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요즘 블로그에 글을 못 쓰는가?

 

2004년부터 하루에 A4 3~4장은 글을 썼던 것 같다. 그 중에는 괜찮은 글도 있고, 뭔가 전혀 방향을 못 잡은 글도 있고, 생각은 맞는데 전혀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못한 글도 있다. 그렇긴 한데, 그게 나의 습작 시절이었다고 생각하면 대체적으로 맞는 것 같다. 수많은 생각의 시도들을 했고, 표현의 시도들도 했다.

 

큰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로 영 블로그에 글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못 쓰는 것도 있고, 안 쓰는 것도 있고, 더더군다나 쓸 참이 없는 것도 있고.

 

작년부터는 그래도 조금씩은 블로글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영 쉽지 않다. 그래서 잠시 생각해봤다. 왜 나는 요즘 블로그에 글을 못 쓰는가?

 

1.

일단은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 물론 애 보는 틈틈이 잠시 컴을 켜는 것이니까 절대 시간이 부족한 게 맞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다른 글들은 쓰다가 쉬었다, 다시 쓰다가 다시 쉬었다, 이렇게 끊어가면서 글을 쓴다. 다른 글을 못 쓰는 것은 아니고, 블로그 글만 못 쓴다. 시간이 없기는 없는데, 절대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2.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 그런 것 같다. 별로 신경 쓰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데, 나만 혼자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그렇게 눈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신경을 좀 써야 하는 시간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가 뭘 어떻게 생각하는지, 요즘 누가 지켜보고 신경을 쓰겠나. 혼자 하는 생각이다.

 

물론 블로그에 글을 쓰면 누가 보기는 본다. 그렇지만 예전에 비하면 이제는 별로 내 생각이 뭔지 중요하지도 않아서, 별 신경 안 쓰고 자유롭게 써도 되는 상황이다. 괜히 나 혼자 눈치 보는 습관이 든 것 같다. 남들 배려하는 것과 눈치 보는 것은 좀 다르다. 엄한 짓을 혼자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잠시.

 

3.

너무 잘 쓸려고 한다. 그건 나중에 진짜 인쇄 매체로 갈 때 고민을 해도 되는데, 초고 때부터 너무 가설적인 얘기들을 앉히는 것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런 게 괜한 욕심이다. 눈치 보는 데다가, 잘 쓰는 것처럼 보이려는 생각까지 겹치면, 이래서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4.

가끔은 술 마시고 글을 쓴 적도 있다. 술 먹고 책을 쓰지는 않는데, 글은 가끔 썼다. 술 먹고 글 쓰는 것은 안 하기로 꽤 오래 전에 마음을 먹었다. 술 마실 때는 맘 편히 술만, 글 쓸 때는 편안하게 글만.

 

안 그래도 안 쓰는데, 술 먹고 쓰던 것마저 없어지니까, 아예 안 쓰게 된다. 술 먹고 잠깐 생각은 나는데, 깨고 나면 잊혀진다.

 

그래도 술 먹고 글 쓰는 것은 안 하는 게 낫다. 그렇긴 한데, 글의 분량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5.

그리고 책을 너무 안 읽는다. 죽어라고 읽어야 뭐라도 좀 남는데, 절대적인 독서량 자체가 너무 줄어들었다. 책에서 오는 새로운 정보가 없다. 그렇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이 가장 많이 날 때가 원래 책을 읽을 때다.

 

6.

방송 진행 하다가 겉멋도 들었다. 기본적인 방향만 잡으면, 실제로 자세한 얘기는 출연자들이 알아 오거나 작가들이 정리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게 효율적인데, 그러다 보면 기술만 늘고, 실제로 뭐가 뒤지고 찾는 일은 덜 하게 된다. 아니면 아예 안하고, 진행만 생각하거나. 바보 같은 일이다. 화려한 것은 잠시이고, 오래 가는 것은 단 하나라도 진짜로 만드는 일이다.

 

7.

그리하여, 눈치 안 보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시도들을 다시 하기로 했다. 괜히 쭈그리고 있다가 생각이 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내가 뭘 하든지, 뭔 생각을 하든지,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다. 혼자서 이것 맞추고, 저것 맞추고,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런데, 그 지랄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한 문장, 두 문장 짜리 글이라도 좀 더 많이 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려고 한다.

 

, 오늘은 토요일 밤, 지금부터 간만에 눈치 안 보고 술 한 잔 마시려고 한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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