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주일 남짓 남았나, 헌재 결정까지? 나는 기다리는 건 그래도 잘 하는 편이다. 많은 걸 기다리면서 살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밖에 없는 경우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지가, 기다리지 않으면 어쩔 건데?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그리고 그 결과도 잘 감내해왔다. 몇 번을 제외하면, 그렇게 기다린 결과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참고, 또 다음 번 일이나 다음 번 기회를 기다렸다.

마지막 남은 이 일주일 정도는, 진짜로 기다리기가 어렵다. 기다리지 않고 뭐라고 할 수 있으면 좀 낫겠지만, 아이들 줄줄 끌고 뭔가 하기도 힘들다. 그냥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어쩌면 내 삶에서 가장 초조하고, 가장 큰 기다림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대학이야, 떨어지면 후기로 가던지, 재수하면 그만이었다. 별 거 아니었다. 유학 가서 대학원 시험 결과 기다릴 때, 어차피 한 번에 붙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별 생각 안하고 있다가 갑자기 합격증이 왔다고 해서, 몇 배로 더 기쁘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 때 시간이 생겼다고 몇 배로 더 행복해지지도 않았다. 뒤돌아보면, 시간 남는다고 괜히 뻘짓만 했다.

그 후에도 기다렸던 것들이 있기는 한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결과가 그렇게 내 삶을 바꾸지는 않았을 것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보지도 않았다. 안되면 다음, 또 안되면 또 다음, 그리고 정 안되면 그 옆의 비슷한 길, 되는 대로 살았다. 처절하게 무엇인가를 기대한 적도, 간절히 바란 적도 없다.

결혼하고 9년을 기다려서 아이가 태어났다. 그렇지만 그건 기다림과는 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세상 일, 억지로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기다리고 감사하고, 그냥 자연이 지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사는 수밖에 없다. 아이를 기다린다고 뭐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소하게 기다리는 일이 여전히 있지만, 본질적으로 삶에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덜 피곤한 방식으로 갈 것인가, 좀 더 피곤한 방식으로 갈 것인가, 그 정도의 차이만 있다.

이번의 기다림은 다르다. 헌재의 인용은, 삶의 거의 대부분을 바꿀 정도로 큰 일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뀔 것이다.

MB 이해로, 찌질하게 살았고, 화내는 것을 줄였다. 그리고 참았다. 참는 것은 기다림과는 좀 다른 일이다. 화나도 참고, 참으면 참는 만큼, 속으로 깊어지는 게 아니라, 찌질해졌다. 그리고 더 참으면 더 참을수록, 삶의 벼랑끝으로 내몰린다. 존심? 그런 건 애저녁에 시궁창에 처 박았다.

10년을 참았다. 그렇게 참다 보니, 속으로 쌓아놓은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방법 자체를 아예 까먹었다. 참는 게 그냥 삶의 방식이 되었고, 찌질함은 본질이 되었다.

마지막 1주일, 기다림이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도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다시는 이런 기다림이 존재하지 않을 그런 미래를 사람들과 같이 만들고 싶다. 이런 치사한 종류의 기다림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다시 기다린다. 내 삶에서 가장 간절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기다림, 그래도 다시 참고 기다릴 것이다. 다시는 기다릴 일이 없도록, 지금 기다릴 것이다.


- 우석훈 (2017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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