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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박근혜 정권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① / 홍세화

등록 : 2013.12.12 19:31수정 : 2013.12.13 15:06

홍세화 <말과 활> 발행인


자본국가 시대에 법치라는 이름으
로 자행하는 폭력을 통해 국가적 정
체성을 확립하겠다는 의지 말고는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는 박근혜와
그의 도착적 권력은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변화의 가능성이라곤 완벽히 차단된 듯 보이는 사이비 유토피아-왕국에 맞서 북한 인민은 봉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다음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고는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도 지닐 수 없다. 북한의 세습-유훈 통치권력의 반대편 짝을 이루는 박근혜 정권의 정치적·역사적 반동에 맞서 남한의 인민은 봉기할 수 있을까. 저 80년 5월의 열흘처럼, 87년 6월에 시작된 길고 완강한 파고처럼.

“내년(2014) 지방선거가 끝나면 필시 새누리당과 민주당, 그리고 통합진보당만 살아남을 것이다.” 이른바 ‘이석기 사건’으로 소란스럽던 즈음 사석에서 지인이 던진 말이다. 그의 말은 이후 박근혜 정권이 약속한 복지공약을 하나하나 내던지고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는가 하면, 야당과 의회의 눈치나 시민사회의 불만 같은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비판도 용인하지 않는 과도함을 보임으로써 한때 60% 선을 훌쩍 넘기도 했던 지지율이 하락하는 요즘의 상황에서도 적용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 이상의 묵인이 불가능한 지점까지 밀려온 상황에서 반전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에 대한 사과를 넘어 대통령직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나오는 것이 그런 조짐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앞서 인용한 지인의 말은 한낱 푸념이요 패배주의에 젖은 지식인의 토로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 자조 어린 한마디 말은 한국에서 전개되는 정치현상의 표면 아래 자리잡고 있는 어떤 견고한 구조와 특성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가령 적대적 공존관계가 휴전선 바깥과 안에서 동시에 관철되는 구조라는 점으로도. 어느 중소기업 인사의 바람과는 달리 남한의 자본권력의 계산기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새로운 시장 확보보다는 남북관계가 경색될수록 쉬워지는 노동 통제가 훨씬 더 유리하다고 말할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과 철도노동자들에 대한 대규모 직위해제의 칼날은 무노조 삼성왕국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누군가 말한 “1.5당+부스러기 진보정당체제”에서 종북몰이는 그것이 몰상식의 차원에서 행해진다고 하더라도 1당한텐 꽃놀이패 놀음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판 ‘철의 여인’은 우아한 한복으로 가린 자신의 실체를, 유전자적 독재 본능을 가차없이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무모하리만치 난폭한 공안통치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왜 사회 구성원 다수가 야당과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이 제시하는 ‘독재냐 민주냐’라는 대립선의 이쪽으로 집결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법치라는 명분으로 감행되는 정권의 전방위적 공세가 민주주의에 대한 그간의 신뢰를-그것이 허구와 환상을 포함하는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뒤흔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째서 박근혜와 그의 권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것일까.

대개 그렇듯이, 진실은 사태의 이면에 웅크리고 있다. 나는, 2003년에 작고한 모리스 블랑쇼가 1958년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거주 프랑스인들이 일으킨 반란을 계기로 드골이 정계에 복귀하고 마침내는 헌법 개정과 제5공화국 선포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하는 사태를 보면서 쓴 짧은 정치평론(‘거부’와 ‘본질적 타락’이란 제목으로 썼다)으로부터 오늘 여기서 일어나는 정치적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블랑쇼가 그 글에서 강조하듯, 역사는 결코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1945년 파리 해방 정국에서의 드골과 1958년의 드골이 다르듯이, 개발국가 시대의 박정희와 자본국가 시대의 박근혜가 동일시될 수 없다. 드골의 재등장을 분석하면서, 블랑쇼는 우선 그의 권력을 단지 독재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주문한다. 드골은 과시적 행동을 멈추지 않는 천박함(이명박 정권을 상기하면 좋을 것이다)과는 거리가 멀었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초조하게 나서지도 않았다. 그는 정치적 공방 속에 모습을 드러낼 때조차도 마치 자신은 무관한 것처럼 태도를 취하며, 권력에 초조히 다가가기보다 권력이 다가와서 자신에게 바쳐지기를 원했다. 드골의 범죄는, 알제리 사태로 말미암은 ‘국가의 공백’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자신을 국가 운명과 일치되는 최고주권으로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하나의 유한한 정치권력을 구원의 권능으로 변질시켰다는 데 있다. “그가 한 번 우리를 구원했으니 매번 우리를 구할 것이다”라는.

최고주권이란 ‘대체불가능’하고 유일한, 적수가 없는 권력을 말한다. 분단체제 아래 박정희와 김일성이 바로 그러한 최고주권적 권력이었다. 그들은 국가의 가시적인 현전이었고 화신이었다. 이 두 권력한테는 적수가 있을 수 없었으며, 오로지 적대적 공생관계로 존재하는 두 개의 최고주권이 마주보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박근혜 정권과 이를 지지하는 반공주의 우파의 거의 종교적인 믿음에는 자신들이 오늘의 ‘국가건설’(nation-building)의 주역이라는 확신이 있는바, 여기에 우파를 넘어선 광범위한 합의가 뒷받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산업화는 물론이거니와 지금까지도 골간이 유지되고 있는 의료보험 제도까지 포함해 오늘의 한국 사회를 정초한 장본인이 자신들이요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준 힘이 박정희라고 하는 데 대한 동의의 구조가 굳건한 한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는 지속될 것이다.

어느 글에선가 나는, 지난 대선을 지배했던 두 가지 특징이 ‘회고주의’와 ‘좌파의 부재’라고 썼다. 존재 자체가 강력한 회고인 박근혜는 한편으로 박정희 시대를 패러디하면서 이 회고와 국민행복시대를 건설하는 자신의 역할을 연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그들의 조력자 역할을 자임했던 진보진영의 불행은 똑같이 회고주의(지난 ‘민주정부’ 10년에 대한)에 매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회고할 것이 너무 빈곤했거나 부재했다는 데 있다. 요컨대 박근혜 정권의 등장은 1987년 체제가 박정희의 국가와는 ‘다른 국가’를 구성하는 데 실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다시 블랑쇼의 논지를 빌리자면, 드골이라는 이름 아래 숨지만 본질적으로는 사회 변화의 선택에서는 결단 불능이었던 정권, 결국 경제권력의 패권을 비호하는 일에 몰두했던 정권이 실패했듯이, 자본국가 시대에 법치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폭력을 통해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는 의지 말고는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는 박근혜와 그의 도착적 권력은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영국의 노장 감독 켄 로치는 원조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의 장례식을 사영화(‘민영화’라고 잘못 쓰곤 하는)하여 경쟁 입찰에 맡겨 가장 싼 비용으로 치르자고 주장하여 주목받았다. 그가 만든 영화 <1945년의 정신>(The Spirit of ’45)은 전후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한 노동당이 수행한 국유화를 통한 혁신적 복지국가 건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는 영국 역사상 가장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대처 정권의 등장이 다름 아닌 무능한 노동당 지도자와 노조 지도자의 지원에 힘입은 것이라는 지적을 빠뜨리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돌아가야 할 ‘45년 정신’ 같은 것이 없다.

박근혜 정권과 우리는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를 소리 높이 외치면 유신의 망령이 물러나고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까. 오늘 우리의 곤경은 이를테면, 헌법질서에 위반된다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제로 ‘진보적’이어서가 아니라 ‘진보적’이라는 수사 말고는 내용이 없는 공허한 것이라는 데서 온 것이 아닐까.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그의 권력이 놓인 뿌리와는 다른 ‘긍정’을 향한 길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치의 ‘본질적 타락’”(블랑쇼)은 모습만 달리할 뿐 거듭 반복될 것이다.

홍세화 <말과 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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