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는 가끔 그야말로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동감있게 보여주는 일반인들의 글이 올라온다. 대체적으로 재밌다...

 

알바 얘기는 나도 자주 다루고, 취재도 많이 한다.

 

그래도 늘 새롭다. 슬픔과 기쁨이 순간적 찰라에 뒤엉켜 지나간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42715&PAGE_CD=ET000&BLCK_NO=1&CMPT_CD=T0000

 

 

  • 매달 5일은 월급날이다. 전달 일한 잔업시간에 따라 월급이 각자 다르겠지만 큰 차이는 나지 않는 것 같았다. 30년 근무한 사람이나 10년 근무한 사람이나 기본급 차이가 워낙 적었고, 나머지는 잔업수당에 따라 달라지는데 정규직들이야 거의 시키는 대로 잔업을 채우다보니 모두 비슷비슷하다고 했다. 쉬는 시간 공장장이 월급 명세표를 나눠주었다. 모두들 쓱 한번 쳐다보고는 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왜 꼼꼼히 살펴보지 않느냐니까, 다 알고 있단다. 옆에 있던 최영근씨가 대신 답해준다.

    "저 사람들 자기가 잔업한 내용은 꿈에서도 틀리지 않아요. 공장 다니는 사람들은 다 그래요. 어제 몇 시간, 그제 몇 시간. 하루하루 잔업시간이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 다 입력이 돼 있다니까요. 한 시간이라도 틀려 봐요. 바로 사무실에 달려가 난리 나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나만 하더라도 하루하루 일당을 나도 모르게 계산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일부러 보여달라고 한 박성현(47, 가명)씨의 10월 급여는 256만 몇 천 원이었다. 잔업이 142시간 기록돼 있었다. 한 달 내내 한 번도 쉬지 않고 하루 4시간 이상 잔업을 해야 찍히는 시간이다.

    "잔업 140시간이 넘어가면 하루도 안 쉬었다는 건데. 휴일날은 쉬고 싶지 않아요?"

    내가 물었다.

    "낸들 기계가 아닌 이상 쉬고 싶은 맘이 와 안 들겠능교. 우리 회사가 일감이 있다 없다 카니까. 벌 때 벌어야 하는기라요. 그라고 우리가 알바 맹크로 쉬고 싶다고 쉴 수 있겠능교. 회사에 시키면 시킨 대로 해야지."
    "월급 받으니 기분이 어때요?"
    "큰 돈은 아이지만 그래도 통장에 돈이 꽂힌다고 생각하니 좋은 날 아닌교."

    박성현씨는 멋쩍게 웃었다. 김영태(53, 가명)씨는 기자와 같은 조립반에 있어 친한 사이다. 그에게도 월급명세표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거절한다. 부끄럽다는 것이다.

    "우리 아들이 구미에 있는 대기업에 작년에 취직했는데, 걔 초봉이 30년 일한 나보다도 많던 걸."

    머리를 긁적이는 그에게 부끄럼과 뿌듯함이 섞여 있다.

    여성 알바들 때문에 공장이 환해졌다

    공장 안이 갑자기 환해졌다. 아줌마 네 명이 알바로 왔다. 나이 지긋한 오십대 초중반 나이지만 공장에 돌연 활기가 돈다. 아줌마들은 부속 끼우는 공정에 투입됐다. 두 명은 작년에도 보름 정도 일한 경험이 있고 나머지 둘은 처음 온 사람들이란다.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인지 다들 작업에 거부감도 없고, 처음 온 사람 특유의 멋쩍음도 없었다. 어느새 네 명은 같은 일행처럼 어울렸다. 같은 공정에서 여성들끼리 일하다 보니 한결 일할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처음엔 이들의 활력이 같이 뭉쳐서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차츰 지내고 보니 여성 특유의 친화력과 적응력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며칠 후 그녀들은 각각 다른 공정에 배치되었다. 그녀들은 각자의 공정에서 무뚝뚝한 남자들에게 색다른 방식의 소통을 자극했다. 내가 일하는 조립공정은 주로 피스를 박고 무거운 새시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일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포장을 하거나 새시에 구멍을 뚫는 프레스 작업 작업장에서 같이 일하는 남성 노동자들의 얼굴엔 희색이 돌았다.

    여성 특유의 소통과 섬세함이 작업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 같았다. 이 여성들도 오후 8시30분까지 잔업을 꼭꼭했다.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자 이런 답이 돌아온다.

    "집에서 놀믄 뭐한다요? 애들 다 컸겠다. 팔다리 튼튼허것다, 남편 돈 못 벌것다. 여기 와서 일하는 게 훨씬 맘 편허요. 몸이사 쪼개 고되긴 하더라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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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알바들 여성들이 일하자 공장에 돌연 활기가 찼다.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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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전라도가 고향이고 다른 두 명은 경상도가 고향이다. 만나자마자 언니, 동생 하는 그녀들에게 지역감정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훨씬 우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목표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질주하다 삶을 소진하는 남성에 비해 여성은 소통과 공감에서 기쁨을 찾는다.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도급작업

    "00초등학교 창틀 3500개 작업이 밀려 있어, 이번 토요일 도급으로 쳐내겠습니다. 그리고 일요일은 △△회관에서 회식을 합니다."

    공장장이 아침 조회를 소집해 말했다. 도급이란 일명 '돈내기'라고도 하는데 일정 물량을 정해진 조건으로 약속한 시간 내에 처리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최대한 자극해 일감을 몰아치는 것으로, 건설현장에서 흔히 써먹는 방식이다. 창틀 3500개 조립 다하면 언제든지 마칠 수 있고, 그날 작업은 일요일까지 한 것으로 쳐 이틀 치를 계산한다.

    몇 시쯤 마치냐니까, 대개 열두시쯤이면 마치는데 빠르면 열한시 반에도 마친다고 한다. 나는 지하철 막차 시간 때문에 고민을 하다 다음날 쉬고도 하루 일당을 쳐준다는 유혹에 넘어가기로 했다.

    토요일 도급날이 되었다. 사람들이 부산한 가운데 자발적으로 일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자재를 준비하고 조립대를 일렬로 놓은 다음 조를 짰다. 피스를 박는 조립은 능숙한 정직원들이 하고 알바들은 나르거나 절단된 새시를 조립하기 좋게 작업대 위에 놓는 있는 일을 했다. 여성들은 비닐로 묵는 포장을 하고 세 명은 4개 단위로 포장된 창틀을 쌓았다.

    나는 운이 나쁘게 창틀 쌓는 작업을 했다. 창틀 묶음 하나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5킬로그램에서 20킬로그램은 됐다. 이 창틀을 아침 여덟시부터 밤 열한시까지 마당으로 나른 다음 키보다 높게 적재했다. 어깨가 뻐근했지만 내 앞에 놓이는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쌓아야만 했다. 다음날 아침 수저를 못들 정도 어깨가 아팠지만 정작 일할 때는 통증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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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틀 도급 작업 조립한 창틀을 마당에 쌓고 있다.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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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급날은 하루를 보내는 기준이 달라졌다. 자주 보던 시계는 뒷전이고 몇 개를 조립했는가에 관심이 쏠렸다. 점심시간에 같이 적재하던 장씨에게 물어보니 "팔 구백 개 정도 되려나?" 한다. 삼천오백 개를 언제 다하나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자 산더미 같던 자재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반면에 내가 쌓고 있는 창틀은 언덕처럼 쌓여갔다. 물어보면 힘만 빠질 것 같아, 다음날 쉴 생각만 하며 쌓고 있는데 "얼추 이천 개는 넘어 나온 거 같네"하는 장씨의 말이 들렸다. 주위를 돌아보니 어둑해지려고 한다.

    이 추세라면 열두시 경에 마칠 것도 같았다. 그보다 조금 일찍이거나. 결국 도급도 그동안의 경험에 의해 정해진 코스에 불과했다. 경험적 통계에 의해 이 정도 물량이면 대략 몇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다는 추정이 나왔고, 그 오차범위는 한 시간을 넘지 않았다. 결국 도급이란 밀린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전력질주를 원하는 작업지시 방식이었다. 정속 주행하던 차를 일부러 가속시켜 성능 시험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세시, 하루 중 작업능률이 가장 떨어질 때다. 사장님이 현장에 나타나더니 직원들에게 일일이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나에게도 오더니 "고깃값이다!"하며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민다.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생각지도 않은 돈이 들어오니 일순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먹이를 받아먹는 애완동물이 된 느낌이다. 주는 방식을 달리했으면 어땠을까. 봉투에 넣어 공장장을 통해 지급하는 식으로 우회하는 했으면 훨씬 세련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한편으론 그런 방식은 먹물 배인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식에 불과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힘쓰라고 던져주는 먹이, 눈앞에서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쥐어주는 게 당장 그 순간 힘을 쏟는 데는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거기에 먹이를 주는 주체를 강력하게 인식하게 하는 건 덤이고.

    이것이 현장에서 날것으로 축적된 관리기법인지, 혹은 사람을 다루는 사장님의 개인적 스타일인지 구별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나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방식이었다. 모멸감이 든 사람이 나뿐인가 싶어 둘러보니 누구도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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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시 원자재 마당에 쌓여 있는 새시 원자재를 작업장 안으로 옮겨 조립한다.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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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비 값'이라는 명목의 현금보너스를 지급하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본래 도급은 하루 일하고 이틀치의 임금을 계산하기 때문에 다음날은 당연히 휴무가 된다. 그런데 다음날 회식이라는 명목으로 직원들의 출근을 종용했다. 오두 두시에 회식을 할 예정이니 어차피 나오는 공장, 조금 일찍 나와 오전 작업이라도 해달라, 사무실 회의에 참석하고 온 공장장이 금요일 저녁에 한 말이었다.

    곧 이어 웅성웅성하더니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이고 고깟 고기 안 묵고 쉴라요."
    "고기 몬 묵어 환장했나?"
    "공장장요, 고마 사람 좀 삽시다. 괴기보다 쉬는 게 몸에 더 좋소."
    "회식비 돈으로 나눠주믄 안 되나, 억지로 회식 안 해도 되니 사장님도 좋고 우리도 좋고, 서로 좋을 틴디."

    얼굴이 달아오른 공장장이 "알았다, 알았어"하며 손사래를 치고는 사무실로 다시 갔다.

    열시가 넘어서부터 슬슬 지하철 막차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막차는 모덕역에서 11시 45분에 있다. 지하철을 타지 못하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집까지 택시비가 못해도 삼만 원은 나올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다음날 일당까지 두배로 벌기 위한 도급이 거의 헛수고가 된다. 택시비 삼만 원을 빼고 이만 원 벌자고 열두시까지 뼈 빠지게 일하는 건 한마디로 미련한 짓이다.

    차츰 초조해져 장씨에게 물어보는 횟수가 많아졌다. 다 되어 갑니까. 몇 개쯤 했을까요. 그도 대충은 가늠해도 정확히는 답하지 못한다. 아마 11시 반 꺼지는 되지 싶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해결책이 나왔다. 쉬는 시간에 아주머니들에게 어떻게 집에 갈 예정이냐니까. 간단하게 대답한다.

    "우리는 찜질방에 갈 겁니더."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차가 끊기면 굳이 택시를 안 타고 팔천 원짜리 찜질방에서 자고는 아침에 대중교통을 타면 되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푸근해졌다.

    "집에 안 들어가면 아저씨가 뭐라 하지 않나요?"
    "아, 이 나이에 뭔 의심이여, 의심이. 젊은 마누라도 아닌디 뭘."
    "아따, 나가 한 푼이라도 벌어야 지가 따신 밥이라도 묵을 거 아인가베."

    아주머니들은 외박이 마치 소풍이라도 되는 것 마냥 즐거워했다.

    도급작업은 장씨의 말대로 11시반에 끝났다. 나는 서둘러 지하철 막차를 탈 수 있었다. 종종거리는 발길과 달리 시선을 위로 쳐다보니 불 꺼진 공단의 밤하늘에 몇 개의 별이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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