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핀 것은 처음 본 것 같다. 산에 그렇게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절에 꼬박꼬박 가는 것도 아니다.


큰 애가 기침이 심상치 않아서 병원에 갔다가, 그냥 바로 집에 들어가기가 좀 그래서 집에서 멀지 않은 봉원사에 잠깐 들렸다. 별 생각 없이 잠깐 애들하고 산책이나 할까 싶은.


그래도 연꽃이 핀, 쉽지 않은 구경을 했다.


지난 번 봉원사에 왔던 게, 아마 애들 태어나기 이전인 것 같다. 몇 년 되었다.


별로 절에 오는 편은 아닌데, 봉원사에는 외할머니의 기억이 좀 담겨 있다.


태어난 곳이 봉원사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가 모두 교사라서, 좀 길게, 외할머니 손에서 컸었다. 그 때 기억이 지금도 내 인생에서는 가장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 성격이 외할머니를 닮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삶에 가장 많이 영향을 남긴 분이 외할머니인 것 같기는 하다.


일곱살 때인가,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기시고는, 내가 학위 받고 현대 다니던 시절까지 살아계셨다. 말년에는 자주 뵙지 못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가 봉원사에 기와를 사셨다는 얘기는 아주 나중에 들었다. 그랬는지 아닌지, 내가 알기는 어려웠고.


내가 기억하는 건, 어렸을 때 할머니 손에 잡고 봉원사에 와서 절밥을 먹고 갔던 건 기억에 남는다. 설탕을 묻힌 아주 큰 튀각이었는데, 정말로 맛있게 먹었던 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밥 먹고 나오는데, 문 앞에 있던 스님이 튀각을 한 줌 손에 쥐어주였던 것도 기억이... 나중에 생각해보면 네 살 아니면 다섯 살 때쯤인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연꽃을 보면서 꼭 외할머니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그건 아주 오래 전 기억이고, 나는 또 내 삶이 정신이 없다.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내 삶은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은? 정신도 없고, 굉장히 쫓기는 마음이 강하고, 되는 건 없고, 그래서 편안한 시기는 아니다. 날 도와줄 사람은 거의 없고, 내가 도와야 하는 사람은 겁나게 많고 (가끔은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짜증이 거의 극한으로 가고 있는 시기라고 하면, 아주 틀리지는 않을 얘기일 것 같다. 폭발하고 싶은 것을 겨우겨우 누르고, 버티고 있다고 하면 맞을까?


운 좋게 피어난 연꽃을 보고, 약간 마음이 풀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풀렸다기 보다는, 이제부터 풀어나갈 수 있는 약간의 단초를 보았다고 할까?


강하고 편한 것 같아 보이는 삶, 많은 경우 개뻥이다. 삶은 늘 힘들고, 건조하고, 그 사이로 걱정이 소나기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라도 아름다운 것을 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좋은 것은, 그 아름다운 것이 겁나게 비싼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산과 강을 건너서 가야만 그 아름다운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래서 여전히 삶은 부디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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