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실사판은 편이 있다. 공교롭게, 7편부터 봤다. 그리고 한 편을 더 봤는데, 이게 뭔가, 잘 이해를 못했다.

원래 패트레이버는 극장판은 전부 dvd를 가지고 있고, 그 외에도 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찾아봤었다.

주말 내내 애들한테 시달리다가 그 주말의 마지막, 일요일 밤에 아이들 재우고 넥스트 제네레이션 1편의 에피소드 0을 봤다.

뭐지? 이 익숙하고, 오래 전부터 내 피부였던 느낌은?

나중에 보니 감독이 오시이 마모루, 공안 9과의 얘기를 극장으로 옮긴, 바로 그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였다.

영화를 보면서, 아니 책이든 소설이든 아니면 시든, 어떤 얘기라도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본다.

98년이었던 것 같다. TV판 에반게리온을 처음 봤을 때, 그 느낌과 유사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강렬했다.

수 년 아니 수십년 동안 잠자고 있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깨어나는 느낌?

내용상 유사한 것은, 2000년인가, <춤추는 대수사선>을 봤을 때...

그 때의 강렬함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자라서, 몇 년 후 결국 공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2.
넥스트 제네레이션 시리즈의 백미는 1편이 에피소드 0이다. 에피소드 제로, 이걸 봐야 그 뒤에 이어지는 허무 시리즈의 줄기가 잡힌다. 나도 이걸 안 보고 뒤의 얘기를 먼저 봤더니, 도통 뭔지 감을 못 잡았다.

얘기는 한직에 관한 얘기이다. 한직이기는 하지만, 진짜로 한가하지는 않다. 두 개의 레이버를 운용하기 위해서 3명씩 두 조, 그 두 조가 24시간 비상 대기한다. 물론 비상 상황은 몇 년째 벌어지지 않는다.

편의점을 딱 두 명이 운용하는 것과 같다고 영화는 설명한다.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바쁘기는 겁나게 바쁘고, 비상 운용체계이다, 몇 년째.

<춤추는 대수사선>이 헤이세이 공황 이후의 일본 관료의 고민을 담고 있다면,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도 마찬가지다. 대수사선에서는 일선서의 애환과 본청 사이의 갈등이 중심이다.

패트레이버는 더 하다. 일선에 있는 경찰서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레이버는 이미 기술적 실패에 대한 논쟁이 끝난 상황이라 - 필요없다고 - 부처가 언제 해체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무의미하지만, 최선을 다 한다...

울 뻔했다. 그리고 조금은 울었다.

난 늘 한직에 있었다. 대기업에 있을 때나, 정부 기관에 있을 때나, 심지어는 연구원 부원장을 할 때나, 늘 한직이었다.

그런데 한직이 한가하지는 않았다. 그런 걸 뭐하러 하느냐는, 남들의 관심 밖에 있는 일들을 했는데, 언제 부서가 없어질지 몰라서 진짜로 죽어라고 밤새고 일했다.

한직이 가끔 바빠진다. 회장 보고 할 때, 장관 보고 할 때 혹은 대통령 보고 할 때, 밤 샌다.

영화 에피소드 2는, 이 한직이 가끔 바빠지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무의미하지만, 안할 수는 없으니까 밤을 새는...

장관 보고로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장하준 교수의 아버님께서, 장관이 되어 상관으로 모시던 시절이 있었다. 겁나 밤 샜다. 장관이 바보면 바보라서 밤 새는 게 힘들고, 바보가 아니면 바보가 아니라서 또 힘들고.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무의미한 일이다.

3.
내 삶은 전체적으로 '한직'이 딱 맞는다. 늘 한직에 있었다. 환경, 에너지, 이런 게 전형적인 한직이다. 아, 그렇다고 해서 바쁘지 않은 건 아니다. 여의도에서는 연구직, 이게 전형적인 한직이다.

지금은?

지금도 한직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 키우고, 기저귀 갈고, 동화책 읽어주고, 빨래 개키고, 그런 데 쓴다.

한직이라고 안 바쁜 건 아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본은 90년대 이후 계속 공황이다. 그러다보니 공직과 대기업의 구호와 위상 그리고 내부적 논의가 많이 바뀌었다.

일상의 한직화?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시리즈가 딱 그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화될 가능성 제로,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이 얘기를, 아 딱 내 얘기도, 그렇게 받아먹을 사람들이 있다.

에피소드0을 보면서, 몸 안에 수 년 동안 잠자고 있던 세포들이 막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오 예, 한직. 이게 나의 가장 익숙한 정체성이다. 나, 이런 거 좋아, 딱 좋아.

4.
몇 년째,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 앞에 섰는데, 마땅한 답을 못찾았다.

패트레이버 에프소드 0을 보면서 이 질문에 답을 찾았다.

한직.

공각기동대의 공안9과보다 훨씬 내 삶에 싱크로율이 높은 특차2과 얘기, 진짜 재밌다.

딱 작년 요맘 때, 류승환 감독이랑 사기꾼 얘기를 하면서 '경제 사시꾼'이라고 가제를 잡아놓은 책이 있었다. 출판사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사기'라고 약간 바뀌었다.

어떻게 풀지, 큰 기둥이 세워지지 않아서 계속 미루고 있던 책이다.

한직, 이 생각이 들자마자, 사기꾼 얘기의 주요 줄기들이 딱 맞춰졌다.

오 예, 구성 끝...

점심 때 이 책의 에디터 만나서 밥 먹었다.

이보 보행 로봇이 왜 시대에 뒤떨어졌는가? 인간의 바보 같은 생각...

재밌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흑사회 2  (0) 2017.05.21
패트레이버2  (1) 2017.03.22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0) 2017.03.15
영화 <베테랑> 감상문  (1) 2015.07.23
머니볼, the show  (7) 2014.02.19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