는 염병하네, 그건 나를 향한 것은 아마 아닐 것이야...

 

그래서, 염병하네...

 

내 안에 있는 20세기적인 것들을 한 번쯤, 나도 탈탈 털어내고 싶었다. 그게 50대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진짜 배경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면?

 

마치, 백범이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렇게 쓴 것처럼, 나도 내 생각을 정리해서 하나를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 모두 이런 글을 한 번쯤은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그럼! 네가 원하는 것은?

 

아니, 나는 원하는 건 따로 없고, 그저... 이런 것이 개수작이다.

 

개수작과의 결별을 위해서는, 고통스럽고 별로 안 쓰고 싶고, 그리고 남들이 싫어할지 몰라도,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글을 꼭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 하면? 나머지 50년의 삶이 다시 개수작이 될 수도 있다. 그저 하던 대로... 내가 제일 잘 나가, 아니 잘 나갔어, 이런 거적데기 같은 소리나 하면서,

 

그게 이 김구 패로디를 써보고 싶은 이유다.

 

그렇지만 막상 쓸려니까, 역시 무섭다. 그래서 계속 시간을 끌고, 또 시간을 끈다. 백범 일지를 다시 며칠에 걸쳐서 읽은 것, 이런 게 기본적으로는 개수작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읽었나, 그랬다. 당연히 기억 잘 안 나지...

 

그래서 다시 읽어보기는 해야 할 것 같은. 형식적으로는 맞는 얘기인데, 요런 게 개수작이다. 바로 써도 되는 데, 그래도 시간을 좀 끌고, 도망가고 싶은.

 

그러니까 지금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것 그리고 그 배경, 그런 것을 다시 생각하는 것도, 역시 개수작이다.

 

그리고 지금은 오후 1시 반,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몸에서 나는 신호에 뇌가 열심히 반응하는 것, 이런 것도 개수작이다. 생각은 물론이고, 내 몸도 알아서 개수작을 한다.

 

그래서 이 글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언제 이 개수작이 끝나고 글을 쓰기 시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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