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 책의 마지막 절은 '신들의 경제' 정도의 제목을 달고 종교 얘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종교 얘기에 얽히는 게 귀찮기도 하고, 또 몇 년된 정보들을 다시 최근형으로 업데이트 할려면 에고고...

그래도 마음을 먹은 것은, 내가 왜 책을 쓰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내가 책을 쓸까? 모른다. 올해까지는 쓸 것 같고, 내년은 나도 모른다. 수 년에 걸쳐 이것저것, 출판사와 계약된 책들은 올해 다 끝난다. 내년에는 출간 계획이 없다. 2005년부터 시작해서 출간 계획이 없는 해는 내년이 처음이다. 갑자기 마음이 엄청나게 바뀌지 않으면 내년 출간계획을 따로 잡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쓸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

모르는 게 흠은 아니다.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다 예상할 수도 없다. 모르는 게 흠은 아니지만, 모르는 데도 아는 척하는 것은 흠이다. 다음 정권은 어떻게 될까? 모른다. 잘 하기를 바라지만 잘 할지 못할지, 모른다. 어떻게 될지 미리 예상하고 설정할 수는 없다. 급격한 변동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그러니 미리 예상을 하고, 출간 일정을 세울 수는 없다.

입문서나 청소년용 책, 그런 가벼운 책에 대한 요구를 많이 받는다. 사회과학 방법론에 대해서 딱 한 번 입문서를 쓴 적이 있다.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처음 책 쓰기 시작하면서, 입문서를 쓰거나 좀 더 대중적으로 편안한 책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책 쓰는 일을 내려놓겠다고 나하고 했던 약속이 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책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방가르드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물론 그렇게 아방가르드처럼 살지도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경제라는 주제를 다루는 내 입장은, 가장 첨예한 전선, 바로 그 대치점 맨 앞에 서 있을 거 아니라면 안 다룬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게 치열한 전장 한 가운데 어딘가에 서 있지 않을 거라면, 굳이 경제학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필요도 없고, 그걸 또 어렵게 많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책으로 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만큼은 지금도 변한 것은 없다.

삶은 지난 10년 동안 많이 변했다. 한 때 시민운동의 상근활동가였고, 연대 조직의 사무국장도 했다. 현장 한 가운데에서 살았고, 늘 내 몸은 전국의 현장 어딘가에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더는 현장에 서 있기가 어려워졌다.

맨 앞에 있는 치열한 얘기들 혹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논의되지 않짐나 궁극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별 재미는 없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내가 책을 쓰고, 시간을 들일 이유는 없다.

종교와 경제, 전격적으로 한 권으로 다루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늘 치열한 현장에 서 있었다,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사회적 경제의 마지막 절은 종교 얘기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이럴 생각이다. 치열한 얘기 아니면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다. 언제부터인가, 책 한 권 낼 때 연구조사 등 내가 쓰는 돈이 더 많아졌다. 내 책은, 준비하는데 돈 많이 들어가는 책이다. 그만큼 치열한 얘기니까, 내 돈을 써가면서 연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거라면, 논쟁을 피하거나 숨어가면서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간만에, 내가 왜 책을 쓰는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오후였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