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가의 노래, 새로운 작업을 위한 모색 중

 

박근혜 정부 2년차, 참 고통스럽다. 고통스럽고 답이 안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꾸질꾸질하게, 우린 질 거야, 아마, 그렇게 있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나는 글을 많이 쓰는 편이다. 막 태어난 아기랑 아내와 함께 실랑이하는 게 좀 지나고 나니, 이제는 그래도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앉아서 글을 쓸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글을 안 쓰고 있으면, 더 답답하다. 뭐라도 쓰고 있어야그래서 나는 늘 글을 쓸 주제를 찾는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글이 나온다, 난 아직 그런 경지에는 가 보지 못했고, 뭔가 주제를 정해서 오랫동안 생각해보면서 하나씩 꺼집어내는 편이다. 그래서 더더욱, 오랫동안 길게 생각할 주제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정말로, 내 무의식 속에 뭐가 제일 인상 깊었고, 이 시기에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가, 짜낼대로 짜내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 속에서 나온 게, ‘형가의 노래였다. 사실 별 노래는 아니다.

 

바람은 소소히 불고, 역수물은 차구나

장사가 길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으리

 

딱 두 연 짜리 시이다. 별 내용도 없고, 별 뜻도 없는데, 나는 이 노래가 그렇게 좋았었다. 어렸을 때에도 좋아했는데, 학위를 받고 나서도 난 이 노래가 그렇게 좋았었다.

 

아내에게 처음 쓴 연애편지에도 이 노래를 썼던 걸로 기억난다. 아내는, 그 정도가 아니라 처음 했던 데이트에서도 이 노래 얘기를 했다고사람들이 미친 넘이라고 하더니, 자세히 보니 진짜 미친 넘이라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그 때 형가의 노래 얘기만 안했으면, 좀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는 토를 달아주었다.

 

생각해보니, 난 누군가에게 진심을 가지고 얘기할 때, 늘 형가의 노래를 얘기했던 것 같다.

 

장사가 길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으리

 

나는 이 노래가 그렇게 좋았었다. 지금도 좋을까?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 여전히 좋다.

 

형가가 죽으러 가면서 불렀던 노래가 형가의 노래이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몇 주 전, 아내가 얘기한다. “너는 형가를 제일 좋아했어.”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수호지, 뭐 그런 중국 고전 중에서 내가 누구를 좋아했나 가만히 생각해본다. 강유를 참 좋아했고, 한신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중의 제일은, 형가, 정확히는 형가의 노래이다. 이제 좀 있으면 쉰이 되는 나이, 내 삶을 돌이켜보니 진짜로 내가 좋아했던 것은 형가의 노래였다. ? 모른다. 그냥 좋았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서, 아주 조그맣게 메모했던 문장이 있다.

 

박근혜 시대, 마키아벨리 이후의 책들은 필요 없고, 효능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제왕, 그들을 모셨던 사람들의 얘기가 오히려 더 유효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것 같다. 현대 정치학은 정당을 중심으로 얘기를 푼다. 양당제니, 다당제니, 대의제 민주주의니 혹은 직접 민주주의제이니, 기본적으로는 정당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얘기이다.

 

박근혜 시대, 이게 다 개뻥이다.

 

중세 유럽을 비꼰 얘기 하나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왕이 아침에 일어날 때 침대에서 왼발로 내리면 성군이 되고, 오른발로 내리면 폭군이 되고, 그래서 사람들은 왕이 어떤 쪽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는지 아주 관심이 있었다고

 

지금 우리가 딱 그런 꼴이다. 군주의 심기를 살펴야

 

침대에서 어떤 발로 내렸는지 알아야 하는 것, 이런 된장, 야당의 비대위원장도 딱 그런 꼴 아닌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근대적 인간의 출발에 해당하는 책이다. 야박하게 얘기하면 이익, 좀 점잖게 얘기하면 합리성, 그런 걸 갖춘 인간들이 만드는 사회의 시스템에 관한 글이다.

 

2014년 대한민국, 그런 근대성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차라리 왜 한신이 숙청되었는가, 장량은 어떻게 버텼는가, 그리고형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역수를 건넜고, 그가 노래를 불렀던 동기는 무엇일까, 그걸 생각하는 게 빠르지.

 

형가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모아보고 싶은 글들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해볼 수 있는 일종의 소품 코미디같은 것이다.

 

그래도 웃어야지, 어쩌겠냐.

 

하여간 이런저런 이유로 연말까지는 책상에 앉아서 자료들 쭉 펼쳐놓고 하는 그런 작업은 할 수가 없다. 뜨문뜨문, 책 읽고, 머리 속에서 혼자 생각하고, 하루에 한 두 시간 정도 글을 쓰는 그런 형편에서, 형가의 노래를 가지고 소품 코미디를 만들어본다는 생각으로

 

마키아벨리 이후의 책은 전부 필요 없다. 그런 근혜 시대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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